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메종일각 신장판 7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김동욱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たかはしるみこ #高橋留美子 #めぞん一刻


숲노래 만화책/숲노래 푸른책

눈치 보거나 부끄러울 겨를



《메종 일각 7》

 타카하시 루미코

 김동욱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0.3.30.



  열 살이란 나이를 살아가는 작은아이를 샛자전거에 태우고 함께 마실을 합니다. 2020년에는 열 살인데, 앞으로 열다섯 살도 스무 살도 살아가겠지요. 머잖아 맞이할 작은아이 열다섯 살은 오직 그 한 해뿐입니다. 스무 살도 바로 그 한 해뿐이에요. 더 지나 서른 살이나 마흔 살도 딱 한 해뿐이요, 쉰 살이며 예순 살도 그저 한 해뿐입니다.


  흔히들 푸릇푸릇한 열 살이나 스무 살만 ‘한 해뿐’이라 여기지만, 무르익는 서른 마흔 쉰도, 깊이 물드는 예순 일흔 여든도 오롯이 ‘한 해뿐’입니다. 우리는 열 살 어린이로 살든 아흔 살 어른으로 살든 언제나 ‘한 해뿐’인 나날을 처음으로 맞아들이면서 새롭고 즐겁게 누릴 숨결입니다.



“유사쿠, 고맙구나.” “아…….” “정말 즐거웠다.” (6쪽)



  자전거 발판을 구르는 아이는 졸거나 잠들지 않습니다. 눈이 반짝반짝 이마에 땀이 비질비질 온몸은 이리저리 춤추어요. 이와 달리 자가용을 얻어타는 아이는 이내 졸거나 잠들지요. 어른도 매한가지입니다. 시외버스를 한나절 달린다든지 비행기를 하룻내 날 적에 신나서 바깥구경을 하거나 춤출 만할까요?


  나라 곳곳을 꿰뚫거나 가로지르는 빠른길이 나쁘다고 여기지는 않습니다만, 그 빠른길을 달리며 얼마나 즐겁거나 신나서 춤추고 노래할 만할까 궁금해요. 빠른길을 200킬로미터로 달리며 노래할 수 있는지요? 이렇게 달리다가는 딱종이를 뗄 텐데, 딱종이는 둘째치고 200∼300킬로미터로 달리면 아슬아슬해서 노래고 춤이고 생각할 겨를이 없겠지요. 120킬로미터로 달려도 마찬가지입니다.


  빠른길 아닌 여느 찻길에서도 골목이라면 30킬로미터조차 대단히 빠른 셈이라, 샛골목에서 나올 사람을 눈을 밝혀 살펴야겠지요. 자, 더 생각해 보기로 해요. 자가용 손잡이를 잡고 싱싱 달리면서 콧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출 만한가요?



“정 그러시다면 먼저 들어가서 쉬시는 게…….” “그럴 수는 없어요.” ‘여기서 내가 없어졌다간 분명 밤을 새서 놀 거야. 하지만 내가 있어도 딱히 다르진.’ (11쪽)



  아버지 뒤에서 샛자전거에 앉은 작은아이더러 “얘야, 넌 손잡이 안 잡아도 돼. 아버지가 앞에서 든든히 달리잖니. 너희 누나랑 아버지랑 이 자전거를 탈 적에 너희 누나는 거의 손잡이를 안 잡고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바람을 먹고 구름하고 놀았단다.” 하고 들려줍니다.


  튼튼자전거에 샛자전거를 달아 세바퀴로 달립니다. 작은아이가 갓난쟁이일 적에는 수레를 더 붙여서 수레에 누여 다녔어요. 이제 두 아이 모두 의젓하게 자랐으니 수레는 작아서 못 쓰지만, 작은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 제법 멀리 마실을 다닐 만합니다. 눈을 감고 팔을 벌립니다. 큰고장 찻길이라면 엄두를 못 낼 노릇이지만, 시골 들길에서는 그저 자전거만 있으니 홀가분히 팔을 벌려 바람을 안습니다. 눈을 뜨고서 구름을 같이 품습니다. 멧자락에 내려앉은 구름처럼, 구름 사이로 보이는 새파란 하늘빛처럼, 우리 두 다리는 오늘 새 이야기를 적바림합니다.



“잘 챙겨 드리시네요.” “이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내일부터는 나도 집에서 놀면서 술이나 마실 수가 없잖아.” (40쪽)



  이웃 일본에서는 2500만이 넘도록 팔린 만화책이라는 《메종 일각 7》(타카하시 루미코/김동욱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0)을 읽습니다. 제법 긴 꾸러미라지만 2500만이라면 장난이 아니지요. 이 만화를 그린 분이 선보인 다른 만화책 《란마 1/2》이나 《이누야샤》는 그보다 더 팔렸다고 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다루기에 이토록 읽힐까요. 《메종 일각》은 ‘일각관’이라는 낡은 나무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는데요, 그냥그냥 흔한 살림살이입니다. 오래된 나무집에 깃든 다 다른 사람들은 마을 아저씨요 아줌마이고, 마을 어린이에 마을 젊은이입니다. 이뿐입니다.


  그저 수수한 사람들이 복닥이는 하루를 그릴 뿐이지만, 이 수수한 사람들 사이에서 흐르는 ‘오늘 하루는 어제하고 다르니, 오늘을 오늘대로 즐겁게 살자’고 하는 마음을 차근차근 짚어냅니다.



“코즈에 씨가 떠준 거죠?” “아, 네.” “그렇게 살금살금 가릴 것 없는데.”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런 걸 보면 엄청나게 히스테리를 부리면서.’ (81쪽)



  낡은 나무집에 깃든 젊은이는 이 나무집을 돌보는 지기님, 이른바 ‘돌봄이(관리인)’를 짝사랑하면서, 대학교에서 만난 아가씨하고 만나는, 다시 말해 ‘두 다리’입니다. 돌봄이인 분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짝을 맺은 분이 있으나, 이분이 일찍 저승으로 갔다지요. 저승으로 일찍 떠난 님을 잊고 싶지 않은 마음이 짙으면서도, 앞으로 긴긴 나날을 어떻게 살아가면서 스스로 달래면 좋을는지 어지럽기도 합니다.


  이 두 사람이 얽히고 맺다가 풀어지고 다시 얼크러지는 줄거리가 복판에 있습니다만, 이 둘을 둘러싼 숱한 사람들이 새삼스레 얽히고 맺다가 풀어지고 다시 얼크러지는 줄거리가 거미줄처럼 튼튼하면서 부드럽게 이어갑니다.


