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도서관으로 (도서관일기 2012.8.8.)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서재도서관으로 쓰는 학교 터를 모두 빌려서 쓰지는 못하니 풀베기를 마음껏 하지 못한다. 학교 운동장을 쓰는 분들은 나무 장사를 하려고 나무를 심기는 했으나 따로 돌보지는 않아 풀이 우거진다. 어느 모로 보면, 풀이 우거져도 풀약 하나 안 치기에 이곳 흙은 마을 흙보다 한결 좋을는지 모른다. 이곳에서 자라는 풀은 즐겁게 뜯어서 먹을 만한지 모른다. 아무튼, 풀이 제법 우거지기에 자전거수레에 두 아이를 태우고 들어온다. 풀이 우거지니 모기도 많다. 피어나는 곰팡이·넘치는 모기·천장 세 군데에서 새는 비·아직 쓸 수 없는 전기와 물·따로 없는 뒷간, 이 다섯 가지 숙제를 어떻게 풀어야 좋을까.


  숙제는 숙제라 하더라도 도서관에 아이들하고 오면, 아이들은 넓은 골마루를 저희 마음대로 달리고 구르며 논다. 소리를 지르든 노래를 부르든 다 좋다. 집에서도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니, 도서관에서도 똑같이 논다. 다만, 집보다 도서관은 한결 넓고 기니까 더 구슬땀을 흘리며 논다. 책을 오래오래 건사하자면, 값싼 책꽂이는 써서는 안 되고, 좋은 나무를 사서 손수 짜야 한다고 새삼스레 깨닫는다. 값싸게 파는 책꽂이는 뒷판으로 대는 베니아판부터 곰팡이가 올라온다. 제대로 맞추는 나무는 곰팡이가 함부로 올라오지 못한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내가 다니던 헌책방을 돌아보면, 어느 헌책방이고 원목을 사서 당신 손수 책꽂이를 짜셨다. 헌책방 책꽂이는 더없이 튼튼하며 아름답다고 느낀다. 우리 서재도서관이 앞으로 나아갈 길도 이러해야겠지. 좋은 나무를 마련해 손수 자르고 박아 마련하는 책꽂이에 책을 꽂아야겠지.

 

  우리가 도서관으로 쓰는 이곳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이웃마을 할아버지가 참깨를 줄 맞추어 심으셨다. 참깨꽃이 흐드러진다. 가을에는 참깨를 거두고 보리를 심으시던데, 올해에도 보리를 심으시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함께 읽는 책

 


  큰아이가 그림책을 펼친다. 작은아이가 볼볼 기어온다. 누나가 무얼 들여다보나 저도 들여다본다. 누나가 이쪽을 보니 동생도 이쪽을 보고, 누나가 고개를 돌려 저쪽을 살피니 동생도 고개를 돌려 저쪽을 살핀다. 두 아이는 서로서로 하고 싶다. 한 아이가 사진기를 만지면 다른 아이도 사진기를 만지고 싶다. 한 아이가 무얼 먹으면 다른 아이도 무얼 먹고 싶다. 한 아이가 연필을 쥐고 무언가 그리거나 끄적이면 다른 아이도 연필을 쥐고 무언가 그리거나 끄적이고 싶다.


  아이들은 서로서로 바라보며 배운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무엇을 하는가 말똥말똥 쳐다보면서 배운다. 어버이가 된 이들 또한 어릴 적 이녁 어버이한테서 모든 삶을 배웠겠지. 어버이가 오늘 읽는 책이 아이들이 앞으로 읽을 책이 된다. 어버이가 오늘 하는 일이 아이들이 앞으로 누릴 삶이 된다. 어버이가 살아가는 보금자리가 곧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보금자리가 된다. 아이들이 사랑으로 크며 꿈으로 자라도록 이끌고 싶다면, 어른들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사랑으로 살고 꿈으로 일하는 넋을 돌볼 수 있어야 한다. (4345.9.8.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혼자 읽는 책

 


  작은아이는 큰아이나 두 어버이 책읽는 모습을 으레 바라보기에, 가끔 저도 책을 읽곤 한다. 큰아이가 천천히 자라며 보여주었듯, 작은아이도 어떤 글이나 그림이나 줄거리를 읽지는 않는다. 그저 책을 손에 쥐거나 무릎에 올려놓으며 즐겁게 논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는 이야기를 읽어 줄 수도 있으며, 아이들은 저희들 혼자서 책을 무릎에 올려놓으며 놀 수 있다. 천천히 느끼고 찬찬히 생각하며 하나하나 맞아들인다. 개미를 바라보고, 거미를 바라본다. 제비와 풀벌레를 보고, 논과 밭을 본다. 나무와 멧자락을 보고, 구름과 달을 본다. 아이들은 언제나 책을 읽는다. 우르릉 쾅쾅 하고 울리는 천둥을 귀로 읽는다. 번쩍 하고 빛나는 벼락을 눈으로 읽는다. 서늘한 밤바람을 몸으로 읽는다. 몸도 마음도 책과 삶과 꿈을 읽는다. (4345.9.8.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내 삶에 한 줄, 예쁘게 읽는 책

 


  우리 집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모두 병원에서 낳고 말았습니다. 옆지기와 나는 병원 아닌 집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따뜻하며 느긋하게 아이를 맞아들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뜻을 이루지 못했어요.


