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의 유감천만 사랑도감 4
오자키 이라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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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6.5.

잔소리를 듣기 싫다면


《심야의 유감천만 사랑도감 4》

 오자키 이라

 박소현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19.5.30.



  제가 사내 아닌 가시내라는 몸을 입고서 태어났으면, 오늘날 온누리와 우리나라를 어떻게 바라보려나 하고 곧잘 헤아리곤 합니다. 사내는 가시내 마음을 알 길이 없습니다만, 또한 가시내도 사내 마음을 알 턱이 없습니다만, 둘은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을 열고 틔우고 만날 수 있습니다.


  서로 알 길이 없기에 이야기를 합니다. 서로 알 턱이 없기에 자꾸자꾸 말을 하고 주고받고 나누고 들려주고 들으면서 생각을 합니다. 말을 안 해도 알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은 암말을 안 해도 됩니다. 그러나 말을 안 하니까 모를 뿐 아니라, 처음부터 아예 서로 모르는 판이기에, 꼭 말을 해야 하고, 꼭 말을 많이 해야 하고, 꼭 마음을 활짝 틔워서 말꼬를 열 노릇입니다.


  《심야의 유감천만 사랑도감 4》(오자키 이라/박소현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19)을 읽으면서 두 사람이 어떤 마음인지 돌아봅니다. 거짓말이 아니라, 사내는 가시내 마음을 알 수 없으니, 가시내가 들려주는 말을 오래오래 듣고서 오래오래 곱씹을 노릇입니다. 이런 다음에 가시내한테 ‘사내로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하나하나 풀어내어 오래오래 말을 할 일입니다. 둘은 자꾸자꾸 말을 나누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 만하고, 어느새 ‘마음을 환하게 틔우는 말’이 어떻게 서로 가꾸고 살리는 씨앗(말씨)으로 깃드는지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적잖은 사내는 잔소리를 싫어하는데, ‘사랑소리’를 안 들으려는 마음이니 잔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사랑소리를 듣고, 마음소리를 나누고, 생각소리를 펴는 사내라면, 어떤 가시내도 사내한테 잔소리를 할 까닭이 없어요. 즐겁게 집안일을 함께 맡을 뿐 아니라, 먼저 나서서 집살림을 꾸리는 사내라면, 참으로 어떤 가시내도 사내한테 잔소리를 안 합니다.


  잔소리를 들을 짓을 버젓이 하고서 “왜 잔소리를 하는데?” 하고 입을 삐쭉 내미는 사내는 모두 철없습니다. “난 왜 다시 잔소리를 들을까?” 하고 곱씹고서 “어느 대목을 어떻게 추스르거나 바꾸거나 고쳐야 하나요?” 하고 물어보는 사내라면, 조금씩 잔소리를 적게 들을 만하고, 어느덧 사랑소리에 마음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이윽고 둘 사이에는 ‘노랫소리’가 피어나겠지요.


  그러니까 《심야의 유감천만 사랑도감》은 온통 ‘잔소리’입니다. 이 잔소리가 듣기 싫거나 지겹다고 여길 사내가 우리나라에 우글우글하리라 봅니다. 그래서 철없는 숱한 사내가 이 그림꽃을 되읽고 새겨읽고 거듭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린이나 푸름이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은 ‘성희롱 예방교육’을 해마다 새로 들어야 하는데, 알맹이는 거의 없이 무슨 틀(법 조항)을 언제 세웠다고 하는 줄거리만 외는 덧없는 ‘성희롱 예방교육’은 좀 내려놓고서 ‘잔소리를 들어야 할 사내’가 참말로 신나게 듣고서 삶과 살림과 사랑과 사람을 숲빛으로 돌아보도록 북돋울 책을 찬찬히 읽고서 느낌글을 쓰도록 바꿀 수 있기를 바라요.


