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누하동 헌책방 대오서점

 


  나는 헌책방 한 곳을 찾으려고 서너 시간은 가볍게 걸어다니면서 살았다. 어느 날에는 예닐곱 시간을 터덜터덜 걸어다니기도 했다. 언제나 온갖 골목과 동네를 두 다리에 기대어 걸어다니면서 가게를 살피면서 지냈다. 거닐지 않은 골목이 없다 할 만큼 온갖 골목을 다녔으니, 헌책방을 찾으러 골목마실을 하면서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찍었으면 얼마나 어마어마한 자료가 모였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내가 ‘헌책방’이라는 데를 찾아다니면서 오직 ‘헌책방’만 사진으로 찍던 무렵에, 김기찬 님이 한창 바지런히 골목 사진을 찍으셨다. 김기찬 님이 골목 사진을 살가이 잘 찍으신다고 여겨, 나까지 굳이 골목을 사진으로 찍을 일은 없으리라 여겼다. 그도 그럴 까닭이, 나는 내 사진감인 ‘헌책방’을 사진으로 찍느라 들이는 필름값으로도 살림이 쪼들려 허덕였다.


  헌책방 한 곳을 찾으려고 온갖 골목을 걷다 보면, 그야말로 아주 아름답고 멋스러운 모습을 자주 본다. 그렇지만, 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내지 않았다. 누군가 ‘골목’을 사진으로 찍으려는 이가 이 골목을 걸어가면서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입이 쩍 벌어지면서 사진을 찍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헌책방에서 필름 아까운 줄 잊고 수없이 단추를 찰칵찰칵 눌러야 하니, 제아무리 멋스럽고 아름다운 골목을 만나더라도 필름 한 장 쓰지 않았다.


  이렇게 날이면 날마다 몇 시간씩 골목을 쏘다니면서 ‘아직 사람들한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헌책방’을 찾아 다리품을 팔던 어느 날, 서울 종로구 누하동 한쪽에서 〈대오서점〉을 만났다.


  헌책방 〈대오서점〉은 내가 만나기 앞서도 오랫동안 헌책방으로 있었다. 이곳을 처음 알아보고 나서 둘레에 여쭈니, 독립문 〈골목책방〉 아저씨도 알고, 홍제동 〈대양서점〉 아저씨도 알았다. 그러나, 그뿐이다. 〈대오서점〉은 서울 시내 소매 헌책방에 책을 대주는 도매 헌책방 노릇을 했다는데, 책을 캐내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할머니 혼자 집살림을 도맡느라 책을 캐낼 수 없어, 소매 헌책방 발길이 뚝 끊어지고, 책을 새로 장만하는 길이 없다 보니, 소매 손님조차 거의 찾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대오서점〉 할머니는 이녁 곁님과 함께 오랫동안 가꾸던 헌책방을 없앨 수 없고, 책시렁도 치울 수 없다고 했다. 새로 갖추어 꽂는 책은 없어도, 이 모습 그대로 건사한다고 했다.


  조그마한 기와집에 깃든 헌책방 〈대오서점〉은 한창 때에는 이웃 ‘옷수선’ 집도 책방이었다고 했다. 책이 그득그득 넘쳐서 어디에도 다 책이라, 그 옛날, 이를테면 1990년대 첫무렵이나 1980년대에만 왔어도 ‘엄청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리라 하고 말씀하셨다. 척 보기에도 그렇겠다고 느꼈다. 그런데, 나는 예전 엄청난 모습이 아니어도 좋다. 할아버지가 가시고 난 자리에서도 이렇게 정갈하게 기와집을 보듬고 큰할머님(내가 대오서점을 처음 찾아간 2002년에 아흔여섯이던 큰할머님)을 돌보던 ‘작은’할머님은 빙글빙글 웃음 띤 얼굴로 책손을 맞이해 주었다. ‘큰’할머님은 조그마한 기와집에서 볕이 가장 잘 드는 방에 앉아서 창문을 살짝 열고,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책손’이 이녁 며느리와 주고받는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으셨다. 이때, 한 가지 깨달았다. ‘작은’할머님이 헌책방 간판을 내리지 않고, 그저 햇볕에 바래기만 하는 책을 치우지 않은 까닭을.


