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1일에 쓴 글. 예전 글을 갈무리하며 곰곰이 되읽다가 걸쳐 본다. 아마 웬만한 사람들은 권정생 할아버지 이 같은 모습을 잘 모르지 않을까?

 

..

 

2005.10.1. 권정생



  누리그물(인터넷)에서 이모저모 살펴보다가 ‘권정생’ 할배 이름을 치니 여러 가지 글이 뜬다. 이 가운데 2005년 8월 26일치 〈한겨레21〉에 실린 ‘우토로 살리기 캠페인 모금’이 눈에 띈다. 남경필(20만 원), 김미화(30만 원), 강맑실(100만 원), 윤도현(30만 원)도 돈을 냈는데, 경북 안동 조탑마을 오막집에서 홀로 살아가는 권정생 할배도 10만 원을 냈다.


  두멧시골에서, 몸 움직이기 수월하지 않다는 분이, 우체국까지 손수 찾아가서 10만 원을 부쳤을 일을 헤아려 본다.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서, 마을 어귀 시골버스 타는 데로 간 다음, 두 시간에 하나쯤 지나가는 시골버스를 타고는 읍내나 면내 우체국으로 가셨겠지. 우체국에서 종이쪽에 슥슥 글을 적어서 돈 조금 부쳤겠지. 버스일꾼이나 우체국일꾼은 천천히 기우뚱 걷는 할배가 누구인지 알까?


  어쩐지 짠해서 눈물을 찔끔하다가, 이처럼 한결같이 이웃하고 눈물을 나누려는 모습을 가만히 그린다. 돈이 많아야 이웃사랑을 할 수 있지 않다. 100만 원을 내거나 1만 원을 내거나 대수롭지 않다. 마음이 반갑고 고맙다.


  안동 할배는 어느 ‘수재 의연 모금’에도 돈 10만 원을 낸 자국이 있다. 이오덕 어른 큰아드님이 권정생 할배한테 언젠가 ‘수재 의연 모금’을 놓고서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여쭌 적이 있다. “정생 형님, 신문사에 10만 원 내셨습니까?” “봤냐? 10만 원 냈지.” “돈이 10만 원밖에 없어서 10만 원을 내셨습니까? 신문에 이름이 실리고 싶으셨나요?” “허허, 그래. 내 이름 좀 신문에 나라고 냈지. 수재 의연금이라고 돈있는 사람들은 1억도 내고 5000만 원도 내서 얼굴이 실리던데, 〈한겨레〉에서는 1억을 내든 10만 원을 내든 얼굴 사진 없이 이름만 싣잖냐?” “거기는 그렇게 하지요.” “나 같은 동화작가도 10만 원을 내는 줄 사람들이 보면, 작은 아주머니도 작은 아저씨도 1만 원씩 내서 같이 이름이 실릴 수 있지 않겠니?” “요새 어른들은 동화를 안 읽어서 정생 형님 이름이 신문에 실려도 누구인지 모를 텐데요?” “그럴까? 그러면 안 되는데. 허허. 먼저 동화부터 읽으라고 해야겠네. 허허.”


  곰곰이 돌아본다. 어쩌면, 권정생 할배는 ‘나 아직 우체국으로 버스 타고 나가서 이렇게 돈 부칠 수 있을 만큼 몸 튼튼해’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셈이지 싶다. 적잖은 사람들이 할배 몸이 아픈 일을 걱정하지만, 그런 걱정일랑 말고, 즐겁고 아름답게 꿈을 그리고 사랑을 생각하라면서 속삭이는 10만 원이리라 느낀다.


  어떻게 살아갈 때에 삶다울까. 아름답게 살아갈 때에 삶답겠지. 어떻게 살아가야 즐거울까. 사랑스레 살아갈 때에 즐겁겠지. 밥 한 그릇을 나누고, 책 한 자락을 나누고, 마음 한 움큼을 나눈다.


ㅅㄴㄹ.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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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빨리 읽기

 


  나는 책을 빨리 읽고픈 마음이 없다. 그렇다고 책을 느리게 읽고픈 마음이 없다. 그저 읽는 책이요, 내 삶에 걸맞게 읽는 책이다. 내 마음이 이끌리거나 내 마음이 닿을 때에는 제아무리 두툼한 책이라 하더라도 훌쩍 읽는다.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거나 내 마음이 노래하지 않으면 제아무리 얇은 책이라 하더라도 오래도록 먼지가 쌓이도록 잊는다.


  책은 왜 빨리 읽어야 할까. 책을 빨리 읽으면 무엇이 좋을까.


  베스트셀러를 읽는다고 좋은 책읽기라고 느끼지 않는다. 스테디셀러나 이름있는 책을 읽을 때에도 썩 좋은 책읽기라고는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이란 내가 바라는 책을 읽을 때에 책이지, 남들이 이것 읽으라 저것 읽으라 해서 책이 되지 않는다. 내가 마음으로 바라던 책을 누군가 알려줄 수 있으나, 남이 시키거나 잡아끄는 대로 읽을 수 있는 책은 없다.


