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콩꽃 책읽기

 


  콩꽃이 하얗게 핀다. 이웃 할머니한테서 얻은 봄콩을 곧장 열두 알 심었더니 모두 예쁘게 싹이 트고 씩씩하게 자라며 꽃을 피운다. 콩씨는 콩싹을 틔우고 콩줄기를 올리면서 콩뿌리를 내리고 콩잎을 펼치면서 콩꽃을 보여준다. 콩꽃은 하얀 꽃송이 예쁘게 노래하면서 천천히 무르익어 콩꼬투리를 내놓을 테고, 콩꼬투리에 새로운 콩알을 맺을 테지. 봄콩으로 여름콩을 얻는 셈이라 할 텐데, 여름콩을 얻고 나서 다시금 콩알을 심어 가을콩을 거둘 수 있을까 궁금하다. 따사로운 햇살 마음껏 먹으면서 무럭무럭 알차게 잘 여물어 다오. 보들보들 폭신한 잎사귀를 쓰다듬는다. (4345.8.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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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걀꽃 책읽기

 


  가운데가 노랗고 테두리가 하얀 작은 꽃송이를 어릴 적부터 곧잘 보았다. 참 흔하게 보는 꽃이요, 어디에서라도 쉽게 보는 꽃이었다. 꽃이름은 잘 몰랐지만 달걀꽃이라고 일컬었다. 꽃송이를 줄기랑 같이 따서 손가락에 가락지처럼 이으며 놀곤 했다. 가시내도 사내도 꽃가락지를 삼으며 예뻐 했다.


  마당 한켠에서 달걀꽃이 피고 진다. 꽃대가 오를 무렵 뽑고 또 뽑아도 어느새 새삼스레 자란다. 풀은 아주 작은 씨앗을 조그마한 흙땅에 숱하게 뿌려 다시금 기운을 차리며 돋는다. 사람은 어떤 씨앗을 제 마음에 심거나 제 이웃 마음에 심을까.


  다섯 살 큰아이가 달걀꽃을 잔뜩 꺾는다. 그런데 꽃대를 좀 밭게 꺾는다. 꽃대가 좀 기름하게 꺾으면 여러 꽃송이를 한데 엮든 손가락에 고리처럼 묶든 하기 좋을 텐데. 꽃대를 밭게 꺾으면 꽃송이 엮기가 힘든 줄 스스로 느낄 테고, 다음에는 좀 기름하게 꺾어서 놀 수 있겠지. 자그마한 달걀꽃 송이를 갖고 노는 자그마한 손이 앙증맞도록 예쁘다. (4345.7.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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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곰팡이 (도서관일기 2012.7.28.)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집하고 서재도서관은 가깝다. 그러나 얼마쯤 떨어졌다. 집 바로 옆이 아닌 만큼 창문을 모두 닫아걸어야 한다. 이 때문에 장마철을 지나 무더위가 푹푹 찌면서 바람갈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주 마땅히 곰팡이가 핀다. 아침에 두 아이를 데리고 서재도서관으로 나오니, 문을 열자마자 곰팡이 내음이 확 풍긴다.


  창문을 연다 해서 냄새가 빠질까. 창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곰팡이 내음이 가득하지 않을까. 한 번 곰팡이가 핀 책꽂이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일까 궁금하다. 이 책꽂이를 버릴 수는 없고, 겉에 무언가를 발라야 할까 싶다. 꽂은 책을 다시 꺼내어 책꽂이를 햇볕에 말린 다음 무언가를 발라야겠지. 일손은 곱으로 들고 여러모로 번거로울밖에 없다. 책을 시골마을에 두면 이렇게 곰팡이하고 씨름을 해야 할까. 책은 시골 아닌 도시에 깃들어야 하는가. 그렇지만 팔만대장경 같은 나무책이 오래오래 고이 이어가는 모습을 본다면, 책이 있어야 할 자리는 시골이든 도시이든 대수롭지 않다. 외려 시골일 때에 책을 잘 살피거나 아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책을 두려면 바람이 잘 들고 아주 좋은 나무로 책꽂이를 짤 뿐 아니라, 날마다 찬찬히 보듬으며 아끼는 사람 손길이 있어야 하리라. 날마다 사람 손을 타면 어느 책에도 곰팡이가 필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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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기
― 알아채지 못한 사진

 


  참 좋다고 느낀 삶 한 자락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누리는 즐거운 꿈과 사랑이 있어, 이 꿈과 사랑을 사진으로 적바림합니다. 스스로 느끼는 즐거운 꿈과 사랑이 없다면 내 손에 사진기를 쥘 수 없습니다. 스스로 깨닫는 좋은 웃음과 이야기가 있어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우리 시골집에 찾아온 손님이 있습니다. 손님은 두 아이를 데리고 왔으며, 우리 집에도 두 아이가 있습니다. 서로 얼크러집니다. 참으로 좋네, 하고 느끼며 시골 들길을 거닐며 우리 집으로 가는 뒷모습을 사진 한 장으로 적바림합니다. 손님을 치르고 나서 며칠 지난 뒤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뒷모습 사진이기에 뒷모습을 담습니다. 우리 아이가 등에 뭔가를 멨습니다. 뭔가 하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복주머니’입니다. 옆에 선 언니가 가방을 멨기에 저도 복주머니를 가방처럼 등에 멘 셈입니다.


