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27 교과서



  저는 ‘교과서’라는 낱말을 안 쓰고 ‘배움책’이라 합니다. 글에는 ‘배움책(교과서)’처럼 쓰지요. 일본사람마냥 굳이 ‘교과서’란 이름을 쓸 까닭이 없어요.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터를 헤아리면서 우리 스스로 즐겁고 아름답게 나눌 말씨를 찾아서 새롭게 짓고 스스럼없이 쓰면 됩니다. 어린배움터에 처음 들어갈 여덟 살 어린이한테 ‘교과서’란 이름은 얼마나 낯설까요? ‘교사·학교·교장’이란 낱말을 얼마나 알아차릴까요? “배우려고 배움터에 들어가서 배움책을 곁에 둔단다.”처럼 수수하고 쉽고 부드러이 들려줄 노릇이지 싶습니다. 제가 여덟 살이던 1982년에 어린배움터에 들어가서 열아홉 살에 푸른배움터를 마치기까지 받은 배움책은 어쩐지 재미없을 뿐 아니라 너무 겉훑기에다가 온통 거짓말투성이였다고 느꼈습니다. 배움책이라면서 배울 만하지 않기에 스스로 배우려고 스스로 ‘배움책 아닌 여느책’을 끝없이 찾아나섰습니다. 아무도 저한테 이렇게 안 시켰어요. 도리어 “그렇게 교과서 아닌 책을 읽으면 시험점수 떨어진다”고 나무라더군요. 저는 ‘높은 줄’에 설 뜻으로 배움책을 펴지 않습니다. 스스로 ‘열린 눈·트인 넋·맑은 길’이 되고 싶어 배움책을 내려놓고, 배움터(제도권학교)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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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26 꾸밈없이



  할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꾸미고 자시고 할 틈이 어디 있나요? ‘꾸밈없이 쓰는 글’이 아닙니다. 꾸밀 일은 처음부터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스스로 살아낸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기에도 온하루를 다 쓸 판이거든요.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며 사랑은 우리 숨결을 글로 여미기만 해도 글빛이 주렁주렁 맺히기 마련입니다. 글쓰기는 집살림을 하는 하루랑 같아요. 밥을 꾸미면서 하지 않아요. 빨래를 꾸미면서 하지 않아요. 비질이나 걸레질이나 설거지를 꾸미면서 하지 않아요. 젖먹이를 돌보며 자장노래를 부르는 자리에서 꾸밀 일이 없어요. 아이 손을 맞잡고 같이 놀 적에 뭘 꾸미나요? 우리 스스로 살아가는 오늘은 ‘꾸밈’이 아닌 ‘살림’입니다. 누구나 다 다르게 ‘살림’으로 보내는 나날입니다. 다만 오늘날 이 터전에서는 억지웃음(감정노동)을 짓는 분이 너무 많다 보니 그만 스스로 마음빛을 잊거나 잃고 말아서, 붓을 손에 쥘 적에 그만 ‘꾸미’더군요. 아프면 앓으면 됩니다. 슬프면 울면 됩니다. 기쁘면 웃으면 됩니다. 즐거우면 노래하면 됩니다. 모두 삶이에요. 눈물도 살림이고, 웃음도 사랑입니다. ‘꾸밈없이 쓰는 글’이 아닌 ‘우리 삶을 스스로 쓰는 글’입니다. ‘꾸밈’이란 낱말을 생각하지 말고 ‘살림사랑’을 생각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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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25 펴냄빛



  읽고 새기거나 누릴 이야기를 담은 종이꾸러미를 ‘책’이라 하고 ‘冊’ 같은 한자가 있는데, 우리가 처음부터 “우리 글씨”를 썼다면 한자가 아닌 우리 글월로 이야기를 펴기 마련입니다. 예전부터 쓰던 말 그대로 오늘도 쓸 수 있지만, 오늘 우리가 새책을 써내고 여미어 내놓는다면, 지난살림에서 새롭게 익혀서 나누고 싶다는 사랑이 흐른다고 여겨요. 오랜책만 읽지 않고 새책을 써서 읽듯, ‘책’을 놓고도 얼마든지 새말을 지을 만해요. 우리는 총칼나라(강점기) 일본한테 시달리던 무렵 ‘박다←인쇄’하고 ‘펴내(펴내다)←출판’처럼 우리 나름대로 새말을 지었습니다. 이무렵에 ‘지은이←필자(작가)’처럼 새말을 짓기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필자·작가’로도 넉넉했다면 이제는 ‘글님·그림님·노래님’처럼 가를 만하고, 새말을 더 지어야겠지요. 그렇다면 ‘책’은 어떻게 할까요? 저는 곧잘 “우리말로 본다면, ‘책’은 ‘숲’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담고, 품고, 여미고, 이야기하고, 나누고, 푸르게 삶과 넋을 밝히는 꾸러미이기에 ‘숲’이라는 낱말로도 나타낼 만하지 싶어요.” 하고 말해요. 책을 펴내는 곳이니 ‘펴냄터←출판사’요 ‘펴냄빛(펴낸이)←출판사 대표’ 같은 이름도 슬그머니 지어서 쓰곤 합니다.


