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동백꽃 눈송이는 없지만

 


  지난겨울과 올겨울에는 ‘눈 맞은 붉은 동백꽃’을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서운한가? 서운하지 않다. 고흥에 눈 내릴 일이 거의 없으니 동백꽃이 붉을 적에 눈 덮인 모습을 보기란 어렵지만, 우리 집 동백나무는 지난겨울에 봉오리를 터뜨리지 않았다. 모두들 새봄에 봉오리를 터뜨리려고 한다.


  아무래도 한겨울에 봉오리를 터뜨리면 꽃송이도 춥겠지? 올겨울도 지난겨울 못지않게 포근했는데, 지난겨울도 올겨울도 포근한 날씨에도 동백꽃송이가 하나도 안 터졌다. 가만히 보면, 이웃마을 동백나무도 올겨울만큼은 거의 꽃송이를 안 터뜨렸다. 군데군데 조금 꽃송이를 비추었을 뿐이다.


  봄이 되어 한꺼번에 터지는 꽃송이도 곱지만, 겨우내 한두 송이, 때로는 서너 송이, 어느 때에는 예닐곱 송이쯤 미리 벌어져도 곱다. 꽃송이가 터지려면 아직 멀었으나, 아주 단단히 여물어 곧 터지려고 하는 봉오리에 내려앉은 겨울눈을 바라본다. 동백나무와 함께 마당에서 눈을 맞았다. 4347.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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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2-07 20:30   좋아요 0 | URL
며칠 전에 부산에 갔더니 동백나무가 아예 가로수로 쭉 늘어서 있는거예요. 나무마다 꽃을 활짝 활짝 피우고요.
부산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겨울에 간것은 이번이 처음, 이번 부산행에서 제일 인상적인 것은 바로 그 동백꽃이었지요.

숲노래 2014-02-07 04:2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부산이든 어디이든
볕이 잘 드는 자리에서는 동백꽃이
그야말로 흐드러지지요~

흐드러진 동백꽃송이를 보면
아아 하고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겨울눈 맞는 후박나무

 


  눈이 내려 우리 집 마당에도 소복소복 쌓인다. 이른 새벽부터 눈발을 깨닫는다. 지난밤에는 마당에 나가지 않았는데, 밤에도 이렇게 눈이 왔는가 보다. 밤에 아이들 쉬를 누이면서 한두 차례 마당으로 내려서서 별을 바라보곤 하는데, 어젯밤에는 두 아이 모두 밤오줌을 안 눈 터라, 나도 별마실을 안 했다.


  이른 새벽부터 눈발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방문을 열고 쉬 하러 마루로 나오면서 얼마나 놀랄까. 눈 눈 눈 하고 노래하던 아이들이 얼마나 기뻐할까.


  후박나무에 내려앉는 겨울눈을 바라본다. 붉고 단단하게 맺는 몽우리는 눈빛과 어우러져 한결 짙고 붉으며 곱다. 마당에 큰 나무 있어 눈송이 사뿐사뿐 내려앉는 모습을 마주하니 얼마나 고마운가. 여름에는 그늘을 누리며 고맙고, 겨울에는 눈빛을 즐기며 고맙구나.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면서 후박눈을 구경한다. 이리 보아도 이쁘고 저리 보아도 이쁘다. 겨울눈이란 참말 하늘이 내리는 따사로운 선물이다. 펑펑 내려 어른 키높이만큼 쌓이는 눈도 하늘이 드리우는 선물이다. 이 눈이 있어 겨울숲은 새롭게 숨쉴 수 있다. 이 눈이 있기에 겨울들은 목마름을 풀고 새봄에 피어날 풀씨와 꽃씨와 나무씨 모두 포근하게 쉬면서 하얀 꿈을 꾼다. 4347.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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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어, 너 갈퀴덩굴

 


  봄을 부른다는 복수초가 피었다고도 한다. 우리 집은 아직 숲이 아닌 마을이 있기에 복수초를 보지는 못한다. 그러나, 복수초가 피기 앞서 우리 집에는 갈퀴덩굴이 올라왔다. 복수초에 앞서 냉이꽃이 피었고, 코딱지나물꽃이 피었으며, 보리뺑이꽃도 피었다. 무엇보다 올해에는 2월 3일부터 드디어 갈퀴덩굴을 뜯어서 먹는다.


