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책집지기

 

  저는 헌책집이라는 곳을 1992년부터 다니면서 책집지기 이웃님한테서 깊고 넓게 배울 수 있었어요. 이 나라 곳곳에서 저마다 다르게 꾸리는 헌책집을 돌아보노라면, 어떻게 책살림을 꾸려 가는가를 한눈에 알아볼 만한데요, 오래오래 사랑받을 뿐 아니라 책손이 꾸준히 드나드는 책집은 여러 대목에서 달라요. 첫째, 책집지기 혼자 아는 책만 건사하지 않아요. 둘째, 책손이 자주 찾는 책만 건사하지 않아요. 셋째, 책집지기 스스로 새로 배우는 책을 건사해요. 넷째, 책손이 아직 모르지만 어김없이 손에 쥐려고 할 만한 책을 꾸준히 배워서 건사해요. 다시 말해서 책을 꾸준히 찾아서 읽으려는 책손은 꾸준히 배우려고 하는 삶입니다. 책갈래를 넓혀 새롭게 읽으려는 책손은 스스로 낯선 길이라 하더라도 즐겁게 배우려고 하는 살림입니다. 이러한 책손을 맞아들이는 책집지기도 늘 새롭게 배우며 언제나 낯선 책길을 열어젖히면서 날마다 즐거운 살림이에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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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알아보는 눈

 

  이야기꽃을 펴는 자리에서 이웃님이 제 책을 들고 와서 제 이름을 적어 달라 하십니다. 제가 쓴 책을 무척 즐겁게 읽었다면서 “이런 귀한 책을 써 주시니 고맙습니다.” 하면서 빙그레 웃으셔요. 저도 따라 빙긋빙긋 웃으면서 말씀을 여쭙니다. “제가 쓴 책을 귀하다고 알아보아 주시기에 귀한 눈이라고 느껴요. 귀한 눈이 귀한 책을 알아볼 뿐 아니라, 책 하나에 귀한 숨결을 담아 주지 싶고요. 우리는 모두 귀한 사람, 곧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직 우리 스스로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미처 못 느끼거나 알아채지 못할 뿐이지 싶어요. 누구는 삶을 글로 여미면서 아름답고, 누구는 삶을 글로 여민 책을 알아보아 읽으면서 더 새롭게 하루를 짓는 길을 걸어가기에 아름답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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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라는 씨앗



  한글날을 한 해에 고작 하루로 여길 수 있습니다. 참 많은 분들이 이렇게 여기는데, 이뿐 아니라 지난 한 해 동안 말이며 글을 함부로 쓰거나 거의 팽개친 채 살았네 하고 뉘우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한글날이 하루뿐이니 그만 쉽게 잊을 수 있을 텐데, 이때에는 이 실타래를 푸는 길이 있습니다. 먼저, 한 해 삼백예순닷새를 늘 한글날로 여기면 됩니다. 한글날뿐 아니라 한말날이라고, 글하고 말을 함께 기리며 생각하고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고 가꾸는 아침저녁을 누리면 되어요. 다음으로, 한글날이 하루뿐이라 하더라도 바로 이 날 기쁜 말이랑 글을 씨앗으로 심는다고 여길 만합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듯이, 밭에 씨앗 한 톨을 심어 열매를 얻으려 하듯이, 우리는 사랑스럽거나 즐겁거나 곱거나 알차거나 살뜰하거나 뜻깊거나 거룩하거나 훌륭하거나 좋거나 상냥하거나 참하거나 참되거나 멋스럽거나 맵시나거나 아기자기하거나 신바람나거나 새로운 꿈을 ‘말씨앗’ 한 톨에 담아서 심을 만해요. 그리고 한글날을 비롯해서 좋은 사전이나 우리말 이야기책을 한 권씩 장만하거나 틈틈이 장만해서 읽어 볼 만하겠지요. ‘숲노래’ 같은 사전짓는 두레에서 엮거나 쓴 책도 좋고, 어느 책이든 좋습니다. 씨앗 한 톨을 심는 날로 기려 봐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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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새책집에는 새로 나오는 책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흐른다면, 헌책집에는 지난날 나와서 사라진 책으로 오래된 이야기가 나란히 흐릅니다. 요즈음 나오는 새책으로도 페미니즘이나 사진이나 여행이나 역사나 육아를 밝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지난날 나온 헌책으로도 페미니즘이나 사진이나 여행이나 역사나 육아를 밝힌 이야기를 엿보면서 ‘오래된 페미니즘’을, 이른바 ‘오래된 노래’를, ‘오래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누릴 수 있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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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하고 오늘



  어제 우리는 책집마실을 으레 즐겼습니다. 어제는 오늘날처럼 누리책집이 없었으니 스스로 다리품을 팔아야 비로소 책을 만날 수 있었고, 헛걸음을 하더라도 다시 찾고 또 찾고 거듭 찾으면서 책 하나를 고마이 품에 안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책집마실을 다니려고 다리품을 팔 적에는 책만 만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책을 만날는지 설레면서 마음에 새바람이 불었고, 책집으로 가는 마을이나 골목이나 시골길을 누렸어요. 오늘날 우리는 책집마실을 굳이 안 해도 누리책집에서 손쉽게 책을 만납니다. 오늘날에도 책을 고마이 품는 분이 있습니다만 지난날하고는 좀 달라요. 지난날에는 고마이 품은 책을 건사하다가 이웃한테 물려주거나 헌책집에 기꺼이 내놓아 가난한 이웃이 넉넉히 ‘새 헌책’을 누리도록 다리를 놓았으나,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저마다 ‘개인 누리책집’을 열어서 ‘새 헌책’을 장사하곤 합니다. 새 헌책을 장사하는 일은 나쁘지 않아요. 누리책집으로 책을 만나는 일도 재미있기 마련입니다. 다만 다리품을 파는 책집마실이 줄어들면서 책집마실을 하는 동안 이웃집이나 이웃마을이나 이웃골목을 차분히 돌아보고 헤아리면서 두근두근한다든지 새로 보고 배우는 숨결이 좀 옅어집니다. 손쉽게 책을 얻거나 개인 누리책집을 여는 길을 얻었다면, 이만큼 우리 손을 떠나거나 잃거나 잊는 삶과 사랑도 있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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