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그 책을 읽고 나서 : 그 책을 ‘읽기 앞서’와 ‘읽고 나서’ 사이에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쓸 적에 비로소 비평이라 한다. ‘읽은 내’가 마음이며 생각이며 삶이며 넋이며 눈빛이 어떻게 새롭게 흐르는가를 짚을 적에 비로소 비평이 된다. 1994.12.9.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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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등불 나무 :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나무 곁에 거리등을 켜기 일쑤이다. 아마 나무한테 물어보고서 나무 곁에 거리등을 세워서 켜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생각해 보자. 우리 잠자리에 불을 환하게 켜면 잠이 잘 올까? 나무도 사람마냥 밤에는 잠을 자고 싶은데 나무 곁에 밤새 불을 환하게 켜면 나무는 어떤 마음이며 몸이 될까? 나무가 괴롭다며 몸부림치며 이렇게 외치더라. “너희(사람)가 밤새 켜는 불빛에, 성탄절 언숲노래저리에 둘러서 켜대는 불빛에, 이쁘라며 켠 불빛에, 우리(나무)는 짜증이 나고 성이 나서 미쳐서 터져 죽을 노릇이야!” 2015.12.8.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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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집 불빛 : 이웃님이 서울 인사동 어느 마을책집을 다녀오면서 띄운 글자락을 읽었다. 글도 사진도 무척 정갈했는데, 사진으로 들여다본 인사동 그 마을책집은 불이 매우 밝았다. 더구나 책시렁이나 ‘책을 읽는 사람’한테 바로 내리쏘는 불빛이더라. 꽤 아찔했다. 그 인사동 마을책집은 ‘빨리 돌리기(회전율)’를 해서 돈(임대료라든지 수익)을 따질 수밖에 없는 얼거리로구나 하고 느꼈다. 서울 인사동이라는 곳이 달삯이 얼마나 비싼지를 아는 터라, 그 마을책집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줄 알기도 한다. 잘 보면 알 수 있다. 백화점이나 큰가게나 화장품집을 보라. 불이 얼마나 밝으며, 얼마나 머리에 바로 내리쏘는가? 다 그만 한 까닭이 있다. 손님이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하면서, 빨리 돈을 쓰고 나가도록 하려는 곳은 그렇게 불빛이 세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큰책집을 보라. 얼마나 밝은가? 그렇게 불빛을 밝게 내리쏘는 책집은 사람들더러 ‘이봐? 여기에서 책 그만 읽고 얼른 사서 나가라구!’ 하고 윽박지르는 셈이다. 모름지기 책집이라면 불빛을 가장 부드럽게 하되, 벽이나 천장에 튀겨서 살짝 비추도록 해야 한다. 이런 불빛 다루기를 잘 하는 곳으로 구미 〈삼일문고〉가 있다. 〈삼일문고〉에 들어서기 앞서까지는 구미 시내가 얼마나 어지럽고 자동차 때문에 길을 걷기 나쁜지 모른다. 그런데 〈삼일문고〉에 들어서면 마치 ‘어머니 품에서 자라는 아기’가 된 듯, 매우 아늑하다. 이곳 〈삼일문고〉에서 한나절이나 하루를 꼬박 지내더라도 지치거나 힘들 수 없겠다고 느낀다. 게다가 배고프다는 생각도 안 느낄 만하다. 그만큼 책시렁뿐 아니라 불빛을 잘 다스린다. 몸을 아늑하게 하는 불빛은 오롯이 책읽기에 스미도록 이끄니, 〈삼일문고〉에 와서 사진을 찍는 다른 손님이 많아도 딱히 걸리적거리지 않는다. 그만큼 불빛 하나를 잘 다스리면 모두가 아늑하면서 부드러운 마음이 된다. 마을스러운 책집인지 아닌지, 아니 책집다운 책집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불빛을 보면 된다. 책은 불빛으로도 바랜다. 책에 바로 불빛이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 햇빛뿐 아니라 전깃불빛으로도 책이 바랜다. 책을 오래도록 아끼면서 건사한 사람이라면 알 테지. 그래서 책시렁에 천을 드리워 놓기도 한다. 비닐이 아닌 천이다. 천을 드리우면 바람이 천 사이로 가볍게 흐르면서 책을 돌봐 준다. 