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우리말 이야기꽃 : 글쓰기로 먹고사는 길



[물어봅니다]

  수수하고, 소소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음악도 좋아해서, 어떤 노래에 대해 영감을 얻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의 머릿말을 잡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작가가 안정적인 직업인가 생각도 들어서 망설이게 돼요. 어떻게 할까요?


[이야기합니다]

  “수수하고 소소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라면, 먼저 ‘수수하다’라는 낱말하고 ‘소소하다’라는 낱말이 어떤 뜻을 품는지 살펴보면 좋겠어요. 저는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써내면서 ‘수수하다’를 “1. 도드라지지도 않고 뒤떨어지지도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조용히 어울리다 2. 꾸밈이나 거짓이 없이 조용하고 부드럽다 3. 어느 것이 썩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면서 쓸 만하다”처럼 풀이했습니다. 그러니까 “수수한 글쓰기 = 있는 그대로 글쓰기 = 꾸밈없는·거짓없는 글쓰기 = 조용조용한 글쓰기”라 할 만해요. ‘소소하다(小小-)’는 한자말이에요. ‘작디작다’를 나타내지요.


  그런데 글에는 작은 글이나 큰 글이 따로 없다고 느껴요. 짧게 쓴 글이나 길게 쓴 글만 있다고 느껴요. 수수하게 썼대서 “작은 글”이 되지 않습니다. 잔뜩 꾸며서 쓰기에 “큰 글”이 되지 않아요. 널리 알려지거나 팔리거나 읽히기에 “큰 글”이 되지 않는답니다.


  글쓰기를 놓고서 ‘소소한 길’보다는 다른 길을 생각하면 좋겠어요. 이를테면 ‘단출한 길’이나 ‘조촐한 길’이 있습니다. ‘즐거운 길’이나 ‘신나는 길’이 있어요. ‘재미난 길’이나 ‘사랑스런 글’이나 ‘고운 길’이나 ‘착한 길’이나 ‘참한 길’이나 ‘바람 같은 길’이나 ‘꽃다운 길’도 있고요.


  우리가 쓰는 글이란 우리가 걷는 길입니다. 우리가 걷는 길이 고스란히 글이 됩니다. ‘문장수련’을 하거나 ‘문장작법’을 갈고닦아야 글쓰기를 잘 해내지 않아요. 언제나 우리 삶을 슬기롭게 사랑하면서 알뜰살뜰 살림을 가꾸는 따사로우며 즐거운 손길이 되면 넉넉합니다. 바로 이 손길로 ‘수수한 글’도 ‘산뜻한 글’도 ‘새로운 글’도 쓸 수 있어요.


  글을 풀어내며 머리말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면, 머리말 없이 써도 좋아요. ‘머리말·몸말·맺음말’이란 얼개를 안 따라도 됩니다.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옮기면 되어요. 살아가고 싶은 길을 즐겁게 살아가면 될 뿐인 오늘이듯, 이러한 삶을 가만히 옮기면 넉넉한 글입니다.


  덧붙이자면, 머리말뿐 아니라 몸말이나 맺음말을 어떻게 엮어야 좋은가는 구태여 안 따져도 됩니다. 우리한테는 줄거리가 있으면 돼요. 글로 담을 이야기에서 알맹이가 될 삶을 스스로 느끼고 알면 됩니다. ‘어떤 글’을 쓰느냐도 대수롭겠지만, ‘어떤 하루와 삶과 생각을 바로 내가 즐겁게 스스럼없이 마음껏 쓴다’는 길을 갈 수 있으면 좋구나 싶어요.


  글을 쓰는 뜻은 ‘살아가려는 뜻’하고 같아요. 스스로 짓고 싶은 꿈길을 걷는 하루이듯, 스스로 짓고 싶은 꿈을 글로 담습니다. 스스로 가꾸고 싶은 사랑길을 짓는 삶이듯, 스스로 짓고 싶은 사랑을 글로 적어요.


  그리고 글만 써서 먹고살 수 없기도 하고, 글만 써도 먹고살 수 있기도 해요. 어느 쪽이 될는지 미리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글을 쓰지 않아도 먹고사는 길이 있으면서도 이 삶에서 꿈으로 이루고픈 사랑을 낱낱이 느껴서 제대로 나타낼 줄 안다면, 글쓰기는 물흐르듯 풀리겠지요. 글로 먹고살겠다는 다짐을 너무 앞세우거나 얽매이노라면 어느새 ‘우리 마음을 어떻게 왜 얼마나 글로 담아야 하는가’를 잊어버리기 쉬워요. 글팔이꾼이나 글장사꾼이 되고 맙니다.