  거미줄이라 할 만합니다. 끈끈하면서 가볍고, 튼튼하면서 쉬 끊어질 듯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면서 해맑은 빛살을 품은 끈이요, 이슬이 맺히면 이슬이 아롱다롱 빛나는 거미줄마냥 눈부시지요. 새가 푸드덕 지나가면 툭 끊어져 헐렁한 거미줄처럼 때로는 서로서로 으르렁대거나 툭탁거리면서 후줄근해요.



“저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신다면, 질투 같은 건 그만 좀 하세요!” “제, 제가 언제 질투를.” “실은, 실은 오늘요, 코즈에랑 헤어질 생각이었어요.” “그럼 왜 스웨터 같은 걸 받아온 거예요!” “그럼 거절하란 건가요? 관리인 님도 누군가에게 주려고 뜨개질을 한 적이 있을 거 아녜요?” (83쪽)


“이젠 눈치 보거나 부끄러워할 겨를도 없나 봐.” “온 동네에 다 들리게 생겼네.” (83쪽)



  눈치를 봐야 할 삶이 아닙니다. 눈길을 다스릴 삶입니다. 눈치에 매여야 할 삶이 아니에요. 눈빛을 밝힐 삶입니다. 잘못을 저질러서 부끄러울 수 있어요. 그러나 잘못을 저질렀으니 깊이 뉘우치고서 새로 일어서면 됩니다. 잘못한 만큼 값을 치르고서 씩씩하게 거듭난다면 한결 어엿하면서 믿음직하기 마련입니다.


  눈치를 보니 달아납니다. 눈치에 매이니 굽신거립니다. 잘못을 감추려 드니 자꾸 감춤질이 잇달아요. 잘못을 뉘우치면서 값을 달게 치를 마음이 못 되니 다시금 새롭게 잘못을 저지르는 수렁에 사로잡힙니다.



“미타카 씨, 목발 좀 빌려 줘요.” “응? 어떻게 된 거야.” “아하하, 전철 안에서 깜빡했지 뭐예요.” “그랬군, 잘했어.” “우리∼, 꼭 한소리 해주자고요.” “후후후, 놀란 얼굴이 눈앞에 선한걸∼.” (205쪽)



  어디로 가든 길입니다. 자가용을 장만해서 씽씽 달려도 길이요, 자전거를 마련해서 아이를 태우고 느긋느긋 노래하며 숲길을 달려도 길입니다. 어느 길이 더 낫거나 훌륭하거나 좋다고 가를 마음은 없습니다. 그저 우리 나름대로 맞아들이면서 겪어 보는 길일 뿐입니다.


  다만 하나는 말하고 싶어요. 어느 길을 가더라도 스스로 깎아내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길을 가든 저 길을 보든 망설이지 않기를 바라요. 어느 쪽에 서면서 나아가든 온마음을 다하면서 신나게 노래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길을 달려 보았으면 이제 그 길은 접어도 좋아요. 다른 길을 스스로 찾아봐요. 새로운 길을 스스로 내기로 해요.


  똑같은 길에서 쳇바퀴질을 하지는 않으면 좋겠어요. 모든 길을 환한 노래로 맞이하면서 덩실덩실 춤추는 가벼운 걸음걸이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웃고 노래하려고 이 땅에 태어난걸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게게게의 기타로 4
Mizuki Shigeru 지음, 김문광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너는 어떤 사람이니



《게게게의 기타로 4》

 미즈키 시게루

 김문광 옮김 

 AK 커뮤니케이션즈

 2010.2.18.



  놀이를 하는 아이는 풀꽃을 함부로 안 꺾습니다. 함께 노는 아이들은 나뭇가지를 함부로 다루지 않습니다. 풀꽃을 함부로 꺾는다든지, 발밑에 있는 풀꽃을 아무렇지 않게 밟고서 알아차리지 않는 어른이라면, 마음자리에 놀이가 없을 뿐 아니라, 동무랑 사이좋게 어우러지는 즐거우면서 상냥한 길을 모른다는 뜻이로구나 싶어요. 풀꽃을 마구 밟는 사람이면서 착한 마음이 될까요? 땔감으로 쓰거나 살림으로 건사할 뜻이 아닌 채 나뭇가지를 그냥 꺾거나 나무를 괴롭히는 사람이라면 참된 몸짓이라 할 만할까요?


  자가용을 모는 일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으나, 아무 때나 깊이 생각하지 않고서 자가용을 타고내리기만 한다면 좀 달리 보아야지 싶습니다. 타야 할 적에는 타야겠지만, 여느 때에는 늘 걷고, 해를 머금고, 바람을 마시고, 풀벌레랑 이야기하고, 새하고 손짓을 할 줄 알아야 비로소 어른이지 싶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즐기지만 언제나 자전거만 타지 않아요. 웬만하면 걷습니다. 걸으면서 바람결을 느끼려 하고, 햇살이 퍼지는 흐름을 읽으려 해요. 자전거를 달릴 적에는 조금 더 빠르게 바깥일을 보려는 뜻입니다만, 자전거를 달리면서 땅바닥이며 옆마을 들판이며 하늘빛이며 멧자락이며 구름결을 더 곰곰이 마주하곤 합니다.



갓이 팔리지 않아 설떡을 살 돈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다 날이 저물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다가 넓은 들판에 접어들었을 무렵에는 혹독한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들판에는 지장보살이 서 있었다. “어이쿠, 이 눈보라를 그냥 맞고 계시니 얼마나 추우실꼬. 도롱이는 고사하고 삿갓 하나 없으시니.” 할아버지는 팔지 못한 갓을 지장보살에 하나씩 씌워 주었다. (8∼9쪽)



  잘 걷지 않는 사람하고는 어쩐지 나눌 만한 말이 얼마 없다고 느낍니다. 아니, 제가 늘 걷는 사람이라서, 저한테는 안 걸어다니는 사람이 사귈 만하지 않아요. 으레 자가용을 모는 분이라면 이분은 이분처럼 자가용을 모는 다른 사람이 이웃으로 지낼 만하며 서로 나눌 말이 있겠지요.


