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국 책읽기

 


  적잖은 지자체에서 가을이면 국화잔치를 연다. 시골사람더러 놀러오라는 꽃잔치는 아니고, 도시사람더러 찾아오라는 꽃잔치이다. 도시로 모두 떠나고 텅 비다시피 하는 시골에서 기차역 둘레를 온통 코스모스밭으로 꾸미기도 한다. 사람들이 다시 시골로 찾아오기를 바라며 벌이는 꽃놀이라 할 텐데, 놀러오는 사람은 부쩍 는다 하지만, 이런 시골로 돌아와서 뿌리를 내리려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다.


  도시로 나간 사람이 시골로 돌아온다고 할 적에,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굳이 시골로 가서 살겠다고 할 적에, 이런저런 꽃잔치나 꽃놀이가 있기에 가지는 않으리라 느낀다. 어쩌면, 꽃잔치나 꽃놀이 때문에 시골로 가서 살겠노라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


  시골에서 살려는 사람은 흙을 아끼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살려는 사람은 흙을 만지고 싶기 때문이다. 농약이나 화학비료에 길든 흙이 아니라, 구수하고 포근한 흙을 보듬고 싶어 시골로 간다. 그러니, 도시사람이 시골에 뿌리내리기를 바라는 지자체 행정이라면, 시골에서 살며 흙을 일구는 할매와 할배부터 농약과 화학비료를 줄이도록 이끌어야 올바르다. 아름다운 시골과 사랑스러운 숲이 되도록 돌볼 줄 알아야 한다.


  시골 군청에서 따로 꽃잔치나 꽃놀이에 돈을 퍼붓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시골 들과 숲에서는 봄부터 가을까지, 또 겨울에는 겨울대로 온갖 들꽃이 곱게 피고 지기 때문이다. 들꽃을 들꽃대로 아끼고, 숲꽃을 숲꽃대로 바라볼 줄 안다면, 시골은 한 해 내내 들꽃잔치 벌어지는 줄 깨달으리라. 십일월로 접어들며 물결치는 논둑 산국잔치도 곱고, 산국잔치 곁에서 일렁이는 억새잔치도 참으로 곱다. 어느 누구도 심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돈을 들이지 않는다면, 들과 숲은 우리한테 어여쁜 빛을 나누어 준다.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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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루비아 다시 만나기

 


  가을이 무르익는 십일월에 사루비아를 만난다. 지난해와 똑같은 자리에서 새삼스레 만난다. 우리 마을에는 사루비아꽃이 피는 집이 없지만, 이웃 호덕마을 끝자락에 있는 집에서 사루비아꽃이 핀다. 따로 꽃밭에서 피지 않는다. 고샅길과 시멘트담 사이에서 핀다. 예전에 이 고샅이 시멘트 아닌 흙길이었을 적에는 아주 홀가분하게 피고 졌을 텐데, 시멘트로 덮인 뒤에는 가까스로 숨통을 틔우면서 피리라 본다.


  사루비아꽃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이웃마을 끝자락 집 앞을 지나가지는 않았다. 저절로 이무렵에 이곳 앞을 지나갈 뿐이다. 사루비아꽃이 우리를 불렀을까. 우리가 사루비아꽃을 불렀을까.


  이웃마을과 우리 마을 모두 아이들이 넘치고 복닥거리던 때에는 사루비아꽃이 남아날 틈이, 아니 쉴 틈이 없었으리라. 아이들이 꽃술 톡 뽑아 쪽쪽 빨아대느라 사루비아 꽃밭 앞은 빨간 꽃술이 잔뜩 흩어졌으리라. 앞으로 이 시골마을 가을자락에 사루비아 꽃술 흩어진 모습 다시 드리울 수 있을까. 4347.1.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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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1-10 06:45   좋아요 0 | URL
십일월에도 사루비아꽃이 피는군요!
정말 어렸을 때 사루비아만 보면 꽃술 쪽쪽 빨아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달짝해서 자꾸 꽃술 빼먹었던~ 참 그러고보니 '사루비아'라는 이름의 과자도
생각 나네요. 기다랗고 검은 깨가 송송 뿌려져 있던~^
그런데, 논옆으로 콘크리트 기둥같은 것(?)들이 쭉 서 있네요?

숲노래 2014-01-10 07:56   좋아요 0 | URL
아, 전봇대랍니다 ^^;;
시골에는 전봇대를 그야말로 아무렇게나 박아요.
그리고 논둑 따라 선 전봇대에서
전기를 뽑아서 양수기를 돌려요~

hnine 2014-01-10 10:54   좋아요 0 | URL
깨꽃이라고도 하지요. 사루비아는 '샐비어'를 일본식으로 읽은 것! ^^

숲노래 2014-01-10 12:24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군요.
그런데 '깨'를 닮아 깨꽃이라고 하면
참깨꽃하고 들깨꽃하고 이름이 비슷한 셈이네요.
그렇다고 꿀풀이라는 이름도 있어 꿀꽃이라고도 할 수 없고.

새 이름을 슬기롭게 생각해 보아야겠네요...