  내 몸이 고플 때에 먹는 밥처럼, 내 마음이 고플 때에 읽는 책이다. 내 몸을 아름답게 다스리고 싶어 알맞게 살피어 골고루 밥을 먹듯, 내 마음을 어여삐 돌보고 싶어 차근차근 헤아려 고루고루 책을 읽는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는 책이다.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읽는 책이다. 기쁜 마음으로 읽는 책이다. 좋은 마음으로 읽는 책이다. 이뿐 아닐까? 책을 빨리 읽는다든지 더디 읽는다든지 하는 갈래란 덧없다. 책을 많이 읽었다든지 책을 조금 읽었다든지 하는 갈래는 부질없다. 즐겁게 누린 하루라면 즐거운 삶이요, 활짝 웃으며 빛낸 하루라면 활짝 웃으며 빛내는 삶이 된다. 좋은 삶을 좋은 사랑으로 삭혀 좋은 사람으로 거듭난다. (4345.8.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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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비 책읽기

 


  뭉게구름 가득하던 파란 하늘에 매지구름이 조금씩 생긴다. 이윽고 해가 자취를 감추고 빗방울이 하나둘 듣는다. 무더운 날을 식히는 소나기 쏴아아 내린다. 마실을 나온 우리 식구는 아직 집에 닿지 않았다. 따사로운 여름 햇살 받으며 바짝바짝 마르길 바라던 깔개며 이불이며 빨래며 몽땅 젖는다. 매지구름이랑 뭉게구름 모두 지나가고 하늘은 파란 빛깔로 돌아온다. 그러나 빗방울은 멎지 않는다. 빗방울이 멎어야 소나기에 젖은 빨래를 다시 마당으로 내놓을 텐데, 빗줄기는 가늘어져도 그예 흩뿌린다.


  한여름 후끈후끈 타오르던 날씨를 얼마쯤 식혀 줄까. 들판과 숲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는 단물을 받아마셨을까.


  비를 맞은 이불은 저녁이 되어도 마르지 않는다. 솜방석도 폭삭 젖어 마르지 않는다. 하늘에 대고 골을 부린들 젖은 옷가지가 다시 마르자면 따사로운 햇살이 오래오래 비춰야 한다. 하루를 보내고 이듬날 말려야겠지. 이듬날 찾아올 햇살을 기다려야겠지.


  밤이 된다. 더위는 가시지 않는다. 아이들을 여러 차례 되씻긴다. 옷을 자꾸 갈아입히고 새 빨래는 꾸준히 나온다. 나도 새로 씻으며 새 빨래를 한다. 낮에 말리지 못한 빨래는 부엌 창가로 들인다. 새로 한 빨래는 부엌으로 들인 빨래대에 걸친다.


  내 어린 날 소나기는 으레 찾아왔고, 여우비는 흔히 내렸다. 해마다 여름이면 소나기와 여우비를 만났다. 소나기를 만나 길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쫄딱 젖기 일쑤였지만, 무더운 여름 날씨는 젖은 옷과 몸과 머리를 곧 말려 주었다. 여우비를 올려다보며 공놀이를 했고, 운동회 연습을 했다. (4345.8.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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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보기
― 마른 손과 젖은 손

 


  내가 쓰는 필름스캐너는 2004년부터 씁니다. 퍽 오랫동안 한 가지 기계로만 필름을 긁기에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즐겁게 쓸는 지 모르는데, 필름 한 통을 다 긁자면 얼추 한 시간 즈음 걸립니다. 그래서 필름 여섯 장을 스캐너에 앉히고서 다른 일을 합니다. 이를테면 방바닥을 비질하고 걸레질합니다. 빨래를 하기도 하고, 밥을 하기도 합니다. 필름 여섯 장이 다 긁힐 무렵 손에서 물기를 텁니다. 다 긁힌 파일을 셈틀에 갈무리합니다. 새로 필름 여섯 장을 앉히려고 아직 덜 마른 물기를 옷에 북북 비비며 닦습니다. 그러나 집일을 하면서 필름을 긁자면 손에서 물기 마를 새 없습니다. 밥을 하거나 빨래를 하며 필름을 앉힐 때면 필름에 물기 묻을까 조마조마합니다.


  필름이 긁히도록 앉히고서 집일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사진관에 필름을 파일로 만들어 달라 맡길 만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진관에서 긁어 주는 파일 크기는 내가 집에서 긁는 크기보다 작습니다. 필름 한 통 긁는 데에 드는 돈도 돈이라 할 테지만, 집일을 하는 틈틈이 필름을 긁는 일을 헤아린다면, ‘필름을 디지털 파일로 만드는 데에 쓰는 돈’은 얼마 안 돼요. 고마운 품값입니다.