ㅅㄴㄹ


‘저기요, 여자한테 돈을 내게 하는 것에 대한 자존심은 없는 겁니까? 그리고 그런 말을 부인한테 시키다니. 아니면, 삼촌의 농담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내가 멋대로 도와줬다는 식으로 하고 싶은 건가?’ (34쪽)


“남의 악담을 전 세계에 (트위터로) 풀어놓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핸드폰이나 일기장을 몰래 보는 것과 똑같이 취급하지 마. 누가 보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곳에 마음껏 써댄 건 당신이잖아.” (98쪽)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열심히 데이트한 결과, 그 모습이 인터넷에 쓰레기처럼 표현되고, 결국엔 적반하장 격으로 비난까지 받았는데, 그래도 난 남자에게 NO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요?” (99쪽)


“멋대로 한심한 남자가 된 거잖아요.” (162쪽)


“‘요즘엔 편리한 가전제품이 뭐든지 다 해준다’란 소리를 지껄이는 놈이 많은데, ‘난 집안일은 전혀 해본 적 없는 무식한 인간입니다’라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부끄럽지 않나?” (176쪽)


“그 말은 365일 집안일을 대신 한 다음에 말해. 쉬는 날 하루 대신한 정도 가지고 무슨 소리야? 빨래랑 청소가 간단했던 건, 평소에 늘 여자친구가 해줬기 때문이야. 네 여자친구가 네 일을 하루 대신 해주고 ‘네 일, 완전 쉽다☆’라고 하면 ‘그렇지?☆’라고 할래?” (182쪽)


#尾崎衣良 #深夜のダメ恋図鑑


빨리 둘째를 만들렴

→ 빨리 둘째를 낳으렴

28쪽


저기요, 여자한테 돈을 내게 하는 것에 대한 자존심은 없는 겁니까

→ 저기요, 순이한테 돈을 내라고 하는 말은 떳떳합니까

→ 저기요, 무슨 뱃심으로 순이한테 돈을 내라고 합니까

34쪽


남의 악담을 전 세계에 풀어놓고

→ 온누리에 대고 남을 물어뜯고

→ 온누리에 비꼼말을 풀어놓고

98쪽


결국엔 적반하장 격으로 비난까지 받았는데

→ 마침내 거꾸로 손가락질까지 받는데

→ 끝내 오히려 깎아내리기까지 하는데

99쪽


이러니까 저출산이 진행되는 거야

→ 이러니까 아이를 안 낳아

→ 이러니까 안 낳으려고 해

→ 이러니까 등돌려

→ 이러니까 손사래쳐

11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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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판 오르페우스의 창 17
이케다 리요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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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6.3.

발바닥이 없고 손바닥이 없는


《오르페우스의 창 17》

 이케다 리에코

 장혜영 옮김

 대원씨아이

 2012.9.15.



  《오르페우스의 창 17》(이케다 리에코/장혜영 옮김, 대원씨아이, 2012)은 막바지에 다다른 여러 사람들 마음하고 발걸음을 보여줍니다. 손아귀에 힘을 거머쥐었다고 여기는 쪽이 있고, 손아귀에 움켜쥐었다고 여긴 힘을 잃었다고 여기는 쪽이 있습니다. 새롭게 갈아엎겠노라 바라는 쪽이 있고, 오랜 틀을 이으려는 쪽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르페우스의 창’을 아예 모르지만 ‘아이 눈길’을 바라보는 쪽이 있는데, 이들은 이 그림꽃에 안 나옵니다. ‘꽃망울’과 ‘잎망울’을 늘 살피는 쪽이 있으며, 이들도 이 그림꽃에 안 나옵니다.


  우리는 으레 ‘러시아 혁명’처럼 이름을 붙이지만, 참으로 갈아엎은(혁명) 이들은 벼슬아치나 글바치나 힘꾼이나 돈꾼이 아닙니다. 벼슬·글·힘·돈으로 살아가던 이들은 ‘시늉’을 하는 허수아비예요. 낫과 호미와 쟁기를 쥔 수수한 사람들은 늘 갈아엎습니다.


  땅을 갈아엎으면서 씨앗을 심는 수수한 사람이 온누리를 바꿉니다. 힘이나 돈이나 이름을 물려주는 힘꾼이나 돈꾼이나 이름꾼은 언제나 담벼락을 높고 단단히 세워서 끼리끼리 놉니다. 들숲바다에서 씨앗 한 톨을 사랑하는 수수한 사람은 딱히 담벼락이 없이 울타리도 가볍게 놓고서 해바람비를 듬뿍 받아들이고 나눠요. 이리하여 시골사람과 흙사람과 들사람과 숲사람과 바닷사람은 ‘갈아엎기’조차 안 하는 살림길을 스스로 배우고 넉넉히 익히면서 널리 나누는 길을 걸어요.