  뒷돈을 받고서 거짓글을 써 주는 분이 제법 있어요. 돈벌이에 눈이 어두워 꾸밈글을 마구 써내는 분도 꽤 있어요. 이분들은 글쓰기로 돈을 버는 셈일 테지만, 거짓글이나 꾸밈글로 돈이나 이름을 얻는대서 이분들 삶이 얼마나 즐겁거나 사랑스러울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순천 할머니가 손수 글씨랑 붓질을 익혀서 선보인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란 책이 있어요. 할머니들은 책을 내려고 글을 쓰지 않았어요. 지나온 삶을 되새기면서 꼭 남기고 싶거나 눈물웃음으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단출히 여미었어요. 우리는 논밭을 일구며 글을 쓸 수 있어요. 공장 일꾼이나 버스 일꾼으로 지내며 글을 쓸 수 있어요. 아기를 돌보며 글을 쓸 수 있고, 회사원으로 지내며 글을 쓸 수 있어요. 마음이 흐르는 삶을 먼저 제대로 지켜보시면 좋겠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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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우리말 이야기꽃 : 청소년은 언어 파괴를 할까?



[물어봅니다]

  요즘 어린이나 청소년이 쓰는 급식체나 신조어나 준말이 우리 언어를 파괴하는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야기합니다]

  먼저 이렇게 되물어 볼게요. “참말로 요즘 푸름이나 어린이가 쓰는 말이 말썽이나 잘못이라고 여기는가요? 우리 삶터에서 어른들이 쓰는 말은 어떤가요? 어른들은 말을 얼마나 이쁘거나 곱거나 바르거나 참하거나 착하거나 옳거나 슬기롭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거나 훌륭하거나 멋지거나 어질거나 상냥하게 쓰나요?”


  어린이나 푸름이(청소년)는 어른 곁에서 배워요. 어린이나 푸름이는 또래끼리 어울리면서도 배우거나 물들 테지만, 누구보다 곁에 있는 어버이랑 어른한테서 배우거나 물듭니다. 이렇게 ‘어버이랑 어른한테서 먼저 배우거나 물든’ 뒤에 이 모습이 또래 사이에서도 퍼져요.


  쉽게 생각하면 되어요. 어린이나 푸름이가 쓰는 말씨가 안 곱고 안 사랑스럽다면, 거칠거나 사납다면, 뭇 어버이하고 어른부터 안 곱고 안 사랑스럽게 말하며 산다는 뜻이고, 숱한 어버이하고 어른부터 거칠거나 사납게 삶하고 살림을 꾸린다는 뜻이에요.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고운 말을 늘 듣고 배울 수 있도록 어른부터 거듭나야겠어요.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사랑스럽게 생각해서 마음에 이 사랑 씨앗을 심을 수 있도록 어버이부터 날갯짓하는 마음으로 달라져야겠어요.


  가만히 보면 어른들은 으레 끼리말을 써요. ‘끼리말’이란 끼리끼리 쓰는 말이에요. 어른들은 ‘전문용어·업계용어’ 같은 말을 쓰는데요, 이런 끼리말을 쓰는 어른들 흉내를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내지요. 둘레를 보셔요. 어른이 짓는 사회나 정치나 문화나 예술이나 교육이나 산업현장이나 교통하고 통신이나 군대나 학교나 …… 다들 끼리말을 써요. 쉽게 어우러지거나 즐겁게 어울릴 만한 부드럽고 수수한 말을 좀처럼 안 쓰려고 합니다.


  퍽 옛날인 일제강점기에는 일본말을 그대로 딴 ‘원족’이란 말을 썼고, 해방 뒤에는 ‘소풍’이란 한자말을 썼는데, 요새는 ‘현장학습·체험학습’이란 말을 씁니다. 저는 아직도 ‘현장학습·체험학습’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을 여덟 살 어린이나 열 살 어린이가 잘 알아들으리라 여겨서, 학교에서 여태 이 말을 그대로 쓰는지 궁금해요. 왜 어른끼리 알아들을 만한 말을, 또 어른 가운데에서도 어느 무리에 있는 어른끼리 알아듣거나 나누는 말을 함부로 쓸까요?