  저는 어른이란 몸으로 살림을 합니다만, 어린이하고 푸름이를 마주하는 자리에서도 매한가지예요. 즐겁게 걷거나 자전거를 달리는 어린이나 푸름이라면 서로 나눌 말이 많습니다. 풀꽃하고 노래하고 풀벌레하고 사귀고 푸나무를 어루만질 줄 알 뿐 아니라,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멧새가 노래하는 뜻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어린이랑 푸름이하고는 하룻내 수다를 떨 만합니다.


  대학입시만 바라보는 푸름이하고는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손전화에 눈이 빠진 어린이하고도 따로 할 말이 없습니다. 맨손으로 냇물을 쓰다듬고 맨발로 풀밭에서 춤추며 놀지 않는 어린이나 푸름이라면 어쩐지 가까이하고 싶지 않습니다.



“떡은 어떻게 됐수?” “그만 갓을 하나도 못 팔았구먼. 그래서 어귀의 지장님께 다 씌워 드리고 왔네.” “그랬수? 갓이야 갖고 들어온다고 떡이 될 것도 아니고, 잘하셨수. 설은 무짠지랑 죽으로 보냅시다.” (10쪽)


‘기타로랑 얘기 좀 해봐야겠다. 마침 누리카베네 집에 놀러와 있으니까. 원래 요괴들은 옛날부터 이렇게 가엾은 사람들을 돕곤 했다구.’ (11쪽)



  풀벌레가 좋아해 마지않는 도깨비 ‘기타로’가 있다고 해요. 일본에서는 한자말로는 ‘요괴’란 이름을 씁니다만, 한국말로는 도깨비나 깨비라고만 하면 됩니다. ‘깨돌이’라고 해도 어울릴 기타로일 텐데, 깨비 사이에서도 기타로를 좋아하는 이웃이 한쪽에 있고, 깨비 둘레에서도 기타로를 멀리하는 이웃이 다른쪽에 있어요. 이런 이야기가 《게게게의 기타로》(미즈키 시게루/김문광 옮김, AK 커뮤니케이션즈, 2010) 일곱 자락에 흐릅니다.



“기타로라면 할 수 있을 거예요.” “기타로?” “기타로라고 왜 애들이 자주 얘기하잖아요.” “모르겠는데.” “아무튼 내가 편지를 써서 한번 부탁해 볼게요.” “나 참, 기타론지 뭔지 애들 말을 어떻게 믿는다고 그래.” (38쪽)



  깨돌이 기타로를 좋아하거나 반기는 다른 깨비는 상냥하면서 즐겁게 숱한 깨비뿐 아니라 사람이며 뭇목숨이며 푸나무하고 어우러지고 싶은 숨결입니다. 깨돌이 기타리를 싫어하거나 꺼리는 다른 깨비는 짓궂으면서 사납게 혼자 나대거나 돈바라기·힘바라기·이름바라기에 사로잡힌 숨결입니다. 같은 깨비가 아닙니다. 모두 다른 깨비입니다. 깨비나라 우두머리가 되고픈 깨비가 있고, 사람누리도 깨비 힘으로 거머쥐어서 이 별을 통째로 사로잡아 으뜸지기가 되겠노라는 깨비가 있습니다.


  착하게 살아가지만 ‘안 착한 사람들 등쌀’에 시달리는 사람을 가여이 여기면서 조용히 돕는 깨비가 있어요. ‘안 착한 사람들’하고 손을 잡고서 착한 사람을 들볶으면서 우쭐거리는 깨비도 있다지요.


  깨돌이 기타로는 이 틈새에서 춤을 춥니다. 고약한 깨비를 나무랍니다. 상냥한 깨비하고 동무를 합니다. 괘씸짓을 일삼는 깨비를 따끔하게 지청구해요. 고운 마음결로 눈부신 깨비를 만나면 저절로 웃음이 터지면서 같이 노래합니다.



“거울은 2천 년 이상 묵으면 저절로 물질이 변해 거울 속에서 운외경이라는 요괴가 나타난다고 했다. 하지만 말로만 들었지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구나.” (132쪽)


“하지만 한국말도 모르고…….” “기타로!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요괴에 국경이 어디 있어! 당장 가 보거라. 요괴한테 고통 받고 있는 인간을 돕는 게 우리 사명이야.” (141쪽)



  우리는 어떤 사람인가요? 우리는 어떤 어린 나날을 보내면서 어떤 푸른 철을 가로질로서 어떤 어른 자리에 서는 사람인가요?


  너는 누구인가요? 나는 누구인가요? 우리는 누구인가요? 만화책 《게게게의 기타로》는 꾸준히 묻습니다. 깨비나라 숨결과 사람나라 숨결이 어떻게 어울릴 적에 서로 즐거울 만한가 하고 묻습니다. 사람나라에서 사람들은 어떤 얼개를 짜면서 보금자리나 마을을 가꾸려는 길인가 하고 묻습니다. 사람나라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살림을 보여주면서 스스로 철든 숨결로 땀흘리고 노래하느냐고 물어요.



‘인간들 손이 안 닿은 이런 원시림 속의 민달팽이가 제일 맛있어.’ (201쪽)


“저, 저건! 23년 전에 전쟁터에서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예요! 아버지는 남풍을 타고 섬을 넘고 넘어 23년이나 걸려 고국으로 돌아오신 거네요. 그리고 고아가 된 절 내내 지켜주고 계셨던 거예요.” 그 순간 요화의 꽃잎이 일제히 떨어지며 온 산을 붉게 물들였다. 넷은 정성스럽게 하나코의 아버지를 묻어주고 그 섬을 떠났다. (229쪽)



  오디졸임은 딸기졸임하고 맛이 다르고, 무화과졸임이나 살구졸임이나 포도졸임이나 능금졸임하고도 맛이 달라요. 졸이는 달콤수수는 매한가지일 테지만, 바탕이 될 열매는 저마다 달라 모든 졸임은 맛이 다르고, 결이며 빛깔이며 숨이 다릅니다.


  나무에 달린 열매를 그자리에서 톡 따서 누리는 맛이랑, 열매를 찬찬히 재워서 두고두고 누리는 맛은 저마다 달라요. 어느 쪽이 낫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다르게 맞이하는 맛이나 깊이도 너비도 서로 다르면서 즐겁습니다.