  나는 우리 아이가 등에 복주머니를 멘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손님네 언니랑 사이좋게 놀면서 언니를 따라합니다. 아이는 즐겁게 놀았겠지요. 어버이가 알아챌 만큼 즐겁게 놀고, 어버이가 미처 못 알아챌 만큼 즐겁게 놀았겠지요.


  사진으로 뒷모습을 찍었기에 나중에 알아보기도 하지만, 사진으로 뒷모습을 안 찍었더라도, 그래서 이런 모습으로 논 줄 몰랐다 하더라도, 아이 얼굴을 보면 웃음이 흐드러지니까 ‘그래, 이런 웃음이 좋아.’ 하면서 새로운 하루를 새롭게 누렸으리라 생각합니다. 웃는 얼굴도 예쁜 뒷모습도 모두 반가우며 즐겁습니다. (4345.7.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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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7-28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언니와 안헤어지려고 하지 않던가요? 저만할 때 언니를 무척 따를 때인데요.
언니 따라 복주머니 멘 것 보고 혼자 상상해봅니다.

<삶말> 잘 받았어요. 고맙게, 잘 읽겠습니다.

숲노래 2012-07-29 07:50   좋아요 0 | URL
놀이동무 곁을 안 떨어지려고 해요.
그래도 씩씩하게 잘 놀아요....
 


 털실 책읽기

 


  털실로 뜨개옷을 짤 수 있다. 털실을 길게 한 가닥 풀어 잡기놀이를 할 수 있고, 한 가닥을 세발자전거 손잡이에 이어 당기기놀이를 할 수 있다. 털실뭉치를 공으로 삼아 받기놀이를 할 수 있고, 알맞게 끊어 바닥에 그림놀이를 할 수 있다. 내 생각에 따라 털실은 좋은 놀잇감이 되고 좋은 놀이벗이 된다. 내 마음에 따라 털실은 새 모습으로 태어나고, 새 빛깔을 곱게 입는다.


  책이란 무엇인가. 책 하나는 나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책을 읽은 나는 스스로 내 삶을 얼마나 가다듬으면서 새롭게 태어나려 하는가. 책을 빚은 사람들은 책을 빚는 동안 얼마나 산뜻하며 아리땁게 거듭나려 하는가. 책은 삶에 빛이 되는가. 책은 삶에 길이 되는가. 책은 어디에 있을까. 책은 무엇을 이루는가. 책을 손에 쥔 사람들은 하루하루 얼마나 재미난 꿈을 꾸는가. 책은 어디에서 만들어 어디에서 읽히는가.


  아이가 털실을 갖고 논다. 어른도 털실을 갖고 논다. 털실은 누가 빚었을까. 털실은 숲 어디에서 비롯했을까. 털실로 짠 옷이 낡으면 이 실올은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실로 옷을 짜서 입으려는 생각은 어떻게 태어날 수 있었을까. 몸을 덮는 세포처럼 옷을 이루는 실을 생각하고, 머리를 덮는 머리카락처럼 모시나 누에한테서 실을 얻는 길을 생각하던 마음은 어떠한 빛이었을까.


  책은 날마다 태어난다. 오늘 새로 나온 책은 모레에는 지나간 책이 되고, 모레에 새로 나올 책은 글피에 흘러간 책이 된다. 같은 이야기 담은 책이 꾸준하게 새로운 옷을 입으며 태어나기도 하고, 같은 이야기 담은 책을 되풀이해서 읽기도 한다. 얼마나 다른 삶을 얼마나 다른 손길로 엮은 책일까. 얼마나 오래도록 이어갈 꿈과 사랑을 담으려 하는 책일까. 사람들은 책 하나로 어떤 실타래를 엮어 서로서로 아름답게 살아갈 지구별을 보살피려 하는가. (4345.7.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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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7-27 09:09   좋아요 0 | URL
옆지기님이신가요?
그 솜씨 좋으신?
미인이셔요

숲노래 2012-07-27 09:22   좋아요 0 | URL
옆지기는 아니고,
저희 시골집에 나들이를 오신 '호주에 사는 이웃' 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