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2021.11.4.

책하루, 책과 사귀다 66 좋은책이라는



  ‘좋은책’이라는 이름이 힘듭니다. ‘좋다’고 하는 말이 나쁘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자꾸 한켠이나 외곬로 밀어대는 말씨라고 느껴요. “야, 그 좋은 것을 넌 왜 안 해?” 하고 묻는 분한테 “제 몸(체질)에는 안 맞는걸요.” 하고 말하면 “너 참 얄궂다(이상하다)?” 하는 소리를 들어요. 저는 김치도 찬국수(냉면)도 못 먹고, ‘동치미·생크림케익·요구르트·요거트’에 고춧가루·고추까지 모두 몸에서 꺼려요. 어릴 적부터 김치를 먹으면 으레 게우거나 배앓이를 했는데 “한겨레(한국인)가 왜 김치를 못 먹어? 너 한겨레 맞아?” 하는 소리를 날마다 들으며 늘 죽고팠습니다. “김치가 몸에 좋다”고들 널리 말하지만, 저 같은 몸(체질)인 사람은 어찌해야 할까요? 안 받는 김치를 먹으며 날마다 게우고 배앓이를 해도 ‘좋은밥’일까요? “좋은책은 나쁘지 않습니다”만, 1000만 사람한테 ‘좋은책’이라 해도 어느 사람은 마음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이와 달리 ‘사랑책“일 적에는 열 사람이 반기더라도 어느 누구도 아프게 안 해요. 고삭부리란 몸을 타고나면서 “좋은것은 좋지 않을 수 있다”고 느꼈고, 섣불리 “좋은책 추천”을 안 합니다. 저는 오직 “사랑책 수다”를 펴고, 저부터 사랑글을 쓰는 사랑님이 되려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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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루, 책과 사귀다 65 히틀러



  눈먼 사람이 눈먼 우두머리를 끌어올립니다. 우리가 눈뜬 사람이라면 눈먼 허수아비나 얄개가 함부로 못 나옵니다. 우리가 눈멀 뿐 아니라 눈감은 사람이기에 눈먼 허수아비나 얄개가 판칠 뿐 아니라, 이들은 우두머리·나라지기·벼슬꾼·글바치 같은 자리를 거머쥐면서 온누리를 억누릅니다. 우리가 쉽게 잊거나 놓치는 대목이 있다면, “히틀러만 손가락질한다”이지 싶어요. “히틀러가 제국주의·차별주의를 내세웠다”면, “숱한 수수한 독일사람은 바로 히틀러를 고스란히 떠받들면서 독일사람 스스로 제국주의·차별주의를 독일에 확 퍼뜨렸”어요. 히틀러 곁에서 “그대가 가는 길은 헛발질이자 틀렸습니다” 하고 외친 사람이 적었고, 또 이런 외침을 “히틀러 심부름꾼과 알랑이”가 잘라냈는데, 무엇보다 이런 히틀러를 안 쳐다보고 스스로 삶을 지으면서 사랑을 나누어야 할 숱한 수수한 독일사람이 스스로 바보가 되어 같이 뒹굴었습니다. 일꾼을 뽑을 적에는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착하며 참한’ 사람을 가려야 합니다. ‘덜 나쁜(차악·차선)’도 ‘똑같이 나쁠’ 뿐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늘 ‘일꾼’이 아닌 ‘덜 나쁜’ 사람을 뽑으려 하면서 스스로 막짓놈을 우두머리·나라지기·벼슬꾼·글바치로 세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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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루, 책과 사귀다 64 노래