  솜씨좋은 어른이 척척 반죽을 해서 굽는 빵도 맛나겠지만, 아직 서툰 아이가 조물조물 반죽을 해서 굽는 빵도 맛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맛나다고 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달라요. 솜씨가 좋기에 척척 구워내면 한결 매끈할 테고, 아직 서툴기에 느릿느릿 구워내면 한결 오래 손빛을 담으며 투박합니다. 매끈맛도 투박맛도 몸이랑 마음을 함께 살찌우는 즐거운 기운이에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손길을 물려줍니다. 어버이한테서 손길을 물려받는 아이는 제 마음을 새로 얹어서 한결 다르면서 알뜰한 손길을 일굽니다. 아이가 새로 일구는 알뜰한 손길을 바라보는 어버이는 그동안 물려준 손길을 새삼스레 가다듬거나 추스를 길을 엿봅니다. 아이가 스스로 살림을 짓는 손길이 되기까지는 어버이가 내도록 물려주기만 했다면, 어느새 아이 손빛이 어버이를 신나게 다른 길로 나아가도록 북돋우는 손놀림으로 피어납니다.


  삶이란 새롭게 짓는 손길을 모은 자리이지 싶습니다. 가로채거나 빼앗거나 거머쥐어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지만, 함께 가꾸거나 같이 짓거나 나란히 누리는 동안 차근차근 알아내면서 새롭게 살찌우는 길을 스스로 찾아내는 자리이지 싶어요. 



“그럼 전에 나로 둔갑해서 인어를 팔러 다녔던 게 네놈이었단 말이지.” “그래! 그러면 순진한 넌 반드시 여길 찾아올 줄 알았다. 자, 그럼 슬슬 먹어 보실까.” “먹어?” “네놈 고기를 먹고 더 강한 신통력을 갖고 싶거든.” (237쪽)



  마당에 나무를 한 그루씩 늘리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마을숲에 나무를 한 그루 두 그루 아이 손으로 심도록 이끌면 좋겠습니다. 자가용을 댈 자리를 늘리느라 숲을 밀지 말아요. 자가용을 줄이고, 찻길을 줄이면서 다시 숲을 늘리기로 해요. 공장도 발전소도 군대도 이제부터 차근차근 줄여서 숲으로 자라나도록 하면 좋겠어요. 마을하고 마을 사이를, 고을하고 고을 사이를, 자가용이나 버스나 기차로만 이으려 하지 말고, 두 다리나 자전거로 천천히 오가는 숲길을 늘리면 좋겠어요.


  왜 찻길에 지붕을 안 씌울까요? 찻길마다 햇볕을 맞아들여 전기를 얻도록 지붕을 씌우면 좋을 텐데요. 왜 자동차에 지붕을 안 씌울까요? 자동차마다 햇볕을 받아들여 전기를 얻도록 하면 될 텐데요.


  나무를 심고 돌보고 어루만지고 타고놀면서 자라는 아이는 착하면서 참답고 슬기로운데다가 사랑스러운 어른으로 우뚝 선다고 느낍니다. 나무하고 동떨어진 채 자동차에 몸을 싣고 손전화를 들여다보다가 이런저런 시험문제를 풀어 대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라면 착한 길도 참한 길도 슬기로운 길도 사랑스런 길도 모두 등지고 만다고 느낍니다.


  풀벌레깨비인 기타로가 묻습니다. “넌 어떤 사람이니?” 나무깨비인 기타로가 묻네요. “사람은 어떤 숨결이니?” 숲깨비인 기타로가 다시 물어요. “푸른별에서 살아가려면 어떤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면 즐겁겠니?” ㅅㄴㄹ


#水木しげる #MizukiShigeru #ゲゲゲの鬼太郞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학의 시 2
고다 요시이에 지음, 송치민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물려주고 싶은 마음만 가꾸자



《자학의 시 2》

 고다 요시이에

 송치민 옮김

 세미콜론

 2009.12.15.



  나를 괴롭히는 이는 언제나 나 스스로입니다. 남이 나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곁에서 누가 우리한테 돈을 주기에 우리 살림이 넉넉하지 않고, 옆에서 누가 우리 돈을 가로채기에 우리 살림이 메마르지 않아요. 돈을 받아도 스스로 넉넉한 마음이 아니면 쪼들립니다. 돈을 가로채는 이가 있어도 스스로 넉넉한 마음이라면 고스란히 넉넉합니다.


  둘레에서 게걸스레 먹는 사람이 있어서 우리 배가 고프지 않아요. 둘레에서 무엇을 먹건 말건 쳐다볼 까닭이 없습니다. 저 사람이 저런 집에 살고, 그 사람이 그런 자가용을 몰고, 이 사람이 이런 이름값이 있다 한들, 우리랑 이어진 끈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살라지요. 그 사람은 그렇게 가라지요. 이 사람은 이렇게 하라지요. 우리가 스스로 마음을 바라보지 못할 적에 휘둘려요. 우리가 스스로 마음을 가꾸지 않을 적에 아프거나 괴롭거나 힘들어요.



“아가씨, 배가 고픈 것 아냐? 다코야키 먹어라.” 먹으면 아버지의 빚이 늘어날 것만 같아서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40쪽)



  모기가 물면 싫어할 수 있습니다. 모기를 싫어하는 나머지 모기 물린 자리를 벅벅 긁다가 부어오릅니다. 모기를 잡는다며 갖은 화학약품을 집안에 끌어들이다 보면, 어느새 모기보다 사람을 잡을 일이 되고 맙니다.


  모기가 물건 말건 쳐다보지 않으면, 모기가 한 방울조차 안 되는 피를 빨아먹고 갔어도 간지럽지 않고 붓지 않습니다. 우리 몸은 모기가 가져간 피를 고스란히 되살려 놓습니다. 가시에 찔린 자리도 어느새 사라지고, 나뭇가지에 긁힌 데도 조용히 아물어요. 가만 보면 우리 몸은 스스로 살아나는 힘, 또는 스스로 살려내는 기운이 대단합니다. 바깥힘에 기대는 흐름을 멈추고서 마음힘을 사랑하는 길로 접어든다면, 언제나 새롭게 피어나는 몸이 될 만하다고 느낍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아직 12살. 인생에 져버리고 말 것 같습니다. (78쪽)


나는 중학교 3학년. 열다섯 인생이 점점 더 무거워져서, 당장이라도 지고 말 것 같습니다. (120쪽)



