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원미글숲 (2022.5.25.)

― 부천 〈용서점〉



  탈을 쓴다고 해서 속빛이 바뀌지 않습니다. 탈을 쓰면 ‘탈차림’일 뿐입니다. 여우탈을 쓰기에 여우가 되지 않고, 사람탈을 쓰기에 사람이 되지 않아요. 그럴싸한 옷을 입기에 그럴싸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멋지다는 부릉이를 몰기에 멋진 사람이 될까요? 훌륭하다는 책을 읽기에 훌륭한 사람이 될까요?


  스스로 마음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차근차근 심기에 사랑스러운 사람입니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마음을 스스로 밝히기에 기꺼이 손을 내밀 뿐 아니라 어깨동무를 하면서 온누리에 빛줄기를 드리워요. 사랑이란 마음으로 책을 쥐기에 어느 책을 펴든 스스로 피어나고 자라납니다. 사랑이란 마음이 없이 책을 잡기에 대단하거나 놀랍거나 아름답다는 책을 펴지만, 막상 우리 삶을 추스르지 못 합니다.


  서울(도시)에는 ‘숲인 척하는’ 쉼터(공원)가 곳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이든 시골이든 ‘그저 숲인 숲’이 있어야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을 테지요. 껍데기로는 껍데기예요. 허울로는 허울입니다. 알맹이여야 알맹이입니다.


  부천 〈용서점〉에서 ‘수다꽃’을 함께 지피면서 생각합니다. 용지기님은 이 마을책집이 ‘원미글숲’이 되기를 꿈꿉니다. 누구나 스스럼없이 찾아와서 책을 읽고 사고 나누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들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 한 그루로 서기를 바라지요.


  우리는 서로 다 다른 나무입니다. 다 다른 터전에서 다 다르게 삶을 누리면서 살림을 일구는 다 다른 나무예요. 우리가 어른이라면, 오늘 할 몫이란, ‘봄(보기·보다)’이라고 느낍니다. 지켜보고 살펴보고 돌아보고(돌보고) 마주보고 알아보고 찾아보고 즐겨볼 줄 아는 마음이기에 넉넉합니다. 우리가 아이라면, 오늘 할 놀이란, ‘그림(그리기·그리다)’이라고 느껴요. 하루를 그리고 생각을 그리고 이야기를 그리면서 웃음꽃을 그립니다.


  마음을 빛내는 분이라면 누구나 마음빛을 누릴 만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하늘빛하고 풀빛하고 눈빛을 문득 마음으로 듣고서, 가만히 옮겨적거나 풀어내는 징검다리라는 길을 걸어가려고 합니다. 풀꽃이 들려주는 말을 글로 옮깁니다. 나무가 속삭이는 말을 글로 얹습니다. 새가 알려주는 말을 글로 엮습니다. 별빛이 노래하는 말을 글로 가꿉니다.


  글숲을 지을 수 있고, 책숲을 세울 수 있어요. 말숲을 익힐 수 있고, 살림숲을 돌볼 수 있습니다. 사랑숲으로 모일 수 있고, 푸른숲으로 삶자리를 열 수 있어요. 씨앗 한 톨을 손바닥에 올리듯 책 한 자락을 가만히 집고서 생각숲으로 들어섭니다.


ㅅㄴㄹ


《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도코 고지 외/송태욱 옮김, 현암사, 2017.6.30.)

《나의 수채화 인생》(박정희, 미다스북스, 2005.3.31.)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반다나 시바/한재각 외 옮김, 당대, 2000.1.20.첫/2000.10.30.3벌)

《천천히 스미는》(G.K.체스터튼 외/강경이 옮김, 봄날의책, 2016.9.20.첫/2016.10.10.2벌)

《基督敎敎育의 課題》(D.C.Wyckoff/전택부 옮김, 대한기독교교육협회, 1957.9.15.첫/1981.3.15.3벌)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조수미, 제일미디어, 1994.6.25.)

《믿음의 名詩》(김희보 엮음, 종로서적, 1984.8.10.)

《복음주의적 학생운동》(올리버 바클레이/한화룡 옮김,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1985.2.22.)

