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동백꽃

 


  우리 집 마당 한쪽에는 함께 살아가는 동백나무가 있다. 동백나무 아래쪽에 꽃봉오리 하나가 터지려고 하기에 언제 터지는가 하고 들여다보며 며칠 지냈는데, 어제 문득 동백나무 위쪽에 활짝 터진 꽃봉오리 하나를 본다. 위쪽에 있는 동백꽃은 못 보고 아래쪽에 있는 동백꽃만 살폈네.


  하늘을 바라보며 봉긋 터진 동백꽃송이 둘레로 단단한 몽우리가 가득하다. 삼월이 넘어서고 봄볕이 더욱 따뜻하게 내리쬐면 다른 몽우리가 단단한 옷을 살그마니 벗으면서 새빨갛게 물들 테지. 일찌감치 동백꽃송이 터진 곳이 많을 텐데, 우리 집 동백나무는 조금 늦게 터져서 더 오래도록 꽃내음을 나누어 준다. 4347.2.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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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팽나무와 까치집

 


  나무도 임자나 사람을 잘못 만나면 죽는다. 사람도 사람을 잘못 만나면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다. 거꾸로, 나무나 사람 모두 사람을 잘 만나면 죽을 고비에서도 살아나기 마련이다.


  누군가를 죽이는 사람한테는 사랑이 없다. 누군가를 살리는 사람한테는 사랑이 있다. 누군가를 죽이는 사람한테는 꿈이 없다. 누군가를 살리는 사람한테는 꿈이 있다. 누군가를 죽이는 사람은 착하지 않다. 누군가를 살리는 사람은 착하다. 누군가를 죽이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누군가를 살리는 사람은 아름답다.


  아주 쉽기 때문에 잘 헤아리면 된다. 내가 이웃이나 동무로 사귈 만한 사람은, 마음속에서 사랑과 꿈이 샘솟는 사람이다. 내가 이웃이나 동무로 아낄 만한 사람은, 스스로 미처 깨닫지 못하지만 가슴속에 사랑과 꿈이 도사리는 사람이다. 착하거나 아름다운 사람이 반갑다. 착하지 않거나 아름답지 않은 사람은 안 반갑다.


  돈이 있기에 반가울 수 없다. 이름값이 높거나 힘이 세기에 반가울 수 없다. 얼굴이 이쁘장하기에 반가울 수 없다. 착한 넋과 아름다운 사랑이 어우러지면서 맑게 웃는 사람이 반갑다.


  겨울 팽나무를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팽나무가 살아온 나날은 마을보다 훨씬 깊을 수 있고, 2010년대를 살아가는 어느 누구보다도 길다. 예전에는 팽나무 둘레에서 누가 살았을까. 오늘은 이 팽나무 둘레에서 누가 살아갈까. 팽나무는 팽나무 둘레에 깃든 집에서 살아가는 임자를 잘못 만나면 몹시 고달프리라. 팽나무는 팽나무 곁에 살림집 마련해서 살아가는 임자를 잘 만나면 쉰 해나 백 해뿐 아니라 이백 해나 오백 해를 어우르면서 천 해나 이천 해까지도 즐거우리라.


  팽나무 우듬지에 까치집이 있다. 저마다 임자를 잘 만나서 오순도순 얼크러진다. 여름에는 짙푸른 그늘을 베풀고, 겨울에는 크고작은 가지가 어울리는 빛을 낱낱이 보여준다. 우람한 팽나무 곁에서 하늘숨을 마신다. 4347.2.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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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은 봄까지꽃과 함께

 


  우리 집 대문 앞 조그마한 터에 봄까지꽃이 꽃망울을 터뜨린 지 이레가 지났습니다. 이레 앞서 처음 꽃망울을 보면서 사진으로 찍어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아이들 데리고 자전거마실을 가는 길이라 그냥 지나쳤습니다. 다른 날에도 사진을 찍자 하고 생각하다가 또 지나쳤어요. 어제 낮에 비로소 사진 한 장 찍습니다.


  두 아이는 따순 볕을 누리면서 마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놉니다. 마을 빨래터에도 가고, 빈논에도 들어가 보고, 발 닿는 곳이라면 어디이든 다닙니다. 이러다가 우리 집 대문 앞으로 와서는 큰아이가 문득 노래를 부릅니다. 작은아이는 누나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춥니다. 춤을 추다가 대문 앞 작은 꽃송이를 밟기에, “보라야, 여기 봐. 여기 아주 작은 꽃이 피었어. 그렇게 밟으면 얘가 아야 하니까 밟지는 말아라. 예쁘다 해 줘라.” 하고 말합니다. 네 살 어린이 새끼손톱보다 훨씬 작은 보라빛 꽃망울이 해사하게 웃습니다. 겨울이 지나간다고 밝히는 꽃, 겨울이 저물며 봄내음이 물씬 풍긴다고 알리는 꽃, 겨울바람이 저물면서 봄바람으로 달라진다고 노래하는 꽃, 조그마한 봄까지꽃은 이제 논둑과 밭둑과 빈터를 촘촘히 덮겠지요. 4347.2.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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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꽃잔치에 담배꽁초

 


  읍내마실을 하던 어제 낮, 군청에서 읍내 한쪽에 놓은 꽃그릇에 그득 돋은 별꽃을 본다. 군청에서는 패튜니아라든지 팬지 같은 서양꽃을 이 자리에 심었을는지 모르는데, 겨우내 모두 얼어죽었다. 겨울이 끝나고 찾아오려는 새봄을 앞두고, 빈 꽃그릇에 별꽃이 어느새 줄기를 올리고 꽃송이까지 틔웠다.


  이 작은 꽃송이를 알아보는 읍내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하얗게 빛나는 별빛송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읍내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담배꽁초를 이 자리에 버린 손은 어떤 마음일까. 작은 봄꽃과 봄나물이 담배꽁초를 좋아한다고 여겼을까. 담배를 피우고 나서 꽁초를 버릴 데로는 조그마한 봄꽃이 송이송이 하얗게 터진 이 자리가 가장 알맞다고 여겼을까. 사람들 마음속에는 언제 봄이 찾아들까. 4347.2.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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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봉오리 하나

 


  우리 집 동백꽃 봉오리는 언제 터지려나 하고 날마다 들여다보다가 드디어 하나 찾아냅니다. 그래, 여기 안쪽에서 곱다시 숨어 기다리는구나. 너보다 바깥쪽에서 햇볕 더 듬뿍 받는 봉오리들 많은데, 안쪽에 깃든 네가 먼저 활짝 피어나겠구나. 며칠쯤 걸릴까. 며칠이 지나면 네 봉오리가 살그마니 열리면서 흐드러지게 터지는 붉은 빛깔 될까. 마당에서 노는 작은아이를 부른다. “보라야, 저기 봐. 빨간 봉오리 보이니? 우리 집 동백나무도 곧 꽃송이 하나가 터질 듯해.” 한참 두리번거리던 작은아이도 빨간 빛 살짝 내민 봉오리를 알아본다. 이제부터 기운내어 벌어질 일만 남았다. 즐겁게 기다린다. 4347.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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