  갈퀴덩굴이 뜯어서 먹을 만한 크기까지 돋도록 기다리고 기다렸다. 새해 들어 처음 뜯는 ‘집풀’ 맛이란 얼마나 싱그럽고 푸른지 모른다. 아삭아삭 소리 조그맣게 나는 갈퀴덩굴을 몸에 담으면서 포근한 기운과 고마운 기운을 받는다. 올해에도 우리 식구한테 푸른 숨결 나누어 주는 집풀이 듬뿍듬뿍 돋겠구나 생각한다.


  갈퀴덩굴에 앞서 갓풀이 먼저 고개를 내밀었는데, 갓풀은 아직 우리 식구한테 쓰다. 앞으로 몇 해 더 이 시골집에서 지내면 갓풀도 안 쓰게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갈퀴덩굴을 이레쯤 즐기다 보면 쑥도 뜯을 만큼 싱그러이 돋겠지. 오물조물 앙증맞게 고개를 내민 쑥풀을 쓰다듬고, 예쁘장하고 푸른 줄기 올린 갈퀴덩굴을 복복 뜯는다. 4347.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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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에 갇힌 풀

 


  얼음에 갇힌 풀을 본다. 꽁꽁 얼어붙었을까. 얼음이 녹아도 이 풀은 다시 살아날까. 꽁꽁 얼어붙으면서 그만 넋을 잃었을까. 얼음에 갇힌 채 어서 따순 봄이 돌아오기를 기다릴까. 겨울 추위에 뿌리까지 차갑게 얼어붙었을까. 눈이 덮이고 얼음에 갇히더라도 풀은 씩씩하게 살아남아 푸른 숨결을 고이 드리울까. 얼음조각 앞에 쪼그려앉아 한참 바라본다. 얼음에 갇힌 풀을 손가락으로 살살 쓰다듬어 본다. 4347.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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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도 봉숭아물 들이기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봉숭아’라고만 말했다. 어머니가 ‘봉선화(鳳仙花)’라는 한자말을 쓴 일은 없다. 그런데 국민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교사들은 으레 ‘봉선화’라는 한자말만 쓰고 ‘봉숭아’라는 한국말은 거의 안 썼다. 중학교에서 배운 “울 밑에 선 봉선화야” 같은 노래가 있는데, 언젠가 “울 밑에 선 봉숭아야” 하고 낱말을 고쳐서 부르니, 음악 교사가 길다랗고 굵직한 몽둥이로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나로서는 그 옛날 ‘조선 여느 백성’이 고운 꽃송이를 한자말로 가리켰으리라고는 느낄 수 없어 한국말로 고쳐서 부르지만, 음악 교사는 헛소리 하지 말라고만 윽박질렀다. 겨레말을 빼앗기며 슬픔에 젖었다는 사람들이 ‘봉숭아’라는 꽃이름을 안 쓰고 ‘봉선화’라는 한자말을 썼을까? 나로서는 믿기지 않는다.


  졸린 작은아이 낮잠을 재우는 동안 할머니가 큰아이 손가락마다 봉숭아물을 들여 주신다. 봉숭아잎을 미리 빻아서 봉지에 싸고는 얼려 두셨다고 한다. 그래, 봉숭아물을 꼭 봉숭아꽃이 필 무렵 들여야 하지는 않아. 한겨울에도, 설에도, 봄에도 얼마든지 물들일 만하지. 봉숭아잎을 빻아 얼려 놓을 수 있다면, 언제라도 꺼내서 곱게 물을 들일 만하지.


  나는 우리 어머니 아이일 뿐 아니라, 어여쁜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인 줄 새삼스레 돌아본다. 우리 시골집에는 아직 봉숭아가 피어나지 않지만, 올해에는 길가에서 자라는 봉숭아를 잘 살펴서 잎을 알뜰히 그러모아 틈틈이 빻아 놓아야겠다. 4347.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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