  몇몇 우두머리나 임금이나 붓꾼이나 벼슬꾼이 러시아를 이끌거나 지키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하고 다른 모든 이웃나라에서도 매한가지입니다. 보금자리를 일구면서 살림을 지핀 작은 사람들이 온누리와 이 별을 즐겁게 사랑으로 아름다이 이끌거나 지켜 왔어요.


  《오르페우스의 창 17》에 이르러 “어째서 당신들은 그토록 죽음을 서두르는 건가요?” 하고 피눈물로 외치는 말이 나옵니다. 아니, 열일곱걸음에 앞서도 꾸준히 이런 피울음이 둘레에서 흘렀을 텐데, 힘·돈·이름만 쳐다보는 이들은 사람·사랑·숲하고 내내 등진 채 싸우기만 했습니다.


  참다이 갈아엎으려면 싸움이 아닌 사랑을 할 노릇입니다. 온통 갈아엎고 싶다면 서울을 떠나서 시골에서 오순도순 들숲바다를 품을 노릇입니다. 빛나는 어깨동무(평화·평등·자유)를 이루고 싶다면 그야말로 힘·돈·이름을 몽땅 내려놓고서 아기를 안고서 자장노래로 재우고, 아이들하고 맨발로 들숲바다에서 뛰놀면 됩니다.


  길은 누구한테나 스스럼없고 수월하고 수수하면서 아름답습니다. 길을 안 보려 하니 안 보일 뿐입니다. 씨앗 한 톨을 심는 길이 ‘갈아엎음(혁명)’입니다. 총칼로 마구 죽이는 짓은 ‘갈아엎음’이 아닌 ‘앙갚음(보복)’입니다. 앙갚음은 앙갚음으로 이을 뿐입니다. 씨앗을 심어서 낟알을 거두고 열매를 맺어야, 이 낟알과 열매를 둘레하고 나누면서 사랑으로 온누리를 다독이면서 일으키는 참누리(참다운 누리)를 이루게 마련이에요.


  발바닥이 없으니 걸아다니지도 않다가, 그만 죽이고 죽습니다. 손바닥이 없으니 남한테 시키기만 하다가, 그만 어떻게 살림을 지어야 하는지조차 모르면서 죽이고 죽습니다. 들사람(민중)은 늘 발바닥으로 걷고, 손바닥으로 짓습니다. 숲사람(민중)은 언제나 발바닥으로 풀꽃나무를 느끼고, 손바닥으로 해바람비를 받아들입니다. 우두머리도 발바닥하고 손바닥이 없고, 벼슬아치하고 붓꾼하고 돈꾼하고 이름꾼도 발바닥하고 손바닥을 잊은 채 “담벼락 안쪽”에서 끼리끼리 헤매는 판입니다.


ㅅㄴㄹ


#池田理代子 #オルフェウスの窓


“나 혼자만 도망치라고요? 말도 안 돼!” “단념하세요. 당신만이라도 구하지 못하면 제가 온 의미가 없습니다.” (6쪽)


“시대의 흐름은 이미 우리의 존재를 요구하지 않아. 너도, 나도, 결국은 상당히 서툰 인간이었던 것 같구나.” (32쪽)


‘우는 건 언제나 여자. 권력을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전쟁을 계속하는 남자들의 끝없는 시선 뒤에서, 얼마나 많은 어머니가, 아내가, 그리고 연인이, 누이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려왔을까.’ (84쪽)


“좋아. 이제부터 철저한 보복이다. 이번 쿠테타에 참가한 장교들은 모조리 총살해!” (131쪽)


‘바보 같은 짓을! 어째서 당신들은 그토록 죽음을 서두르는 건가요? 죽는다고 대체 뭐가 해결되죠? 이기적이에요! 자신들이 한 일의 결과를 살아서 끝까지 지켜볼 용기도 없는 건가요, 겁쟁이들 같으니!’ (13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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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같은 5
아소 카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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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6.2.

“아이를 볼” 줄 모른다면


《와, 같은. 5》

 아소 카이

 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2023.8.15.



  예전에도 “아이를 볼” 줄 모르는 “어른 아닌 꼰대나 철바보”는 으레 있었지만, 갈수록 “아이를 볼” 줄 모르는 “어른 아닌 꼰대나 철바보”가 부쩍 늘어난다고 느낍니다.