ㅅㄴㄹ


2016년에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처럼 

조금 길게 이름을 붙여서

'스토리닷'이라는 작은 펴냄터에서

이야기꾸러미를 선보였어요.


이윽고 《우리말 글쓰기 사전》처럼

이름을 조금 줄였다가


《책숲마실》처럼

이름을 더 줄였고


2021년에는

《곁책》처럼 그 짧은 이름도

더 줄였어요.


이다음에는 외마디로 붙이는

이름으로도 

책을 선보이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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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23 말씨앗



  우리가 마시는 싱그러운 바람은 사람 손길이 안 닿은 숲에서 비롯합니다. 풀꽃나무가 스스로 씨앗을 틔우고 잎을 내놓으면서 피고 지고 자라고 스러지는 숲이기에 온누리를 푸르게 가꾸는 밑바탕이 됩니다. 나쁜벌레를 잡아야 하지 않습니다. 풀죽임물을 뿌리거나 비닐을 쳐야 하지 않습니다. 가지치기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숲은 늘 스스로 아름드리가 되어요. 이때 사람은 무엇을 하면 될까요? 숲을 그저 누리면 되어요. 억지로 손대려 하지 말고 꾸밈없이 맞이하고 스스럼없이 바라보면서 홀가분하게 노래하면 넉넉합니다. 돌림앓이가 퍼지는 동안 나라에서는 자꾸 두려운 씨앗을 심으려 합니다. 오늘은 몇 사람이 걸리고 죽었다고 밝히지요. 그런데 고뿔(감기)에 날마다 몇 사람이 걸려서 죽었는가를 여태 밝힌 적이 없고, 미리놓기(예방주사)를 맞고 다치거나 죽은 사람도 안 밝혀요. 넘어지거나 앓거나 아프기에 죽지 않아요. 며칠 몇 달 몇 해이든 옴팡 앓고서 말끔히 턴 다음 튼튼히 일어나면 됩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우리 어버이는 “얘들아, 아프거나 돌림앓이에 걸렸으면 푹 쉬고 나아서 더 튼튼하게 놀면 돼” 하는 마음으로 지낼 노릇이에요. 오늘날 돌림앓이판은 ‘못 쉬고 못 노는 어른’들한테 쉴틈을 주는 셈 아닐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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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22 손빨래



  셈틀이나 손전화를 켜고서 글을 읽더라도 손을 씁니다. 종이책 아닌 누리책을 읽더라도 손으로 슥슥 넘깁니다. 무엇을 읽든 눈뿐 아니라 손을 쓰고, 몸이며 팔다리를 나란히 씁니다. 스무 살을 지나면서 홀로살기(자취)를 할 적부터 손빨래입니다. 빨래틀을 건사하지 않았습니다. 스물여섯 달을 지낸 강원 양구 멧골짝 쌈자리(군대)에서는 겨울에 얼음을 깨고서 손빨래였어요. 새뜸나름이로 일할 적에 날마다 땀에 젖은 옷을 빨래하는데 겨울나기란 만만찮아요. 한겨울에도 찬물로 빨래하거든요. 2003년에 이르러 비로소 더운물로 빨래할 수 있는 살림집을 얻었으나, 꼭 한 해뿐이고, 2008년에 큰아이를 낳고부터 비로소 더운물빨래를 했어요. 요새도 빨래틀(세탁기)은 잘 안 써요. 집에 두긴 했지만 으레 빨래그릇에 담가서 손으로 복복 비비고 헹구고 짭니다. 손으로 옷가지를 주무르면 ‘이 옷을 입으며 어떻게 지냈나’ 하는 이야기가 손을 거쳐 온몸으로 퍼져요. 종이책도 이와 같으니, 종이책을 쥘 적마다 ‘이 책을 짓고 엮고 다룬 이웃 살림이 손을 거쳐 온마음으로 번집’니다. 손을 뻗어 바람을 만지면 바람에 묻어나는 온누리 이야기를, 손을 들어 별빛을 쓰다듬으면 별이 우리 둘레를 돌며 들려주는 별나라 노래를 새록새록 읽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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