  스스로 깎아내리는 마음으로 살아왔다는 사람이 걸어온 지난날하고 걸어가는 오늘날을 나란히 담은 네칸만화로 이야기를 엮은 《자학의 시 2》(고다 요시이에/송치민 옮김, 세미콜론, 2009)입니다. 묵직한 판으로 두걸음으로 이야기를 여미는데, 만화에 나오는 분은 어머니 사랑도 아버지 품도 느끼지 못한 채 힘든 나날을 보냈다는 생각에 스스로 파묻힙니다. 그런데 이분이 걸어온 길을 보면, 어릴 적부터 집안일을 도맡고 집살림까지 꾸려야 했으니, 집에서 노닥거리는 곁님이 툭하면 노름을 한다며 살림돈마저 거덜을 내니, 겉보기로는 ‘난 너무 못났어!’ 하고 스스로 깎아내릴 만하기도 하겠구나 싶습니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후지사와가 되고 싶어.” “바보. 너에게는 너만의 좋은 점이 있는데 말이야.” “지금 무슨 말 했어?” “아냐.” (172쪽)



  나한테는 돈도 없고, 멋진 어머니 아버지도 없고, 빚쟁이가 찾아오는 가난한 집만 있고, 한겨울에도 손이 얼면서 신문을 돌리면 술꾼 아버지가 일삯을 가로채서 술이나 마신다는 삶이었다지요. 이 삶은 어찌해야 좋을까요. 집이 집 같지 않은데 그냥 학교를 다니고, 그냥 술심부름을 하고, 그냥 눌러앉으면서 제살깎기를 하면 될까요.


  아니면 스스로 사랑하며 살아갈 집을 새롭게 찾겠다면서 ‘태어난 집’을 떠나 ‘보금자리가 될 집’을 두 손으로 일구겠다고 일어설 수 있을까요. 또는 우리 집 이야기를 둘레에 하면서 술꾼 아버지를 바꾸는 길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당신 진짜 나 같은 사람이라도 괜찮아요?” “좋아.” “여러 남자한테 버림받았던 여자예요.” “그 녀석들이 바보지.” “그것만이 아니에요.” “됐다니까.” (279쪽)



  우리를 깎아내리거나 괴롭히는 사람은 남이 아닌 바라 나라면, 거꾸로 생각해 볼 만합니다. 우리를 일으키거나 가꾸면서 사랑할 사람도 바로 남이 아닌 나예요. ‘제살깎기’라 하듯 ‘제사랑(나사랑)’입니다. 우리는 어느 길로든 갈 수 있습니다. 오래오래 제살깎기로 살다가 어느 날 불현듯 깨닫고는 ‘이 별에 태어난 이 삶을 제살깎기를 실컷 했으니, 이제부터는 나사랑을 해보자’ 하고 생각을 돌릴 만해요.


  옆집 사람이 우리 집 아이를 사랑해 주어야 우리 아이가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또래 아이들이 우리 집 아이하고 놀아 주어야 우리 아이가 잘 크지 않습니다. 내가 어버이라면 어버이로서 못나고 잘나고 따지지 말고서, 그저 온사랑이 되어 우리 아이를 보살피면서 함께 웃는 길을 찾으면 됩니다. 내가 아이라면 아이답게 뛰고 달리고 노래하면서 오늘을 한껏 누리면 됩니다.


  놀려고 태어난 아이입니다. 사랑하려고 되는 어른입니다. 놀면서 배우는 아이입니다. 사랑하면서 살림을 익히는 어른입니다.



엄마에게. 이 세상에는 행복도 불행도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뭔가를 잃게 됩니다. 뭔가를 버리면 반드시 뭔가를 얻게 됩니다. 단 하나뿐인,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는 어떨까요? (287쪽)


엄마, 이제부터는 무슨 일이 일어난대도 무섭지 않습니다. 용기가 생깁니다. 이젠 인생을 두 번 다시 행복이냐 불향이냐 나누지 않을 겁니다. 뭐라고 할까요? 인생에는 그저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단지 인생의 엄숙한 의미를 음미하면 된다고 하면 용기가 생깁니다. 엄마, 언젠가 만나고 싶어요. 엄마를 항상 사랑하고 있어요. (289쪽)



  제살깎기로 치닫던 분은 ‘나를 낳은 어머니 얼굴’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머니 얼굴이 떠오르지 않기에 ‘난 틀림없이 사랑 아닌 버림만 받은 아기였겠지!’ 하고 지레 생각했답니다. 그러나 이녁 몸에 아기를 밴 뒤, 그리고 이 아기를 낳은 뒤, 이 아기를 낳을 즈음 고등학교 적 마음동무를 오랜만에 다시 만난 뒤, 모든 생각을 확 뒤집기로 했다지요. 《자학의 시》란 만화책이 ‘제살깎기(자학) + 시’라는 이름을 붙인 뜻이 있겠지요.


  아파도 노래요, 기뻐도 노래입니다. 눈물이 흘러도 노래요, 웃음이 넘쳐도 노래입니다. 노래를 부르면 돼요. 노래하는 마음을 찾으면 돼요.


  먼먼 옛날부터 온누리 모든 수수한 어버이는 일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일노래’예요. 아스라히 먼 옛날부터 모든 투박한 어버이는 일하며 고된 몸일지라도 아이를 품에 안고서 노래를 불렀어요. ‘자장노래’입니다. 어버이나 어른 곁에서 일노래하고 자장노래를 들으며 자라는 아이는 동무하고 놀면서 ‘놀이노래’를 불렀지요.


  누구나 노래입니다. 다같이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삶을 사랑하는 즐거운 마음이 흐르는 말씨(말씨앗)입니다. 눈물을 노래하면서 아프거나 힘든 하루를 달랩니다. 웃음을 노래하면서 기쁘거나 신나는 사랑을 북돋웁니다. 노래하는 사람은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ㅅㄴㄹ



#책읽기 #책이야기 #자학의시 #고다요시이에 #세미콜론 #自虐の詩 #業田良家 #숲노래책읽기 #숲노래 #ごうだよしいえ #숲노래추천책 #숲노래아름책 #청소년만화 #푸른만화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거리 뚝딱뚝딱 나래책 3
김휘훈 지음 / 그림책공작소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푸른책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니?



《하루거리》

 김휘훈

 그림책공작소

 2020.1.30.



  누구는 학교를 다니며 받는 ‘개근상’이 대수롭지 않을 만합니다. 그러나 고삭부리라는 몸을 타고난 아이라면 한 해 내내 학교를 안 빠지기란 너무 어렵습니다. 아주 고삭부리가 아니더라도 곧잘 끙끙 앓는 여린 몸이어도 개근상이란 까마득할 만합니다.


