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은



  모든 글은 쓰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모든 사랑은 나누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모든 책은 읽히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모든 꿈은 이루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모든 길은 걷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모든 삶은 가꾸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모든 마음은 아끼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모든 아이는 돌보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모든 슬기는 살리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모든 밥은 먹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모든 빛은 밝히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도록 하려고 읽힌다면 애써 태어난 책이 썩 달가워하지 않으리라 느껴요. 사라지지 않도록 읽힐 책이기보다는, 사랑하도록 읽을 책이요, 삶을 가꾸는 길에 즐겁게 피어나는 꿈을 배우도록 곁에 두는 책이지 싶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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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는 척하는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책 가운데 ‘삶을 짓는 길’을 들려주거나 밝히는 책은 몇 가지일까요? 잘 팔리거나 꾸준히 팔리는 책 가운데 ‘사랑을 짓는 길’을 얘기하거나 짚는 책은 몇 가지일까요? 우리는 ‘짓는 길’을 걷는 책이 아니라 ‘짓는 척하는 길’을 달콤쌈싸름하거나 이쁘장하게 꾸며 놓은 책에 홀린 채 길을 잃는 하루는 아닐까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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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모름지기 낫을 쥐어 풀을 벨 적에는 몸을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야 합니다. 납작 엎드리지 않고 구부정하게 손만 바닥으로 뻗으면 등허리가 휠 테지요. 풀베기이든 벼베기이든 보리베기이든 다 같아요. 신을 벗고 맨발로 맨흙을 밟으면서, 때로는 무릎을 꿇거나 엎드린다 싶을 만큼 흙바닥하고 하나가 되어 낫을 가볍게 놀리면 풀포기나 벼포기나 보리포기는 석석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눕습니다. 풀포기는 기계 아닌 손길 흐르는 낫으로 벨 적에 반깁니다. 맨발에 맨손으로 맨흙을 밟고 맨풀을 쥐어 보셔요. 그러면 풀하고 흙이 낫질을 어떻게 하면 된다고 가르쳐 줍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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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눈



  우리한테 ‘보는눈’이 있으면 아무 모습이나 바라보지 않습니다. 우리한테 ‘보는눈’이 있기 때문에 마음을 움직이는 길을 볼 수 있고, 이 길에 벗님이 될 책을 알아봅니다. 우리한테 ‘듣는귀’가 있으면 아무 소리나 듣지 않습니다. 우리한테 ‘듣는귀’가 있기 때문에 마음을 살찌우는 노래를 들을 수 있고, 이 삶에 빛이 될 책을 알아차립니다. 우리한테 ‘트인넋’이 있으면 아무것이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한테 ‘트인넋’이 있기 때문에 마음을 사랑하는 꿈을 키울 수 있고, 이 사랑으로 하루를 새롭게 지을 수 있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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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읽기 책읽기



  책을 안 좋아한다기보다 책하고 등진 채 살아가는 사진가들이 책집에 우르르 몰려들어서 사진을 찍는다면 책집을 어떻게 느끼거나 바라보는 사진을 찍을 만할까요? 골짜기나 멧자락을 사랑하지 않는 마음으로 노는 분들이 관광버스에서 우르르 내릴 적하고 비슷할 텐데요, 모든 일은 맞물립니다. 아침에 고흥교육청 전화를 받고 도장 하나 찍으러 마실을 다녀오는데, 고흥읍 버스터부터 교육청까지 걷는 길에, 교육청에 군청 앞을 지나 다시 버스터로 돌아오는 길에 끝없이 넘어질 뻔했습니다. 이 길을 걷는 사람은 거의 없고 찻길로 자동차만 지나다니는데요, 거님길이라고 하는 데는 울퉁불퉁하기 일쑤요, 크고작은 자갈이 널렸으며, 한쪽으로 기울어진 거님길이라거나 갑자기 푹 꺼진 자리가 참 많습니다. 아마 고흥군수도 고흥군 공무원도 이 길을 안 걷겠지요. 안 걸으니까 모를 테고, 안 걸으니까 길바닥이 어떠한지조차 안 헤아리겠지요. 우리는 책을 꼭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삶을 읽고 살림과 사람을 읽어야 합니다. 삶길도 살림길도 사람길도 읽어야 합니다. 이처럼 읽는 눈이 없이 책을 손에 쥔다면, 무엇을 얻을까요? 이처럼 읽는 눈을 가꾸지 않고서 사진기를 손에 쥔다면, 무엇을 찍을까요? 이처럼 읽는 눈을 키우지 않고서 대통령이나 군수나 공무원이 된다면, 무엇을 할까요? 이처럼 읽는 눈을 돌보지 않고서 아이를 낳는다면, 무엇을 가르칠까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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