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두는 자리 (도서관일기 2012.10.4.)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책을 두는 자리를 스스로 나무를 얻고 시렁을 달아 마련한다면 가장 좋구나 하고 느낀다. 책은 가장 사랑스럽게 얻은 나무로 빚은 종이로 엮고, 가장 고맙게 얻은 나무로 시렁을 꾸며, 가장 빛나는 손길로 읽은 뒤에 사뿐히 얹으면 되겠지.


  올 한글날 맞추어 새로 내놓는 책을 책시렁에 둔다. 사람들한테 곱게 사랑받으면서 고운 이야기 두루 퍼뜨릴 수 있기를 빈다. 아이들은 골마루를 이리저리 마음껏 내달리며 논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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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손짓 책읽기

 


  반찬 삼을 돗나물을 뜯는데, 작은아이가 곁에 붙는다. 옆에서 아버지가 풀을 뜯듯 저도 뜯는다. 그런데 작은아이는 풀을 뿌리까지 뜯는다. 줄기만 살짝 꺾으면 풀이 새로 자라며 언제까지고 더 먹을 수 있지만, 뿌리까지 뜯으면 더는 못 먹는다. 아이야, 그렇게 확 뜯지는 말고 살금살금 잘 뜯으렴. 오늘도 먹고 모레도 먹으려면 예쁘게 잘 뜯으며 고맙다고 말해 주렴.


  뜯은 돗나물을 헹군다. 곤약을 썰어 함께 무친다. 밥상에 올린다. 한창 여러 가지를 먹던 작은아이가 손가락으로 돗나물을 가리킨다. “응.” 아직 ‘엄마’랑 ‘응’이라는 낱말로 모든 생각을 나타내는 작은아이는, 저 돗나물을 먹고 싶다며 “응.” 하고 말한다. 어인 일이니. 네가 손수 뜯은 돗나물이라 먹어 보고 싶니. 좋아. 잘 씹어서 풀맛을 네 혀로 느껴 봐. 하루하루 씩씩하게 자라면서 네 손으로 풀을 보살피고 거두고 밥을 지어서 먹어 봐. 네 손길이 닿은 풀은 한껏 맑게 빛날 테고, 네 손짓으로 지은 밥은 한결 구수하게 맛날 테니까. (4345.10.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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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락빛 책읽기

 


  봄빛과 여름볕을 물씬 머금은 가을열매인 나락을 벤다. 논에 모를 낸 차례에 따라 천천히 벼베기를 한다.벤 벼는 시골길 한켠에 죽 펼쳐서 해바라기를 한다. 올가을에는 빗방울 없고 구름만 살짝 흐르며 햇살이 곱게 내리쬐니 알알이 잘 여문다.


  아이들과 시골길을 걷거나 자전거로 달리다가 새 나락, 곧 햅쌀을 들여다본다. 길바닥에 구르는 나락알을 주워 보기도 한다. 큰아이는 “껍질을 까서 먹는 거야?” 하고 물으면서 스스럼없이 나락알을 까먹는다. “아니야. 껍질째 먹어야지.” 하고 들려준다.


  해바라기를 하는 나락 곁을 지나가면 나락내음이 확 풍긴다. 봄빛을 먹고 여름볕을 마신 나락들은 가을 내음을 나누어 준다. 사람들은 밥을 지어 먹을 때에 봄을 먹고 여름을 마시고 가을을 누리는 셈이리라. (4345.10.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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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나무 가을 새잎 책읽기

 


  가을이 무르익는데 벚나무 가지에 새잎이 돋는다. 하나둘 떨어지며 앙상한 나무가 되던 벚나무에 싯푸른 새잎이 돋을 뿐 아니라, 하얀 꽃송이까지 맺힌다. 감나무에도 새잎이 돋는다. 감꽃까지 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넓적하며 싯푸른 감나무 새잎이 발그스름 익는 감알 곁에서 가을노래를 부른다.


  철이른 동백꽃이 한겨울에 봉오리를 터뜨리다가 그만 눈을 옴팡 맞기도 한다. 남쪽 나라이니까 이런 일이 있겠거니 싶으면서, 따사로운 햇살이 풀과 나무와 꽃한테 얼마나 고운 숨결이요 빛인가를 새삼스레 느낀다.


  어떤 목숨이든 햇볕을 쬐면서 살아간다. 어떤 목숨이든 물을 마시고 바람을 들이킨다. 어떤 목숨이든 흙에 뿌리를 내린다. 어떤 목숨이든 서로 사랑을 나누고 꿈을 피운다. 사람이란 무엇을 하는 목숨일까. 사람은 햇볕을 어떻게 쬐는가. 사람은 물과 바람과 흙을 어떻게 맞아들이는가. 사람은 사랑과 꿈을 어떻게 나누면서 삶을 짓는가. (4345.10.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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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0-04 13:53   좋아요 0 | URL
운치 있는 감나무를 보니 가을이 느껴집니다.
성묘하고 오는 길에 보게 되는 풍경 속에 감나무가 있곤 하지요.^^

숲노래 2012-10-05 07:54   좋아요 0 | URL
시골 감나무는
더 따스하게
서로를 헤아리도록 돕는구나 싶어요
 


 가을 들판 책읽기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면내 우체국에 다녀온다. 두 아이 모두 재채기를 하기에 천천히 달린다. 천천히 달리다가도 곧잘 선다. 곧잘 서서 누런 벼가 무르익는 들판을 바라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논둑길에서 자전거를 멈춘 다음 두 아이를 내린다. 두 아이더러 걷거나 달려서 가자고 말한다. 아이들은 가을 들판 논둑길을 마음 놓고 달린다. 작은아이 콧물이 많이 흘러 얼마 못 달리고 다시 태우고는 집으로 돌아가지만, 살짝이나마 가을 들판을 함께 거닐며 달리는 동안 온몸에 가을내음이 스민다.


  벼내음을 맡고 풀노래를 듣는다. 볕내음을 쬐고 하늘노래를 듣는다. 봄이나 여름처럼 들새와 멧새가 숱하게 날아다니지는 않으나, 가을은 가을대로 환하고 따스한 빛살이 곳곳에 찬찬히 스민다. 파랗게 빛나는 하늘에 구름이 몇 조각 없어도 덥지 않은 날이다. 하늘에 살몃살몃 퍼지는 구름조각은 들판 빛깔을 머금으며 조금 노랗다. (4345.10.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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