  저는 고삭부리인 몸으로 태어난 터라 툭하면 앓았고, 걸핏하면 드러누웠습니다. 겉보기로는 멀쩡한 듯하지만 몸 곳곳이 말썽인 채 태어났구나 싶더군요. 마흔 해가 조금 못 되는 지난날, 병원에서 의사가 그러더군요. “수술을 해도 완치될 가능성은 없지만, 수술을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하고. 어머니는 의사 말대로 몸에 칼을 대려 하셨고, 저는 몸에 칼을 대기가 끔찍하게 싫어 꽤 오래 울며불며 매달렸어요. 몸에 칼을 대도 낫지 않는다면 몸에 칼을 대야 할 까닭이 없지 않을까요.



순자는 일만 했지 노는 걸 못 봤어.

늘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다녔지.

“쑥 사세요! 콩밭열무 사세요!”

나물해다가 골목골목 팔러 다니는 거야. (7쪽)



  학교나 마을에서 들려주는 옛이야기에서는 ‘옛날에는 집집마다 아이가 많아, 골골거리는 몸으로 태어나면 쉽게 버린다’고 했어요. 이런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이 참 미웠습니다. 그 어른 스스로 얼마나 골골거려 보았기에 그런 옛이야기를 들려줄까요?


 그러나 그 옛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인지, 끙끙 앓으며 드러누워 죽는지 사는지 알 길이 없이 꿈에서 헤맬 적에 아스라한 옛날 모습이 머리에 환하게 떠올랐습니다. 꿈에서 본 모습인데, 골골거리는 동생 곁에 언니들이 둘러앉아서 걱정을 하지요. 골골거리는 동생은 ‘나는 곧 죽을 테니 난 안 먹어도 돼.’ 하면서 밥을 물리고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



날이 저물면 밀린 집안일은 좀 많아?

그러니 동무들은 마당에 멍석 깔아놓고

“야! 별똥 떨어진다!”

이래가며 노는데

순자한테는 그게

아주 딴 세상 얘기란 말이지. (11쪽)



  할머니가 들려준 삶이야기를 곰곰이 헤아려 새롭게 담아낸 《하루거리》(김휘훈, 그림책공작소, 2020)를 읽었습니다. ‘하루거리’를 놓고서 이야기를 엮은 그림책이라고도 할 만하지만, 이보다는 ‘하루거리’를 그림감으로 삼아 온갖 이야기를 한 올 두 올 엮었구나 싶습니다.


  무엇보다 동무 이야기를 다룹니다. 다음으로 놀이 이야기를 다룹니다. 다음으로 들이며 숲 이야기를 다룹니다. 다음으로 살림 이야기를 다룹니다. 다음으로 마음이란 이야기를 다룹니다. 다음으로 마을 이야기를 다룹니다. 다음으로 꿈하고 사랑이란 이야기를 다룹니다. 다음으로 오늘 우리가 누리는 하루가 어떠한 길을 나아가느냐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다음으로 별빛을 받으며 마음을 달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다음으로 삶하고 죽음 사이에는 오직 한 가지 빛줄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물할머니, 물할아버지! 순자 몸이

덜덜 떨려서 꼭 설맞은 닭 같습니다.

좀 낫게 해 주셔요.”

그런데 어째 순자가 조용한 거야.

“순자야, 너 잘 따라했지?”

“아니, 죽게 해달라고 빌었어.”

“뭐! 참말이니? 참말 죽고 싶어?”

“응…….” (20∼21쪽)



  그림책 《하루거리》는 ‘순자’란 아이를 둘러싼 마을살이 한 토막을 짚습니다. 이 그림책에 흐르는 마을을 보면 집집마다 풀로 이은 지붕이니, 이즈막에는 딱히 학교란 데가 없겠지요. 마을이 고스란히 학교인 셈입니다. 따로 아이들을 이끄는 교사란 어른이 없습니다만, 아이들은 서로서로 길잡이가 되고 길동무가 됩니다.


  엉뚱하다 싶은 길로 빠지기도 하지만, 뭔가 어그러지면 다시 머리를 맞대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요. 가장 나은 길을 찾으려고 머리를 쥐어짜고, 무엇보다도 이웃집 동무하고 어깨를 겯고서 함께 놀고 함께 일하고 함께 꿈꾸고 함께 웃고 함께 떠들고 함께 낮잠을 자고 함께 별바라기를 하는 하루를 그리려고 합니다.



정혜는 순자를 자기네 집 뒷간에 밀어넣고 말했어.

“여기서 이 달걀을 다 먹어.

그럼 밤사이에 병이 뚝 떨어질 거야.”

동무들은 달걀 먹이려다 괜히 애먹이면 어쩌나 싶었지. (29쪽)



  어쩌다 보니 순자란 아이는 곁에 피붙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집에 덩그러니 혼자입니다. 말을 섞을 사람이 없고, 말을 걸 사람이 없습니다. 때 되어 밥을 먹으라느니, 심부름을 하라느니, 몸을 씻으라느니, 옷을 빨라느니, 이부자리를 깔라느리, 이불을 개라느니, 마당에 비질을 하라느니 …… 잔소리도 군소리도 살림소리도 사랑소리도 노랫소리도 들려줄 사람이 없습니다.


  말을 걸어올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나서서 말을 할 일이 없습니다. 이런 나날을 보내는 순자는 마음에 한 가지 생각을 심어요.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처럼 사느니, 삶을 마감하고 죽음으로 가는 길이 낫다고 여깁니다.


  이때에 마을 또래는 순자한테 살그마니 다가가서 말을 섞어요. ‘하루거리’에 걸리지 않았나 걱정하면서, 또 순자하고 놀고 싶은 마음에, 또 스스로 배우고 살림하는 마을이란 터전을 얼결에 복닥복닥 가꾼다고 할까요.



그때 분이 눈에 하얗게 열린 박이 보였어.

“잠깐, 얘들아! 어디 참인지 볼래?

순자가 참말 죽고 싶은지 아닌지.” (41쪽)



  삶이 아닌 죽음을 바라는 순자라는 동무한테 마을 아이들은 무슨 말을 하거나 무엇을 해줄 만할까요. 그런가 하고 지나치면 될까요, 어른한테 이르면 될까요,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 여기며 귓등으로 흘리면 될까요, 벼랑에서 등을 밀면 될까요?