  “아이를 보는 일”을 ‘아이보기’처럼 줄여서 말합니다. ‘아이보기’라는 이름에서 ‘보기·보다’는 말 그대로 ‘보다’입니다. 이 ‘보다’는 ‘돌보다’를 줄인 낱말이고, ‘돌아보다’를 줄여서 ‘돌보다’입니다. ‘보다·돌보다·돌아보다’는 같은말로 여길 수 있습니다.


  《와, 같은. 5》(아소 카이/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2023)을 곰곰이 읽었습니다. “아이를 안 낳은 어른”이나 “아이보기나 아이낳기는 아예 생각조차 않던 어른”이 “얼결에 아이를 맡아서 살림을 꾸려야 하는 나날”을 줄거리로 삼습니다. 아기를 안 낳았기 때문에, 아기를 낳기까지 뱃속에 품는 열 달을 모르고, 아기를 낳으며 몸이 바뀌는 길을 모르고, 갓난아기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가를 하나도 모를 테지요. 아기를 낳아서 돌본 적이 없으니 아이한테 말을 어떻게 물려주거나 가르쳐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말도 하고 걸을 줄도 아는 제법 자란 아이”가 눈앞에 나타난 셈입니다.


  ‘아기’라는 나날을 휙 건너뛴 두 어른한테는 ‘아이보기’가 그야말로 난데없을 뿐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바꾸거나 살림을 다스려야 할는지 까마득하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두 어른은 “여태까지 생각해 본 적조차 없는 아이보기”를 기꺼이 해낼 뿐 아니라, “아이 눈높이에서 함께 살아가는 일”을 처음으로 생각해 보기로 하면서, “아이한테 묻”고 “아이가 들려주는 마음을 말로 듣”기로 합니다.


  하나도 모르니까 아이한테 물어야지요. 그리고, 아기를 낳아 무럭무럭 자라는 길을 지켜본 어버이로서도 언제나 아이한테 물어볼 노릇입니다. 아이는 어른한테 묻고, 어른은 아이한테 물어야, 서로 마음이 흐르면서 살림살이를 사랑으로 꾸릴 수 있어요. 안 물어보는 둘 사이라면, 보금자리도 집도 살림도 아닌, “위아래로 억눌린 수렁”일 뿐입니다.


  “아이를 보는 일”은 아이한테 물어보면서 어른으로서 마음을 담아 말을 나눌 적에는 하나도 안 어렵습니다. 서로 안 물어보고 서로 안 들을 적에는 다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서로 ‘보아’야지요. 눈빛을 보고, 마음을 보고, 살림을 보고, 사랑을 보고, 오늘을 보고, 생각을 보고, 함께 누리는 보금자리를 볼 노릇입니다.


  이리하여 이 그림꽃 이름이 “와, 같은.”입니다. 서로 잇는 ‘와,’요, 서로 보는 ‘같은.’입니다. 어른이란 자리에서 지내면서 아이를 보기 힘들 적에는 이 두 낱말을 혀에 얹어요. ‘와,’하고 ‘같은.’을 새록새록 떠올릴 수 있다면, 무엇을 다스리고 어떻게 돌보면서 오늘을 살아갈 적에 두런두런 즐거이 어울릴 만한지 누구나 스스로 알아차리게 마련입니다.


ㅅㄴㄹ


“모르겠어. 그냥 어느새 생겼어.” “응, 그러면 됐어. 만약, 친구를 골라서 사귀어야 할 때가 생기더라도, 내 생각에 그건 남의 말을 듣고 결정할 문제가 아니란다.” (20쪽)


“밸런타인데이는 여자가 남자한테 좋아한다고 말하는 날이래.” “이상해. 아무 때나 말하면 되잖아. 여자 말고 남자가 말해도 되고.” (40쪽)


“경우에 따라 다르겠죠. 본인이 똑바로 잘 걸어간다면 그걸로 충분하고, 만약 좁은 길에 장해물이 많다면 힘들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그 사람의 인생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분기점이 있는 길 같은 느낌도 좋아요. 각각 다른 길을 선택해서 걸어가다가 교차해서 다시 만나는.” (59쪽)


“못생긴 애가 하고 다니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게 어울리고 좋잖아.” “미키는 못생기지 않았어. 그리고 남의 걸 억지로 뺏는 건 어울리는 거랑 상관없이 바보나 하는 짓이야.”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바보라고 하는 사람이 바보네.” “그럼, 남의 걸 강제로 뺏는 사람은 범죄자라고 하거든? 그거 알아?” (115쪽)