  멋을 안다면 섣불리 아무 데나 파헤치지 않습니다. 멋스러운 사람이라면 즐겁게 흙을 일구고 살림을 지으며 생각을 가꿉니다. 마구 파헤쳐 놓은 땅을 바라볼 적마다 가만히 다가가서 고이 쓰다듬고는 풀씨를 몇 묻습니다. 어린나무도 몇 옮겨심습니다. 이러고서 그곳을 떠납니다. 파헤쳐진 땅에 새숨이 무럭무럭 오르기를 기다립니다. 아이들한테 “자, 우리는 미움이 아닌 사랑으로 우리 보금자리를 새롭게 그리는 눈빛으로 가자” 하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씨앗심기’이니까요. 아이도 어른도 배운 대로 살아요. 무엇이든 배운 대로 받아들여 삶을 빚어요. 저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우리 아이들은 저한테서 말과 삶을 배워요. 모든 글은 삶을 마음으로 느껴서 옮기기 마련입니다. 꾸밈글이라면 꾸미는 삶을 꾸미는 마음으로 덧입혀서 꾸미는 손으로 옮기겠지요. 살림글이라면 살림하는 사랑을 살림하는 마음으로 살림하는 손빛이 되어 옮길 테고요. 글쓰기나 글읽기도 모두 “삶을 노래하면서 즐기면 된다”고 여깁니다. 틀을 따르거나 좇을 까닭이 없어요. 스승이 가르친 대로 살아야 할까요? 스스로 새롭게 배워서 삶을 짓는 하루일 적에 비로소 아름다워요. 언제나 “오늘 나”을 그리고 읽고 씁니다. 우리가 스스로 씨앗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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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루, 책과 사귀다 63 사랑



  책을 쥘 적마다 사랑을 어떻게 그리는가 하고 들여다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나 눈빛이 없이 줄거리를 짜는 책은 더없이 따분하면서 부질없는 말잔치라고 느낍니다. 사랑은 ‘사랑’이라는 낱말을 써야 그릴 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낱말을 아예 안 쓰더라도 삶·살림으로 얼마든지 그려내지요. 아이가 누리는 소꿉이며 놀이는 사랑을 바탕으로 삼기에 즐겁습니다. 어른이 짓는 일이며 살림은 사랑을 발판으로 하기에 아름답습니다. 쌀을 씻어서 불릴 적에도 사랑어린 손길이 되려고 합니다. 밥을 짓고 차리고 설거지를 할 적에도 늘 사랑스러운 눈길이 되려고 합니다.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탈 적에도, 또 시골버스나 시외버스나 전철이나 택시를 탈 적에도 한결같이 사랑하는 마음이 되려고 합니다. 글을 쓸 적에도 사랑을 어떻게 그릴까 하고 생각합니다. 글에 ‘사랑’이라는 낱말을 아예 안 쓰더라도 삶을 가꾸고 살림을 나누는 하루를 노래하듯 담아낼 적에 저절로 사랑스레 흐르기 마련입니다. 둘로 가른다기보다 ‘사랑’을 보려고 합니다. 이래야 하거나 저래선 안 된다는 틀이 아닌 ‘사랑’으로 가려고 합니다. 아이랑 노는 어버이라면 사랑이고, 풀꽃나무를 쓰다듬는 손빛이라면 사랑입니다. 사랑은 노상 스스로 샘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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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루, 책과 사귀다 62 아이는



  아이는 스스로 어디에서나 빛(보물)을 보고서 하나하나 곁에 두며 숨결을 받아들이는구나 싶어요. “무엇을 보니?” “응, 여기 좀 봐.” “무엇이 있어?” “잘 봐. 안 보여?” “알았어. 잘 볼게.” “잘 보면 다 보여.” 글씨를 몰라도 무엇이든 보고 느끼고 배우는 아이입니다. 글씨가 적힌 종이꾸러미를 보아야만 ‘읽기’이지 않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숨결을 가만히 보면서 속빛하고 속내하고 속사랑하고 속숨을 느끼고 알아차려서 받아들인다면, 더없이 멋진 ‘읽기’이지 싶어요. 책에 적힌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이웃사람 삶을 읽을 수 있습니다만, 이웃사람을 마주하는 오늘 이곳에서 마음으로 삶을 읽으면 한결 빛나요. 책으로 옮기고 나서야 들여다보는 삶이 아닌, 책에 안 적혔어도 언제나 삶을 읽을 줄 안다면, 바람하고도 얘기하고 별님하고도 속삭이고 풀벌레랑 새하고도 조곤조곤 수다를 할 테지요. 모든 아이는 늘 입과 손과 마음으로 《파브르 곤충기》도 쓰고 《초원의 집》도 쓰고 《반지의 제왕》도 씁니다. 어버이나 어른이라면 아이 곁에 쪼그려앉거나 함께 나무를 타거나 들판을 맨발로 뛰놀면서 함께 삶읽기·숨읽기·빛읽기·오늘읽기·사랑읽기·숲읽기를 누리면서 눈길을 확 틔울 만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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