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나가는 길목 (도서관일기 2012.8.2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여름에는 서재도서관을 널리 알리며 책손을 받을 생각이었는데, 책 갈무리는 끝냈어도 서재도서관을 널리 알리지는 못한다. 큰아이가 한참 크던 세 살 적에 인천을 떠나 충북 음성 멧골로 갈 적에도 이와 비슷했는데, 아이들하고 집에서 함께 부대끼는 겨를을 보내느라 막상 도서관에 머물며 책손을 받지 못하기 일쑤였다. 언제나 내 마음은 ‘책보다 아이’ 쪽으로 기운다. 이제 둘째가 한창 무럭무럭 자라는 두 살이니, 작은아이하고 복닥이고 큰아이하고도 어울리면서 ‘도서관보다 집’에 오래 머문다.


  곰곰이 돌아보면, 아이들 크는 나날이란 짧으리라.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크리라. 그동안 집에서는 집살림 잘 꾸리고, 책을 둔 도서관에서는 책이 안 다치고 곱게 깃들도록 하면 되리라.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도서관보다, 책 하나 알뜰히 아낄 고운 책손을 바라는 만큼, 책바다에서 책사랑을 익히고픈 이라면 언제라도 즐거이 마실을 올 테며, 이때에는 아이들과 함께 책손을 맞이하며 함께 놀 수 있겠지.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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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한 장으로 읽기

 


  자그마한 헌책방을 찾아갑니다. 찾아가 보니, 크기가 작아 ‘자그마한 헌책방’이라 말하지만, 이곳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곳입니다. 크기가 크대서 ‘더 나은’ 헌책방이 아니요, 크기가 작대서 ‘덜 떨어지는’ 헌책방이 아닙니다. 책을 더 많이 읽었다는 사람이 더 뛰어난 사람이 아니요, 책을 적게 읽은 사람이 덜 떨어진 사람이 아니듯, 책방이나 책터는 크기로 따지지 않습니다.


  갖춘 책이 더 많아야 더 좋은 헌책방이 되지 않습니다. 사고파는 책 가짓수나 숫자가 더 많아야 더 훌륭한 헌책방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어느 헌책방에 들든 내가 읽을 마음이 드는 책 하나 만나면 됩니다. 주머니를 털어 책 하나 장만하지 않더라도, 책시렁을 가만히 돌아보며 책내음을 맡고 책이야기 느낄 수 있으면 됩니다.


  사진 한 장을 찍습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습니다. 어떤 모습을 남기려고 찍는 사진이란 없습니다. 어떤 모습을 남기려고 찍는 사진이란 나한테는 아무 값을 못합니다. 오직 하나, 나 스스로 좋아하는 마음이 샘솟는 데에 좋아하는 그대로 찍는 사진만 값합니다. 아이들을 찍든, 내 보금자리와 시골마을을 찍든, 또 헌책방을 찍든, 이웃을 찍든, 자전거를 찍든, 내 마음속 가장 따사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며 사진기를 들 때에 비로소 뿌듯하고 즐거습니다.


  나는 사진 한 장을 찍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삶을 읽습니다. 나는 사진 한 장을 찍으면서 내가 마음으로 아낄 이웃 삶을 읽습니다. 나는 사진 한 장을 찍으면서 지구별 삶을 읽고, 내 발자국이 닿는 아름다운 삶터를 읽습니다. (4345.9.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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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과 집을 읽는다

 


  기차는 차츰 서울과 가까워진다. 고흥에서 멀어질수록 둘레에서 들과 메가 줄어든다. 벌교를 지나고 순천을 거치니 살림집 바글거린다. 구례 곡성 남원 지나니 너른 들판과 높은 메에 어우러지는 숲도 차츰 줄어든다. 전주 익산 대전을 지나며 높다란 아파트가 춤을 춘다. 수십 미터 될 듯한 다리를 놓는 고속도로가 밭과 메를 가로지르고, 송전탑이 마을을 건너뛴다. 서울 언저리에는 나무 한 그루 뿌리내릴 틈이 거의 없다. 비싼 땅에 풀이 돋거나 나무가 자라게 하지 않는구나. 땅금이 비싸니까 찻길도 시원하게 나지 않고, 아이들 뛰놀 빈터나 흙땅은 아예 없으며, 사람들 살림집조차 다닥다닥 높디높게 빽빽 바글바글 갇힌다. 서울 언저리 작은 삭월세방조차 보증금 빼면 시골서 집과 땅을 살 만하지만, 사람들은 서울 언저리 도시에서 악착같이 악다구니를 쓰며 서로 낑기거나 밀치거나 밟으면서 살아간다. 무엇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삶일까. 무엇을 아끼며 좋아하는 나날일까. 들이 없고 숲이 사라지는 곳에서 사람들 삶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들을 누리지 못하고 숲을 생각하지 못하는 데에서 사람들 보금자리는 얼마나 빛날까. 사람들 누구나 가슴속에 환한 빛줄기 있는데, 사람들 스스로 이녁 가슴 환한 빛줄기를 바스라뜨리는구나 싶다. 까만 자동차와 잿빛 건물이 지나치게 많아, 사람들은 시나브로 삶을 잊고 돈한테 매달린다. 책이 있어도 책이 책다운 꿈을 펼치지 못한다. (4345.9.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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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아주·환삼덩굴·쇠비름

