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37] 마음을 읽는 벗



  책을 읽는 사람이 줄어든다고 해도 아름다운 책은 꾸준하게 태어나고, 책을 즐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옛날에는 책을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으나, 이제는 조금만 틈을 내고 돈을 들이면 어떤 책이든 손쉽게 읽을 수 있어요. 영어를 몰라도 한국말로 옮긴 책을 읽을 만하고, 한문을 몰라도 요샛말로 옮긴 옛글을 읽을 만합니다. 어린이도 책을 읽고, 할아버지도 책을 읽습니다. 누구나 ‘책읽기’를 합니다. 요즈음은 인터넷으로 온갖 글을 읽기도 해요. 글을 좋아하는 분들이 누리집에 올리는 글이라든지, 누리사랑방이나 누리모임에 올라오는 수많은 글이 있어서, 기쁘게 ‘글읽기’를 하지요. 책으로 묶은 글을 읽으니 책읽기이고, 책으로 따로 묶지 않으면서 쓴 글을 읽으니 글읽기예요. 마음이 맞는 살가운 동무가 어떤 느낌일까 하고 헤아리면 ‘마음읽기’입니다. 이웃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어떤 생각이 깃들었을까 하고 돌아보면 ‘생각읽기’이고요. 그러고 보면, 우리는 꿈읽기나 노래읽기나 영화읽기를 합니다. 문화읽기나 역사읽기나 인문읽기를 해요. 마을 한 곳이 걸어온 길을 짚으면서 마을읽기를 할 수 있고, 별읽기나 우주읽기를 해도 재미있습니다. 4348.7.2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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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36] 길삯



  아이들을 이끌고 닷새에 걸쳐서 나들이를 다녔습니다. 전남 고흥에서는 어디로 가든 길이 먼데, 닷새 동안 시외버스에서 열여덟 시간 즈음 보냈더군요. 고흥에서 인천으로, 인천에서 영월로, 영월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진주와 순천을 거쳐서 고흥으로 돌아오는 동안 시외버스는 온갖 고속도로와 국도를 가로지릅니다. ‘인터체인지’라든지 ‘요금소’를 수없이 지납니다. 이제 ‘인터체인지’는 ‘나들목’이라는 낱말로도 고쳐서 쓰는 사람이 많고, 교통방송에서는 으레 나들목을 말합니다. ‘톨게이트(tollgate)’는 ‘요금소(料金所)’로 고쳐서 쓰기도 한다지만 이 낱말은 어쩐지 어설프구나 싶어요. 그냥 영어로 쓰든지 새로우면서 알맞춤한 한국말을 지을 노릇이리라 생각합니다. 차가 길을 달리면서 ‘돈’을 내야 한다면, “길에서 삯을 치르는” 셈입니다. 그래서, 고속도로 같은 곳에서는 ‘길삯’을 내는 셈이에요. 자동차는 길에서 길삯을 치르고, 마실꾼은 마실을 다니려고 시외버스나 기차를 타면서 길삯을 치릅니다. 자동차가 길삯을 치르는 곳을 가리키는 요금소이니, 나들목이나 길목이나 건널목을 헤아린다면 ‘길삯목’ 같은 낱말을 떠올릴 만합니다. 4348.7.2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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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35] 셋이 함께



  너랑 나랑 있으니 ‘둘이 함께’입니다. 너랑 나에다가 그 사람이 있으니 ‘셋이 함께’입니다. 우리는 ‘넷이 함께’ 있기도 하고, ‘다섯이 함께’나 ‘여럿이 함께’ 있기도 해요. 셋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일컬어 ‘삼위일체’라고도 하는데, 세 사람이나 세 가지가 어울리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마주하는 그대로 “셋이 함께”라 할 만하고, ‘셋이함께’처럼 적을 수 있어요. 또는 “셋이 한몸”이라든지 “셋이 하나”처럼 말할 만합니다. 세 사람은 어떤 삶일까요? “셋이 한삶”을 이루거나 “셋이 온삶”을 이룰 수 있어요. 세 가지는 어떤 숨결일까요? “셋이 한노래”이거나 “셋이 한줄기”로 흐를 수 있습니다. 4348.7.27.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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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34] 아이 어머니



