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밥꽃 책읽기

 


  들에 밭에 아주 조그마한 풀이 돋는다. 아주 조그마한 풀에는 아주 조그마한 꽃이 핀다. 꽃을 한참 바라보며 생각에 젖는다. 이 조그마한 꽃이 피지 않았을 때에도 이 조그마한 풀포기를 가만히 바라볼 수 있을까. 이 조그마한 꽃이 아직 안 피었을 적에 이 조그마한 풀포기가 어떤 풀포기인지 헤아릴 수 있을가. 이 조그마한 꽃을 알아보면서 풀이름을 깨달은 뒤, 꽃이 피도록 힘쓴 줄기와 잎과 뿌리가 어떠한 얼굴이요 빛이며 그림인가를 살필 수 있을까.


  높다랗게 줄기를 올리는 굵다란 풀포기에 가리기 마련인 괭이밥풀에 핀 괭이밥꽃을 읽는다. (4345.7.1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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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손

 


  책을 읽는 손으로는 내 어떤 삶을 읽을 수 있을까. 책 또는 글을 쓰는 손으로는 내 어떤 삶을 일굴 수 있을까.


  새벽에 일어난다. 아침에 풀물 짤 생각을 하며 멧풀을 헹군다. 집 둘레에서 자라는 풀을 살핀다. 한 잎씩 뜯어서 씹는다. 씹는 맛이 좋다고 느끼는 풀을 한 대접 뜯는다. 두 손가락을 써서 똑똑 끊을 수 있는 보드라운 풀을 골라서 뜯는다. 마당 한켠에 있는 물꼭지를 틀어 들풀을 헹군다.


  빨래를 한다. 집식구 옷가지를 만지작거린다. 내가 어떤 손길로 만지작거리는가에 따라 이 옷에 깃드는 넋이나 사랑이 달라질 테지. 나 스스로 가장 좋은 손길이 되고, 나 스스로 가장 따순 손품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한다.


  내가 쓰는 삶은 내가 좋아하며 걸어가는 삶이리라. 내가 읽는 삶은 내가 사랑하며 어깨동무하는 삶이리라. 내가 좋아하는 길을 가만히 생각한다. 큰 비바람을 몰고 온다는 하늘이 아직 파랗다. 어릴 적부터 큰 비바람에 앞서 바람이 잔잔하기도 하고 고요하기도 한 때를 지나, 하늘이 새파란 때를 지나면, 이윽고 온통 새까만 하늘에 무시무시하게 퍼붓는 빗줄기가 온 땅과 지붕을 내리꽂곤 했다. 해가 있는 동안 집안일을 하고, 모기그물을 찾아 끝방 창문에 붙이자. (4345.7.1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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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과 책

 


  밥을 차린다. 식구들 함께 먹을 밥을 차린다. 아이는 밥을 한 술 뜨고는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 다른 데에 가서 논다. 책을 본다든지 인형을 만지작거린다든지 동생이랑 엉겨붙는다든지 한다. 나는 이른아침부터 밥을 차리느라 부산을 떤다. 밥을 차리고 나서는 빨래에 마음이 간다. 그리고 이것저것 손 가는 일이 많다. 가만히 보면 나도 밥자리에서 느긋하게 앉아서 밥을 먹지는 못하는 몸이 아닌가 싶다. 아이더러 혼자 밥상 앞에 얌전히 앉아서 냠냠짭짭 하기를 바랄 수 없는 셈이리라 본다. 아이가 밥을 제대로 다 먹고 나서 한갓지게 책을 보든 다른 놀이를 하든 한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4345.7.1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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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있는 곳 (도서관일기 2012.7.14.)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책이 있는 곳에는 물기도 불기도 가까이 있으면 안 됩니다. 물기가 너무 많으면 책이 눅눅해지고, 불기가 가까이 있으면 그만 책이 타거나 바랩니다. 가만히 헤아리면, 책이 아닌 나무가 우거진 숲도, 물이 너무 넘치면 나무가 살기 힘들어요. 숲에 불씨가 있으면 그만 숲이 홀랑 타서 사라져요. 숲이 숲답게 있을 수 있는 곳이 책이 책답게 있을 수 있는 곳이로구나 싶어요. 그러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되겠지요.


  사람이 살아갈 보금자리를 좋고 예쁘며 알맞게 돌볼 수 있다면, 책이 있을 자리가 되든 다른 무엇이 있을 자리가 되든 좋고 예쁘게 알맞게 돌볼 수 있겠지요.


  오늘날 사람들은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정작 사람됨을 빛내거나 밝히는 가장 아름다운 길을 놓치거나 놓거나 등진 채 엉뚱하거나 얄궂은 쪽으로 기울어졌지 싶어요. 참답게 살아갈 길을 찾아야 비로소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책씨를 퍼뜨리며 사랑꿈을 이룰 수 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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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기다린 만화책

 


  오래 기다린 만화책을 기쁘게 장만해서 읽는다. 그런데 첫머리부터 어딘가 께름하다. 이야기 흐름이 첫머리부터 몹시 늘어진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고단한 몸을 잠자리에 눕히고는 끝까지 읽는다. 사이사이 아이 오줌바지를 갈아입힌다. 밥을 차려서 식구들하고 먹는다. 빨래를 한다. 손에 다 마르고 겨우 한숨을 돌릴 만한 즈음 마저 읽는다. 그렇지만 매우 따분하다. 왜 이렇게 느낄까?


  그래. 내가 좋아하는 마음으로 읽으려 하던 만화책은 ‘작은 시골마을에서 작은 아이들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꽃피우는 사랑’을 들려주는 이야기책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 만화책이 넷째 권에 이르자 그만 ‘작은 마을’과 ‘작은 아이들’과 ‘작은 사랑’을 몽땅 놓치거나 잃는다.


  오래 기다리던 만화책이지만 애써 읽으면서도 즐거운 생각이 샘솟지 않는다. 앞엣권 세 권은 더 장만해서 내 좋은 이웃한테 선물하기도 했는데, 넷째 권을 읽고 나서는 이제까지 이어온 세 권 이야기는 무언가 싶어 쓸쓸하다.


  작은 마을은 참 작아요. 작은 아이들은 참 작아요. 작은 사랑은 참 작아요. 그런데, 작은 마을이라 하지만, 이곳도 마을이에요. 작은 아이들이라 하지만, 이들도 아이요 사람이며 목숨이에요. 작은 사랑이라 하지만, 바로 사랑이에요. 부디 놓거나 놓치지 말아 주셔요. 부디 예쁘게 아끼고 곱게 좋아해 주셔요. (4345.7.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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