 


  아이들이 손수 밭을 일구는 이야기를 다루는 그림책을 읽다가 오래도록 책장을 더 넘기지 못한다. ‘밭에서 자라는 잡풀’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인데, ‘밭 푸성귀’가 잘 자라지 못하게 가로막는 풀이라서 ‘김매기’를 해서 뽑아 버려야 하는 풀로 돌피·강아지풀·괭이밥·망초·왕바랭이·쇠뜨기·쇠별꽃을 비롯해 명아주·환삼덩굴·쇠비름을 든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시골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유채조차 잡풀로 여겨 그냥 뽑아서 버리곤 한다. 갓 또한 그냥 버리곤 한다. 유채잎이나 갓잎을 뜯어 집에서 자실 수 있으나, ‘먹는 다른 풀이 많으’니 굳이 유채잎이나 갓잎을 김치로 담가서 먹는 일이란 드물다. 자운영이나 질경이나 미나리조차 애써 캐거나 뜯지 않는다. 모조리 낫이나 기계를 써서 베어 버리거나 풀약을 쳐서 죽이신다.


  그림책에는 ‘나물로 많이 먹는 풀’로 질경이·냉이·꽃다지·쑥·민들레를 든다. 그런데, 시골에서 살아가며 지켜보면, 쑥이든 꽃다지이든, 애써 뜯거나 캐서 먹는 분들은 아주 드물구나 싶다. 배추나 무나 상추를 심어서 드시더라도, 스스로 씨앗을 퍼뜨려 씩씩하게 돋는 이들 풀을 반찬으로 삼는 분이 매우 드물다.


  새삼스레 더 생각해 본다. 괭이밥이나 쇠뜨기는 약풀로 쓴다. 이들 풀은 날로 먹어도 되며, 풀물을 짜서 마셔도 된다. 우리 식구는 명아주와 환삼덩굴과 쇠비름은 얼마든지 뜯어서 먹고 풀물을 짜서 마신다. 질경이와 민들레도 먹지만, 망초나 쇠별꽃이라서 못 먹을 까닭이 없다. 숲에서 스스로 자라는 망초라면 맛난 풀이요, 숲에서 예쁘게 크는 쇠별꽃 또한 좋은 풀이다.


  그런데,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나서 어른이 되기까지, 시금치라도 맛나게 먹는 아이는 몇이나 될까. 깻잎이든 호박잎이든, 고추잎이든 배추잎이든, 당근잎이든 부추잎이든 모시잎이든, 맛나게 즐기는 아이는 몇이나 되려나.


  밭을 왜 일구는지 모르겠다. 밭 일구는 이야기를 묶은 그림책이 아이들한테 무슨 삶과 생각을 들려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그림책을 장만해서 읽을 어른들은 질경이가 되든 명아주가 되든 가만히 바라보고 살며시 쓰다듬다가는 입에 기쁘게 넣어 냠냠짭짭 맛을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스스로 먹어 보지 않고 먹어 볼 만한 풀이라느니 못 먹을 풀이라느니 하고 금을 그을까. 참말 모르겠다. 우리 집 텃밭 산초나무가 씨앗을 떨구어 새로 나는 어린 산초나무를 가느다란 가지까지 통째로 꺾어 간장이나 된장으로 무친 다음 날로 먹곤 한다. 산초잎과 산초줄기도 참으로 맛난다. 이름을 아는 풀도 이름을 모르는 풀도, 저마다 다 다른 풀내음을 풍기면서 내 몸으로 스며들어 나하고 하나가 된다.


  참말 나는 잘 모르겠다. 밭을 일구는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엮어 내놓는 뜻을 잘 모르겠다. 밭을 일구는 삶을 그림으로 담는 어른들 생각을 잘 모르겠다. (4345.9.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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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으로 읽는 책, 책꽃

 


  연필로 종이에 써서 묶어야 책이 되지 않아요. 밭에서 나는 풀 가운데 무엇을 먹고 무엇을 안 먹나 가리는 이야기를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려 종이에 담아 보여주어야 책이 되지 않아요. 밭자락에 할머니랑 쪼그려앉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는 삶 또한 아름다운 책읽기예요. 구름을 보며 곱다 느끼고, 햇살을 쬐며 따스하다 느끼며, 아이들과 웃고 떠들며 누리는 삶 모두 책읽기예요. 가슴에 피어나는 사랑꽃이 바로 삶꽃이면서 책꽃이에요. (4345.9.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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