  가시내와 사내는 아이를 낳으면 ‘어머니’하고 ‘아버지’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두 사람한테 아이가 찾아오면 이때부터 ‘어버이’라는 이름을 누립니다. 가시내와 사내는 ‘어른’이 되어 짝을 맺을 수 있는데, 둘이 짝을 맺어서 ‘짝님’으로 지내더라도 아이가 없으면 ‘어머니’도 ‘아버지’도 ‘어버이’도 되지 못합니다. 아이를 낳아 어머니로 지내기에 ‘아이 어머니’이고, 아이를 낳아 아버지로 지내니 ‘아이 아버지’입니다. ‘아이 어머니·아이 아버지’는 한집을 이룬 두 사람이 다른 사람 앞에서 서로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애 엄마·애 아빠’처럼 쓰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애’는 ‘아이’를 줄인 낱말이지만, ‘엄마·아빠’는 아기가 쓰는 말입니다. 아직 혀를 제대로 놀리지 못하는 아기가 혀짤배기 소리로 내는 이름이 ‘엄마·아빠’입니다. 그래서 ‘아기’가 철이 들어 ‘아이’로 넘어설 무렵에 혀짤배기 말인 ‘엄마·아빠’를 내려놓고 ‘어머니·아버지’로 이름을 새롭게 써야 합니다. 아이가 제 어버이를 ‘어머니·아버지’로 부를 적에는 아이 스스로 철이 들면서 씩씩한 ‘한 사람’으로 선다는 뜻이요, 이제부터 아이는 심부름을 곧잘 할 뿐 아니라, 집일하고 들일(바깥일)을 찬찬히 배운다는 셈입니다. 늦어도 열 살부터는 ‘아기 말’인 ‘엄마·아빠’를 내려놓고 ‘어머니·아버지’를 써야 하며, 여느 어른하고 어버이라면 아이가 ‘혀짤배기 말’을 그만 쓰는 ‘철든 한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4348.6.21.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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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33] 삶노래


  아름다운 이웃님이 빚은 멋진 동시집이 있기에, 이 책을 펼쳐서 아이들하고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왜 동시를 노래로 부르는가 하면, 참말 동시는 언제나 노래처럼 읽을 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동시집에 나오는 글도 아버지가 쪽종이에 적어서 건네는 글도 모두 아이 나름대로 가락을 입혀서 노래로 부릅니다. 아이들이 모든 글을 노래로 부르면서 노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우리가 쓰는 글이 모두 노래가 된다면, 우리가 쓰는 글은 언제나 ‘글’이면서 ‘노래’라는 뜻입니다. 여러 가지 무늬와 결로 종이에 글씨를 입히니 글이지만, 이 글을 입으로 읊으면 말입니다. 말은 글이 되고, 글은 말입니다. 그러니, 글이 노래라고 한다면 말이 노래라는 뜻이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도 언제나 노래라는 뜻이에요. 더 헤아리면, 처음에는 글이 없이 ‘말’만 있었어요. 처음에는 모든 사람이 서로 말만 나누었고, 말에는 생각이나 느낌이 담겨 ‘이야기’로 거듭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 곱게 가락을 입히니 ‘노래’입니다. 이제 하나씩 돌아봅니다. 오늘날 많은 분들이 ‘문학’을 하려고 ‘시’를 씁니다. 시를 한글로 ‘시’라고만 적으면 멋이 없다고 여기기도 하기에 ‘詩’처럼 쓰는 분이 있고, 영어로 ‘poem’처럼 쓰는 분이 있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이 땅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무늬와 결을 살피면서 ‘삶노래’라는 이름을 하나 새로 빚습니다. 사람들이 나누는 말은 ‘내 생각과 느낌을 담은 이야기’인데, 이러한 이야기는 바로 우리 ‘삶’입니다. 그래서 ‘삶말’이고, 이를 글로 옮기면 ‘삶글’이 되며, 이를 늘 즐겁게 부르면서 ‘삶노래’입니다. 삶노래를 곱게 지어서 기쁘게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 ‘삶노래님’입니다. 시인도 가수도 모두 삶노래님이요, 삶노래지기이고, 삶노래꾼이면서, 삶노래장이입니다. 4348.6.1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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