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32 길들다



  까마득히 어리던 모습을 떠올립니다. 까마득히 어리던 그때에는 길을 가리지 않습니다. 언니나 어버이가 “거긴 길이 아니야!” 해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씩 웃으면서 거침없이 갑니다. 온누리 모든 아기는 언니나 어버이 말을 한귀로 흘립니다. “거긴 길이 아니거든?” 하고 따져도 방글방글 웃으면서 통통통 달려갑니다. 마음에 티가 없을 적에는 길을 가리지 않고, 길을 내지 않습니다. 길인 곳이나 길이 아닌 곳이 따로 없거든요. 가고픈 대로 가고, 하고픈 대로 하며, 사랑하고픈 대로 사랑합니다. 놀고픈 대로 놀며, 자라고픈 대로 자라지요. 탁 트인 마음이기에 아기는 말을 곧 익히고 손발을 이내 홀가분히 놀립니다. 이러다가 ‘길이 드는’ 때로 접어들면 스스로 새롭게 생각하거나 움직이지 않아요. 누가 시키는 대로 하고, 누가 말하는 대로 따릅니다. 남들이 많이 읽은 책을 읽어도 안 나쁩니다. 그러나 스스로 고른 책이 ‘어쩌다 남들도 많이 읽는 책’일 적에 스스로 즐겁습니다. 처음부터 ‘길든 눈빛’이 되어 남들 눈치를 따지면, 우리 삶을 스스로 못 가꿔요. 쳇바퀴에 길들어요. 어디나 길일 적에는 어디나 가볍고 포근합니다. 무엇이나 길일 때에는 무엇을 읽어도 마음을 살찌우는 빛이 되고 노래가 되며 해님처럼 웃습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31 쉽게



  어린배움터에서 따돌림이랑 괴롭힘을 받은 이웃나라 아이는 풀꽃나무하고 마음으로 이야기할 줄 아는데, 이를 얼간이 같다고 여기는 사람(아이뿐 아니라 어른)이 많았다더군요. 아이는 마침종이(졸업장)를 주는 곳을 씩씩하게 떠났고, 숲집에서 풀꽃나무랑 동무하며 주고받은 말을 《15살 자연주의자의 일기》란 책으로 선보여요. 그러나 옮김말이 참 갑갑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기에, 스스로 어린이 눈이 된다면, 쉽게 말하기가 가장 쉬운데, 그만 어른 눈으로만 보니까 쉽게 말하기가 가장 어려운 길이 되더군요. 쉽고 수수하게 말하는 사람은 사랑으로 가려는 마음입니다. 안 쉽고 안 수수하게 말하는 사람은 ‘안 사랑’으로 가려는 뜻입니다. 사랑으로 가려고 하니 감추거나 속이지 않아요. ‘안 사랑’으로 가려고 하니 감추거나 속여요. 쉽게 말하기가 어렵다고 한다면, 우리 스스로 감추거나 속이려는 뜻이 있구나 싶어요. 억누르거나 옥죄는 이 삶터에서 길들거나 주눅든 나머지 우리 스스로 속내를 밝히는 기쁜 길을 미처 못 가는데요, 창피하지 않아요. 띄어쓰기나 맞춤길을 다 틀려도 좋고, 저처럼 말을 더듬거나 혀짤배기여도 좋아요. 쉽고 수수한 말씨를 즐겁게 써요. 이렇게 하면 온나라가 아름답고 온누리가 사랑스럽습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30 바꾸지 말고 해보기



  얼핏 본다면 제가 하는 일은 “바깥말을 우리말로 바꾸기”로 여길 만합니다. 곰곰이 본다면 제가 하는 길은 “무엇이든 우리말로 그리기”입니다. 저는 “어떤 바깥말도 우리말로 바꾸지 않”습니다. 저는 “어떤 삶·살림이든 우리말로 나타내거나 그려 보려고 합”니다. “우리말‘로만’ 바꾸려는 일”이 아니라 “우리말‘로도’ 나타내거나 그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길을 찾아나섭니다. 한자도 영어도 없던 지난날을 헤아리면서 낱말을 엮습니다. 집밥옷이란 살림살이를 누구나 손수 지으면서 사랑을 나누던 지난날 어떻게 생각을 짓고 말을 지으며 하루를 지었을까 하고 그리면서 낱말을 지어요. 제 다짐말은 “바꾸지 말고 해보기”예요. “저 사람이 잘못 쓰는 말을 바꾸기”를 아예 안 합니다. “저 사람은 저때에 저런 말을 쓰는구나. 그러면 나는 저때에 이렇게 써 봐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저 사람이 쓰는 말은 저 사람이 스스로 생각해야 저 사람이 바꿉니다. 저는 제가 쓰는 말을 여러모로 생각해서 하나씩 짓고, 이렇게 말짓기라는 길을 아이들한테 들려줍니다. “자, 네 생각은 이렇게 나타낼 수 있어” 하고, “보렴, 네 마음은 이처럼 그려낼 만해” 하고 속삭여요. 어른들 틀이 아닌 아이들 길을 열도록 틈을 마련한달까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29 가리지 않는다



