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27] 치움질



  아침에 일어나서 부엌을 치우고 마당을 씁니다. 자질구레한 것을 한창 치우다가 ‘청소(淸掃)’라는 낱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어릴 적부터 집이나 마을이나 학교에서 으레 ‘청소’라는 낱말을 들었는데, 마을 어르신은 “청소는 무슨, 그저 치울 뿐이지.” 같은 얘기를 으레 들려주었습니다. 할매나 할배가 비질을 하거나 걸레질을 하거나 집살림을 건사하는 몸짓은 ‘치움질’일 뿐이고 ‘청소’는 아니라고 했어요. 한국말사전을 한번 살펴봅니다. ‘청소’는 “더럽거나 어지러운 것을 쓸고 닦아서 깨끗하게 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치우다’는 “청소하거나 정리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두 낱말은 똑같은 뜻인 셈입니다. 다시 생각을 해 봅니다. ‘청소’라는 낱말은 일제강점기에 조금씩 퍼졌다고 할 만하고, 새마을운동을 나라에서 부채질하면서 널리 퍼졌다고 할 만합니다. 예나 이제나 나이가 제법 많은 분들은 “자, 집을 치워 보자”라든지 “골짜기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자”처럼 말씀합니다. 이제 부엌 치움질과 마당 치움질을 마무리짓습니다. 아이들을 불러 마당에서 놀도록 하고 마당을 마저 치웁니다. 치움질을 마쳤으니 아침을 지으려 합니다. 4348.5.11.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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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26] 마른천



  아이들을 씻긴 뒤에 마른천으로 몸을 닦습니다. 몸에 묻은 물기는 마른천으로 훔칩니다. 햇볕에 잘 말려서 보송보송한 천으로 몸을 닦으면 햇볕을 듬뿍 머금은 냄새가 살포시 퍼지고, 바람내음이 함께 퍼집니다. 빨래를 널어서 말리면, 햇볕과 바람이 찾아들어 보송보송하게 해 주기에, 마른천을 손에 쥐면 두 가지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 집에서는 ‘마른천’이라는 낱말을 써도, 바깥에 나가면 이 낱말이 아닌 다른 낱말을 듣습니다. ‘수건·손수건·발수건’이라는 낱말을 들어요. ‘수건(手巾)’이라는 낱말은 “물을 닦는 천”을 가리킵니다. 이 한자말에서 ‘巾’은 “천”이나 “수건”을 뜻한다고 하는데, 이 한자를 ‘수건 건’이라고 가리킨다면 아주 얄궂습니다. ‘巾’이 ‘수건 건’이면, ‘수건’이라는 낱말은 “수수건”을 뜻하는 셈이고, 다시 “수수수건”이나 “수수수수건”이 되는 꼴이니까요. 게다가, ‘손 수(手)’라는 한자이니 ‘발수건’이나 ‘손수건’처럼 쓰는 말도 얄궂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앞서도 ‘수건·손수건·발수건’이라는 낱말이 너무 얄궂어서 도무지 쓸 수 없었고,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아이들한테 이런 낱말을 차마 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손 닦는 천’이나 ‘발 닦는 천’이라 말하고, 여느 때에는 ‘마른천’이라고 말합니다. 짧게 줄이면 ‘손천·발천’으로 쓸 만할 텐데, 한국에서 수많은 어른들은 왜 이런 겹말을 아무렇지 않게 그냥 쓸까요? 왜 이 낱말을 바로잡으려고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울까요? 4348.5.7.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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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25] 볍씨



  민들레씨가 동그스름하게 맺힙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민들레 씨앗이다!” 하고 외치면서 꽃대를 톡 꺾은 뒤 후후 불어서 씨앗을 날립니다. 아이들과 여러 가지 열매를 먹으면서, 으레 씨를 뱉습니다. 감을 먹을 적에는 감씨를 뱉고, 수박을 먹을 적에는 수박씨를 맺습니다. 포도를 먹을 적에는 포도씨를 뱉습니다. 오이씨나 참외씨는 그냥 먹습니다. 우리는 쌀밥을 먹는데, 쌀밥은 쌀알로 짓고, 쌀알은 벼알에서 겨를 벗긴 속살입니다. 벼알은 봄에 논에 심어서 새로운 벼알을 거두도록 하는 씨앗이기도 합니다. 이리하여, 벼알은 따로 ‘볍씨’라고도 합니다. 예부터 얼마 앞서까지 시골사람은 볍씨를 씨오쟁이에 갈무리해서 잘 건사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볍씨를 손수 갈무리해서 되심는 사람은 퍽 드뭅니다. 거의 다 농협에 가서 돈을 주고 사다가 씁니다. 농협에서는 ‘볍씨’라는 낱말을 안 쓰고 ‘벼 종자(種子)’라는 낱말을 씁니다. 그나마 ‘米種子’라고는 안 하지만, 농협 일꾼은 ‘씨·씨앗’이라는 낱말을 도무지 안 씁니다. 이리하여, 요새는 여느 시골마을 시골사람도 ‘볍씨’라는 낱말을 안 쓰고, 농협 일꾼 말투대로 ‘벼 종자’라고만 말합니다. 어느새 ‘씨감자·씨고구마’라는 말마디는 ‘감자 종자·고구마 종자’로 바뀝니다. 4348.4.2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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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24] 찬바람이



