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스타벅스



오늘 처음 스타벅스란 곳에 들어가는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문득 스무 해쯤 앞서 스타벅스에 여러 걸음을 한 적이 있다고 깨닫습니다. 그때에 이곳으로 저를 이끈 분이 있어서 함께 간 적이 있었군요. 제 두 다리로 스타벅스를 찾기가 처음인 셈이더군요. 찻집에 들르면 늘 마시는 코코아(또는 코코아랑 비슷한)를 한 잔 시킵니다. 6100원. 셈틀집에 가서 다섯 시간 즈음 있어도 될 만한 값이지만, 찻집은 해바라기를 하면서 글을 쓸 수 있고, 셈틀집은 창문을 모두 막아 캄캄한 데입니다. 찻잔은 무릎셈틀 뒤쪽에 놓고서 해님을 느끼면서 어제그제 갈무리하지 못한 글을 하나하나 돌아봅니다. 찻물을 앞에 놓고서 해바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란 꽤 좋구나 하고, 마흔 몇 해를 살며 비로소 느끼는 아침입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찻집을 찾겠지요. 그동안 아주 멀리하거나 모른 삶터나 삶이 언제나 한가득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선물할 줄 알다



우리 곁님은 참 멋진 사람입니다. 우리 집 통장에 남은 돈은 따지지 않으면서 살림을 같이 지어요. 고마운 이웃님한테 선물할 것을 이모저모 챙기면서 저더러 잘 갖다 주라고 이르는데, 이 선물거리에 들어가는 돈이 얼마인가 어림하니 75만 원입니다. 굳이 돈셈을 안 해도 될 터이지만, 통장을 다스리고 갖은 세금을 내는 일은 제가 도맡으니 이 돈셈은 저로서는 꼭 해야 합니다. 고마운 이웃님한테 드릴 선물거리 값을 치르려다 보니 한몫에 치를 수 없어 반을 갈라 먼저 값을 보내고 다음 반은 살림돈을 버는 대로 갚기로 합니다. 한마디로 ‘빚지며 선물하기’인 셈입니다. 곁님은 선물은 선물일 뿐 돈값을 따지면 안 된다고 밝혀요. 옳은 뜻이요 마음이라고 느껴요. 빚을 지며 선물하더라도, 이 빚은 곧 갚겠지요. 이런 곁님하고 살기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슬기로운 삶을 새롭게 살찌우는 손길을 살뜰히 익힙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밥 먹을 틈



요 며칠 동안 밥 먹을 틈이 없이 보냈습니다. 하루 두 끼니를 먹는 둥 마는 둥합니다만, 굳이 두 끼니를 안 먹어도 된다고 여기기에 밥 먹을 틈이 없다 해서 힘들거나 서운하지 않습니다. 그러려니 여깁니다. 밥 먹을 틈이 없기에 굶어죽을 일이 없습니다. 밥 먹을 틈을 굳이 안 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 이등병이던 때가 곧잘 떠오르는데, 1996년 1월 일이에요, 윗자리에 있다는 병장이며 상병이며 일병 모두, 이등병 한 사람한테 온갖 일을 떠맡긴 바람에 열이틀 동안 밥 한 술을 못 뜨고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 잠도 거의 못 자면서 갖은 일을 떠맡았지요. 지오피란 데에 들어가기 앞서인데, 여섯 달 동안 바깥바람을 못 쐬리라 여기며 윗사람이란 이들이 줄줄이 휴가를 얻어 달아나느라 참으로 죽을맛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먹지 않아도 용케 안 죽네?’ 싶었어요. ‘이놈들이 사람을 말려죽이려 하는구나. 그럼 얼마까지 안 먹으며 사나 지켜보자!’ 하는 마음이었지요. 밥 먹을 틈이 없으면 책 들출 틈도 없기 마련인데, 이 없는 틈에도 빨래는 하고 밥은 지어서 아이들더러 먹으라고 합니다. 밥 먹을 틈을 내지 않아 몸에 밥을 넣지 않으면 몸이 ‘밥을 삭이는 데에 힘을 덜 쓰거나 안 쓰’기에 여러모로 일손을 잘 추스를 만해요. 문득 돌아보면 그래요. 밥을 넉넉히 먹으면 오히려 책도 못 읽습니다. 배부르거든요. 배부른 몸은 책하고 동떨어집니다. 뱃속이 가벼운 몸일 적에 책하고 사귑니다. 가난해야 책하고 사귄다기보다, 몸에 밥이란 것을 덜 넣으면서 홀가분히 돌볼 수 있는 살림길이라면 어느 책이든 마음껏 받아들여서 마음을 살찌울 만해요. 다시 말하자면, 우리 삶터가 ‘먹고사는 길’에 사람들 눈이 치우치도록 흐른다면, 사람들은 ‘마음을 살찌우는 길’하고는 자꾸 멀어집니다. 책을 덜 보든 더 보든 대수롭지 않아요. 책을 읽더라도 마음을 안 살찌우면 읽으나 마나입니다. 책을 안 읽더라도 마음을 살찌운다면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손가락질받는 녹색연합