  나는 이곳 〈대오서점〉 이야기를 2003년에 어느 누리신문에 기사로 올렸다. 어느 누리신문에 기사로 올리고 난 뒤, 이곳으로 사진을 찍으러 찾아오는 사람이 무척 많이 생겼다고 한다. 내가 쓴 글 때문에 일본에서까지 이곳을 취재하러 왔다. 얼마 앞서는 〈대오서점〉을 ‘서울 서촌’에서 몹시 손꼽히는 명소로 다루어 준다고 한다.


  그래, 참 고마운 노릇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저런 뭔가를 이곳 〈대오서점〉에 하는 일이 다 좋은데, 2004년이었던가, 서울시에서 무슨무슨 공사를 한다면서, ‘책방을 하는 이곳’ 마당과 문간 모두를 파헤친 채 두어 달 즈음 엉터리로 팽개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일을 잊지 못한다. 할매 두 분이 계신 집인데, 집 안팎을 드나들기 어렵도록 땅바닥을 파헤치고는 어지러이 흙투성이를 만들고, 책시렁에 곱게 꽂힌 책들에 흙을 묻힌 그때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대오서점〉 할매가 마당에서 김치를 담그고 나물을 다듬으며 고추를 말리던 모습을 아련하게 되새긴다. 이곳에 책손이 없을 적에는 두 할매 속옷을 거리낌없이 척척 마당에 너셨지만, 이제는 속옷 빨래를 마당에 못 너시겠지. 4347.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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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간판 옷집

 


  헌책방을 꾸리는 분 가운데 간판을 굳이 올리지 않는 분이 있다. 예전 가게 간판을 그대로 두는 분이 있다. 이와 달리, 헌책방 간판을 그대로 둔 채 다른 가게를 꾸리는 분은 드물다.


  어떤 마음일까 하고 가만히 헤아려 본다. 헌책방 간판을 내리지 않은 채 다른 가게를 꾸리는 분은 어떤 넋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예전에 이곳에 헌책방이 있었다는 자국을 치우지 않은 모습이 무척 반갑다. 문화부도, 시청이나 군청도, 신문사나 방송사도, 출판사나 작가나 시인도, 헌책방을 살뜰히 아끼는 법이 없고, 알뜰히 사랑한 일이 매우 드물다. 헌책방이 걸어온 길을 차근차근 돌아보거나 갈무리하는 공무원이란 없으며, 헌책방 박물관도 없다. 헌책방 간판 하나 건사하는 기관이나 박물관이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전주 홍지서림 골목 한쪽에 있는 조그마한 옷집은 ‘헌책방 간판’을 얌전히 두었다. 옷집 간판과 예전 헌책방 간판이 사이좋게 어울린다. 간판 하나로도 따사로운 빛이 흐른다. 4347.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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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4-01-06 21:50   좋아요 0 | URL
전주에 갔다오셨군요.저도 저 간판 기억납니다.한참 절판된 SF및 추리소설을 찾으로 전국을 누볐을때 저곳에서도 한 두권 구매한 기억이 새삼 떠오르네요^^
늦었지만 함께살기님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숲노래 2014-01-07 01:59   좋아요 0 | URL
카스피 님도 즐거우며 아름다운 새해 예쁘게 누리셔요~
 

전주 관광지도

 


  전국 어디에나 헌책방은 있다. 그러나 헌책방을 관광지도에 예쁘게 적어 넣는 지자체는 거의 찾아볼 길이 없다. 부산에는 보수동 헌책방골목 있으나, 이곳을 관광지도에 넣은 지 아직 열 해가 안 된다. 서울에 있는 청계천 헌책방거리는 어떠할까? 서울 관광지도를 거의 본 일이 없어 모르겠는데, 서울 관광지도에는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적어 넣었을까?


  곰곰이 헤아리면, 헌책방뿐 아니라 새책방조차 관광지도에 안 넣기 일쑤이다. 관광지도에 ‘책방’을 넣으려는 생각이 아예 없다고 할까. 아니, 관광지도를 만드는 일은 공무원이 하는데, 공무원 스스로 책방마실을 누리거나 즐기지 않기에, 관광지도에 책방을 넣으려는 생각을 못한다고 느낀다.


