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은 아름다울까, 하고 헤아려 본다. 책을 읽지 않더라도 스스로 삶을 아름답게 일군다면 아름다운 사람일 테지.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삶을 아름답게 일구지 않는다면 안 아름다운 사람일 테지.


  흙을 만지며 살아가더라도 아름다울 수 있지만 안 아름다울 수 있다. 아이들과 어울리며 일한다 하더라도 아름다울 수 있으나 안 아름다울 수 있다. 어떤 모습이 보이느냐는 대수롭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도 대수롭지 않다. 언제나 꼭 한 가지가 대수로우니, 바로 마음이다.


  스스로 삶을 어떤 마음으로 누리거나 일구거나 즐기는가 하는 대목을 읽을 수 있어야지 싶다. 삶을 읽고 마음을 읽을 수 있을 때에 책을 읽거나 글을 읽을 수 있으리라 느낀다. 삶을 안 읽거나 못 읽는다면, 마음을 안 읽거나 못 읽다면, 무엇을 읽거나 살핀다고 할 만할까.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며 공부만 잘 해도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시험성적 잘 나온대서 되지 않는다. 어른들은 회사나 공장에서 돈만 잘 번다고 되지 않는다. 집안일 도맡는다지만 사랑이 없이 해치우는 집안일이란 어떤 보람이나 웃음이나 이야기가 있겠는가.


  삶을 사랑하고 마음을 꿈으로 빛낼 때에 비로소 아름다움이 피어난다고 느낀다. 삶을 사랑할 때에 비로소 책을 손에 쥘 만하고, 마음을 꿈으로 빛내는 사람일 때에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면서 이야기꽃을 나눈다고 느낀다. 4346.7.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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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 책방

 


  아이들이 태어나기 앞서, 옆지기와 만나 아기를 밴 뒤, 아기가 갓 태어나고 나서, 아이들이 차츰 자라 스스로 걷는 동안, 이제 뛰고 달리면서 까르르 웃고 노는 아이들이 먼저 앞장서면서, 조그마한 헌책방 찾아다닌다. 조그마한 헌책방도 나이를 먹고, 헌책방지기도 나이를 먹으며, 나도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나이를 먹는다.


  자주 보든 오랜만에 보든 서로 알아보며 인사를 나눈다. 내가 조그마한 헌책방 책시렁이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느끼는 사이에, 헌책방지기는 우리 아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자라 몰라보게 튼튼해졌는가를 느낀다.


  나무가 나이를 먹듯이 책이 나이를 먹는다. 사람도 나이를 먹고 책방도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먹는 사람들이 책방에서 만나 ‘나이 먹는 이야기’를 나눈다. 오래지 않아 이 아이들 스스로 씩씩하게 책방마실 다니면서 ‘우리 아버지가 예전에요’라든지 ‘우리 어머니가 지난날에요’ 하는 이야기를 할머니 헌책방지기나 할아버지 헌책방지기하고 도란도란 주고받으리라 생각한다. 4346.7.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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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들 책들

 


  대학교 교수님들이 대학교 도서관이라든지 이런 곳 저런 곳에 당신 책을 기증하곤 한다. 그러면 대학교 도서관이나 이런 곳이나 저런 곳에서 이녁 책을 ‘아무개 교수 장서’라는 이름을 달고 몇 해쯤 건사해 두곤 하지만, 몇 해가 지나면 조용히 내다 버리곤 한다. 이렇게 버린 책을 헌책방에서 곧 알아채고는 알뜰히 건사해서 다른 책손이 사들일 수 있도록 다리를 놓지.


  대학교 도서관이나 이런 곳이나 저런 곳에 책을 기증하는 교수님들이 책을 모으는 동안 ‘헌책방에서 적지 않은 책을 찾아내어 모았’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가 도서관에서 책을 건사해서 학문과 학술을 빛내는 밑거름 되도록 이끌지 못하니, 교수님들로서는 헌책방 나들이를 꾸준히 하면서 당신이 바라는 자료를 살피기 마련이다.


  나는 헌책방을 다니면서 ‘아무개 교수’가 ‘아무개 대학교 도서관에 기증한 책들’을 자주 만난다. 그렇다고 이 책들을 내가 몽땅 사들이지는 못한다. 나한테 쓸모있는 책만 고르고 싶기도 하지만, 이 책들을 어느 도서관에 기증한 마음을 헤아리며 가슴이 아파 선뜻 어느 책도 못 고르기 일쑤이다. 그래도, 아무개 교수님 책들이 이래저래 대학교 도서관 기증도서였다가 버려진 발자국 아로새기려는 뜻으로 몇 권쯤 산다. 다른 책들은 부디 아름다운 책손 만나 오래오래 사랑스레 읽히기를 빈다.


