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41 숨쉬듯이



  저더러 어쩜 그렇게 글을 술술 쉽게 쓰느냐고 묻는 이웃님한테 “누구나 숨쉬듯이 말을 하고 글을 쓰면 술술 나와요. 숨쉬기 어려우신가요? 저처럼 코앓이를 하느라 숨막혀서 괴로우신가요? 숨을 못 쉬겠다면 글을 쓰기도 어렵지만, 다들 숨을 쉰다는 생각조차 안 하는 채 숨을 잘 쉬고 살잖아요? 숨쉬듯이 쓰면 돼요.” 하고 들려줍니다. 책읽기도 글쓰기하고 같아요. 우리는 숨쉬듯이 읽으면 넉넉합니다. 매캐한 곳에서는 숨쉬기 고달프겠지요? 매캐한 책은 우리가 스스로 멀리할 노릇입니다. 또한 매캐한 곳에 풀꽃나무가 자라서 숲으로 우거져야 깨끗하게 피어날 테니, 매캐한 글을 쓰거나 책을 내는 이웃이 숲처럼 푸른넋으로 거듭나도록 살살 달래고 도와야지 싶어요.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옛말처럼 말예요. 숲 한복판으로 들어서면 푸른바람이 상큼하지요? 이처럼 우리는 숲책을 곁에 둘 노릇입니다. ‘글감만 숲(생태환경)을 다룬 책’이 아닌 ‘이야기·줄거리가 숲으로 우거지는 책’을 곁에 두면 돼요. 숲바람을 마시듯이 써요. 숲바람을 온몸으로 담아 기운이 샘솟도록 북돋우듯 읽어요. 숲바람이 될 글을 쓰고 책을 엮어요. 숲바람이 불 적에 푸른별(지구)이 아름다울 테니, 우리 이야기가 늘 숲으로 가도록 하루를 짓기로 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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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40 골목책방과 영천시장



  영천시장 끝자락에 〈골목책방〉이란 헌책집이 있었어요. 이곳 책집지기님은 1970년부터 헌책집을 하셨는데 올해 2021년 겨울에 돌아가셨어요. 여든한 살로 숨을 거두기까지 쉰두 해를 하루도 안 쉬고 책집지기로 일하셨지요. 저는 2005년이 저물 즈음까지 서대문구하고 큰길 하나로 갈리는, 건너쪽 종로구 교동(경교장 둘레)에서 살았는데, 2000년에 삯집을 알아보러 교동하고 냉천동·현저동·옥천동·사직동을 몇 달 동안 뻔질나게 걸어다니고 빈집(아직 계약 안 된 집)에 들어가서 낮밤에 따라 누워 보며 “두고두고 지낼, 글쓰는 사람이 살 만한 집”인가를 어림했어요. 냉천동·옥천동·사직동·현저동에 마음에 아주 드는 집이 한 곳씩 있었고, 교동에도 한 집 있어서 한참 갈팡질팡하다가 교동 적산가옥으로 마음을 굳히고 그곳에서 여러 해 살았어요. 이러다 2005년에 서울을 떠나며 〈골목책방〉도 뜸하게 찾아갈밖에 없더군요. 둘레에서 ‘독립문·영천시장’을 말하면 으레 “아, 아름다운 헌책집 〈골목책방〉이 깃든 데 말씀이시지요?” 하고 얘기했어요. 마을이름을 늘 그곳 책집이름하고 맞물려서 생각했습니다. 책집이 있기에 마을이요, 책집이 있어 마을이 빛난다고 여깁니다. 마을이 책집을 낳고, 책집은 마을을 새롭게 가꾸거든요. ㅅㄴㄹ


2004년 겨울 어느 날

영천시장(독립문) 골목책방


책집지기 할아버지가 걸어온

쉰두 해 발걸음은

온누리에 책씨앗으로

포근히 깃들었으리라 생각해요


하늘누리에서 고이 쉬시면서

이 땅을 따사로이 살펴 주시기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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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39 치마돌이