《모두를 위한 권리, 한 권으로 읽는 기본소득》(윤지영·김예슬, 나눔문화, 2020.12.14.)

《솔직히 말하자》(김남주, 실천문학사, 1989.11.25.)

《경건 생활의 기초》(에이 W.토저/강귀봉 옮김, 생명의말씀사, 1974.12.25.첫/1985.7.25.4벌)

《미스터 뱃맨의 一生》(존 번연/박화목 옮김, 대한기독교출판사, 1977.3.10.)

《권위》(마틴 로이드 죤스/김성수 옮김, 생명의말씀사, 1978.4.20.)

《귀로 웃는 집》(임영조, 창작과비평사, 1997.1.20.첫/2005.10.15.4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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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길 (2022.7.26.)

― 안산 〈선들바람〉



  책집이란, 다 다르게 살아가는 하루를 저마다 다르게 그려서 담아낸 이야기를 저마다 다르게 만나서 읽는 동안 언제나 새롭게 생각을 지피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을책집을 찾아갈 적에는 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웃님이 어떤 눈길로 이 마을을 사랑하면서 살림을 지피는가 하고 느끼려고 합니다. 마을책집이 선 곳 둘레를 한동안 거닐면서 마을바람을 헤아리고, 마을 곳곳으로 햇살이 어떻게 비추는가를 살피고, 마을 빈틈이나 귀퉁이나 기스락에 어떤 들꽃이 피고 어떤 나무가 자라는가를 돌아봅니다.


  오늘날에는 마을다운 마을이 사라진다고 할 수 있어요. 흙바닥이 사라지고 잿바닥(시멘트바닥)이 늘거든요. 부릉부릉 매캐한 길이 늘고, 아이들이 뛰놀거나 어른들이 돗자리 깔고서 수다를 떨 빈터가 잡아먹혀요. 더군다나 아이들은 마을에서 뛰놀 겨를을 빼앗기면서 배움수렁(입시지옥)에 갇히고, 어른들은 마을이웃하고 도란도란 어울리기보다는 일삯을 벌어야 하는 일터에 매이곤 합니다.


  배롱꽃빛이 눈부신 한여름 막바지에 안산 〈선들바람〉으로 마실합니다. 전라도나 경상도 시골이 아닌 경기 안산 한복판에서 배롱나무를 만날 줄 몰랐습니다. 안산은 큰고장이면서도 곳곳에 빈틈을 마련해서 풀꽃나무가 우거지도록 하는군요. 사람 발길이 닿을 수 없는 조그마한 풀숲이 꽤 넓습니다.


  쉼터(공원)는 사람만 쉬어야 하는 데가 아니에요. 새도 풀벌레도 매미도 지렁이도 쉴 수 있어야 쉼터입니다. 사람들 발길이나 손길이 닿지 않는 데에서 홀가분히 풀꽃나무가 피고 질 수 있어야 쉼터입니다.


  1998년에 비로소 찰칵이(사진기)를 다루는 길을 배우기 앞서는, 스스로 찰칵찰칵 찍어서 남길 생각을 안 했습니다. 이무렵까지 책집을 다니며 김기찬 님 빛꽃책(사진책)을 곧잘 넘겼는데, “나는 내가 나고자란 인천에서 골목빛을 허벌나게 보기는 했으나 굳이 골목을 찍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인천골목을 그러려니 지나쳤는데, 2007년에 인천으로 돌아와 책숲(도서관)을 열면서 ‘인천골목으로 사진마실(출사)을 나오는 사람들이 찍는 매무새’를 석 달 즈음 구경하고 나서 생각을 바꾸었어요. “골목이 뭔지 생각조차 않고, 골목에서 산 적도 없고, 골목에서 살 생각도 없고, 골목사람을 이웃이나 동무로 사귈 마음마저 없는, 그렇지만 손에는 값비싼 찰칵이를 거머쥔 분이 인천골목을 엉터리로 찍고 전시회를 열며 우쭐거리는 짓이 슬펐’어요. ‘골목빛을 그저 골목빛으로 담아서 넌지시 보여주자’고 생각했어요. 마을책집도 언제나 마을책집입니다. 배롱꽃도 늘 배롱꽃이에요.