  밥을 다 해서 차립니다. 아이들과 옆지기를 불러서 함께 먹습니다. 필름 다 긁힌 소리가 들리면 셈틀 앞으로 달려가 파일을 갈무리하고 새로 필름을 앉힙니다. 이제 스캐너가 드르륵 움직이면 다시 밥상 앞에 앉습니다. 이러기를 여러 차례 되풀이하면 비로소 필름 한 통을 다 긁습니다. 밥을 먹는 동안에는 손에 물기가 안 묻으니 걱정 없이 필름을 만집니다. 집에서 어린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필름을 만지자면 퍽 바쁘며 힘들다 할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참말, 사진을 하건 글을 하건 그림을 하건 무엇을 하건, 집안 어른 한 사람이 어느 전문 일을 할 때에는 그야말로 누군가 곁에서 크게 도와주지 않을 때에는 몹시 벅차겠구나 싶습니다. 그래도 나는 집일을 도맡으며 사진도 찍고, 밥을 차리면서 필름을 긁습니다. 이런 아버지를 바라보던 다섯 살 큰아이가 아버지 곁에 붙어서 부채질을 해 줍니다. (4345.8.1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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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숭아 책읽기

 


  옆지기가 복숭아를 먹고 싶다는 말을 듣고는 그날 바로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에 태워 면소재지 가게로 찾아가 복숭아 한 상자를 장만해서 싣고 돌아왔다. 열아홉 알 든 복숭아 한 상자는 이틀만에 사라진다. 옆지기도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잘 먹는다. 문득 내 몫은 안 돌아오겠다 싶어 나도 한두 알 먹다 보니 어느덧 동이 난다. 이번에는 읍내에 마실할 적에 다시 한 상자를 장만한다. 읍내로는 군내버스를 타고 나가서 군내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두 아이 데리고 읍내로 나들이를 하고는 가방 가득 먹을거리를 장만해서 돌아오는 버스길은 퍽 고단하다 할 만하다. 이러니까 요즈음 젊은 가시버시는 모두 자가용을 장만해서 다니겠구나 싶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 졸립다며 힘들다며 달라붙어 업어 달라느니 안아 달라느니 꾸벅꾸벅 존다느니 하면 손을 쓸 수 없다고 여겨 자가용에 태워 재우면 한결 수월하리라 여기겠다 싶다.


  큰아이가 다섯 살을 곽 채운 새벽녘에 곰곰이 생각해 본다. 옆지기와 만나 여섯 해째 살아오며(2007년부터 2012년) 우리한테 자가용이 있으면 좋겠구나 하고 생각한 적은 아직 없다. 이래저래 힘들면 택시를 타면 된다고 여겼다. 인천에서 살 적에 서울로 볼일 보러 가서 여러모로 힘들면 택시를 타고 4만 원 찻삯을 치르곤 했다. 인천에서 일산으로 옆지기 어버이를 뵈러 다녀오는 길에도 4만 5천 원 찻삯을 들여 택시를 타곤 했다. 택시삯이 비쌀까? 자가용을 장만해서 굴리는 값이 비쌀까? 찬찬히 따지면 어느 쪽도 비싼값이 아니리라. 어느 쪽이든 스스로 살아가려는 길이 되리라. 옆지기와 나는 자가용이든 다른 탈거리이든 되도록 안 타려고 했을 뿐이요, 타야 할 때에는 타되, 우리 두 다리와 마음을 믿기로 했다. 아이들이 퍽 어린 이즈음은 여러모로 어버이로서 몸을 많이 써야 할 텐데, 어버이는 아이들 어리광이나 칭얼거림을 너끈히 받아 줄 만큼 기운이 새로 샘솟는다고 느낀다. 등에 짐 잔뜩 짊어지고 어깨에는 장바구니를 끼었어도 앞으로 아이 하나 안고 다닐 기운이 어느 어버이한테나 있다고 느낀다.


  새벽 일찍 일어난 아이가 복숭아를 찾는다. 한손에 복숭아를 쥔다. 다른 한손에 ‘도라에몽’ 만화책을 쥔다. 일본 만화쟁이 한 사람은 ‘도라에몽’을 참 잘 빚었다고 느낀다. 아마 그이는 온 사랑과 꿈과 믿음을 만화 하나에 살뜰히 실었으리라. 고운 사랑과 좋은 꿈과 맑은 믿음이 담긴 만화인 만큼 수없이 보고 다시 보며 되풀이해서 보면서도 새삼스레 웃고 즐길 수 있을 테지. 복숭아 한 알을 키운 흙일꾼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예쁘장한 복숭아 씨앗 한 알은 집 둘레 한켠에 심자. 다음해에는 어린나무 하나를 장만해서 심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4345.8.1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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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8-16 20:29   좋아요 0 | URL
복숭아와 도라에몽이라 잘 어울리는데요^^

숲노래 2012-08-18 00:01   좋아요 0 | URL
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