저녁에 비로소 기운을 되찾아 사전 올림말 뜻풀이를 붙이려고 하다가 문득 ‘녹색연합 과대포장’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먼저 한숨부터 절로 나옵니다. 무엇을 따져야 하는지를 잊었구나 싶습니다. 더욱이 ‘플라스틱 비닐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설 선물이라면, 이를 청와대에 바로 공문서로 묻는 글을 써서 띄우면 되지, ‘인스타 사진질’은 말아야지요. 환경을 살리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좋은 길은 무엇이든 스스로 지어서 누리기입니다. 이 대목을 헤아린다면, 녹색연합은 첫째 “선물 안 받기”를 외칠 노릇입니다. 설이건 한가위이건 청와대에 말씀을 여쭈어 “녹색연합은 선물을 안 받겠습니다” 하고 외치면 되어요. 선물이 왔어도 돌려주면 되지요. 이렇게 했다면 아무 말썽이 안 날 뿐 아니라, 오히려 손뼉을 받겠지요. 또는 녹색연합 일터하고 가까운 어르신 쉼터에 이 선물을 챙겨서 가져가서 마을 어르신이 드시도록 선물로 드려도 좋아요. 다음으로 좋은 길은 ‘다시쓰기’를 하면 됩니다. 선물꾸러미에서 나온 플라스틱을 다시 쓰기는 쉽지 않지만, 녹색연합에서 다른 곳으로 ‘깨질 만한 것’을 상자에 꾸려서 보낼 적에, 이들 플라스틱 꾸러미를 비닐자루에 담아 ‘완충재’ 구실을 하도록 다시쓸 수 있어요. 이렇게 하고서 이를 ‘인스타 사진질’을 한다면 사람들한테서 손뼉을 받으리라 봅니다. 셋째로 좋은 길을 든다면, 고맙게 받은 선물을 기쁘게 누리고서 제대로 ‘나눠 버리기’를 하면 되어요. 그리고 이를 굳이 ‘인스타 사진질’로 밝힐 일도 없이 아무것도 아닌 여느 일로 지나가면 됩니다. 삶이라고 하는 책, 여기에 살림이라고 하는 책, 그리고 사랑이라고 하는 책을 읽으면 좋겠어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책 많이 읽었다



  “책 많이 읽었다”고 말할 적에는 온갖 책을 잔뜩 읽은 사람이기보다는, 곁사람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면서 스스로 길을 새로 지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헤아리고 싶습니다. 집에 건사한 책이 잔뜩 있다는 뜻보다는, 조약돌 하나도 책으로 느끼고 아이들 소꿉놀이도 책으로 느끼며 바람 한 줄기도 책으로 느껴서 배운다는 뜻으로 살피고 싶습니다. 이웃님한테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저는요, 우리 책숲집에 건사한 종이꾸러미인 책도 즐겁게 읽지만, 곁님 목소리나 아이들 눈빛을 비롯해서 구름결하고 흙알갱이하고 씨앗 한 톨이라고 하는 책을 즐겁게 읽는 살림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려 해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