ㅅㄴㄹ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이식·전원경, 책읽는고양이, 2000.6.30.첫/2017.12.14.23벌)

《바닷가에 가 보아요》(제종길·임미정·이선경·이학곤·김종문 엮음, 해양수산부, 2003.12.15.)

《도시 상상 노트》(제종길 글·이호중 그림, 자연과생태, 2018.3.10.)

《한국의 조개》(민덕기·이준상, 민패류연구소·한글, 2005.2.1.)

《우렁이와 달팽이》(이준상·민덕기, 민패류연구소·한글, 2005.3.15.)

《제주도 음식》(김지순 글·안승일 사진, 대원사, 1998.5.15.첫/2016.5.25.4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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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거리며 빛나는 (2022.8.23.)

― 부천 〈빛나는 친구들〉



  불날(화요일) 아침을 부천에서 맞이합니다. 오늘은 저녁에 인천으로 이야기마실을 갑니다. 그때까지 빈틈을 책숲마실로 누리려 합니다. 부천나루 길손집부터 천천히 걸어서 부천여고 앞자락에 있는 〈빛나는 친구들〉로 찾아갑니다. 여름볕은 후끈하고, 여름나무는 짙푸릅니다. 이 여름에 뙤약볕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걷는 사람은 아예 없다고 할 만합니다. 햇볕이 잘 비추는 길을 혼자 푸지게 즐깁니다.


  해는 언제 어디에나 들게 마련이지만, 모든 곳에 비추지는 못 하는 오늘날입니다. 지난날에는 어디나 고르게 해가 비추었지만, 이제는 높다랗게 솟는 잿빛집이 이웃집에 비출 해를 모조리 막기 일쑤예요. 햇볕 한 줌을 나누던 마음은 끝일까요.


  책꾸러미를 가슴에 안고서 사뿐사뿐 걸어 〈빛나는 친구들〉에 닿고 보니, 책집이름처럼 부천여고 앞을 빛내는구나 싶어요. 예전에는 배움터(초·중·고등·대학교) 앞에 으레 책집이 여럿 있었어요. 이제는 배움터 앞에서 책집이 자취를 감추고, 글붓집(문방구)마저 사라지려 합니다. 부천여고 길잡이(교사)하고 배움이(학생)는 이녁 배움터를 오가는 길목에 늘 바라보는 마을책집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눈부신가를 아직 못 느낄 수 있지만, 천천히 느껴 가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일은 어려울 수 없습니다. 스스로 어렵다고 여기는 마음으로 가기에 어려워요. 스스로 고되다고 여기는 마음으로 있기에 고됩니다. 스스로 신바람으로 콧노래를 부르니 신나는 일입니다. 스스로 춤추고 노래하면서 일손을 잡으니 언제 어디에서나 모든 일이 신명납니다.


  신나게 노는 아이를 지켜보기만 해도 어쩐지 새로 기운이 솟아서 즐겁게 걸어다닐 수 있어요. 신나게 놀다가 곯아떨어진 아이를 안거나 업기만 해도 그야말로 새로 기운이 샘솟아서 신나게 걸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말이 됩니까?” 하고 따지는 분을 퍽 보았어요. 빙그레 웃으며 “두 아이를 낳아서 돌보며 날마다 누리고 느낀 사랑인걸요. 땀을 한바가지 흘리며 뛰논 아이가 까무룩 곯아떨어질 적에 한 손으로 안고서 다른 손으로 부채질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나날이었답니다. 이렇게 사랑스레 뛰노는 아이를 지켜보고 돌아보고 다독이노라면, 어버이라는 자리는 얼마나 놀랍고 대단한 길인가 하고 새삼스레 배워요.” 하고 대꾸했어요.


  뜨거운 여름날 뜨거운 잎물을 한 그릇 마십니다. 여름에는 뜨겁게 끓인 잎물이 몸을 살린다고 느껴요. 겨울에는 찬물로 몸을 씻으면서 새록새록 몸이 살아난다고 느껴요. 어쩌면 거꾸로 가는 삶이라 여길 테지만, 투덜거리면서도 빛날 수 있고, 노래하면서도 빛날 수 있어요. 우리는 저마다 다르게 빛나는 사이입니다.