  제가 가리는 책은 딱히 없습니다. 재미없거나 따분하다 싶은 책조차 읽습니다. 안 좋아하거나 안 즐기는 책이란 없습니다. 이 버릇은 푸름이(청소년)로 살던 열일곱 살부터 들였어요. 제가 안 좋아해도 배움수렁(입시지옥)에서는 외워야 하거든요. 푸른배움터를 마치고 말옮김이(통역사) 길을 배우던 열아홉 살에도 모든 책이며 글을 읽어야 했어요. 바깥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라면, 모든 삶·살림·사람을 알거나 헤아려야 하거든요. 저한테 믿음(종교)이 없어도 믿음책(경전)을 읽어서 믿음이(종교인) 생각을 알아야 합니다. 말옮김이를 배우다 그만두고서 말꽃짓기(사전집필)로 접어든 때가 스무 살인데, 낱말책을 엮으려고 할 적에도 “우리가 쓰는 말은 모든 곳에 걸쳐 다 다른 삶·살림·사람을 나타내는 터”라 어느 책이건 안 가리고 읽을 노릇입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글님이 없이 다 읽지요. 모든 갈래를 아울러야 하고, 그 갈래에서 일하는 사람 못지않게, 때로는 더 깊이 파면서 속내나 뒷모습까지 읽어야 비로소 낱말풀이를 하고 보기글을 붙일 수 있어요. 이런 버릇으로 살며 아이를 낳아 돌보자니 홀가분하더군요. 아이는 모든 놀이를 바라고, 모든 사랑을 바라보거든요. 다 만지고 듣고 하고 누리고 싶은 아이는 길잡이입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28 흰밥 누런밥



  우리 삶을 책으로 갈무리해서 나누기에 책을 펴면 우리가 미처 겪거나 보거나 알지 못했던 일을 마주하면서 배웁니다. 그러나 책에 적힌 삶은 한 줌조차 안 됩니다. 살아낸 이야기를 책으로 풀어내는 분이 꽤 늘었으나 모든 삶이 종이책으로 태어나지 않고, 삶을 책으로 풀어내어도 온자취를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다른 책(자료)을 바탕으로 자취(역사)를 살피기 일쑤인데, “글로 안 적힌 자취”가 허벌납니다. 거의 모두라 할 삶은 글(책·자료)로 안 남습니다. 그러면 어디에 남을까요? 바로 몸뚱이에, 마음에, 생각에, 말에 남지요. 다른 글(자료·기록)을 바탕으로 새글(새책)을 쓴대서 나쁘지 않습니다만, 다른 글을 넘어 이웃 살림·삶·자취·눈물웃음·노래·일놀이에다가 숲을 두루 헤아릴 노릇입니다. 이렇게 헤아리지 못하기에 ‘흰밥·누런밥’ 같은 말을 모르지요. ‘백미·현미’라 해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싸움판(군대)에서는 순이(여성)만 노리개로 삼지 않습니다. 돈이 있으면 순이를 노리개로 사지만, 돈이 없으면 돌이(남성)를 노리개로 삼아요. 그나마 “순이 노리개(이성 성폭력)”는 조금 불거집니다만 “돌이 노리개(동성 성폭력)”는 거의 못 불거져요. 글보다 삶을 읽고 밝혀야 삶을 슬기로우며 사랑스레 추스릅니다. ㅅㄴㄹ


.

.


어떤 글꾼, 아니 어떤 "지식 권력자"가

"남성 위안부는 없다" 하고 글을 쓰기에

어쩜 이렇게 삶과 살림과 자취도 모르며

글을 함부로 쓰는가 하고 놀랐다.


그러나 삶과 살림과 자취도 모르기에

글을 함부로 쓰겠지?


그 "지식 권력자"는 우리나라를

"안티조선인 사람"과 "안티조선이 아닌 사람"으로

갈라서 보고

이 틀에 스스로 갇히면서 "지식 권력"을 펴더라.


스스로 "살림꾼"이라면 틀을 가르지 않을 텐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