살림순이 5. 제기 닦을래 (2014.1.31.)

 


  설날 차례상에서 쓸 제기를 닦는다. 사름벼리가 쪼르르 달라붙으며 묻는다. “뭐 해? 나도 닦고 싶어. 아, 저기 (행주) 있구나. 나도 닦아야지.” 무엇을 한다고 대꾸하지 않았고, 하라고 시키지 않았으나, 일곱 살 어린이는 혼자 묻고 혼자 대꾸하면서 마룻바닥에 톨포닥 앉아서 얌전하고 이쁘게 제기를 닦는다. 큰아이가 닦은 제기를 나중에 살펴보니 덜 닦거나 제대로 안 닦아서 모두 다시 닦았지만, 손길이 싱그럽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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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44. 꽃 어디 갔어? (2014.1.24.)

 


  마당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놀던 산들보라가 문득 뒷간 앞에 쪼그려앉아서 “여기 구멍 어디 갔어? 여기 꽃 어디 갔어?” 하고 혼잣말을 한다. 뒷간 문턱에 조그맣게 구멍이 있고, 이 구멍에 해마다 제비꽃이 피고 진다. 이 자리에 있던 제비꽃풀이 겨울에 시들고 나서 사라졌는데(뽑았으니까) 예전 모습이 떠올랐는가 보다. 이제 두 달만 기다려 보렴. 두 달 뒤에 그 자리에 다시 제비꽃풀 싹이 터서 이윽고 보라빛 조그마한 꽃송이가 벌어질 테니.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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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43. 흙이랑 노래하기 (2014.1.23.)

 


  며칠 앞서까지는 누나가 함께 마당으로 내려가 주어야 흙놀이를 하던 산들보라인데, 요즈음은 누나가 마당으로 내려가 주지 않아도 혼자서 슬슬 마당으로 내려선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부르지 않는다. 함께 놀아 달라 부르지 않는다. 키가 제법 자라서 까치발을 하면 혼자 대문을 열 수 있다. 아직 혼자 대문을 열고 마을 이곳저곳 둘러보러 다니지는 않으나, 마당 한켠 흙밭에 폴싹 주저앉아서 흙놀이를 하곤 한다. 한참 동안 혼자 흙놀이를 하면서 무어라 무어라 종알종알 노래를 한다. 곧 새봄 찾아오고 여름이 밝으면 하루 내내 마당과 뒤꼍과 들과 숲과 바다에서 놀겠구나.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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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1-24 11:31   좋아요 0 | URL
어제는 (무슨 연유에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득 시골에서 자랄 때 '비오던 날의 풍경'을 수십 년만에 떠올리고는 그 추억을 더듬느라 한참 동안 즐거웠답니다.

초가집 지붕 처마 끝으로 떨어지던 빗물도 떠오르고, 나중에 기와집으로 바꾼 뒤로는 '처마끝마다' 내리던 빗물이 '홈통 만들어 놓은 곳으로만' 세차게 쏟아져 내리던 풍경도 떠오르고요.. 빗물이 세차게 퍼부을 때면 그 빗물이 흙마당과 만나 뽕글뽕글 풍선같은 물방울을 끝없이 만들어 내던 그 풍경도 떠오르고, 그 빗물들이 모여서 마당을 떠나 '도랑'을 타고 내려가면 그 위에 종이배를 띄워서 어디까지 무사히 흘러가는지 도랑물 따라 종이배와 함께 내달리던 기억도 나구요..

도랑물이 경사진 언덕을 타고 흘러 내리면 괜히 물막이를 만들어 그 빗물들이 마음대로 못 지나가도록 심술을 부려보기도 하고, 막혔던 물이 그득 고이면 그걸 시원스레 터트리면서 신나 하기도 하구요.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운동화'와 '책가방'을 마련하지 못해 검정 고무신을 신고 학교를 다니고, 보자기를 펼쳐 책을 담아 등 뒤로 비스듬히 가로질러 메고 다녔던 기억도 떠오르네요. 참 꿈같은 시절이었어요. 함께살기 님의 사진을 보면 가끔씩 잊혀졌던 옛 생각이 절로 떠올라요. ㅎㅎ

숲노래 2014-01-24 11:46   좋아요 0 | URL
oren 님 어릴 적에 살던 집이
풀지붕 집이었군요!

생각으로만 옛날 일을 떠올리면서
얼마나 아련하고 아스라한
맑은 빛일까요.

풀지붕 집은 겨울에 많이 춥다 하더라도
이곳에서 살던 나날은
여든이나 아흔이 되어도
가슴속에 오래오래 새겨진 채
마음을 밝혀 주리라 믿어요.

그러니, 이러한 느낌이 고스란히
oren 님이 읽는 책과 여러 글들에
새록새록 녹아드는구나 싶어요.

마당이 흙마당이어야
빗물을 가두면서 아이들이 놀 수 있겠네요.
참 그렇군요.
 

시골아이 42. 억새놀이 즐거운 시골길 (2014.1.20.)

 


  도시에서라면 억새를 뽑아서 놀 수 없다. 다만, 도시 가운데에는 조금 바깥으로 나가면 억새를 얻을 만한 데가 있을는지 모른다. 시골은 억새도 있지만 자동차도 없다. 억새가 있으면서 자동차가 없으니 시골이다. 그러나, 시골 가운데에도 억새를 보기 어려우면서 자동차는 자주 보는 데도 있겠지.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억새를 누리면서 자동차는 없어 시골길 한복판을 아무 거리낌이 없이 달리거나 거닐면서 논다. 바람소리를 듣고 바람내음을 먹는다. 바람빛을 누리면서 여름에도 겨울에도 마음껏 지낸다. 얼마나 즐거운가, 자동차가 없으니. 얼마나 조용하면서 싱그러운가, 자동차가 달리지 않으니. 자동차가 달리는 찻길에는 억새뿐 아니라 나락도 콩도 자랄 수 없다. 자동차가 달릴 수 없는 논과 밭과 들과 숲에는 억새뿐 아니라 앵두나무도 잣나무도 유채풀도 동백나무도 씩씩하게 뿌리를 내리면서 자란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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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순이 4. 마루문 걸레질 (2014.1.19.)

 


  쓸고 닦고 이불을 털어서 말리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큰아이가 “나도 도울래.” 하면서 걸레를 물에 적시고는 대청마루를 신나게 닦는다. 그러고는 피아노방을 함께 닦더니, 마루문을 닦겠다고 문을 붙잡고 논다. 큰아이한테 “걸레 이리 줘 보렴.” 하고 말하고는 빨아서 다시 건넨다. 손이 닿는 데까지 죽죽 뻗으면서 유리문을 닦는다. 잘 하네. 예쁘네. 이제 아버지는 빨래를 할 생각인데, 이에 앞서 너희 머리를 감자. 자, 나중에 더 걸레질을 하고 벼리랑 보라랑 머리 감으러 가자.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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