  ‘전국 새책방’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틀림없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전국 헌책방’을 찾아다니는 사람만큼 많으리라고는 느끼지 않는다. 전국에 있는 헌책방을 두루 찾아다니는 사람은 제법 많다. 이분들이 서로 조각조각 정보를 주고받은 열매를 얻어, 지난 2004년에 처음으로 ‘전국 헌책방 목록과 전화번호부’를 마무리짓고 세상에 두루 알렸다. 아마, 이 목록과 전화번호를 내려받아 ‘전국 헌책방’ 나들이를 즐기는 분이 꽤 될 테지. 관광지도에는 없으니, 이 목록과 전화번호를 바탕으로 이곳저곳 찾아다니리라.


  전주 관광지도에 〈홍지서림〉 한 군데는 나온다. 그렇지만, 〈홍지서림〉을 둘러싼 헌책방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홍지서럼〉이 있는 골목에 전주시는 ‘예술의 거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예술의 거리’라, 예술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있기에 예술인가. 전주시 공무원과 예술인한테 참말 차분히 여쭙고 싶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어디에 있는가? 4347.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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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책이 있다

 


  여기에 책이 있는데 어디를 보니? 코앞에 있는 책은 왜 안 쳐다보고 자꾸 저 먼 데만 바라보니? 네 앞에 있는 책부터 보렴. 네 앞에 있는 책을 살뜰히 볼 수 있을 적에 비로소 저 먼 데에 있는 책을 알아볼 수 있어. 네 발밑에서 자라는 풀을 알고 느끼며 뜯어서 먹을 줄 알 때에, 비로소 밭을 가꾸어 푸성귀를 돌볼 수 있어. 밭을 가꾸어 푸성귀를 돌볼 때에 바야흐로 숲에서 자라는 모든 풀이 얼마나 상큼하고 푸르며 싱그러운가를 알 수 있어.


  책은 여기에 있어. 책은 바로 네 가슴에, 네 마음속에, 네 눈빛에, 네 온몸에 있어. 스스로 빛이 되어야 책을 읽지. 스스로 빛이 되지 않는데 어떻게 책을 읽겠니. 스스로 빛이 되지 못하면 어떤 책을 손에 쥐더라도 사랑과 꿈을 읽어내지 못해. 스스로 빛이 될 적에는 어떤 책을 손에 쥐어도 사랑과 꿈을 깨달으면서 맞아들이지.


  훌륭하다는 책을 내 손에 쥔다 한들 읽을 수 없어. 스스로 훌륭해야 비로소 훌륭한 책을 알아보면서 받아들여. 스스로 사랑스러워야 비로소 사랑스러운 책에서 흐르는 사랑빛을 알아채고는 받아먹어.


  온 사랑 담아서 쓴 책은 온 사랑으로 읽을 때에 어깨동무를 하지. 온 사랑 담아서 쓴 책을 줄거리훑기만 하거나 대학입시교재로 삼아서 들여다보면 무엇을 얻을까. 내가 바로 책이고, 풀 한 포기가 바로 책이요, 바람 한 줄기가 바로 책이야. 책은 바로 여기에 있어. 4347.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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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으로 들어오는 책

 


  헌책방으로 온갖 책이 들어온다. 헌책방을 찾아오는 온갖 사람들이 이 온갖 책을 살펴보다가는 온갖 책을 저마다 즐겁게 장만한다. 누군가 즐겁게 읽은 책을 즐겁게 헌책방에 내놓아 주머니 가벼운 이가 즐겁게 장만하도록 할 때가 있고, 출판사나 작가가 신문·잡지·방송사 기자한테 보낸 책을 이들 매체에서 다 껴안을 수 없어 폐휴지로 내놓았다가 고물상을 거쳐 헌책방 일꾼이 거두어들일 때가 있다. 정치꾼이나 지자체 우두머리나 대학 교수한테 보낸 책을 비서가 틈틈이 폐휴지로 모아서 내놓을 적에 고물상을 거쳐 헌책방 일꾼이 거두어들이기도 한다.


