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17] 어깨동무



  남녘과 북녘이 갈라지고 난 뒤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면서 ‘동무’라고 하는 살갑고 오래된 낱말이 짓밟혔습니다. ‘동무’라는 낱말은 마치 북녘에서만 쓰는 낱말인듯이 정치권력이 윽박질렀어요. 이리하여 어른도 아이도 남녘에서는 ‘친구(親舊)’라는 한자말을 써야 했습니다. 남녘에서 새롭게 태어나 자라는 아이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동무’라는 낱말은 어쩐지 낯선 말로 여겨야 했어요. 그러나 ‘동무’라는 낱말은 ‘글동무’라든지 ‘소꿉동무’라든지 ‘어깨동무’라든지 ‘길동무’라는 낱말에 씩씩하게 남았습니다. ‘소꿉동무’는 그만 ‘소꿉친구’라는 낱말로도 갈렸는데, ‘길친구’나 ‘어깨친구’ 같은 엉터리 말을 쓰는 사람은 없어요. ‘어깨동무’는 어린이 잡지 이름으로도 꽤 오래 아이들 곁에 있었지요. 곰곰이 돌아보면, 오늘날 사회에서 외치는 ‘연대(連帶)’란, 한국말로는 ‘어깨동무’입니다. 함께 어깨를 겯고 나아가려는 몸짓이란 바로 어깨동무일 테니까요. 삶을 살리면서 말을 살리고, 말을 살리면서 넋을 살려요. 넋을 살리는 사람은 꿈을 살리고, 꿈을 살리면서 시나브로 사랑을 함께 살립니다. 서로 손을 잡고 함께 어깨를 겯는 사이 우리 숨결이 기쁘게 춤을 춥니다. 4348.2.15.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말이랑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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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16] 동글말이빵



  이제는 잘 먹지만, 나는 어릴 적에 ‘케익’을 못 먹었습니다. 크림이 들어간 것을 먹으면 흔히 게웠어요. 너무 단 것은 입에도 속에도 안 받았습니다. 그래도 ‘롤(roll)빵’은 입이나 속에 받아서, 생일케익으로 으레 롤빵을 먹었습니다. 어린 날부터 ‘롤빵’이라는 말을 그냥 쓰면서 살았어요. 둘레에서 다들 이렇게 말하니 이렇구나 하고 여겼습니다. 이제 나는 두 아이하고 삽니다.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처음 보는 것이 있으면 언제나 이름을 물어요. “이게 뭐야?” “이건 뭐야?” “얘는 이름이 뭐야?”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그동안 나한테 익숙하거나 사람들이 흔히 가리키는 이름을 알려주려고 하는 마음이 들다가 살짝 멈춥니다. 내가 아이한테 문득 뱉는 말마디는 아이 마음속에 ‘생각하는 힘’을 누르지 않나 하고 돌아봅니다. “얘는 이름이 뭘까?” “이것은 어떤 이름이 어울릴까?” 하고 다시 아이한테 물은 뒤, 아이가 먼저 어떤 이름 한 가지를 내놓으면, “그래 그 이름이 괜찮구나. 그러면 우리 그 이름으로 말하자.” 하고 대꾸하거나 “응, 이 아이는 이런 이름이라고 해.” 하고 붙입니다. 아이들 이모한테서 선물받은 ‘롤빵’을 아이들한테 한 조각 잘라서 주다가 이 빵에 사람들이 붙인 이름을 우리 아이들한테 그대로 물려주어도 될까 하고 생각하니, 문득 ‘동글말이빵(둥글말이빵)’이나 ‘동글빵(둥글빵)’이라는 이름이 떠오릅니다. ‘동글려서 빚는 빵’이거나 ‘둥글려서 빚는 빵’이기에 ‘동글말이’나 ‘둥글말이’라고 하면 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4348.2.15.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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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15] 온눈



