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더하기 사람 더하기 숲



흔히들, 책하고 책집을 놓고서 “책하고 사람을 잇는다”고들 말합니다. 저는 이 말을 듣거나 읽을 적마다 으레 거북해요. 뭔가 하나 빠졌구나 싶거든요. 오늘 아침, “책하고 사람을 잇는다”라는 말에 빠진 한 가지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책하고 사람하고 숲을 잇는다”라 말해야 알맞지 싶어요. 책하고 사람하고 숲은 늘 하나라는 대목을, 이 세 가지는 따로 가를 수 없이 흐른다는 대목을, 고요히 눈을 감고서 헤아립니다. 제가 짓거나 가꾸려는 책살림이라면, “책하고 사람하고 숲을 잇는 보금자리”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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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없던 시외버스



인천에서 고흥까지 시외버스로 다섯 시간 넘게 걸립니다. 자다가 깨어 책 하나 다 읽고서 다시 자고, 또 깨어 책 하나 더 읽어도 널널한 길입니다. 그런데 이 시외버스에 등불이 없네요. 창밖으로 해거름을 지켜보다가 등불을 찾아보는데 없어서 놀랍니다. 허허, 우째 등불이 없노. 고요히 눈을 감으며 마음을 다스립니다. 이러다가 시외버스가 긴 굴길을 지나갈 무렵 얼른 수첩을 꺼내어 동시를 적습니다. 긴 굴길을 빠져나오면 손전화를 켜서 동시를 마무리합니다. 시외버스에 부디 등불을 달아 주시기를. 너덧 시간을 시외버스에서 보내야 하는 사람은 이 길에 책도 읽고 동시도 쓰고 싶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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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효과’를 노리지 않는다



저는 이제껏 ‘학습만화’를 읽은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만화’를 읽을 뿐입니다. ‘학습사진’도 ‘학습그림’도 ‘학습사전’도 ‘학습철학’이나 ‘학습역사’도 ‘학습생태학’도 ‘학습인문’도 ‘학습여성학’도 읽은 일이 없어요. 그저 사진 그림 사전 처락 역사 생태학 인문 여성학을 읽을 뿐입니다. 책에 깃든 숨결을 즐겁게 읽습니다. 즐겁게 읽으며 배운 뜻을 신나게 글로 씁니다. 딱히 무엇을 노리면서 읽거나 쓰지는 않지만, 한 가지는 생각합니다. “삶을 사랑으로 배우는 살림”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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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다면 못 읽는다



새로 배우기가 두렵다면 책도 글도 못 읽습니다. 새로 배우기가 즐겁다면 책도 글도 웃고 울면서 읽습니다. 새로 배우기를 두렵거나 어렵다고 여기도록 내모는 삶터라면 사람들이 책도 글도 멀리하기 마련입니다. 새로 배우는 살림이 즐거운 사랑이요 고운 노래인 줄 나누려 하는 삶터라면 사람들이 신나게 책을 장만하며 서로 손으로 글월을 적고 띄워서 환한 웃음나라가 되지 싶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굳이 “책 읽는 나라”나 “책 읽히려는 나라”는 될 까닭이 없다고 여겨요. 우리가 다 같이 “배우는 기쁨을 누리고 나누는 나라”가 되면 넉넉하지 싶습니다. “같이 배우고 함께 짓는 살림으로 사랑을 꽃피우는 길을 걷는 보금자리가 피어나는 나라”가 되면 아름답지 싶습니다. 책나라란, 배움나라입니다. 책마을이란, 배움마을입니다. 책집이란, 배움집입니다. 책읽기란, 배움읽기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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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걸은 길



어제 걸은 길은 그저 어제일 뿐입니다. 어제 그 길을 걸었다고 해서 오늘도 꼭 그 길을 걷지는 않습니다. 사람을 만나거나 사귈 적에는 오늘 걷는 길을 바라보기 마련입니다. 어제 아름다웠거나 못났기에 만나거나 사귀지 않아요. 오늘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기에 만나거나 사귀어요.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모레로 나아갑니다. 어제를 살다가 오늘을 살면서 모레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우리 삶길은 뚝 끊어져 죽음이 됩니다. 그렇잖아요. 오늘 잠들고서 못 일어나면 죽음입니다. 오늘 아침까지 엄청난 돈이나 이름이나 힘이 있었다 하더라도, 잠든 뒤에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그저 죽음이요 끝이니 더는 만나거나 사귈 수 없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우리는 저마다 모레를 보면서 만나거나 사귀는 셈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아닌 모레를 보고 말이지요. 누구는 모레에도 돈이 많으리라 여겨, 누구는 모레에도 이쁜 모습이리라 여겨, 누구는 모레에도 힘이 세리라 여겨 만나거나 사귑니다.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보며 사람을 사귀려나 하고 돌아봅니다. 저로서는 이야기가 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스스로 지으며 새롭게 배우는 살림을 이야기할 만한 사람을 만나거나 사귀려 합니다. 남이 쓴 이야기를 놓고서 떡방아를 찧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살림꽃을 피우려고 손수 짓는 살림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펴거나 들을 만한 사람을 만나거나 사귀려고 해요. 남 이야기는 할 까닭이 없어요. 내 이야기를 하고 네 이야기를 듣습니다. 남이 걷는 길을 이러쿵저러쿵 따질 까닭이 없어요. 내가 걷는 길을 되새기고 네가 걷는 길을 바라보면 되어요. 어제까지 몇 권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오늘부터 어떤 숨결로 어떤 눈빛을 어떤 마음으로 밝힐 책을 가슴에 담으려 하느냐를 마주하면 되어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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