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2021.4.29.

책하루, 책과 사귀다 16 흔들흔들



  2021년 4월 28일, 작은아이는 처음으로 시골버스에서 ‘만화책 그리기’를 합니다. 밑그림만 그렸는데 “버스는 너무 흔들려서 못 그리겠어” 하고 말합니다. 빙그레 웃으면서 “흔들린다고 못 그릴 까닭이 없어. ‘흔들흔들’이라는 생각이 마음으로 퍼지니까 스스로 못 그린다고 여기지.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어디에서든 ‘그림’만 마음에 담아서 그리면 돼. 그리고 또 그리니까 그린단다. 너희 아버지는 너한테 이렇게 들려주는 말을 함께 들길을 걸으면서 척척 쓰잖니? ‘쓴다’는 생각을 스스로 심으면서 살기에 걸으면서도 쓰고, 버스가 아무리 흔들흔들해도 쓰고, 너희가 갓난쟁이일 무렵 너희 옷가지랑 기저귀랑 살림을 잔뜩 짊어진 몸에 너희를 한 팔로 안고서 다른 팔로 글을 썼는걸.” 하고 말합니다. 하거나 못 하는 까닭은 매우 쉽습니다. 하려는 생각을 마음에 심으니 하고, 하려는 생각을 마음에 안 심으니 안 하거나 못 합니다. 책에 사로잡히면 누가 불러도 못 듣고, 추위나 더위를 못 느끼기 마련입니다. 우리 스스로 모르게 ‘읽는다’는 생각을 마음에 심었거든요. 오직 ‘읽는다’만으로 빠져들기에 다 잊고 ‘읽는다’만 해냅니다. 마음에 늘 ‘사랑’을 심고 ‘살림’을 심고 ‘숲’을 심는 동무랑 이웃이 늘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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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5 숨



  돌봄터(병원)에서는 저를 ‘만성축농증’이라고 했습니다. 워낙 고삭부리라 아픈 데를 잔뜩 달고 사는 저였는데, 다른 무엇보다도 코 탓에 이비인후과를 날마다 드나들어야 했습니다. 집안일이며 곁일(부업)이며 몹시 바쁘고 힘든 어머니는 돌봄터에 치르는 돈뿐 아니라 돌봄터를 오가는 품이며 찻삯도 버거워 돌봄터 지기한테 묻습니다. “그러면 어떡해야 하나요?” “수술을 해야지요.” “수술을 하면 낫나요?” “아뇨. 수술을 해도 안 낫습니다.” 옆에서 이 말을 듣다가 벙 쪘습니다. ‘코를 째도 안 낫는다면서 코를 왜 짼다고! 네(의사) 코도 아니잖아!’ 돌봄터에서는 붙이기 쉬운 이름을 붙였을 텐데, 저는 코로도 입으로도 숨을 쉬기 어려운 나날을 39살까지 보냈습니다. 숨막혀 죽는다는 말을 내내 되새겼어요. 숨을 못 쉬면 1초도 버티기 힘든 서른아홉 해인데, 둘레에서는 “숨 좀 못 쉰다고 뭐가 아프다고 그래?” 하더군요. 이런 말을 외는 분은 눈코귀입을 다 막고 1시간 아닌 1분이라도 버틸 수 있을까요? 숨이 늘 가쁘고 벅찬 나날을 보냈기에 꿈을 생각할 틈이 없었습니다. 숨쉬기로도 바쁜걸요. 문득 돌아보면 이 숨을 쉬는 동안 오늘이 저한테 처음이자 마지막인 가장 아름다운 날로 여겨서 즐겁게 살자고 생각했구나 싶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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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4 두 50원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할 적에 32만 원을 벌었어요. 한 달에 220자락을 돌려서 이만큼 받는데, 더 돌리면 일삯이 늘 테지만, 굳이 더 안 돌렸어요. ㅈㅈㄷ 같은 새뜸이라면 보는이(구독자)가 많아서 더 많이 돌리고 더 많이 벌 수 있겠지만, 저는 ㅎ을 돌리느라 ‘이 집에서 저 집까지 가려면 참 멀’었지요. ㅈㅈㄷ 나름이하고 대면 너덧 곱을 더 달리고 섬돌을 오르내립니다. ㅎ을 보시는 분은 어쩐지 가난집이 많아 섬돌도 더 많이 오르내리는데, 새뜸값을 밀리거나 떼먹는 분이 많아 새뜸값을 걷으러 다니는 일조차 몇 곱으로 고단했습니다. 새벽에는 새뜸을 읽고 아침에는 글을 쓰고 낮에는 책숲(도서관)하고 책집을 다니며 혼자 책으로 배운 뒤 저녁에 글을 더 쓰느라 새뜸을 꼭 220자락만 돌렸어요. 모처럼 길에서 새뜸을 300원에 파는 날이면 마을가게에서 350원짜리 라면을 50원 외상을 걸고 사서 이틀에 나누어 끓여먹었어요. 살림돈은 다 책값으로 나가느라 사흘이나 이레쯤 아무렇지 않게 굶었어요. 출판사 일꾼으로 옮겨 일삯이 늘었어도 밥값 아닌 책값을 더 썼지요. 서울 창천동에 있던 〈원천서점〉에서 책을 장만하는데 할아버지가 끝자리를 50원으로 셈하셔요. 반가웠어요. 고맙고요. 50원은 큰돈이에요. 눈물값이에요. ㅅ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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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루, 책과 사귀다 13 푸른책