  어른이 어른이라면, 이름만 어른이 아닌 슬기로운 어른이라면, 나이만 먹은 어른이 아닌 참어른이라 한다면, 아무 말이나 섣불리 쓰지 않습니다. 아이를 가르치고 아이한테서 배울 줄 아는 어른이라면, 억지로 낮추는 말이 아닌, 아이하고 함께 생각을 북돋우고 살찌우는 말을 새롭게 지어서 쓸 줄 아는 마음이 되리라 봅니다.


  예부터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은 ‘마실’을 다녔고 ‘나들이’를 했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면 ‘마실’을 잘 모를 수 있는데, 요새는 도시에서도 ‘마실’을 꽤 널리 써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원족·소풍·현장학습·체험학습’이란, 마실이거나 나들이란 뜻입니다.


  ‘학습’이란 말은 안 붙여도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늘 배우기 마련이니 억지로 ‘학습’을 붙여야 하지 않습니다. 학교라는 곳에서는 모두 배움하고 얽힌 일을 하니, 구태여 붙일 일이 없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정 붙여야겠다고 여기면 ‘배움마실·배움나들이’쯤 쓸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 해보는 곳에 다녀온다면 ‘해보기마실·해봄마실’처럼 새 이름을 지어도 됩니다. 이름을 붙이거나 지을 적에는 어른끼리 알아듣는 말이 아닌, 처음 들을 어린이도 알아들을 만한 자리를 살펴서 지어야 합니다.


  삶터가 상냥하면 말은 저절로 상냥해요. 마을이 아름다우면 말도 저절로 곱지요. 보금자리가 사랑스러우면 말도 저절로 사랑스럽답니다. 말을 말대로 찬찬히 보고 가다듬을 노릇이면서, 말에 앞서 우리 삶을 짓는 이 터를 함께 살피면 좋겠어요. 우리 삶자리부터 ‘삶을 부수는(사회 파괴)’ 흐름이 깃들지 않도록 한다면, ‘말을 부수는(언어 파괴)’ 흐름도 저절로 사라지리라 여깁니다. 그러니까 ‘어른부터 스스로 말을 부수니까, 어린이랑 푸름이가 말을 부수는 일을 따라합’니다. 어른부터 말을 사랑하고 가꾸면, 어린이랑 푸름이도 말을 사랑하며 가꾸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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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꽃



 내가 바라는 말을 찾기


[물어봅니다]

  이 책에서 짚어본 여러 말은 대부분 겹말이었습니다. 또는 “생각 없이 던진 말”같이 아예 서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이러한 말을 손질하자는 생각에는 많은 사람들이 같이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우리말이 있으면 굳이 한자말이나 서양말을 쓰지 말고 그 우리말을 쓰자는 생각도 나누고 있습니다. 이를 놓고 만약에 사람들이, 맞지 않는 표현도 아닌데 서양말이든 한자말이든 내가 원하는 말을 골라써도 되지 않냐며 굳이 우리말을 써야 하는 까닭을 묻는다면 저는 어떤 말로 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얘기합니다]

  먼저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굳이 우리말을 써야 하는 까닭”을 묻는 그분들을 설득하지 말아 주셔요. 아마 설득이 안 되고, 논쟁이나 토론만 되지 않을까요? 저는 이웃님을 ‘설득’하려고 사전을 쓰지 않습니다. 사전을 쓰는 길에 보기글이며 밑글을 잔뜩 헤아려야 하는데, 이러면서 ‘새롭게 생각을 밝혀서 쓰기’를 함께 살핍니다. 이를 다른 분들은 ‘글손질’로 바라봅니다만, 저는 글손질을 하지 않아요. ‘나라면 이 글에 담은 줄거리를 이렇게 말을 하겠다’는 뜻을 새롭게 밝히는 셈입니다. 보기를 들게요.


칼로 썰어 만드는 칼국수 (보기글 ㉠)

→ 칼로 썰어 끓이는 칼국수

→ 칼로 썰어 먹는 칼국수

→ 칼로 썰어서 하는 칼국수

→ 칼로 써는 국수


  저는 칼국수를 ‘끓여’서 먹습니다. 저는 칼국수를 ‘만들’지 않아요. 그러나 참 많은 분들은 영어 ‘make’를 한국말에 끼워넣어 “국수를 만든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은 이 말씨를 스스로 못 고치더군요. 스스로 길들었거든요.


