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2021.3.23.

책하루, 책과 사귀다 6 굶기



  책집을 다니는 제가 매우 잘하는 대목을 하나 꼽으라면 ‘굶기’입니다. “오랫동안 책집을 아주 많이 다니셨잖아요? 책집을 다니면 뭐가 좋나요?” “아무래도 굶기에 좋습니다.” “네? 굶기? 굶는다고요?” “마음을 아름다이 가꾸도록 북돋우거나 이끄는 책을 만나면, 오늘 내내 굶은 줄 까맣게 잊습니다. 마음에 사랑이라는 싹이 트도록 간질이거나 건드리는 책을 보면, 오늘은 더 먹지 않아도 된다고, 밥값으로 삼을 돈을 몽땅 책값으로 쓰자고 생각합니다. 아름책이며 사랑책을 손에 쥐어서 읽잖아요? 이렇게 책에 사로잡히노라면 한나절이 흐르든 두나절이 지나든 모릅니다. 마땅한 소립니다만 배고픈 줄 잊어요. 가난한 살림이어도 읽고 싶은 책이 한가득이던 저로서는, 밥을 굶으려고 책집을 다녔습니다. 책을 읽으면 굶어도 좋아요. 아름다운 이야기로 배부르거든요. 그런데 책집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가자면 아무래도 둘레가 시끄럽고 어지럽잖아요? 이때 비로소 꼬르륵 소리가 쩌렁쩌렁 나는데, 침을 꿀꺽 삼켜요. 물을 한 모금 마셔요. 침하고 물로 배를 채우면서 책을 사읽었어요.” “…….” 저는 ‘밥값을 아끼’면서 책을 읽지는 않았습니다. ‘밥값을 통째로 책값으로 쓰’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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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3.23.

책하루, 책과 사귀다 5 신경숙



  누가 여섯 해 만에 새책을 내놓았다면서 여러 새뜸(신문)이 앞다투어 알려준답니다. 큰책집에서는 크게 벌여서 판다지요. 이이 책을 알리는 새뜸치고 “베끼기(표절)·훔치기(도용)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든지 “베낌질·훔침질로 벌어들인 돈은 어떻게 썼느냐?”라든지 “글이란 무엇이냐?”라든지 “그대는 왜 붓이 아닌 호미를 쥐고 흙을 가꿀 생각을 안 하느냐?”라든지 “음주운전 강정호나 학교폭력 이재영·이다영도 그대 말처럼 ‘책임감·작품으로’란 핑계로 돌아와도 되느냐?” 하고 묻지는 않는 듯합니다. 그런데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벼슬질(정치)을 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부정부패·성폭력·부동산 투기·논문 위조·표창장 조작·꽃할머니 앵벌이·화이트리스트·연줄·아이들 해외유학·검은 뒷돈’을 비롯한 갖가지 막짓을 일삼고도 그곳에서 버젓이 버팅깁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셈입니다. 썩어문드러진 벼슬꾼(정치꾼)을 끌어내리지 않는 손이라면 ‘신경숙 글을 펴낸 창비 책’을 아무렇지 않게 쥐겠지요. 글은 그저 글로만 보아야 한다면, 베낌질·훔침질도 오직 베낌질·훔침질로 볼 노릇이요, 썩어문드러진 몸짓도 오로지 썩어문드러진 몸짓으로 보고, 돈벌레는 마냥 돈벌레로 볼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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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4 부릉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빛꽃을 찍고, 잠을 자고, 책값에 보탤 뜻으로 부릉이(자동차)를 몰지 않습니다만, 이밖에 우리 삶터를 헤아리려는 뜻이 더 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부릉이를 덜 몰면 길이 그만큼 홀가분할 뿐 아니라, 마을이 조용하고 깨끗해요. 이 땅에 부릉이가 하나라도 적다면 그만큼 찻길을 덜 늘려도 좋으며, 어린이가 뛰놀 빈터나 풀밭을 건사할 만합니다. 사람들이 부릉이를 두셋이나 여럿 거느리지 않고 하나만 거느리면, 그만큼 살림돈을 넉넉히 다스릴 테니, 이 살림돈으로 이웃사랑을 펼 만하고, 아름책을 장만할 만하고, 값이 제법 된다 싶은 말꽃(사전)을 갖출 만하겠지요. 온누리 이웃님이 부릉이를 건사하지 않고 갈무리하는 살림돈으로 땅을 장만해서 나무를 심으면 좋겠어요. 살림돈이 퍽 넉넉하다면 골목집이나 시골집을 한 채 장만해서 ‘작은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을 꾸리거나 ‘작은 마을책집’을 차려 볼 만합니다. 부릉이 하나를 거느리려면 일꾼 한 사람을 거느리는 만큼 돈이 든다지요. 이 돈이라면 마을숲이나 마을책집이 태어날 밑천이에요. 곳곳이 부릉이로 넘치기보다는 곳곳에 마을쉼터가 늘고 마을책터가 피어나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부릉이 하나를 줄이면 마을이 새롭게 자라날 만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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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3 등짐



  “웬 등짐이 그렇게 커요? 멧골을 오르셔요? 한참을 밖에서 지내는 사람 같아요. 안 무거워요?” “책집에 가는 등짐이에요. 무릎셈틀(노트북)에 책을 짊어지지요. 즐겁게 장만하는 책은 안 무거워요. 신나게 곁에 둘 책인걸요. “에, 저는 들지도 못하겠던데, 거짓말이죠?” “참말이에요. 저는 책을 무겁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아이를 안거나 업으면서 ‘얘야, 네가 무거워서 안기 힘들어.’ 하고 여기거나 말하지 않아요.” “아.” “사랑하는 아이를 안거나 업듯, 사랑할 책을 장만해서 등에 짊어지고 집으로 간답니다. 그래서 등짐은 되도록 크고 좋은 녀석으로 장만해요. 이 등짐 저 등짐을 써 보고서 알았어요. 작거나 값싼 등짐은 어깨끈이 풀어지거나 끊어질 뿐 아니라 구멍이 나더군요. 이 등짐은 50만 원이 넘는 값을 치렀는데, 열 해 넘게 짊어지면서 두 벌을 맡겨서 어깨끈을 손질했답니다. 제대로 지은 것을 제값을 주고 장만하면 잘 고쳐 줘서 오래오래 쓸 만하고, 등이 한결 좋아요.” 책을 담아서 지기에 어울리도록 짓는 등짐이 드뭅니다. 책을 스물이나 서른, 때로는 마흔이나 쉰을 담고서 뛰거나 달려도 튼튼한 등짐이 드물어요. 두툼한 끈을 겹으로 댑니다. 애쓴 등짐을 쓰다듬습니다. 책을 담는 새로운 제 몸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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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추 서른 해를 

우리말과 책과 마을책집 이야기를 쓰며

살았습니다.


여태 쓴 책 이야기만 해도

종이책으로 1000이 훌쩍 넘을 만큼 잔뜩 있으나

오늘부터 새 꼭지를 쓰려고 합니다.


책을 노래하는 글에 얼핏설핏 곁들이기도 하고

누가 물어보면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하나로 제대로 묶은 적은 없지 싶습니다.


그래서 '책하루'란 이름으로

여태까지 '책하고 사귄 삶'을

단출히 갈무리할 생각입니다.


마음으로 누려 주셔요.

고맙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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