“그렇구나. 할머니는 말이 서툴단다.” (151쪽)


“할모니가 아니라, 할머니라고 제대로 부르렴. 동생이 태어나면 언니나 누나가 되니까.” (156쪽)


#のような #麻生海


아저씨가 도시락을 만들었단다

→ 아저씨가 도시락을 했단다

→ 아저씨가 도시락을 쌌단다

6


그 전에 밸런타인데이도 있는데

→ 먼저 달콤날도 있는데

→ 그보다 사랑노래도 있는데

34쪽


어떤 길로 나아갈지 진로를 정하기 위해서는

→ 어떤 길로 나아갈지 고르려면

→ 어떻게 나아갈지 살피려면

53


만약 좁은 길에 장해물이 많다면 힘들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그 사람의 인생이니까요

→ 길이 좁고 자꾸 가로막히면 힘들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삶이니까요

→ 길은 좁고 걸림돌이 많다면 힘들지도 모르지만, 이 모두 삶이니까요

59


이런 분기점이 있는 길 같은 느낌도 좋아요

→ 이런 갈림목이 있어도 즐거워요

→ 이런 난달이 있어도 반가워요

→ 이런 너울목이 있어도 기뻐요

59쪽


각각 다른 길을 선택해서 걸어가다가 교차해서 다시 만나는

→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다가 맞물려서 다시 만나는

→ 서로 다르게 걸어가다가 맞닿아서 다시 만나는

59


당신 책잡을 사람 없으니까,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 그대 나무랄 사람 없으니까,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돼

→ 이녁 다그칠 사람 없으니까, 그렇게 애쓰지 마

143


친구들하고 놀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 동무하고 놀 틈이 있기를 바라요

→ 동무하고 놀 짬이 있기를 빌어요

15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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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라이온 15
우미노 치카 지음, 서현아 옮김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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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5.19.

이제는 말하고 싶어서


《3월의 라이온 15》

 우미노 치카

 서현아 옮김

 시리얼

 2020.6.25.



  누구나 보금자리를 일구어 호젓이 살았습니다. 보금자리는 사랑으로 짓게 마련이고, 이 사랑빛이 감돌아 둘레를 환하게 비추면, 둘레 뭇숨결도 사랑물결을 나란히 받으면서 즐겁습니다.


  언제나 살림을 새롭게 짓기에 집입니다. 지붕만 씌워서 비바람을 가린대서 집이라 하지 않습니다. 손수짓기에 새로짓기에 살림짓기가 어우러지면서 함께짓기를 누리고 나누어 물려주는 터전이라서 집입니다.


  한 가지만 잘 하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한 가지조차 못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잘 하려고 태어나지 않”거든요. 잘 하거나 못 하는 삶이 아닌, “사랑으로 하려는 삶”입니다.


  《3월의 라이온 15》(우미노 치카/서현아 옮김, 시리얼, 2020)을 돌아봅니다. 열다섯걸음에 이르기까지 이리 치이고 저리 부딪히는 마음과 하루였다면, 열다섯 자락에 이르자 비로소 말길을 트려는 몸짓이 처음으로 불거집니다. 앞선 열넉걸음이 부질없지는 않아요. 그저 너무 돌고돌았습니다. 좀 돌고돌다가 이곳에 이를 수 있되, 잔가지라 여길 샛길로 자꾸 빠졌구나 싶더군요.


  모든 큰틀은 늘 매한가지예요. 사랑으로 하느냐, 사랑이 없이 하느냐, 이 둘로 가릅니다. 사랑으로 하는 사람은 어느 일을 마주하더라도 안 어렵습니다. 낯선 일에 맞닥뜨릴 적마다 반짝반짝 눈을 밝혀서 새롭게 한 발짝을 내딛습니다. 남이 보기에는 버겁거나 지칠 만한 일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보기에는 즐겁게 살림을 지으면서 보금자리를 이루는 나날이게 마련입니다.


  누가 더 짊어지지 않습니다. 누가 더 무겁지 않습니다. 다 다르게 짊어지면서 배우는 삶입니다. 다 다르게 짓고 지면서 집을 이루는 하루입니다. 이 대목을 문득 알아본다면, 모든 사람이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이 대목을 끝까지 등돌리려 한다면, 눈앞에 있는 누구나 미우면서 싸워서 이기거나 무너뜨려야 할 놈입니다.