  제대로 말하자면, 국수는 ‘삶’습니다. 삶는 모습은 ‘끓이기’하고 비슷하니 “국수를 끓여서 먹는다”처럼 말할 수 있어요. 밥을 ‘짓다·하다’로 말하니 “칼로 썰어서 하는 칼국수”처럼 말해도 되겠지요. 다른 보기를 들게요.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세 가지 요소인 의식주(衣食住) 가운데 (보기글 ㉡)

→ 사람이 살며 꼭 곁에 둘 세 가지인 옷밥집 가운데

→ 사람이 꼭 갖추며 살아가는 세 가지 옷밥집 가운데

→ 사람이 살자면 갖출 세 가지 옷밥집 가운데

→ 사람이 갖추며 사는 옷밥집 가운데


  보기글 ㉡을 네 가지로 새롭게 써 봅니다. 손질하지 않아요. 저라면 이러한 줄거리를 이처럼 새로 쓰겠다는 뜻일 뿐입니다. 보기글 ㉡을 잘 보면 ‘필요’하고 ‘요소’란 한자말이 나오는데, 두 한자말은 ‘요(要)’라는 한자가 나란히 깃들어요. 보기글 ㉡은 겹말인 셈이지요. 보기글 ㉡을 쓰신 분은 ‘의식주’라고만 하지 않고 한자로 ‘衣食住’를 달았어요. 저는 이 말씨를 ‘옷밥집’으로 적어 봅니다. ‘옷밥집’으로 적으면 다섯 살 어린이도 알아볼 테니까요.


  이제 물음말을 생각할게요. 우리가 스스로 생각을 깊고 넓게 한다면, 생각도 깊고 넓게 나타낼 테고, 생각을 담은 말이나 글도 깊고 넓게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때에 볼 대목은 ‘깊거나 넓게 생각을 담은 말이나 글’은 영어인가 한자말인가 일본말인가 독일말인가 프랑스말인가, 아니면 한국말인가라 할 수 있어요.


  “우리말(한국말)이 있으니 굳이 우리말 아닌 영어나 한자말을 안 쓴다”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생각을 가장 잘 나타내면서 스스로 즐거울 뿐 아니라, 이웃하고 한결 즐겁고 상냥하게 어우러지는 길을 살피면서 ‘한국말을 더욱 깊고 넓게 살펴서 쓰는 말결’을 돌아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우리말(한국말)을 쓰려고는 하지 않아도 좋다”고 이야기하겠어요. 우리 생각을 마음에 슬기롭게 담아서 글이나 말로 사랑스레 펼칠 수 있도록 ‘우리말(한국말)을 한결 깊고 넓게 보듬으며 생각을 펴자’고 이야기하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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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꽃



 ‘임산부 배려석’에 새 이름을


[물어봅니다] 서울메트로에서 ‘임산부 배려석’을 두면서 홍보 노래를 틀어 주는데, 노랫말이 좀 어색해 보입니다. 숲노래 님이 좀 우리말답게 손질해 주실 수 있을까요? 서울메트로에 노랫말을 고쳐 보라고 건의하고 싶어요.


[이야기합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임산부 배려석’이란 이름부터 안 쉽구나 싶습니다. 되도록 차분하면서 아끼려는 말씨로 이런 이름을 쓰는구나 싶지만, 어린이 눈높이를 찬찬히 생각한다면 한결 부드러우면서 살가이 이름을 지을 만해요. 먼저 ‘임산부’란 “아기 엄마”나 “아기 어머니”입니다. ‘임부 + 산부’인 ‘임산부’라지만, 한국말로는 “아기 엄마”일 뿐이에요. 왜 그러한가 하면, 한국에서는 아기를 몸에 밸 적부터 ‘엄마·어머니’로 여기고, 이때부터 사내도 ‘아빠·아버지’입니다. 아기를 낳은 뒤부터 ‘엄마 아빠’가 아니라, 아기를 밴 그날부터 ‘어머니 아버지’예요.


  이런 살림살이를 들여다본다면 ‘아기 엄마(아기 어머니) ← 임산부’로 가다듬을 수 있어요. 다음으로 ‘배려’란 “마음을 쓰기”예요. 아기 엄마한테 마음을 쓰며 자리 한 칸을 내어주도록 하자면, “아기사랑칸·아기사랑 자리”나 “엄마사랑칸·엄마사랑 자리”처럼 이름을 붙여도 됩니다.