  치마를 두르고서 돌아다니면 으레 할머니나 아줌마가 뒤에서 수군거립니다. “남자가 치마를 입었네?” 수군거리는 할머니나 아줌마한테 다가가 그분들 눈높이로 몸을 숙이고 눈을 똑바로 보면서 한마디 여쭙니다. “여자가 바지를 입었네?” “바지를 두르며 살아갈 수 있는 순이”는 어느새 “치마를 벗고 바지를 꿸 수 있는 길”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가시밭길을 걸었는가를 잊은 듯합니다. 때로는 치마를 두르고 때로는 바지를 두르며 살아갈 길을 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까맣게 잊었구나 싶어요. 바지돌이 아닌 치마돌이로 살며 이 대목을 새록새록 느낍니다. 제가 “치마돌이로서 받는 눈길”은 “바지순이를 처음 걷던 이웃이 받은 눈길”보다 크면 컸지 안 작았으리라 여깁니다. 돌이도 순이처럼 스스로 바라는 때나 자리에 맞게 바지나 치마를 마음껏 입으면 됩니다. 순이라서 머리카락을 길러야 하지 않고, 돌이라서 머리카락을 짧게 쳐야 하지 않습니다. 즐겁게 지을 살림을 생각하고, 기쁘게 가꿀 하루를 그리고, 사랑으로 여밀 노래를 부르면 돼요. 남이 많이 읽기에 따라서 읽을 책이 아닙니다. 꾼(전문가)이 풀이한 대로 읽을 책도 아닙니다. 우리 삶걸음대로 마주하고 누리고 사랑하면서 한 손에 얹는 푸른노래인 책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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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루, 책과 사귀다 38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2004년에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Maria Sibylla Merian)’ 님 책 가운데 하나(Das Insektenbuch)를 추린 《곤충·책》이 우리말로 처음 나옵니다. 한 해 앞서 이녁을 다룬 《나는 꽃과 나비를 그린다》가 우리말로 나오나 쉬 판이 끊어집니다. 2011년에 이녁을 다룬 그림책 《곤충화가 마리아 메리안》이, 2021년에 《나비를 그리는 소녀》가 나오는군요. 이제서야 읽히나 싶지만, 아직 제대로 읽히기는 멀었지 싶습니다. 이이는 “꽃과 나비를 그렸다”기보다 “풀벌레와 풀꽃밭을 사랑하며 그렸다”고 해야지 싶어요. 둘레에서 “돈이 될 그림만 겉멋을 부려 그리던 무렵”에 “풀벌레하고 풀꽃나무를 사랑으로 지켜보고 그림으로 옮겨서 널리 알리려고 온품과 온돈을 바쳤다”고 보아야지 싶고요. 풀벌레하고 풀꽃이 어떤 사이인가를 읽고, 풀꽃나무하고 사람하고 숲이 어떻게 얽히는가를 차분히 밝히고 글을 함께 썼구나 싶어요. 우리가 짓는 하루를 글그림으로 옮기면서 우리가 나눌 사랑을 붓끝으로 펴며 우리가 가꿀 생각을 북돋았다고 느껴요. ‘곤충학자·화가’도 ‘여성 곤충학자·화가’도 아닌 ‘숲사람’으로서 이 푸른별이 참말로 푸른숲이 되기를 꿈꾸는 사랑을 한 땀씩 여미었다고, 오직 푸른사랑으로 스스로 숲이었다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1647∼1717) *

동판화가이자 역사가이자 지리학자이자 서지학자로 이름을 날린 ‘마테우스 메리안’이 낳은 딸. 그렇지만 ‘마테우스 메리안’ 빛살(후광)은 집안사람한테 조금도 퍼지지 못했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을 낳은 어머니는 ‘마테우스 메리안이 나중에 얻은 가시내’였고, 아버지라는 사람이 죽자 그 집안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보잘것없는 자리(신분)에 하잘것없는 살림에 아무것도 없는 몸으로 스스로 모든 삶을 일군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독일 마르크돈 500마르크짜리에 얼굴을 새기기도 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이이가 조그마한 벌레 삶을 헤아리며 그림으로 남기던 때에는, “애벌레나 구더기들이 더러운 쓰레기에서 생겨난 악마”라고 여겼다지. 마녀로 도장찍혀 죽을 수 있었고,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 오랜 삶길과 지켜보기로 빚어낸 책과 그림을 놓고 ‘거짓말’이라고 깎아내리는 터무니없는 말을 들으면서 쓴맛을 견디어내야 했다. 그러나 언제나 즐겁고 꿋꿋하며 사랑스레 온누리 벌레붙이를 사랑했고, 글하고 그림으로 벌레살이를 아로새겼다. 어마어마하다 싶은 가시밭길을 온몸으로 기꺼이 맞아들이면서 일흔 해를 살았다. (숲노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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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37 졸업장



  우리 아버지는 어린배움터(초등학교) 버금어른(교감 선생님)으로 일할 무렵부터 교육대학교 밤배움(야간학부)을 다니며 ‘열린배움터 마침종이(대학교 졸업장)’를 따냅니다. 이윽고 교육대학원까지 다니며 마침종이를 더 땁니다. 아버지는 으뜸(수석)으로 마치시던데, 여든 살에 접어든 오늘 돌아보면 마침종이는 무슨 뜻일까요? 마침종이를 얻기에 어린이를 더 헤아리거나 사랑할까요, 아니면 마침종이가 없더라도 어린이를 헤아리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키울 만할까요? 마침종이가 없이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은 ‘글님 배움자취’를 안 따집니다. 남들이 많이 보는 책이 아닌, 스스로 마음으로 헤아리는 책을 만납니다. 얼굴을 안 꾸미고, 꽃가루(화장품)를 안 바르고, 옷차림을 안 따지고, 두 다리로 걷는 사람도, 널리 알려진 책을 굳이 안 건드려요. 속살이 아름다운 책에 흐르는 사랑을 살펴서 하루를 노래합니다. 지난날 헌책집지기는 거의 다 배움끈(학력)이 없거나 얕았지만, 책사랑 하나만큼은 으뜸이었어요. 오늘날 책집지기 가운데 열린배움터(대학교)를 안 다니고 홀가분히 ‘고졸·중졸·무학’인 분은 몇 안 됩니다. ‘마침종이나라(학벌사회)’를 부드러이 녹여 아름나라·사랑나라로 가려면 삶자리부터 어떻게 가다듬으면 좋을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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