  《3월의 라이온》은 얼핏 외톨이라고 스스로 여기는 아이가 한켠에 있습니다. 복닥거리는 집안을 이루는 아이들이 한켠에 있습니다. 여러 갈래에 갈마드는 사람들이 한켠에 있습니다. 치고받는 싸움판 같은 곳에서 온힘을 쥐어짜는 사람들이 한켠에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르게 하루를 살면서 눈을 떠 보려고 합니다. 이쪽이 나으려나 재고, 저쪽이 좋으려나 어림합니다. 이러다가 이쪽도 저쪽도 아닌 “그래, 내가 갈 길은 언제나 사랑 한 가지야!” 하고 깨닫고는 기운을 스스로 내어 일어납니다.


  이제는 말하고 싶은 마음인 아이는, 이제는 제대로 보려고 눈을 뜨는 하루입니다. 이제는 제대로 보려고 하기에, 이제부터 제대로 말할 마음이 샘솟습니다. 이제는 두런두런 말꽃을 피우고, 이제부터 온마음을 다하여 즐겁게 사랑으로 이루는 보금자리를 그립니다.


  누구처럼 해야 하지 않아요. 누구 못지않게 해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누구를 닮아야 할 일도, 누구랑 다르게 해야 할 일도 없습니다. 그저 내가 나로서 나부터 고스란히 마주하면서 넋을 바라보려는 숨결을 읽으면 넉넉합니다. 첫걸음을 떼고서 다시 뒷걸음을 쳐도 됩니다. 이제는 첫걸음을 떼었거든요.


ㅅㄴㄹ


#3月のライオン #羽海野チカ


“하, 한 번도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었고.” (24쪽)


“그렇구나! 마음으로는 언제나 수도 없이 해왔기 때문에, 이미 다 전한 기분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말로 한 적은 없었어!” (25쪽)


‘이 시간을 이 공기와 함께 이대로 전부! 셀로판지에 감싸서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밤이었다.’ (28쪽)


‘그 후로 나는 책을 읽었습니다. 신인들의 수기며 자서전을요. 괴로울 때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선배들의 말이 심금을 울립니다. 어느 선생님도 멋지게 마음의 키를 잡아 파도를 넘어갑니다. 넘어가지 못한 사람의 수기는 책으로 나오지 않으니까요.’ (47쪽)


‘조용하구나. 그래, 이 안에 답은 이미 없는 거구나? 그렇다면.’ (75쪽)


‘대국에 너무 집중한 후에는, 여기 있는데도 없는 듯한 기분이 들고, 디딘 지면이 느껴지지 않게 된다. 경계가 없어져서, 이대로 내 몸마저 사라지는 것 같다.’ (91쪽)


‘그리고 다시금 나는 깨닫는다. ‘자기’ 생각에만 빠져서 스스로 버거워 허덕이는 ‘자기’를, 자기의 작은 짐을 ‘너무너무 무겁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나는 이렇게 애쓰고 있다’는 주문을 부적처럼 되풀이하고, 그러다가 ‘자기 외의 무게’마저 짊어지고 애쓰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내 짐은 100% 내 거였잖아!’, 게다가 ‘큰 줄 알았는데 작았어’ 하고 깨달아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그런 사람을 상대로 이렇게 형편없는 장기를 두다니. 실례도 정도가 있지.’ (122쪽)


+


그걸 그야말로 복기하고 복기하고 또 복기했다

→ 이를 그야말로 되새기고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 이를 그야말로 되짚고

→ 이를 그야말로 돌아보고

56쪽


하지만 최단거리는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길이기에 복잡하고 밀리는 데다 그 길에는 누구나 갖고 있는 것밖에 없다

→ 그러나 지름길은 누구나 가고 싶어하기에 어지럽고 밀리는 데다 지름길에는 누구나 있는 살림밖에 없다

→ 그러나 빠른길은 누구나 가고 싶어하기에 북적대고 밀리는 데다 빠른길에는 누구나 똑같은 살림만 있다

69쪽


대국에 너무 집중한 후에는, 여기 있는데도 없는 듯한 기분이 들고, 디딘 지면이 느껴지지 않게 된다

→ 맞두기에 힘을 쏟으면, 여기 있는데도 없는 듯하고, 디딘 땅을 못 느낀다

→ 맞자리에 힘을 빼면, 여기 있는데도 없는 듯하고, 디딘 땅바닥를 못 느낀다

9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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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의 드래곤 2 - S코믹스 S코믹스
미요시후루마치 지음, 윤선미 옮김, 시마다 리리 원작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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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4.14.

