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꽃/우리말 동시사전
시를 씁니다 ― 49. 벌
벌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는 더는 꿀을 못 누립니다. 벌이 사라지기에 열매를 못 맺거나 씨앗을 못 남기지 않습니다. 다만, 벌이 베푸는 꿀을 아무도 못 누리고 말아요. 푸나무는 어떻게 열매를 맺고 씨앗을 남길까요? 바로 ‘나비·나방’으로 날개돋이를 하는 ‘애벌레’가 있거든요. 모든 풀과 나무에는 풀잎과 나뭇잎 한 가지만 갉는 애벌레가 깃들고, 이 애벌레는 잎갉이를 하면서 허물벗기를 잇다가, 풀이며 나무가 꽃을 피울 즈음이면 고치를 틀어서 깊이 잠듭니다. 한참 꿈길에서 몸을 뜨겁게 녹인 애벌레는 마침내 옛몸을 내려놓고서 날개와 더듬이와 눈과 발과 꼬리를 갖춘 새몸으로 거듭나요. 이러고서 푸나무 둘레를 가볍게 바람을 타며 날갯짓으로 누비고, 가만히 꽃가루받이를 하면서 꽃꿀을 처음으로 누리며 기뻐하다가 짝을 맺고는, “그동안 잎갉이를 하던 푸나무” 잎에 알을 낳아요. 나비는 벌처럼 꽃가루받이를 잔뜩 하지 않되, 풀과 나무가 알맞게 낟알이며 열매를 맺고서 씨앗을 남길 만큼 꽃가루받이를 돕습니다. 푸나무로서는 애벌레랑 나비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 애벌레는 새가 알맞게 잡아서 “지나치게 안 늘도록 다스립”니다. 오늘날 풀죽임물(농약)과 죽음거름(화학비료)과 죽음켜(비닐) 세 가지를 끔찍하도록 잔뜩 쓰느라 애벌레가 확 사라졌고, 애벌레가 확 사라지며 새도 확 줄었습니다. 이러며 벌도 덩달아 줄었습니다. 벌나비를 눈여겨보면서 애벌레를 돌아보는 마음을 잊는다면, 사람살이도 죽음벼랑으로 치닫게 마련입니다.
벌
모든 풀에는 이름이 있고
풀마다 잎을 갉는
다 다른 애벌레가
다 다른 나비로 깨어난다
모든 나무는 이름이 다르고
나무마다 다 다른 나비가 깃들고
다 다른 하늘소가 함께살며
나무꽃을 반기며 어울린다
나비와 하늘소는
풀과 나무를 가려서 살고
벌은 어느 푸나무이든
고맙게 꿀과 꽃가루 얻어
숱한 꽃이 흐드러지면
숱한 벌이 물결을 치고
철마다 다른 꽃 피어나면
철마다 다른 꿀맛 반짝인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