  찬바람을 일으키는 기계를 ‘선풍기(扇風機)’라고 합니다. 더운바람을 일으키는 기계를 ‘온풍기(溫風器)’라고 해요. 우리 집 큰아이가 ‘온풍기’를 보더니 “저것 선풍기야?” 하고 묻기에 “응? 아니야. 선풍기 아니야.” 하고 말하니, “그러면 뭐야?” 하고 묻고, “더운바람이 나오는 아이야.” 하고 말해 줍니다. “그러더니 ‘더운바람이’겠네?” 하고 말합니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선풍기란 ‘찬바람이’입니다. 온풍기란 ‘더운바람이’입니다. 그렇지요. 찬바람이 나오고 더운바람이 나오니까, 이러한 모습대로 이름을 붙이면 돼요. 아이들도 알고 어른들도 모두 아는 가장 쉽고 예쁜 말을 쓰면 됩니다. 4348.4.2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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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23] 봄까지꽃, 봄까치꽃, 개불알풀꽃



  조그마한 봄꽃을 놓고 세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봄까지꽃’은 시골에서 조용히 쓰는 이름이라 할 만하고, ‘봄까치꽃’은 어느 수녀님이 쓴 시 때문에 퍼진 이름이라 할 만하며, ‘개불알풀꽃’은 이제 익히 알려진 대로 일제강점기에 일본 식물학자가 붙인 이름을 한국 학자가 고스란히 옮긴 이름이라 할 만합니다. 봄꽃 하나를 놓고 어느 이름으로 가리키면서 마주하더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에 사랑이 있어서, 이 사랑으로 봄꽃을 마주하면 넉넉합니다. 그러면, 하나씩 찬찬히 헤아려 봅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식물학자가 붙인 이름’을 그대로 쓰려는 사람은 참으로 이 봄꽃을 아끼거나 사랑하거나 돌보려는 마음인가요? 아니면 ‘개불알’이라는 이름이 이녁 마음에 들기 때문인가요? ‘봄까치’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려는 사람은 참으로 이 봄꽃하고 ‘까치’라는 새하고 어울린다고 하는 생각 때문인가요, 아니면 어느 수녀님이 쓴 시가 마음에 들기 때문인가요? ‘봄까지’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은 봄꽃을 그저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딱히 다른 데에 얽매일 일이 없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봄까지꽃’은 겨울이 저물면서 봄이 될 때에 처음 피고, 봄이 저물 무렵까지 피기 때문입니다. 봄이 끝나면 봄까지꽃은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이름 그대로 “봄까지 피는 꽃”이 ‘봄까지꽃’입니다. 나는 세 가지 이름 가운데 ‘봄까지꽃’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봄꽃을 마주합니다. 봄 내내 이 작은 꽃을 애틋하게 바라보면서 아끼려는 마음입니다. 4348.4.7.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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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7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5-04-07 17:09   좋아요 0 | URL
저도 한동안(2010년까지) 봄까치꽃으로 잘못 알았어요.
그러다가 강운구 님이 쓴 글을 읽고 처음으로 알아차렸고
블로그 이웃님도 알려주셨고,
저 스스로 자료를 찬찬히 찾아보고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한테 여쭙기도 하면서
이 꽃이름을 비로소 제대로 알았습니다.

그러니, 저도 고맙게 배워서 안 이름이라
얼마든지 둘레에 퍼뜨려 주셔도 되어요.

저로서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랍니다 ^^
수녀님인 시인이 시에서 `치`로 쓰시는 바람에
갑자기 널리 퍼졌는데
그 수녀님이 `지`로 제대로 적으셨다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하고 생각해 보곤 해요.

그런데, 그 수녀님이 시에 이 꽃 이야기를 안 쓰셨으면
저도 `봄까지꽃`이라는 이름을 아는 오랜 여행길을 걷지 못했겠구나 싶기도 해요~

2015-04-11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5-04-12 00:03   좋아요 0 | URL
`일제`라고도 할 테지만,
한국 지식인과 학자 스스로 생각이 깊지 않은 탓이 짙어요.
왜냐하면, 예전에는 식민지라서 그랬다고 하지만,
오늘날에도 안 고치는 모습을 보면 `식민지 탓`은 할 수 없거든요.

저도 나중에서야 배웠지만
`며느리밑씻개` 같은 풀이름도 일본 이름을
엉터리로 아직까지 그대로 쓰는 풀이름이에요.

그러나, 풀이름뿐 아니라, 여느 말투도
`한국 말투`를 제대로 쓰는 사람이 아주 드물어요..

2015-04-13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5-04-13 12:54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런 말을 하는 분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사는 이곳 전남 고흥에서도
들꽃 사진 찍는 분들 가운데 `봄까지꽃`으로 이름을 바로잡는 사람을
아직 한 사람도 못 보았습니다.

`개불알풀`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멋지냐(?)`면서 그런 이름을
누가 어떻게 붙였든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풀이름뿐 아니라, `여느 한국말`도 제대로 안 살피는 사람이 아주 많고,
이는 `지식 있는 분`한테서 쉽게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애써 주시는데,
부디 마음 다치지 않으시기를 빌어요.
꽉 막힌 분을 보시더라도
너그러이 헤아려 주셔요.

그야말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