  이름난 작가가 이름난 누군가한테 선물한 책이 헌책방으로 들어오는 일은 흔하다. 책을 버렸기 때문일까? 어떤 사람은 ‘책을 버렸’기에 헌책방에 이 책이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돌고 도는 책’이 되도록 내놓아서 ‘책을 나눈다’고 해야 옳은 말이리라 느낀다. ‘책을 버린다’고 할 적에는 책을 북북 찢어서 아무도 못 보게 불쑤시개로 했다는 뜻쯤 되어야지 싶다. 헌책방에 책이 들어갈 때에는 ‘다시 읽히도록’ 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선물받은 책’을 헌책방에 내놓을 적에 이녁 이름 적힌 자리를 찢거나 칼로 오리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찢거나 칼로 오린 종이는 어떻게 될까. 잘 건사할까. 이 또한 찢어서 버릴까. 돌고 도는 책이기에, 어느 책을 건사하는 사람이 숨을 거두면, 이 책은 으레 돌고 돌면서 헌책방으로도 들어오기 마련이다. 굳이 이름 적힌 자리를 찢거나 오리지 않아도 된다. 누가 누구한테 선물한 자국도 ‘책이 살아온 발자국’이다. 헌책방 나들이를 즐기는 이들은 이런 발자국을 보는 즐거움을 곧잘 누리곤 한다.


  나는 헌책방을 다니면서 그야말로 온갖 사람들 온갖 ‘이름 적기’를 보았다. 번거로운 듯이 흘려서 쓴 사람이 있고, 도장까지 찍으며 정갈하게 쓴 사람이 있다. 소설쓰는 박완서 님이 내놓은 책을 헌책방에서 만나기도 했는데, 박완서 님이 ‘나쁜 뜻으로 책을 버렸다’고 느끼지 않았다. 이녁이 집에 건사할 수 없는 책을 틈틈이 내놓아 헌책방에서 새로운 사람들한테 새롭게 읽히도록 했다고 느꼈다. 이오덕 님이 선물한 책도 헌책방에서 만났는데, 이오덕 님 제자라는 분이 ‘책을 안 읽고 버렸다’고 느끼지 않았다. 즐겁게 읽은 뒤 ‘누군지 모르지만 이 책을 아낄 젊은 넋’한테 즐겁게 물려주려는 뜻이리라 느꼈다. 요즈음은 손택수 님이 다른 시인한테서 받은 시집을 헌책방에서 퍽 자주 만나는데, 좋은 시집을 가난한 문학청년이 적은 돈으로 장만해서 읽을 수 있도록 고맙게 내놓았으리라 느낀다.


  얼마나 재미있을까. 누군가 누구한테 선물한 책이 헌책방에 들어와서, 이 책을 살살 어루만질 적에 얼마나 재미있을까. 돌고 도는 삶에 돌고 도는 책, 돌고 도는 이야기에 돌고 도는 사랑, 이 얼마나 재미있을까.


  요 며칠 사이, 김용옥 님이 홍준표 경남도지사한테 선물한 책이 헌책방에 나왔다고, 이 책을 헌책방에서 샀다는 사람이 트위터에 사진을 올렸다고 하는데, 그럴 만하지 않을까? 더 넓게 읽힐 수 있는 뜻인데, 왜 이런 일을 놓고 비아냥거리거나 손가락질하는 말이 나와야 할까? 언론사에서 보도자료를 폐휴지로 내버릴 적에 고물상 거쳐서 헌책방으로 들어오는 책이 무척 많다. 정치꾼이나 지자체 우두머리가 선물받은 뒤 비서가 알뜰히 내버려 주어 헌책방이 즐겁게 받아안는 책이 꽤 많다. 다만, 이런 책 모두 새로운 손길을 받을 만한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누군가 즐겁게 마주하며 즐겁게 읽을 사람이 있다. 스스로 즐겁게 읽으려는 책이 아니라면 다시 내려놓고 조용히 지나가면 좋으리라. 서로 예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예쁜 생각 주고받을 수 있기를 빈다.


  헌책방이 없으면, 애꿎은 책들 모두 종이쓰레기 되지 않았겠는가. 헌책방이 없다면, 누가 누구한테 선물한 책이 오래도록 돌고 돌며 새로운 이야기 길어올릴 일조차 없이 몽땅 사라지지 않았겠는가. 4346.12.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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