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9 아버지 책



  어린배움터 으뜸길잡이(초등학교 교장)로 일자취를 마친 우리 아버지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정년퇴임식’을 으리으리하게 하셨고, 그자리에 그 고장 국회의원이 와서 ‘축하금 5000만 원’을 냈다며 자랑처럼 말씀하셨어요. 우리 아버지가 책을 얼마나 읽으셨는지는 모릅니다만, 돈을 벌고 ‘돈을 벌 일을 꾀하’고 ‘돈을 벌 일을 꾀하느라 뭇사람을 만나고 어울리’느라 손에 책을 쥘 겨를은 거의 없다시피 한 줄은 압니다. 아버지 책시렁에 새로운 책이 늘어나는 모습은 거의 못 보았어요. 이 책시렁에 ‘제가 일하던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얹었고, 2004년부터는 ‘제가 쓴 책’을 보태었습니다. 언젠가 보니 제가 꽂은 책이 무척 많더군요. “나는 왜 이다지도 책에 파묻히면서 책길을 갈까?” 하고 돌아보면 아버지랑 어머니 때문이라고 할 만합니다. 책을 읽고서 어린이를 슬기롭게 가르칠 자리에 있되 책을 안 읽은 아버지 때문이고, 책을 읽고 싶으나 집안일에 집살림으로 책을 손에 쥘 틈이 없는 어머니 때문입니다. 우리 아버지 책시렁에 꽂혔던 책치고 제가 좋아할 만하거나 곁에 두고픈 책은 드뭅니다만, 외려 이 때문에 더더욱 혼자서 책길을 파고 책밭을 넓히면서 스스로 갈고닦거나 담금질하는 나날을 오늘까지 살아왔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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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3.29.

책하루, 책과 사귀다 8 존경하는



  책하고 얽혀 “어느 분을 존경하셔요? 스승이 누구예요?” 하고 묻는 말이 몹시 듣기 싫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르면서 똑같은 사람이자, 저마다 새로우면서 빛나는 숨결인 사랑을 품고 살아가기에, ‘누가 누구를 우러르거나 높이거나 섬기거나 모시거나 받들거나 따를 수 없다’고 느껴요. 저는 으레 “왜 누구를 존경해야 하지요? 왜 누구를 스승으로 두어야 하나요?” 하고 되묻습니다. 저처럼 되묻는 사람은 아예 없다시피 하지 싶습니다. 우리는 ‘누구한테서나 배울’ 뿐입니다. 우리는 ‘아무도 존경하지 않’되, ‘굳이 높이고 싶다면 우리 스스로를 높일’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부터 그랬어요. 국민학교를 다니던 열 살 무렵, 배움터에서 낸 ‘존경하는 인물 써 오기 독후감 숙제’에서 “나는 나를 존경합니다. 어느 누구도 존경할 수 없기 때문이고, 내가 나를 존경할 줄 알 적에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하고 적어서 냈어요. 이러고서 흠씬 두들겨맞았지요. 1984년 배움터 길잡이는 이런 글쓰기를 장난질이라고만 여겼어요. 우리는 누가 쓴 글이든 기꺼이 배울 만하되, 우리 스스로 쓴 글에서 가장 깊고 넓게 사랑을 배워요. 부디 스스로 높이고, 돌보고, 사랑해 주셔요. 우리한테는 우리가 스승이에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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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3.29.