잘 가꾸는 책집이나 도서관이 왜 살짝 어두운 결인가를 헤아리면 좋겠다. 책집이나 도서관뿐 아니라 살림집도 이처럼 불빛이 살짝 어두워야 좋다. 살짝 어두운 곳에서 지내야 ‘눈도 안 다친’다. 눈이 나쁜 몸이라면 집이나 일터 불빛을 모두 바꿀 노릇이다. 적어도 엘이디나 형광등은 모두 버려야 하고, 백열전구로 갈면 참 좋다. 백열전구는 해를 고스란히 옮긴 불빛이다. 백열전구 불빛에 눈이나 몸이 익숙하면 한결 아늑하면서 기운이 난다. 지나치게 밝은 전깃불빛(엘이디·형광등)은 우리 눈을 갉고 머리를 갉을 뿐 아니라, 책이나 세간 모두 갉는다. 햇빛이나 햇볕도 너무 많이 받아들이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무리 좋은 햇빛이라 해도 알맞게 맞이하고서 나무그늘에서 몸이며 머리를 쉬어 줄 노릇이다. 다시 말하자면, 집이나 일터나 책집이나 도서관 모두 불빛을 부드럽게 다스리면서, 둘레에 나무가 우거져야 사람이 지내기에 좋다는 뜻이다. 집 둘레가 숲이라면 아주 좋겠지. 책집 곁에도 나무가 우거져서, 나무그늘에서 책을 읽다가 햇빛이며 햇볕을 쬐면서 책을 읽고, 다시 나무그늘로 옮기고, 이렇게 할 수 있으면 ‘어떤 책을 손에 쥐고서 읽더라도 누구나 아름다운 눈빛이며 마음이며 몸이 되어 환하게 웃음짓는 기쁜 노래가 흐르’리라 본다. 2019.12.7.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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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이라는 날 : ‘태어난 날’을 서로 기리는 줄 처음 느낀 때는 언제였을까. 잘 떠오르지 않지만, 예닐곱 살 무렵에 내가 태어난 날에 할아버지나 형이나 어머니 아버지가 같이 기뻐해 주었다는 모습이 얼핏 스치듯 지나간다. 그렇지만 ‘태어난 날’이라고 해서 딱히 대수롭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어릴 적에는 “아, 오늘만 이렇게 배불리 먹기보다는 이 엄청난 잔칫밥을 틈틈이 조금씩 나누어서 누리면 더 좋을 텐데.” 싶더라. 달력을 보면 12월 7일에 ‘대설’이라고 적힌다. 내가 어릴 적에는 달력에 으레 한자로만 적었으니 ‘大雪’이라 나왔을 텐데, 난 이날을 ‘큰눈날’이라고 읽었다. 큰눈이 내린다는 날이니까. ‘소설’은 ‘작은눈’이겠지. 가만히 따지면 큰눈날보다 추운 날이 잇달아 찾아올 텐데, 겨울에 태어난 내가 느끼기로 바로 이날 12월 7일 큰눈날부터 겨울이 저무는구나 싶더라. 큰눈날을 지나 고요밤(동지)을 넘어서면 바야흐로 새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고 느꼈다. 달력을 안 보더라도 날씨로, 하늘결로, 바람결로, 해결로 알아차렸다. 둘레에서는 “이제 겨울 문턱인데 무슨 겨울이 저물어 간다고 그래요?” 하고 묻지. 나는 몸으로 느낀 대로 말한다. “아, 이제 겨울이 저물어 가려고 손을 흔드는 날이 이날 큰눈날이네요.” 어린 나날을 지난 오늘 돌아본다면, 큰눈날에 이르도록 겨울 추위에 몸이 익숙해진다. 큰눈날쯤 되면 추위쯤 걱정이 없다. 바야흐로 겨울맛을 실컷 누리는 1월하고 2월이 된달까. 2000.12.7.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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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안 가는 길 : 고흥에서 원주로 가는 길을 알아보다가, 순천에서 바로 가는 시외버스가 있기에 순천을 거쳐서 원주로 간다. 네 시간이 걸리는 버스길에서 문득 생각한다. 고흥서 순천으로 가자며 7900원, 순천서 원주로 가자며 36000원이 든다. 고흥서 서울로 가면 24100원이요, 서울서 원주로 버스는 7700원. 시골에서 서울을 안 거치고서 다른 고장에 가려고 하는 이 길은 어쩐지 바보짓 같다. 버스삯이 더 들기도 하지만, 이래저래 따지니 서울을 거치면 한 시간 이십 분쯤 덜 든다. 다음에 고흥에서 원주로 이야기마실이며 책집마실을 갈 적에는 서울을 거칠까? 아니면 이대로 버스삯을 더 들여서 다닐까? 왜 서울을 거쳐서 더 멀리 돌아가는 길이 버스삯이 더 싸야 할까? 2019.12.6.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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