아이도 어른도 자란다



《부엌의 드래곤 2》

 시마다 리리 글

 미요시 후루마치 그림

 윤선미 옮김

 소미미디어

 2023.2.16.



  《부엌의 드래곤 2》(시마다 리리·미요시 후루마치/윤선미 옮김, 소미미디어, 2023)을 천천히 읽고서 되읽습니다. 요사이는 이만 한 그림꽃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조금씩 맛보듯 읽고서, 가늘게 한숨을 고르면서 처음부터 또 읽고 다시 읽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느새 ‘웹툰’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그림이 꽤 많고, 퍽 읽히고 팔리는 듯싶습니다. 그런데 숱한 ‘웹툰’은 그림감이나 줄거리가 매우 좁아요. 온누리를 두루 바라보거나 헤아리는 눈썰미가 서툴면서, ‘사람만 살지 않는 푸른별’을 고루고루 그림꽃으로 담아내는 길로는 다가서지 못 한다고 느낍니다.


  다만 웹툰만 눈이 좁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눈이 좁으니, 글도 좁고 그림도 좁고 그림꽃도 좁고 웹툰도 좁을 뿐입니다. ‘사회·문화·정치·경제·종교·문학·철학·과학’ 모두 자꾸만 좁게 나아간달까요.


  우리말을 살피면, ‘좁다 = 좋다’입니다. 두 낱말은 밑동이 같습니다. 좁기에 좋아하고, 좋아하니 좁습니다. 두루 품거나 헤아리는 길이라면 ‘좋아하’지 않고 ‘사랑’합니다. 어느 하나만 콕 집어서 바라보려 하기에 ‘사랑’이 아닌 ‘좋아하는’ 굴레에 스스로 가둡니다.


  하나로 좁혀서 좋아하는 이들을 ‘전문가’라고 합니다. ‘전문가’인 분들은 어느 하나는 솜씨가 있을는지 모르나, 다른 곳에서는 서툴고 엉성하기 일쑤입니다. 이를테면 ‘의학 전문가’이면서 살림을 잘 하는 이는 참 드뭅니다. ‘문학 전문가’이면서 아기를 잘 돌보는 이는 참 드물어요. ‘정치 전문가’이면서 어깨동무(성평등)를 삶으로 선보이는 이도 그야말로 드뭅니다.


  한자말 ‘전문가’를 우리말로는 ‘꾼’이라 합니다. 꾸릴 줄 알거나 일굴 수 있기에 ‘꾼’일 텐데, 오늘날 꾼은 좋아하는 하나만 ‘꾹’ 눌러서 들어가느라, 막상 둘레나 이웃이나 숲이나 온누리를 헤아리는 눈빛을 잊고 잃었습니다.


  《부엌의 드래곤》은 그림 하나만 좋아하려고 하던 젊은이가 어떻게 ‘좁은’ 눈길을 스스로 벗고서 ‘사랑’이라는 길을 찾아나서느냐 하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이 그림꽃에 나오는 젊은이는 처음 태어난 나라에서는 설자리가 없어서 멀디먼 나라까지 배움길을 갔습니다. 어디에서든 그림만 붙잡으면 좋다고 여겼으니, 제 나라에서 일자리를 못 찾더라도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멀디먼 나라에 깃드는 동안 낯선 아이가 찾아왔고, 낯선 아이인 ‘미르’를 미르 아닌 도마뱀으로 잘못 여긴 젊은이는 어느새 조금씩 눈길을 틔웁니다.


  좁게 좋아하던 젊은이가 눈을 틀 수 있는 실마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림 하나만 좁게 좋아했기에 둘레에 눈을 감았지만,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갖은 서울살림(도시문명)에 마음을 안 빼앗겼어요. 서울살림에 물들거나 길들지 않은 젊은이였던 터라, 미르를 보고도 몰라보았으나 뜻밖에 따스하게 품는 하루를 살았고, ‘도무지 도마뱀일 수 없’도록 덩치가 자라고 불을 뿜고 하늘을 나는 미르 곁에서 비로소 마을과 숲과 별과 온누리를 살피는 눈길을 천천히 틔웁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누구를 좋아하기는 매우 쉽습니다. 누구나 사랑하기는 매우 어려울 듯싶습니다. 그러나 어느 하나만 좋아하기가 훨씬 어렵지 않을까요? 어느 하나만 좁게 좋아하려면 이 하나를 뺀 모두 눈감아야 하는데, 외곬로 치닫는다면 거꾸로 삶이 하나도 없이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 바보짓만 남는다고 느껴요. 어느 하나에 목을 매달지 않을 줄 아는, 스스럼없이 사랑을 길어올리면서 하루를 짓는 오늘을 품는 매무새이기에 활짝 웃고 노래하는구나 싶습니다.