후애(厚愛) 2014-01-10 13:01   좋아요 0 | URL
저도 어릴적에 사루비아꽃만 보면 쪽쪽 빨아먹었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숲노래 2014-01-10 13:47   좋아요 0 | URL
그곳에 약을 쳤는지 안 쳤는지 따지지도 않고
참 잘도 빨아서 먹었어요 @.@
 

겨울부들 책읽기

 


  여름에 꽃이 피고 나서 도토리빛으로 열매를 맺는 부들을 바라본다. 예부터 부들은 어느 자리에 썼을까. 시골에서 으레 만나는 부들인데, 부들 열매와 부들잎, 부들줄기를 어느 자리에 얼마나 알뜰히 썼을까. 겨울로 접어들어 부들 열매는 솜털로 뒤덮인다. 씨앗을 퍼뜨리는 모습일까. 이 겨울이 지나면 이 억세고 단단하면서 무척 보드랍기도 한 줄기는 시들까. 아니면, 이듬해 봄에 다시 씩씩하게 새로운 잎을 내고 꽃을 피우면서 열매를 맺을까. 마을 어귀에 아무도 일구지 않는 빈논이 한 곳 있어, 해마다 봄가을 여름겨울 헤아리면서 부들꽃과 부들 열매를 마주한다. 솜털이 흩날릴 무렵 비로소 겨울이로구나 하고 느낀다. 새봄이 찾아오면 부들줄기는 어떤 빛이 될까. 천천히 기다린다. 4347.1.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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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4-01-05 22:05   좋아요 0 | URL
저 부들 무척 좋아합니다.ㅎㅎ
사진을 정말 잘 찍으십니다.^^
아름다워요~

숲노래 2014-01-06 02:37   좋아요 0 | URL
늘 지켜보고
언제나 바라보기에
이만큼 찍는구나 싶어요.

마을에서 부들 구경하는 사람은
어쩌면 우리 식구뿐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무지개모모 2014-01-06 00:14   좋아요 0 | URL
이런 멋은 가을에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이름처럼 만지면 부들부들 할까요?

숲노래 2014-01-06 02:37   좋아요 0 | URL
'부들'부들하대서 이름이 '부들'이더라구요 ^^;;;
참으로 그래요.
이름 그대로 느낌도 똑같아요~
 

박주가리 씨앗 책읽기

 


  지난가을 박주가리 열매를 길에서 주웠다. 길가에 박주가리 열매가 잔뜩 맺힌 옆을 자전거로 지나가다가 몇 주워서 건사했다. 통통한 열매를 터뜨리면 하얀 물이 졸졸 흐르는데, 먹어도 되고 생채기에 발라도 된단다. 그대로 두면 스스로 말라 갈라지면서 속에서 씨앗이 터져나온단다. 부엌에 건사한 지 달포쯤 지나니 참말 하얀 솜털이 커다랗게 달린 작고 가벼운 씨앗이 드러난다. 우리 집 둘레에 박주가리씨 놓으면 어떨까 생각하며 큰아이와 함께 이곳저곳에 하나씩 내려놓는다. 민들레 솜털보다 훨씬 크고 보드라운 박주가리 솜털이란. 새해에 우리 집에서 박주가리꽃 볼 수 있을까. 박주가리풀에서 박주가리 열매가 맺히다가 살며시 터지면서 박주가리 씨앗 나풀나풀 온 마을에 두루 퍼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4347.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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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안전 지킴이함’과 나무 한 그루

 


  시골에서 살며 비로소 나무에 빨래줄을 맸다. 도시에서 살 적에는 전봇대에 매거나 벽에 못을 박아 맸다. 그러나 몇 달 뒤에 빨래줄을 풀었다. 나무에 맨 빨래줄이 나뭇줄기를 파먹고 들어가는 자국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난날에는 시골에 높다라니 선 것이 따로 없었을 테니 그저 나무에 이것저것 줄을 맸으리라. 그네도 나뭇가지에 매고 빨래줄도 아주 마땅히 나무에 매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무에 꼭 줄을 매야 한다면 나뭇가지나 나뭇줄기가 다치지 않도록 천으로 두껍게 두른 뒤에 매야 한다고 느낀다. 나무도 어엿한 목숨이요, 싱그럽게 살아가는 숨결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나무에 못을 박기도 한다. 나무가 아픈 줄 살피지 않고 못을 박는다. 살아서 움직이는 목숨한테 못을 박는 셈인데, 스스로 나무마음이 되지 않으니 아무렇지 않게 못을 박는다. 고흥 녹동초등학교 옆을 지나가다가, 나무 한 그루에 매달린 현수막을 보고, 나뭇줄기에 덩그러니 박힌 ‘아동안전 지킴이함’을 본다. 나무에 못을 쾅쾅 때려서 붙인 ‘아동안전 지킴이함’이 참말 어린이를 지켜 줄까. 어떤 어린이를 어떻게 지키려는 마음으로 나무에 못을 박을까. 학교 교사가 했을까, 읍내 경찰이 했을까. 어른들은 사랑이 무엇인 줄 참 모른다. 4346.12.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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