  열네 살로 접어들고서 열여덟에 이르도록 둘레 어른이 ‘청소년’이라는 이름을 쓸 적마다 꽤 거북했습니다. 웬만한 어른은 ‘우리’를 ‘사람’으로 안 보았습니다. 가르치거나 길들이거나 다그칠 ‘작은것’으로 여겼습니다. 때로는 작은것조차 아니었어요. ‘청소년 보호’란 말을 으레 읊는 어른이지만 정작 ‘아름나라·사랑나라·꿈나라’보다는 ‘종이나라(졸업장나라)·돈나라(자본주의)·힘나라(권력)’에 치우치면서 그들 자리를 지킬 뿐입니다. 허울로는 나이가 많되 참사람도 참어른도 아닌 그들을 지켜보면서 늘 스스로 “오늘을 사랑하렴. 나를 돌보렴.” 하고 속삭입니다. 이 말을 또래한테 들려주고 뒷내기한테 들려주다가 이제는 오늘날 둘레 어린이·푸름이한테 들려줍니다. 푸름이 이웃이 “우리말을 바르게 쓰는 길이 뭐예요?” 하고 물으면 으레 “푸름이 여러분을 사랑하고 오늘을 즐겁게 열고서 지으면 돼요. 이뿐이랍니다. 맞춤길이나 띄어쓰기가 아닌, 여러분 마음에 씨앗으로 심을 생각을 즐겁게 사랑으로 가꾸면, 어느새 여러분 입이랑 손에서 흘러넘치는 말은 꽃으로 피어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청소년책’을 안 읽습니다. 저는 ‘푸른책’만 읽습니다. 삶을 푸르게 숲으로 사랑하는 줄거리이기에 푸른책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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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2 믿음길



  예전에는 철(학기)이 바뀌면 길잡이(교사)가 아이들더러 손을 들라 하면서 물었어요. “집에 텔레비전 있는 사람?”이나 “고기를 한 달에 몇 날 먹나?”나 “어머니만 있는 사람? 아버지만 있는 사람? 둘 다 없는 사람?”도 묻는데 “아버지하고 얼마나 얘기하나? 하루 한 시간? 한 주 한 시간? 한 달 한 시간? 한 해 한 시간?”도 묻고, 그야말로 아이들 마음에 멍울이 질 만한 얘기를 서슴지 않고 물으며 손을 들어서 셌으니 더없이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막짓(학교폭력) 가운데 하나라고 할 만합니다. “무슨 종교를 믿나?” 하고도 묻는데, 우리 집은 아무런 절(예배당)을 안 다니기에 ‘무교’라 했다가 ‘유교’라고도 장난을 하고, 어느 때부터인가는 “나는 나를 믿습니다”라고 하면서 꿀밤을 먹었어요. 이제 와 돌아보면 ‘책을 얼마나 읽느냐?’라든지 ‘어떤 나무나 꽃을 좋아하느냐?’라든지 ‘어떤 새랑 노느냐?’라든지 ‘어떤 바람이나 구름을 아느냐?’ 하고 물은 적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무엇을 묻고 가르치며 길들일 셈속일까요? 모든 거룩책(경전)은 어른이 씁니다만, 어린이더러 ‘믿음책’을 쓰라고 한다면 덧없는 틀이나 굴레란 하나도 없이 오직 한 마디 ‘사랑’만 적지 않을까요? 스스로 믿고 가꾸려고 읽는 책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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