  그림책 《하루거리》에 나오는 아이들은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서로서로 이야기를 하고 자꾸자꾸 이야기를 합니다. 어떡해야 할까, 순자랑 동무로 지내고 싶은데, 순자가 별똥도 함께 보고 나무도 함께 타고 온갖 놀이도 함께 누리면 좋을 텐데, 참말로 어떡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지요.



“어머, 순자 너 몸이 튼튼한가 보다.”

“그거 먹으면 다 죽는데, 너만 안 죽는댜 야.”

“우와, 순자 참말로 오래 살려나 보다!”

“다행이지 뭐야, 너 죽었으면 우린 어쩔 뻔했니?” (48쪽)



  그림책을 일군 분 할머니는 지난날 어떤 하루를 보내셨을까요? 그림님 할머니는 순자였을까요, 아니면 여러 마을 아이들 가운데 하나였을까요? 그림님 할머니는 어떤 눈빛에 마음으로 이녁 아이한테 옛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요?


  그림님 김휘훈 님은 어제를 바탕으로 오늘을 새로 들려주는 그림책을 갈무리했습니다. 마을 어른이 그냥그냥 보는 눈길이 아닌, 마을 아이가 차근차근 보는 눈길에서 피어나는 마음을 살짝 얹습니다. 근심걱정으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지만, 즐겁게 놀이하며 나무랑 별하고 가까이 지내는 하루가 얼마나 즐거우면서 놀라운가 하는 발걸음을 가만히 옮깁니다.


  흙빛을 담은 그림책입니다. 흙빛에 드리우는 별빛을 사랑하는 그림책입니다. 흙빛에 깃드는 빗물빛을, 냇물빛을, 바닷물빛을 꿈꾸는 그림책입니다.


  앓는 사람한테는 하루가 그지없이 길며 끔찍합니다. 몸앓이도 몸앓이일 테지만, 마음앓이로 힘든 사람한테 하루는 가없이 까마득하면서 쓸쓸합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를 어떤 보금자리가, 마을이, 길이, 살림이, 사랑이, 노래가, 놀이가, 이야기가 되도록 보내는가요?


  낮에 나무를 타며 매실을 따다가 나무를 쓰다듬으면서 큰소리로 말했어요. “우리 집 나무는 참 튼튼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지.” 이 말소리를 들은 나무가 파르르 춤추면서 휘잉휘잉 바람을 불러서 머리카락을 쏴아아 날려 주더군요. 우리 입에서 터져나오는 모든 말은 오늘 하루를 살리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하는, 무엇보다도 사랑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별빛 같은 씨앗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계 장치의 사랑 2
고다 요시이에 지음, 안은별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푸른책

- 책걸상한테 물어본 적 있니?



《기계 장치의 사랑 2》

 고다 요시이에

 안은별 옮김

 세미콜론

 2014.11.28.



  흔히들 아이가 궁금해 하면 잘 알려주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이 생각은 틀리지 않습니다만, 알려주는 길을 슬기로이 살펴야지 싶어요. 어른 눈썰미로 바라본 대로 섣불리 가르치려 들기 앞서, 아이 스스로 “넌 어떻게 느껴? 네 생각은 어때? 너는 무엇이라고 여기니?” 하고 물어보아서 아이가 먼저 마음을 가다듬도록 북돋울 노릇입니다.


  큰아이하고 카레를 끓이는데 큰아이가 “왜 카레는 냄비 바닥에 자꾸 눌러붙어요?” 하고 묻습니다. “음, 카레한테 물어보지 그래?” “음, 카레 가루는 물하고 섞이면 자꾸 바닥에 붙고 싶어한대요.” 지붕하고 처마 사이에 난 조그마한 틈을 넓혀서 끝내 둥지를 튼 참새가 새끼를 깝니다. 며칠째 새끼 참새가 쉴새없이 노래합니다. “새끼 참새가 왜 저렇게 울까요?” “새끼 참새한테 물어보면 얘기해 주지 않을까?”



“그야 로봇이긴 하지만, 엄청나게 좋은 여자라고요.” “다이스케. 진심이니?” (7쪽)


“아야카는 인간 이상의 인간이라고. 착한데다, 마음도 갖고 있어.” “그건 선생님이 그렇게 느끼시는 거고요. 저 로봇이 정말 마음을 갖고 있는지 어떤지는 증명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바보 자식― 지금 그 말 정정하지 못해? 아야카는 마음을 갖고 있어!” (11쪽)



  책걸상을 다루면서 책걸상한테 물어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이를테면 어린이가 학교에서 책상에 자꾸 칼질을 하면서 뭔가 새기려 하면, “얘야, 네가 칼로 책상한테 그렇게 흉터를 내면 책상이 좋다고 하든?” 하고 물어볼 수 있나요. 동무를 괴롭히는 아이한테 “얘야, 네가 괴롭히는 동무는 네가 괴롭힐 적마다 좋다고 하든?” 하고 물어보면 막질을 하던 아이는 무어라 대꾸할까요.



‘‘기능’이든 뭐든 좋아. 이렇게 엄청난 ‘애정’이 또 있을까.’ (23쪽)



  손전화를 사서 쓰다가 바꿀 적에 손전화한테 “이제 넌 버리고 새것으로 쓰려고 해.” 하고 알리면, 손전화는 무어라 대꾸할까요. 한 판 쓰이고서 버림을 받는 비닐자루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물을 담는 페트병은 속에 든 물이 사라지고서 버림을 받을 적에 어떤 마음일까요. 다 태우고서 버리는 꽁초는, 길에서 마구 뿌려지는 알림종이는, 좀처럼 손길을 타지 못해서 읽히지 못하는 책은, 빨지 않아서 냄새가 나는 옷은, 저마다 사람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요.


  사람한테만 마음이 있지 않다는 줄거리를 다루는 《기계 장치의 사랑 2》(고다 요시이에/안은별 옮김, 세미콜론, 2014)입니다. 그린님은 다섯걸음도 여섯걸음도 꾸준히 그려내지만, 한국에서는 2014년에 두걸음이 나오고 나서 아직 뒷걸음이 안 나옵니다. 널리 읽히면서 우리 생각을 틔우는 징검책으로 자리잡는다면 이렇게 오래 뒷걸음이 안 나올 일이 없으리라 느껴요. 비록 두걸음까지 한국말로 나오기는 했으나, 우리 마음에는 ‘기계 장치’가 무슨 사랑을 하느냐고, 아니 기계 장치한테 마음이 있기라도 하느냐는 생각이 깊구나 싶어요.