ㅅㄴㄹ


《파친코 1》(이민진, 인플루엔셜, 2022.7.27.첫/2022.8.5.2벌)

《에센스 B국어사전》(편집부, 프로파간다, 2019.2.1.)

《우리말 활용사전》(조항범, 예담, 2005.10.1.첫/2016.7.7.8벌)

《투덜그라피 사연집, 어쨌거나 같이씹자》(공인애, 브라이트프렌즈, 2020.4.2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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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랑 걷는 골목 (2022.8.7.)

― 수원 〈탐조책방〉



  어릴 적에는 “사람들 누구나 놀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새벽부터 밤까지 쉬잖고 일하고 살림하는 어머니를 지켜보며 “어머니는 언제 쉬고 언제 놀아요?” 하고 여쭈면 “에그, 언제 쉬냐고? 죽을 때 쉬겠지! 언제 노냐고? 너나 놀 수 있을 때 잘 놀아라.” 하셨습니다. 스무 살에 열린배움터(대학교)를 그만둘 적에는 “사람들 누구나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왜 책을 읽어야 해?” 하고 묻는 이웃들한테 “종이책만 읽으란 소리가 아니에요. 하늘책·바람책·숲책·풀꽃나무책, 그러니까 마음책·숨결책·사랑책을 읽으란 소리입니다.” 하고 대꾸했어요.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을 갈무리하는 일을 끝내고 인천으로 돌아가서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을 연 2007년에는 “사람들 누구나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부릉이(자동차)를 몰면 수월하고 빠른데 왜 걸어?” 하고 묻는 분한테 “빨리 달리고 싶으면 빨리 죽으면 되겠네요? 왜 아직까지 빨리 안 죽으셔요? 천천히 걸어야 오래오래 삶을 사랑하는 눈길을 스스로 익힙니다.” 하고 대꾸했어요.


  인천을 다시 떠나 전남 고흥 시골에서 살아가며 “숲을 품고 아이를 사랑으로 낳고, 곁님을 마음으로 어깨동무하고, 누구나 노래를 쓸 노릇이다” 하고 생각합니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노래를 쓰고 부르고 짓고 나누었어요. 글도 책도 모르는 모든 흙사람(시골사람·여름지기)은 손수 집밥옷이란 살림을 짓고, 말(사투리)도 손수 짓고, 아이도 손수 다 가르쳤어요. 이러면서 늘 노래를 불렀지요.


  모를 심어도 밭일을 해도 아기를 재워도 길쌈을 해도 베틀을 밟아도 노래입니다. 시집살이노래마저 있을 만큼, 늘 노래였어요. 오늘날 사람들은 노래가 없습니다. ‘대중가요·팝’은 있어도 스스로 노래를 안 짓더군요.


  수원 〈탐조책방〉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드디어 때가 맞아 ‘새사랑 마을책집’을 온몸으로 누립니다. 수원나루부터 골목집 사이를 천천히 거닐면서 들꽃빛을 물씬 느꼈습니다. 〈탐조책방〉으로 책마실을 가려는 분은 이 길을 걷기를 바라요.


  밝게 노래하는 책을 그득 품고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합니다. 알고 보면, 우두머리(대통령)란 자리는 ‘벼슬아치(공무원)’입니다. 벼슬아치를 갈아치운다고 나라가 바로서지 않습니다. 우리가 저마다 살림꾼인 줄 즐겁게 깨달으면서, 순이돌이가 어깨를 겯고 사랑으로 집살림을 돌볼 줄 알아야 나라가 바로섭니다.


  이제는 벼슬아치를 줄여야지 싶어요. 낛(세금)을 조금만 거둬야지 싶어요. 집안일·집살림을 모르는 사람은 벼슬아치를 시키지 말 노릇이에요. 손빨래를 할 줄 알고 아이를 사랑으로 돌본 사람만 벼슬자리를 받아서 일을 해야 아름나라입니다.


ㅅㄴㄹ


《야생조류 필드 가이드》(박종길, 자연과생태, 2022.3.31.)