  아기는 혼자 다니지 못해요. 엄마나 아빠가 늘 같이 있어요. 그러니 ‘아기사랑칸’이라고 해도 어울려요. ‘엄마 아빠’는 아기가 쓰는 말이에요. 그래서 ‘엄마사랑칸’이라 하면, 아기를 배거나 갓 나은 분을 헤아리는 이름이 됩니다.


핑크색 자리를 임산부 자리로

우리의 배려가 멋진 하루 만들어줄 거예요


  이제 ‘서울메트로 임산부 배려석 노래’를 살피겠습니다. “핑크색 자리”라든지 “우리의 배려가 멋진 하루 만들어줄 거예요” 같은 대목이 좀 아쉽네요. 빛깔말을 보자면 한자말로 ‘분홍’이 있고, 한국말로는 ‘진달래빛·철쭉빛’이 있어요. 남녘에서 널리 자라다가 이제 서울 쪽에서도 볼 수 있는 ‘배롱나무 꽃빛’인 ‘배롱빛·배롱꽃’이 있습니다. 그리고 ‘배려가 하루 만들어줄 거예요’ 같은 글월은 퍽 엉성합니다. 번역 말씨로군요. 이 노래를 찬찬히 손질해 보겠습니다.


1. 배롱빛 자리를 아기 엄마한테 

우리 사랑으로 멋진 하루를 지어요

2. 배롱꽃 자리를 아기 엄마한테 

사랑스레 마음쓰는 멋진 하루


  ‘배려석’이란 이름을 썼지만 노래에서는 ‘자리’라 했네요. 이 말씨를 잘 살피면 좋겠어요. 그리고 “배롱빛 자리”라 하며, 사람들이 빛깔을 새삼스레 꽃빛으로 느껴서 생각하도록 이끌 만해요. 배롱꽃이 낯설다 하면 ‘진달래꽃’이라 해도 좋아요. 이러면서 전철에 꽃무늬를 그려 넣으면 더욱 좋겠지요. 배롱꽃을 낯설어 하더라도 배롱꽃 무늬를 넣어서 ‘아기 엄마는 배롱꽃처럼 눈부시고 고운 사랑입니다’ 하고 알려도 좋습니다.


  “멋진 하루를 지어요”라는 대목을 살린다면 “우리 사랑으로”를 앞에 넣어서 꾸미도록 합니다. 이 말씨는 “사랑스레 마음쓰는”을 앞에 넣고 “멋진 하루”로 뒤쪽을 마무리하는 얼거리로 써 보아도 됩니다.


  아기 엄마한테 마음을 쓰면서 사랑을 나누는 멋진 하루가 되기를 바라는 뜻 그대로, 전철에 있는 자리 하나에 붙이는 이름에도 즐거이 마음을 기울이면 좋겠어요. 이 마음을 꽃빛으로, 꽃 가운데에서도 긴긴 날을 해사하게 밝히는 배롱꽃 빛깔로 한결 살뜰하면서 부드럽고 포근하게 비춘다면 더욱 좋을 테고요. 활짝 웃고 노래할 수 있는 마음이 꽃빛으로 곱게 물들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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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꽃



 순우리말이 더 어렵다면


[물어봅니다] 그 글들은 한 번씩 다 읽어 봤어요. 그런데 읽다 보니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순우리말을 쓰지 않아 버릇해서 그런지 순우리말로 쓰면 더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고, 의미가 좀 바뀐다(?)는 느낌도 있어서,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이야기합니다] 먼저 ‘순우리말’이 무엇인지부터 짚겠습니다. 사전을 살피면 ‘순우리말(純-)’을 “우리말 중에서 고유어만을 이르는 말”로 풀이합니다. ‘고유어’란 낱말을 써서 풀이하니, ‘고유어(固有語)’도 찾아보는데 “1. [언어] 해당 언어에 본디부터 있던 말이나 그것에 기초하여 새로 만들어진 말. 국어에서는 ‘아버지’, ‘어머니’, ‘하늘’, ‘땅’ 따위가 있다 ≒ 토박이말·토착어”로 풀이합니다. 사전풀이로만 본다면 ‘순우리말 = 고유어 = 그 말을 쓰는 터에서 예전부터 쓰던 말’을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순우리말’이나 ‘고유어’ 같은 이름을 쓴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일제강점기 즈음 이르러 비로소 이런 이름을 썼습니다. ‘토박이말·토착어’ 같은 이름도 쓴 지 얼마 안 된다고 느껴요. 이 또한 일제강점기 어림해서 겨우 불거지고는 더러 썼구나 싶어요.