  나이 예순이나 일흔쯤 된 교수님들 뵐 때마다 늘 생각한다. 부디, 교수님들 책 대학교에 기증할 생각 마시고, 예쁜 제자한테 통째로 주거나, 오래도록 단골로 다닌 헌책방에 통째로 넘겨 주십사 하고 바란다. 헌책방에 당신 책 통째로 넘기면, 이 책들 통째로 물려받을 좋은 책손 곧 나오기 마련이다. 한국에서는 도서관이 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기에, 헌책방에서 책을 건사해 준다. 4346.7.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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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지킨다

 


  어느 도서관 ‘보존서고’에 있었다는 책이 버려진다. 그렇지만, 헌책방이 있어 이 책 얌전히 새롭게 꽂힌다. ‘보존서고’에 있었다는 자국 남기며, 누군가 어여삐 건사해 주기를 바라면서 조용히 새 책손을 기다린다.


  책은 도서관에서 지키는가? 책은 헌책방이 지켜 주는가? 책은 사람이 읽는가? 책은 마음에 모시어 곱게 보살피는가? 4346.7.2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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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새롭게 읽는 책

 


  이오덕 님이 엮어서 내놓은 《일하는 아이들》(청년사)을 헌책방에서 새삼스레 본다. 1978년에 처음 나온 이 책은 이 나라 교육과 문학을 뒤집는 노릇을 했다고들 말한다. 그만큼 이 나라 교육과 문학은 아이들을 ‘동심천사주의’ 그물에 옭아매어 입시문제로 들볶느라, 삶도 꿈도 놀이도 빛도 사랑도 가르치거나 보여주지 않았다는 뜻이다.


  멧골마을 아이들 삶이 드러나는 글을 모아서 엮은 《일하는 아이들》이라는 책을 읽으면, 아주 마땅히, 책이름 그대로 “일하는 아이들”이 나온다. 그런데, 일하는 아이들만 나오지 않는다. 일하는 아이들이란 “놀이하는 아이들”이다. 아이들 놀이가 수없이 나온다. 또 “사랑하는 아이들”이다. 동무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붙이를 사랑한다. 꽃을 사랑하고 나무를 사랑하며 숲을 사랑한다.


  그러면 왜 책이름이 “일하는 아이들”이었을까? 스스로 삶을 밝히면서 가꾸는 일이 무엇이요 사랑이 어떠한가를 깨닫지 못할 적에는 도시문명사회에서 돈벌이로만 치닫는 생체기계인 노예가 되고 만다. 그러니,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삶다운 삶을 찾는 첫길로 “일다운 일”을 찾는 “일하는 아이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서울 신촌에 있는 헌책방에서 《일하는 아이들》 예전 판을 본다. 이 책은 무척 많이 팔렸다고 하는데, 나중에 출판사에서 판매부수를 속이고 인세지급을 안 하며 책을 새로 찍고도 ‘중판’이라 적거나 ‘판수 줄이기’ 장난을 쳤다고 한다. 이를테면, 8쇄를 찍었으면서 간기에 ‘7쇄’라 찍어서 출고를 하는 모양새로. 이런 이야기를 이오덕 님 둘레에서 다른 사람들이 알려주어서(권정생 님도 여러 차례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오덕 님은 청년사 대표한테 편지를 띄웠고, 청년사 대표가 흐리멍덩하게 말을 흐리자, 안 되겠구나 싶어 내용증명을 보내 절판시키라 했다. 그러나 곧바로 절판시키지 않고 한두 해쯤 몰래 더 찍어서 팔았다고 한다.


  엊그제 헌책방에서 만난 《일하는 아이들》은 1쇄를 찍은 뒤 이레만에 2쇄를 찍은 판이다. 3쇄는 얼마만에 찍었을까. 모두 몇 권이나 찍었을까.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어떤 마음밥 얻었을까. 2002년에 새옷 입고 다시 나온 책도 있는데, 헌책방에서 예전 판으로 만나 다시 읽으면 새로운 느낌을 얻는다. 1970년대 끝무렵 아직 군사독재정권 서슬이 시퍼렇던 그때, 이런 책 내놓았다고 문교부와 지방교육청 장학사한테 들볶이고 시달리던 이오덕 님 삶을 돌아본다. 총칼로 사람들 억누르던 군사독재정권이 이 땅 아이들을 어떻게 입시노예 도시노예로 길들이려 했던가 하는 이야기를 헤아린다. 1970년대에 어린이였던 사람은 오늘날 어떤 어른이 되어 이녁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돌볼까 궁금하다.


  오늘날 어른은 “일하는 어른들”일까, 아니면 “돈버는 어른들”일까. 오늘날 아이들은 “놀이하는 아이들”이라 할 수 있을까. 오늘날 아이들 가운데 “꿈꾸는 아이들”이나 “사랑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있을까. 삶을 아끼고 동무를 보살피며 이웃과 어깨를 겯는 착하고 참다운 “일하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삶을 지을까. 4346.7.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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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07-16 17:03   좋아요 0 | URL
저도 시간나면 헌책방 찾아가야겠어요.^^
나중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한번 더 가 보고요.ㅎㅎ

숲노래 2013-07-16 17:41   좋아요 0 | URL
대구에 있는 <대륙서점>도, 또 부산에 있는 보수동 헌책방골목도,
또 알라딘책방도 모두 즐겁게
책마실 하시면서
두 손에 고운 책빛 담아 보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