  미국사람 메리 몽간 님이 쓴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샨티,2012) 59쪽을 읽습니다. “출산은 과학이 아니다. 해부학도 아니다. 또한 의사나 조산사, 간호사의 일도 아니며, 누군가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출산은 부모와 아기의 것이다.” 하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벌써 아이를 둘 낳았고, 다섯 살 두 살 두 아이는 무럭무럭 크는데, 나는 굳이 ‘아이낳기’ 이야기를 다룬 책을 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집 두 아이를 집에서 사랑스레 낳지 못했으나,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더 커서 스무 해쯤 뒤가 되면, 이 아이들도 아이를 낳을 때가 될 테지요. 이때에 우리 아이들이 병원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집에서 사랑스레 아이를 낳도록 돕자면, ‘앞으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옆지기와 내’가 오늘 ‘아이낳기’를 예쁘고 사랑스레 다시 배워야 해요.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을 쓴 메리 몽간 님도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병원에서 낳고 말았다지만, 당신이 낳은 아이들이 커서 아이를 낳을 무렵 당신이 지난날 겪은 아픔과 슬픔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꿈꾸면서 ‘히프노버딩’이라는 ‘아이를 사랑스레 낳는 길’을 마련했다고 해요. 메리 몽간 님은 105쪽에서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말과 생각을 할 필요가 있고, 원치 않는 환경을 불러들이는 부정적이고 불필요한 말이나 행동은 삼가는 것이 좋다.” 하고 덧붙입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내가 바라는 꿈을 곱게 헤아릴 때에 참으로 내가 바라는 꿈이 곱게 이루어집니다. 내가 바라는 꿈이 아니지만, 내 둘레에서 이래저래 떠돈다 해서 귀를 기울이거나 눈길을 둘 때에는, 뜻밖에도 내가 안 바라거나 내가 안 좋아하는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 내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할 때에는 사랑이 태어나요. 내 마음속에 미움이 깃들 때에는 미움이 나타나요.


  블라지미르 메그레 님이 적바림한 책 《아나스타시아 (6) 가문의 책》(한글샘,2011) 119쪽을 살피면, “사람의 소명은, 주위의 모두를 깨닫고 우주에 훌륭함을 짓는 것이야. 지구를 닮은 것을 다른 은하계에 짓는 거야. 그리고 새 세상 모두에게 지은 훌륭한 창작을, 지구에 더하는 거야.”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책을 덮고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내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할 일이란 ‘훌륭한 삶을 짓기’라는 말마디를 되새깁니다. 나부터 스스로 오늘 하루를 훌륭하도록 아름답게 누리고, 이렇게 훌륭하도록 아름답게 누리는 삶을 내 옆지기와 아이들과 이웃과 동무 모두한테 곱게 나눌 때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숨결이 된다는 이야기를 되읊습니다.


  예쁘게 나누는 말은 예쁘게 나누는 사랑입니다. 내가 예쁜 말을 보낼 때에 나한테 예쁜 말이 돌아옵니다. 나는 예쁜 말을 보내지 않으면서 나한테 예쁜 말이 오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나는 노상 밉거나 궂거나 모진 말을 보내면서 나한테만큼은 예쁜 말이 오기를 바란다면 내 삶은 엉망진창이 되겠구나 싶습니다.


  요시노 겐자부로 님이 쓴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양철북,2012) 52쪽을 읽습니다. “진심으로 네가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져야 해.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 때도, 네가 그것을 좋아한다고 확신할 때도 그 감정은 언제나 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단다.” 하는 대목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면서 내가 좋아할 만한 내 삶이어야겠지요. 어깨너머로 기웃거린다든지 겉치레로 꾸민다든지 내 뚜렷한 줏대 없이 휘둘리거나 휩쓸린다면, 나 스스로 하나도 재미없는 삶이 되리라 느껴요.


  좋은 봄햇살을 누립니다. 좋은 여름햇볕을 누립니다. 좋은 가을햇빛을 누립니다. 좋은 겨울해님을 누립니다.


  봄부터 여름과 가을을 거쳐 겨울이 되는 네 철은 사람들 누구한테나 기쁜 선물입니다. 따스함과 시원함과 더움과 추움과 넉넉함과 푸름과 빛남과 어두움과 환함을 골고루 누리면서 내가 지을 가장 좋은 내 사랑스러운 삶을 돌아봅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이 빚은 만화책 《불새》(학산문화사,2002) 16권 114쪽을 보면, 종교전쟁을 일으키는 우두머리 한 분이 아들을 옆에 두고 이렇게 얘기를 나눠요. “왕자여, 저 일출을 보아라.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답지 않느냐.” “정말 아름답습니다.” “왕자여, 나는 해의 신을 모시고 해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기로 했다.”


  아, 아. 아름다운 해를 보며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우려 하면 참으로 예쁠 텐데요. (4345.7.24.불.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12-09-08 09:23   좋아요 0 | URL
큰 아이 표정은 언제나 밝아서 참 좋아요

숲노래 2012-09-09 03:46   좋아요 0 | URL
네, 아이들 모두 늘 잘 웃어서 좋습니다~
 


 들깨꽃 책읽기

 


  사람들이 꽃 이야기를 더는 하지 않는 이른가을, 들깨는 조용히 꽃망울을 터뜨린다. 줄줄이 작은 꽃송이를 맺는다. 들깨는 꽃이 지고 자그마한 열매가 맺었을 적에 꽃송이를 통째로 꺾어서 튀겨 먹어도 맛나지. 잎사귀를 먹어도 즐겁고, 가만히 냄새를 맡아도 좋다. 참깨꽃처럼 꽃송이가 커다랗지 않아 눈에 잘 안 뜨일 만한 들깨꽃이지만, 한여름부터 이른가을까지 붉은 꽃망울 곱게 드리우는 봉숭아하고 나란히 밭두둑을 빛낸다. (4345.9.7.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