  예전에는 어떤 말을 썼을까요? 1800년대 첫머리, 1500년대, 1200년대, 800년대, 300년대 같은 무렵에 이 땅에서는 어떤 말로 생각을 나눴을까요? 이천 해나 오천 해 앞서는 어떤 말로 마음을 주고받았을까요?


  요새는 쉽게 ‘우리말’이라 합니다만, ‘우리말’이란 말조차 일제강점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타난 말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 땅에서 사는 사람이 ‘말’을, 여느 말을, 예전부터 죽 흐르던 ‘그냥 말’을 쓰지 못하게 가로막힌 때에 한꺼번에 ‘우리말·순우리말·고유어·토박이말·토착어’란 말이 태어났고, ‘고유어·토착어’는 중국말로 지식을 펴는 길이 익숙하던 이들이 일본 한자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퍼뜨린 말씨요, 이 말씨가 달갑잖으면서 독립운동에 마음을 기울인 쪽에서는 ‘우리말·순우리말·토박이말’이란 말을 새로 지은 셈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봐요.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말(또는 조선말)을 들을 수 없이 일본말만 들으면서 일본 학교에 다니고 일본글이 적힌 책만 읽어야 하는 판이라면 ‘일본말 = 우리말’이에요. 꽤 많은 한국사람이 이러했습니다. 그래서 해방 뒤에 어쩔 줄 몰라하던 분이 무척 많아요. 해방 뒤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나온 책이나 신문을 살피면 새까맣게 한자투성이랍니다. 한국말 아닌 일본말(일본 한자말)이 익숙한 분은 글을 쓸 적마다 새까맣게 일본 한자말을 그려 넣어요. 한자를 벗긴 한글로 적으면 낯설어하고, 한자말을 어린이도 알아들을 수 있게 풀이하거나 바꾸면 힘들어했어요.


  1980년대를 지나며 책이나 신문에서 한자가 많이 걷혔습니다. 해방 뒤에 태어난 사람이 부쩍 늘어난 탓이에요. 1990년대를 지나고 2000년이 되니 이제 신문에서 한자를 쓰는 일이 없다시피 해요. 2010년대를 지나는 요새는 한자 쓰는 이가 거의 없으나, 새롭게 영어를 쓰는 이가 늘지요. 우리는 이 흐름을 잘 읽어야 해요. 일제강점기에 앞서는 사람들이 ‘순우리말이나 토박이말이나 고유어가 아닌 그냥 한국말’을 스스럼없이 즐겁게 썼어요. ‘깨끗한 우리말’이 아닌 ‘삶·살림을 사랑으로 담은 수수한 말’을 나누었습니다. 그때에는 사투리만 있었으니, 다른 고장 사투리가 처음에는 낯설어도 꾸준히 말을 섞으면 다 알아차렸어요. 이와 달리 일제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에는 ‘삶을 사랑으로 담은 수수한 말’보다는 ‘일본 한자말, 중국 한자말, 영어, 번역 말씨’라는 네 가지 굴레가 판을 치면서, 이러한 말씨가 책하고 신문에다가 교과서에 방송까지 차지했습니다.


  이리하여 앞으로는 새로운 한국말을 살피고 가꿀 노릇이라고 느껴요. 우리가 갓난아기한테 들려주는 말을, 다섯 살 어린이한테 가르치는 말을, 열 살 어린이가 기쁘게 배울 만한 말을 새로 찾고 살찌울 일이라고 느낍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나 여느 어른이 쓰는 말씨를 열 살 어린이한테 그대로 쓰면 알아들을 만할까요? 아니지요? 저는 ‘열 살이나 다섯 살 어린이’도 함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을 가다듬으려 합니다. 누구나 스스로 익숙하게 듣고 쓰던 낱말이 아니면 아리송하거나 ‘뜻이 바뀌었네’ 하고 느껴요. 꼼꼼히 밝힐 뜻도 살피되, 말에 담는 마음과 숨결을 함께 살펴 주시면 좋겠습니다. ‘순우리말’ 아닌 ‘삶·살림을 사랑으로 담은 말’을 함께 생각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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