책하루, 책과 사귀다 7 많이 드셔요



  저 스스로 안 하는데 남더러 하라 말하지 않습니다. 저 스스로 안 즐기는데 이웃더러 해보라 얘기하지 않습니다. 저 스스로 하기에 동무한테 들려주고, 저 스스로 누리기에 아이들한테 물려줍니다. “많이 먹어.” 같은 말을 어릴 적부터 꺼렸습니다. 왜 많이 먹어야 하는가 싶더군요. 어린 저로서는 ‘밥보다 놀이’였기에 “안 먹어도 좋으니 마음껏 놀아.” 같은 말이 반가웠어요. 이웃이나 동무를 만나서 밥자리에 있다 보면 “많이 먹으셔요. 왜 이렇게 안 먹으셔요?” 하고 물어보십니다만, 저는 누구한테도 “책 많이 읽으셔요. 삶을 많이 배우셔요. 옷을 많이 입으셔요. 더 많은 책집에 다니셔요.” 하고 말하지 않아요. 제가 책을 많이 읽거나 여러 책집을 다니더라도 저로서는 늘 ‘즐거움’ 하나일 뿐 ‘많이’가 아닙니다. 즐겁도록 알맞게 먹으면 되고, 즐겁도록 알맞게 입으면 되고, 즐겁도록 알맞게 벌어서 살림을 지으면 돼요. 모든 책은 ‘즐겁게’ 읽어야 할 뿐입니다. ‘많이’ 읽거나 ‘더’ 읽지 맙시다. 모든 글이나 말은 ‘즐겁게’ 쓰고 나눌 뿐입니다. ‘많이’ 쓰거나 읊지 맙시다. 아이들한테 많이 먹이지 마요. 아이들한테 많이 읽히지 마요. 어른인 우리 스스로 늘 즐겁게 하루를 짓기를 바라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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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3.23.

책하루, 책과 사귀다 6 굶기



  책집을 다니는 제가 매우 잘하는 대목을 하나 꼽으라면 ‘굶기’입니다. “오랫동안 책집을 아주 많이 다니셨잖아요? 책집을 다니면 뭐가 좋나요?” “아무래도 굶기에 좋습니다.” “네? 굶기? 굶는다고요?” “마음을 아름다이 가꾸도록 북돋우거나 이끄는 책을 만나면, 오늘 내내 굶은 줄 까맣게 잊습니다. 마음에 사랑이라는 싹이 트도록 간질이거나 건드리는 책을 보면, 오늘은 더 먹지 않아도 된다고, 밥값으로 삼을 돈을 몽땅 책값으로 쓰자고 생각합니다. 아름책이며 사랑책을 손에 쥐어서 읽잖아요? 이렇게 책에 사로잡히노라면 한나절이 흐르든 두나절이 지나든 모릅니다. 마땅한 소립니다만 배고픈 줄 잊어요. 가난한 살림이어도 읽고 싶은 책이 한가득이던 저로서는, 밥을 굶으려고 책집을 다녔습니다. 책을 읽으면 굶어도 좋아요. 아름다운 이야기로 배부르거든요. 그런데 책집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가자면 아무래도 둘레가 시끄럽고 어지럽잖아요? 이때 비로소 꼬르륵 소리가 쩌렁쩌렁 나는데, 침을 꿀꺽 삼켜요. 물을 한 모금 마셔요. 침하고 물로 배를 채우면서 책을 사읽었어요.” “…….” 저는 ‘밥값을 아끼’면서 책을 읽지는 않았습니다. ‘밥값을 통째로 책값으로 쓰’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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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3.23.

책하루, 책과 사귀다 5 신경숙



  누가 여섯 해 만에 새책을 내놓았다면서 여러 새뜸(신문)이 앞다투어 알려준답니다. 큰책집에서는 크게 벌여서 판다지요. 이이 책을 알리는 새뜸치고 “베끼기(표절)·훔치기(도용)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든지 “베낌질·훔침질로 벌어들인 돈은 어떻게 썼느냐?”라든지 “글이란 무엇이냐?”라든지 “그대는 왜 붓이 아닌 호미를 쥐고 흙을 가꿀 생각을 안 하느냐?”라든지 “음주운전 강정호나 학교폭력 이재영·이다영도 그대 말처럼 ‘책임감·작품으로’란 핑계로 돌아와도 되느냐?” 하고 묻지는 않는 듯합니다. 그런데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벼슬질(정치)을 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부정부패·성폭력·부동산 투기·논문 위조·표창장 조작·꽃할머니 앵벌이·화이트리스트·연줄·아이들 해외유학·검은 뒷돈’을 비롯한 갖가지 막짓을 일삼고도 그곳에서 버젓이 버팅깁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셈입니다. 썩어문드러진 벼슬꾼(정치꾼)을 끌어내리지 않는 손이라면 ‘신경숙 글을 펴낸 창비 책’을 아무렇지 않게 쥐겠지요. 글은 그저 글로만 보아야 한다면, 베낌질·훔침질도 오직 베낌질·훔침질로 볼 노릇이요, 썩어문드러진 몸짓도 오로지 썩어문드러진 몸짓으로 보고, 돈벌레는 마냥 돈벌레로 볼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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