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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5


 SKY 대학


  저는 국민학교 여섯 해를 다니면서 늘 놀았습니다. 다달이 치르고, 학기마다 두 차례씩 치르고, 틈틈이 치르고, 시에서 치르는 온갖 시험이 그치지 않았지만, 또 시험을 치를 적마다 담임교사는 몽둥이를 들었지만, 언제나 신나게 뛰놀았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에 붙들리며 입시공부를 해야 하는 때부터 비로소 대학교라는 곳을 그렸습니다. 이때에 둘레에서는 ‘SKY 대학’을 으뜸으로 쳤습니다. 제가 살던 고장에 있는 대학교는 아주 밑바닥으로 쳤습니다.


  왜 같은 고장 사람들이 같은 고장에 있는 대학교를 밑바닥처럼 여겼을까요? 아무래도 서울이라는 고장이 으뜸이라고 여기기 때문일 테지요. 한국에서는 대학교에 등급이나 계급이 있는 터라, 어떻게든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야 한다고 여깁니다. 이러면서 서울에서도 ‘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세 손가락으로 꼽고, 이 세 대학교를 아우르는 이름으로 ‘SKY’라는 영어를 짓습니다.


  세 군데 대학교에 다니는 사람도 스스로 ‘SKY’라는 이름을 자랑으로 삼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연세대에 다니는 학생은 왜 ‘SYK’가 아니냐고 낯을 찡그릴 만합니다. 그런데, ‘SYK’가 아닌 ‘SKY’는 영어로 “하늘”을 뜻합니다. 알파벳으로 이렇게 벌이면서 세 군데 대학교는 스스로 “하늘에 올라선다”는 느낌이고, 다른 대학교를 밑에 둔다는 느낌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학교가 오직 학문으로 아름다운 곳이라기보다 시험성적으로 붙거나 떨어지는 계급장이나 신분증과 같습니다. 그러니, 이런 모습을 “하늘에 올라선 대학교”처럼 빗대어 ‘SKY’로 쓸 만하겠지요. 다만, 아무리 사회 모습이 이와 같더라도 이들한테 수수한 이름을 주어야지 싶어요. 하늘로 오르지 말고, 수수하게 ‘ㅅㄱㅇ 대학’이 되거나 ‘서고연 대학’이 되기를 빕니다. 4348.8.25.불.ㅅㄴㄹ



SKY 대 중심 또는 서울 중심의 서열화 구조

→ ㅅㄱㅇ 대 중심 또는 서울 중심 줄세우기

《강수돌-더불어 교육혁명》(삼인,2015) 363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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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4


 금일휴업 . 今日休業


  자전거를 타고 우체국에 가려고 면소재지로 달립니다. 우체국에 들러 편지를 부친 뒤 놀이터로 갑니다. 이때에 큰아이가 샛자전거에서 아버지를 부릅니다. “아버지, 저기 ‘금일휴업’이라고 적혔는데, ‘금일휴업’이 뭐야?” 모든 글씨를 다 읽어낼 줄 아는 여덟 살 어린이는 어른들이 쓰는 온갖 글이 다 궁금합니다. “아, 저 글은 ‘오늘 쉰다’는 뜻이야.”


 금일(今日) : ‘오늘’로 고쳐쓸 낱말

 휴업(休業) : ‘쉼’을 뜻하는 낱말


  ‘금일·금주·금월·금년’은 모두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은 ‘오늘·이주·이달·올해’입니다. ‘今’이라는 한자를 넣는 낱말은 모두 ‘한국말이 아니’라고 여기면 됩니다. 그런데 가게를 꾸리는 적잖은 어른들은 예부터 ‘今日休業’이라고 한자를 써 버릇했고, 이제는 한글로 ‘금일휴업’이라 쓰곤 합니다. 그래도 “오늘 쉽니다”나 “오늘은 쉬어요”나 “한동안 쉬겠습니다”처럼 글을 써 붙이는 어른도 제법 많지요. 그러니까, ‘今日休業’이나 ‘금일휴업’처럼 적으면 아이들이 못 알아듣습니다. ‘내부 수리’를 한다면서 영어로 ‘coming soon’을 적는 사람들처럼 외국말을 쓴 셈인데, 외국말을 적어 놓고서 이 외국말을 알아들으라고 할 노릇이 아니라고 봅니다.


 오늘 쉽니다 . 오늘은 쉼 . 쉬는 날 . 쉽니다


  영어 ‘coming soon’을 ‘커밍 순’으로 적더라도 한국말이 아닙니다. 일본 말투 ‘今日休業’을 ‘금일휴업’으로 적어도 한국말이 되지 않습니다. 4348.8.4.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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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3


 고객의 입장에서 친절히 봉사하겠습니다


  아이들을 이끌고 인천으로 나들이를 가서 지하철을 탔습니다. 시골에는 버스만 있고 전철이나 지하철이나 기차가 없습니다. 시골아이는 지하철을 재미나게 여기면서 즐겁게 타면서 놉니다. 지하철에서도 뛰고 달리면서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안내방송을 듣습니다. 고운 목소리로 “고객의 입장에서 친절히 봉사하겠습니다”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고객(顧客) : ‘손님·단골손님’으로 고쳐쓸 낱말

 입장(立場) : ‘자리·눈높이’로 고쳐쓸 낱말

 친절(親切) : 따스하거나 살갑거나 고분고분한 모습

 봉사(奉仕) : 남을 돌보려고 힘을 바치거나 애씀


  지하철 안내방송에서 흐르는 말은 토씨만 빼면 “고객 입장 친절 봉사”입니다. 이러한 말투는 일제강점기에 군국주의를 내세운 제국주의 권력자가 흔히 외치던 말투입니다. ‘고객’이나 ‘입장’은 고쳐쓸 낱말이라 하더라도 ‘친절’이나 ‘봉사’는 널리 쓸 만하다고 여길 수 있는데, 이 한자말을 엮은 모습을 보면 한국말이 아니라 ‘틀에 박힌 정치 선전문구’라고까지 할 만합니다.