  온힘을 다해서 살려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온마음을 씁니다. 온마음을 쓰면서 사랑하려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모든 눈을 뜨려 하고, 모든 귀를 열려 하며, 모든 꿈을 꾸려 합니다. 그래서, 온힘과 온마음이 모여서 ‘온눈’과 ‘온귀’가 되면서, ‘온꿈’과 ‘온사랑’으로 퍼져요. 모든 것을 바라볼 뿐 아니라 꿰뚫어볼 수 있기에 온눈입니다. 모든 것을 귀여겨들을 뿐 아니라 받아들일 수 있기에 온귀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오롯이 삶을 지으면서 ‘온사람’이 되고, 온사람으로 살기에 ‘온삶’을 누립니다. 이리하여 온누리에 온빛이 가득 드리우면서 온넋이 푸른 숨결로 거듭나요. 온별에 환한 무지개가 뜨면서 온겨레가 어깨동무를 하는 온나라를 이루지요. 4348.2.13.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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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14] 신나다



  국립국어원에서 2014년 11월에 ‘표준국어대사전 올림말 가운데 고친 곳’을 밝힙니다. 이제껏 올림말을 고치면서 따로 밝힌 일이 거의 없기에 무척 놀라운 일이에요. 게다가 ‘새로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린 낱말’ 가운데 ‘신나다’가 있어요. 나는 2001년부터 한국말사전 엮는 일을 했고, 2002년부터 국립국어연구원(예전 이름)에 ‘신나다’가 올림말로 실리지 못할 까닭이 없다고 이야기했어요. 사전편수자이든 그곳 관계자이든 누구이든 볼 때마다 ‘신나다’ 같은 낱말은 하루 빨리 올림말로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재미나다·맛나다·성나다·골나다·생각나다’ 같은 낱말은 올림말이면서, 아이와 어른 모두 아주 자주 쓰는 ‘신나다’만큼은 ‘신 나다’처럼 띄어야 한다고 하니 앞뒤가 안 맞거든요. 그곳 사전편수자는 ‘신나다’로 적은 보기글을 찾기 어렵다고 했지만, 정부에서 ‘신 나다’로 띄어서 적으라고 하니, 동화책이나 소설책에서 이러한 보기글이 나올 턱이 없지요. ‘신이 나다’나 ‘신 나다’로 적은 보기글을 살피면, 이 말마디를 얼마나 자주 쓰는지 알 수 있지만, 정부에서는 이러한 보기글을 찾아보려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신나다’는 어렵사리 올림말이 되는데, ‘짜증나다’는 아직 한 낱말이 안 됩니다. 아마 ‘짜증나다’도 머잖아 올림말로 바뀔 테지요. 왜냐하면, 비슷한 뜻과 꼴인 ‘성나다·골나다’ 같은 낱말은 올림말이니까요. 부디 한국말을 한국사람 스스로 더 깊고 넓게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요. 아무튼, 이제는 “신 나고 재미나는 이야기”처럼 띄어쓰기를 엉뚱하게 해야 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4348.2.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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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13] 돈을 묻다, 쌈짓돈



  돈을 묻습니다. 오늘 바로 쓸 돈이 아니라고 여겨 얼마쯤 돈을 묻습니다. 나중에 쓸 생각으로 돈을 묻어요. 돈은 써야 할 곳에 알맞게 씁니다. 돈은 삶을 북돋우거나 살찌우려는 자리에 기쁘게 씁니다. 차근차근 모아서 주머니에 돈을 묻습니다. 쌈짓돈이 됩니다. 쌈짓돈은 적을 수 있지만, 많을 수 있어요. 크기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조금 묻든 많이 묻든 다음에 알뜰살뜰 쓰고 싶어서 묻습니다. 돈을 묻은 줄 잘 떠올리기도 하지만, 돈을 묻은 줄 까맣게 잊기도 합니다. 돈을 묻은 줄 알기에 어딘가 든든하고, 돈을 묻은 줄 모르기에 뜻밖에 나타나서 고맙다고 여깁니다. 내 쌈짓돈은 내 곁에서 포근한 빛살이 되어 줍니다. 4348.2.10.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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