“인간들 앞에서 말을 하면 기분 나빠 하니까, 평소엔 입을 닫고 있는 것뿐이야.” (34쪽)



  책걸상이 들려주는 목소리를 알아차리는 사람은 드뭅니다. 아니, 책걸상이 말을 할 줄 안다고 하면 미쳤다고 여기겠지요. 책걸상이 웬만한 사람한테는 아무 말을 안 거는 까닭을 알 만하지 않을까요?


  종잇조각도 웬만해서는 사람한테 말을 걸지 않아요. 부지깽이도, 젓가락도, 깨진 밥그릇도, 연필이나 지우개도 좀처럼 사람한테 말을 안 겁니다. 이리하여 사람은 사람 아닌 숨결하고 마음으로 만나서 사귀고 노래하는 길을 가뭇없이 잊습니다. 사람은 사람 아닌 숨결하고 만나는 길을 넘어, 사람끼리도 마음으로 어우러지고 꿈꾸는 길을 잃어버리지요.


  소리는 있되 말은 없는 셈입니다. 말은 오가되 이야기는 없는 셈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듯하지만 정작 마음은 꽉 막힌 셈입니다.



“언제나 말했지. 좋은 것에 마음을 쓰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라고. 너희들은 정말로 행복한 길을 걸어 주길 바란다. 세상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 마음이 너희들의 재능을 꽃피워 줄 테니까.” (69쪽)


“엄마 사정을 그렇게나 걱정했구나. 어리지만 굉장한걸, 아쓰시. 나한테는 눈물을 흘리는 기능이 없어. 하지만 내게 눈물이 있었다면, 그 장면에서 눈물을 터트렸을 거라고 생각해.” “나, 나, 눈물이 있으니까, 울어도 되겠죠?” (117∼118쪽)



  예부터 어느 곳에서나 살림을 가꾸고 세간을 보듬었습니다. 요새는 쉽게 ‘물건’이라 말하지만, 예부터 어디에서나 버림치란 없어요. 한 가지 살림을 짓더라도 두고두고 쓰게끔 건사합니다. 두고두고 쓰고서 바야흐로 내놓아야 할 적에는 땅에 곱게 돌아가도록 합니다. 우리 살림이며 세간은 우리랑 한몸이었어요. 땅에서 비롯해 땅으로 돌아가는 결이지요. 우리 몸뚱이도 흙에서 온 다음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지요.


  땅에서 자란 나무를 베어 집으로 지어 오백 해나 즈믄 해를 살고서 허물 적에 다시 땅으로 돌아가 다른 나무를 자라도록 북돋우는 거름이 됩니다. 나무를 땔감으로 삼아서 태우든, 나뭇가지나 나뭇잎이 그냥 흙바닥에 떨어져 삭든, 언제나 이 땅은 푸르면서 맑게 흘렀어요. 사람은 이 곁에서 스스로 하루를 짓고 이야기를 지피면서 즐겁게 삶을 눌렸습니다.


  이러한 발걸음을 톺아보면 좋겠어요. 지난날 사람들은 틀림없이 부지깽이하고도, 바지랑대하고도, 가마솥하고도, 집하고도, 이엉하고도, 절구하고도, 베틀하고도, 바늘하고도, 호미하고도, 참말 우리 곁 모든 살림하고 세간이랑 이야기를 했겠지요.



“적이든 아군이든, 내버려진 시체가 있으면 제대로 묻어 주고 싶었을 뿐이야. 바보이니까 모두 너그러이 봐주는 거지. 종종 얻어맞기도 하지만.” “과연. 이 마을에서 오직 너만이 자유의 몸인가.” “바보인 쪽이, 사람으로서 해야만 하는 일을 할 수 있어. 미친 세상 속에서는.” (159쪽)



  만화책 《기계 장치의 사랑》은 묻습니다. 이 만화를 쥐어서 읽을 사람들한테 묻습니다. “그대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사람이고 무엇이 사람이며 왜 사람인가?” “그대가 사람이라면, 사람답게 누구랑 말을 하고 어떤 숨결로 이야기를 하며 어떤 꿈으로 노래하는가?” “그대가 사람이라면, 사람처럼 사랑을 하는가? 숲처럼 사랑을 하는가? 샘물처럼 사랑을 하는가? 새처럼 사랑을 하는가?”


  사람이 참말로 사람답다면 핵무기도 총알도 미사일도 화학무기도 전자무기도 만들어 낼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이 참으로 사람답다면 이웃을 괴롭히거나 들볶는 짓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참되이 사람답다면 언제나 어깨동무하는 살뜰한 눈빛으로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걷습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어떤 어른인가요? 우리가 어린이나 푸름이라면 어떤 어린이나 푸름이인가요? 우리가 빛이라면 어떤 빛인가요? 우리가 오늘이라면 어떤 오늘인가요?



“이런 (아프고 힘든) 때인데도 모두 하늘을 보고 있어. 어째서 우리는 하늘을 보는 걸 좋아할까?” “응겟 님도 밤하늘을 보는 게 즐겁지요?” (204쪽)



  큰아이가 밤하늘 별을 사진으로 찍다가 묻습니다. “왜 별은 이렇게 작게 찍혀요? 더 밝게 찍히면 좋을 텐데.” “그러면 생각해 봐. 밤별이 낮해처럼 환하다면 우리는 밤이 어떻게 될까?” “어, 어, 그러면 잠을 못 자나?” “저 별이 굳이 우리한테 조그마한 빛만 보내는 뜻이 있어. 우리가 밤에도 언제나 같이 있는 줄 알려주지. 그리고 우리가 밤에는 기쁘게 잠들라고 속삭이지. 가느다란 빛줄기만 살짝 보내면서, 저희(별)를 늘 생각해 보라고, 저희(별) 마음을 우리(사람) 마음에 담뿍 담아서 새롭게 꿈꾸라고 하는 작은 밤별빛이 아닐까?”


  길을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면 돌부리한테 물어보셔요. “너 왜 나를 걸고서 넘어뜨리니?” 어쩌면 돌부리는 이렇게 대꾸하지 않을까요? “한눈팔지 말라는 뜻이야.” “서두르지 말라는 뜻이야.” “심심해서 그랬어. 나한테 말 걸어서 고마워.”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