 손님 눈높이에서 친절히 봉사하겠습니다

 손님 여러분한테 따스히 애쓰겠습니다


  지하철을 탄 손님 모두한테 따스한 몸짓이나 웃는 얼굴로 마주하겠다는 뜻을 밝히려는 안내방송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웃고 친절한 지하철이 되겠습니다”라든지 “늘 친절하게 손님 여러분을 모시겠습니다”처럼 안내방송을 할 수 있습니다. 4348.7.30.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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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2


 산책(散策) :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

 산보(散步) : 바람을 쐬거나 쉬기 위하여 멀지 않은 곳으로 이리저리 거니는 일


  흔히 ‘산책’은 한국 한자말로 여기고, ‘산보’는 일본 한자말로 여깁니다. 이러한 생각은 틀렸다고 할 수도 없고, 옳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한국사람은 ‘산책’이라는 한자말을 즐겨쓰고, 일본사람은 ‘산보’라는 한자말을 즐겨씁니다. 그런데, 두 나라에서 이 한자말을 즐겨쓴다고 하지만, 한국사람은 예부터 ‘산책’이 아닌 ‘마실’이나 ‘마을’이라는 한국말을 널리 썼어요.


 마실 가다 . 마을 가다 . 나들이 가다


  조선이나 개화기 언저리에 여러 지식인은 언제나 한문으로 글을 썼어요. 이들은 ‘마실·마을·나들이’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냥 한자말 ‘산책’을 썼어요. 그리고, 일제강점기라고 하는 아픈 나날을 겪을 적에 일본사람이 널리 쓰는 ‘산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래도, 일제강점기에 한국말로 문학을 하던 이는 ‘마을·마실·나들이’ 같은 낱말로 글을 씁니다. 글을 쓰거나 문학을 하지 않는 여느 한국사람은 언제나 ‘마을·마실·나들이’ 같은 한국말을 씁니다. 요즈음은 시골에만 남은 ‘마을·마실’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도시에서도 ‘마을·마실·나들이’ 세 마디가 찬찬히 되살아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서로 아끼고 보듬는 옛 마을살이를 도시에서도 되찾으려고 애쓰는 이들이 ‘마을 만들기’나 ‘마을 가꾸기’를 하면서 ‘마실 가다·마을 가다’ 같은 말을 두루 씁니다. 아무래도 ‘마을’을 새로 가꾸거나 사랑하려 하니까 ‘마을·마실’ 같은 낱말을 더 살뜰히 쓸 테지요.


  남녘에서는 ‘산책’을 흔히 쓴다 하고, 북녘에서는 ‘산보’를 흔히 쓴다 하는데, 앞으로는 남북녘 모두 한국말 ‘마을·마실·나들이’를 아낄 수 있기를 빕니다. 4348.7.21.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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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1


 희망소비자가격

 권장소비자가격


  ‘소비자가격(消費者價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비하는 사람(소비자)이 어떤 것을 살 적에 내는 값(가격)”을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과자 봉지부터 자동차나 집까지 ‘소비자가격’이 붙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자나 빵이나 물건을 보면 ‘희망소비자가격’이나 ‘권장소비자가격’이라는 말이 붙기도 해요. 말뜻 그대로 “희망하는 소비자가격”이요, “권장하는 소비자가격”인 셈입니다.


  ‘희망(希望)하다’는 “바라다”를 뜻합니다. ‘권장(勸奬)하다’는 “권하여 장려하다”를 뜻하고, ‘권하다’는 “어떤 일을 하도록 부추기다”를 뜻하며, ‘장려(奬勵)하다’는 “좋은 일에 힘쓰도록 북돋아 주다”를 뜻해요. ‘희망소비자가격’이라면 “이만큼 받고 싶은 값”을 가리킬 테고, ‘권장소비자가격’은 “이만큼 받도록 하려는 값”을 가리키는 셈입니다.


 값 . 책값 . 물건값 . 받을값 . 제값


  우리가 읽는 책에는 ‘희망소비자가격’이나 ‘권장소비자가격’이라는 이름이 거의 안 붙습니다. 한번 책을 살펴보셔요. 바코드 아래쪽에 ‘값’이라고만 나오기 마련입니다. 책방마다 책값을 다르게 매겨서 어느 책방에서는 책값이 싸다고 하더라도 책에는 ‘값’만 붙어요. “바라는 값”이나 “받도록 하려는 값”이라 하지 않아요.


  다른 모든 물건에도 ‘값’이라고만 붙이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행정이나 공공기관이나 공장에서 쓰는 전문 낱말로 꼭 ‘소비자가격·희망소비자가격·권장소비자가격’이라고 써야 하지 않습니다. ‘받을값’이나 ‘제값’이나 ‘공장값’처럼 쓸 수 있어요. 쉽게 말하려 할 적에 쉬운 말이 태어납니다. 4348.7.9.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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