《올빼미와 부엉이》(맷 슈얼/최은영 옮김, 클, 2019.4.22.)

《자연 수업》(페터 볼레벤/고기탁 옮김, 해리북스, 2020.10.30.)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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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한복판 (2022.9.27.)

― 인천 〈그루터기〉



  한낮에 흘린 땀을 아침저녁 서늘한 가을바람이 부드러이 씻어주는구나 싶은 나날입니다. 한가을은 ‘떠나가’거나 ‘돌아가’는 한복판입니다. 가을이란 ‘가는’ 철입니다. 이제 흙으로 가고, 제비랑 꾀꼬리가 바다를 건너 따뜻한 고장으로 가고, 풀벌레가 노래를 마치고서 흙으로 가서 쉬는 철입니다. 찬바람으로 가면서 꿈나라로 가려는 숲짐승이며 헤엄이가 많은 철이에요.


  돌아가려고 떠납니다. 덧없으니 씨앗으로 새로 태어납니다. 사라지기에 문득 싹이 트면서 환하게 빛납니다. 헤어지기에 만나고, 등돌리는 사람이 있기에 손을 맞잡는 동무를 사귀고, 눈물을 함박만큼 쏟으니 활짝 웃음지을 하루를 짓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 네 철 가운데 어느 철이 좋거나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다 다르게 빛나는 철입니다. 겹겹 품는 겨울이요, 새롭게 보는 철이요, 하늘이 활짝 열리는 철입니다.


  서두를 일이 없고, 바빠야 할 일이 없습니다. 아기는 서둘러 말길을 트거나 일어서서 달려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서둘러 글을 읽어내거나 더 높이 배움터를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새는 더 빨리 노래해야 하나요? 바람은 더 빨리 불어야 하나요? 해는 더 빨리 뜨고 져야 할까요?


  서둘러 읽어야 할 책이 없고, 여태 몰랐다고 해서 우리 스스로 어리석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맞이해서 누리고 사랑하고 즐기려는 책입니다. 여태 몰랐으니 스스럼없이 웃으면서 배우고 눈물로 지난날을 뉘우치기도 하고 고개숙이기도 합니다.


  고흥을 떠난 시외버스를 안산에서 내립니다. 수인선 전철로 느긋이 인천으로 건너옵니다. 인천시청 앞을 해바라기를 하며 걷습니다. 그림책집 〈그루터기〉로 찾아갑니다. 하늘을 찌를듯이 솟은 잿빛마을(아파트단지)에 찾아갈 일이 없으나, 바로 이 잿빛마을에 숲빛노래를 씨앗 한 톨로 심으려는 이웃님이 있습니다.


  어쩌면 책집은 서울(도시) 한복판이 어울려요. 풀꽃나무를 밀어내거나 짓밟은 서울이니, 이곳에서 숲빛을 헤아리며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어른으로 살아갈 밑힘이나 슬기를 그림책이며 어린이책이며 만화책으로 되새길 만해요. 시골에서도 종이책은 아름다운데, 이보다는 풀꽃나무를 고스란히 마음책으로 삼으면 넉넉합니다.


  우람한 나무이던 나날에도, 줄기를 내주어 둥치로 남은 나날에도, 언제나 푸른자리를 이루는 든든한 밑동이 그루터기라고 느낍니다. 이 낱말을 새삼스레 돌아보면서, 그림책을 나누는 마음을 헤아리는 자리란 우리한테 어떤 숨빛일까 하고 생각하니, 그림책집 〈그루터기〉가 걸어가는 길이 환하게 보입니다.


ㅅㄴㄹ


《수짱과 고양이》(사노 요코/황진희 옮김, 길벗어린이, 2022.9.25.)

《가을의 스웨터》(이시이 무쓰미 글·후카와 아이코 그림/김숙 옮김, 주니어김영사, 2020.9.1.첫/2021.9.2.2벌)

《호텐스와 그림자》(나탈리아·로렌 오헤라/고정아 옮김, 다산기획, 2018.12.20.)

《미카의 왼손》(나카가와 히로노리/김보나 옮김, 북뱅크, 2022.8.1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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