  숱한 보임꽃(영화·연속극)은 사랑을 안 다룹니다. 숱한 보임꽃은 ‘사랑척·사랑시늉·사랑타령’을 다룹니다. 숱한 보임꽃은 ‘좋아해!’에 얽매입니다. 숱한 보임꽃을 곁에 둔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철들지 않은 채 마음도 눈도 매무새도 좁다랗게 뒹굴밖에 없습니다.


  아이도 자라고 어른도 자랍니다. 우리는 날마다 생각이 자라고 꿈이 자라면서 사랑이 자라기에 사람이라는 몸을 입고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라지 않는 사람은 낡아버립니다. 겉보기로 매끈한 몸매에 얼굴이라서 젊지 않습니다. 얼굴과 몸매에 매달릴수록 스스로 좁혀서 그만 죽음길로 달려갑니다. 마음을 가꿀 사랑씨앗을 바라볼 줄 안다면 언제나 스스로 깨어나서 노래하게 마련입니다.


  어떤 어버이여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태어난 아기는 늘 사랑으로 반짝이는 눈망울입니다. 우리가 어버이요 어른이라면, 우리 곁에 찾아온 모든 아기와 아이를 반짝반짝 사랑이라는 눈망울로 마주하고서 품으리라 봅니다. 겨우내 눈밭에서 고이 자던 풀꽃나무가 새롭게 잎눈이며 꽃눈을 틔우는 봄을 느껴 봐요. 마음눈하고 사랑눈을 활짝 틔워요. 어린이 손을 잡고서 환하게 눈을 틔우는 어른으로 한 발짝 내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그 아이가 알려준 거야. 너에게 큰일이 생겼다고.” “네?” “접시를 깨고, 주의를 끌고, 널 입원시키고 이 집에 돌아왔을 때 모습을 드러냈어. 네가 걱정되었나 봐. 그러니 혼내지는 말고.” “도마뱀 군, 그랬구나. 내가 호낼 리가. 고마워.” (16∼18쪽)


“소문을 듣기로는 역 앞 빵집 아저씨가 끌려갔대.” “끌려가요?” “국가보안국에 잡혀갔단 뜻이야. 그 집 빵 맛있었는데.” “어, 어째서요?” “드문 일도 아니야. 조금만 수상해도 연행하니까. 외국인과 얘기를 해도 그렇고.” (102쪽)


“사냥용 오두막이라도 있던 게 아닐까 해. 사람이 없어져도 숲에서 태어나는 건 어쨌든 숲으로 돌아와. 그것을 상기시켜 줘서 이곳이 좋아.” (109쪽)


“또 좀 커졌나? 이제 우리 집 지붕에 닿을지도 모르겠다. 으으, 우리 집으론 돌아갈 수 없어. 도마뱀 군에게 거기는 이제 작으니까∼!” (139쪽)


‘그리고 싶다. 이것을. 도마뱀 군이 보여준 것을 그린다. 내가 그려내면 아주 조금이나마 지금의 순간을 남길 수 있어. 우리는 그런 세계의 일부다.’ (151쪽)


#台所のドラゴン #縞田理理 #みよしふるまち


+


좋은 냄새가 나

→ 냄새가 좋아

5쪽


그건 키운 양육자 나름이니까

→ 키운 사람 나름이니까

→ 키우기 나름이니까

58쪽


동그란데 가끔씩은 네모야

→ 동그란데 가끔은 네모야

64쪽


그것을 상기시켜 줘서 이곳이 좋아

→ 그렇게 떠올리니까 이곳이 좋아

→ 그처럼 생각하기에 이곳이 좋아

109쪽


그곳에 사는 건 국비유학생인 외국인입니다

→ 그곳에는 이웃나라 나라배움이가 삽니다

12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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