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나무 가지 끝에 직박구리

 


  아이들과 마당에서 해바라기를 하면서 노는데, 직박구리가 우리 집 둘레를 어정거린다. 옆밭과 뒤꼍에서 먹이를 찾고, 짝을 지어서 노래하다가는, 매화나무 우듬지 가느다란 가지에 살포시 내려앉아 한참 쉰다. 옆에 있는 큰아이를 조용히 불러 저기 보라고 이른다. 큰아이는 “어디?” 하고 묻는다. “저기 봐, 매화나무 꼭대기에 직박구리가 앉았어.” “매화나무? 매화나무가 어디 있어?” “저쪽에 있어.” “저쪽에 고양이만 있는데?” 해마다 매화나무와 매화꽃과 매화열매를 보더라도 아직 매화나무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일곱 살 큰아이는 새를 한참 동안 못 알아본다. 그러다가 비로소 알아본다. “아, 저기 있구나. 참말 새가 앉았네.”


  겉으로 보기에 깃털로 몸을 부풀리기에 커 보일는지 모른다. 직박구리도 두 손으로 안아 보면 매우 작은 새일는지 모른다. 참새와 박새와 딱새도 막상 손으로 안으면 한 줌조차 안 될 만큼 대단히 작다. 그러니, 얼핏 보기로는 직박구리가 매화나무 가느다란 가지 끝에 앉으면 나뭇가지가 부러질까 싶지만, 직박구리는 제 무게가 얼마인 줄 알 테고, 어디에 앉아야 할는지 잘 알 테지. 4347.3.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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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꽃망울은 터지려고 한다

 


  매화나무 꽃망울은 터지려고 합니다. 날마다 매화나무를 들여다보면서 즐겁습니다. 조금씩 꽃망울이 벌어지고, 살며시 꽃내음이 퍼지니, 매화나무 곁에 있어도 즐겁고, 마당에 있어도 즐거우며, 집안에 있어도 즐겁습니다.


  매화나무가 있기에 매화내음이 집안과 마을에 감돕니다. 감나무가 있으면 감내음이 집안과 마을에 감돌아요. 무화과나무는 무화과내음을 퍼뜨리고, 뽕나무는 뽕내음을 퍼뜨리며, 석류나무는 석류내음을 퍼뜨립니다. 집 둘레가 풀밭이면 풀내음이 퍼집니다. 집 둘레가 논이면 논내음이 퍼져요.


  삶자락마다 다 다른 내음이 감돕니다. 삶터마다 다 다른 빛이 서립니다. 삶을 밝히는 이야기가 꽃망울마다 그득 담겨 곧 꽃잔치 이루어집니다. 4347.3.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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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나무 잎망울

 


  봄이 되면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나무들이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꽃나무를 일찌감치 알아보면서 꽃놀이를 즐긴다. 잎을 틔우는 나무 곁에서 잎놀이를 즐기는 사람을 보기란 아주 어렵다. 나무에서 잎이 돋는 일이 뭐 대수롭느냐 여기곤 하는구나 싶다. 그렇지만 나무가 나무인 까닭은 바로 나뭇잎 때문이다. 봄에 돋고 가을에 지며 겨우내 겨울눈으로 숨결을 잇는 잎이 있어 나무가 나무답게 살아갈 수 있다.


  풀은 풀잎이 돋아 풀내음이 난다. 사람한테는 어떤 잎이 있을까. 사람은 스스로 어떤 숨결로 푸른 이야기를 이웃과 나누면서 살아갈까. 아주 앙증맞도록 조그마한 잎망울을 맺는 모과나무를 바라본다. 봄날 매화나무라든지 벚나무는 참 많은 사람들 눈길을 타지만, 봄날 모과나무나 뽕나무나 감나무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몹시 드문데, 다 괜찮다 다 좋다. 나는 우리 집 모과나무와 뽕나무와 감나무에 돋는 새봄 잎망울을 날마다 기다리며 찬찬히 들여다보고 쓰다듬으니까. 4347.3.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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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4-03-02 15:18   좋아요 0 | URL
주말에 집근처 산으로 산책 갔는데, 아직 이곳은 잎망울이 보이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곧 잎망울이 보이겠구나...했는데, 함께살기님 서재에서 봄을 느끼고 갑니다. ^^

숲노래 2014-03-02 16:36   좋아요 0 | URL
나무마다 조금씩 다르니, 곧 잎망울 고운 빛을
보슬비 님 마음에도 살포시 담으시리라 생각해요~
 

새봄 매화나무 봉오리에 빗물방울

 


  하루 내내 하염없이 봄비가 내린 날 아이들과 집에서 조용조용 있다가 뒤꼍에 나가 본다. 빗물이 초작초작 떨어지고, 조그마한 매화 꽃망울에 방울방울 빗물이 맺힌다. 작은 꽃망울에는 작은 빗물방울이 달린다.


  굵은 가지에서 작은 가지가 뻗고, 작은 가지에서 더 작은 가지가 뻗는다. 가느다란 가지에도 꽃망울은 똑같이 달린다. 굵은 가지에도 더 굵은 가지에도 똑같이 꽃망울이 달린다. 굵은 가지이기에 꽃망울이 더 크지 않다. 작고 가느다란 가지이기에 꽃망울이 더 작지 않다. 아직 작고 가느다란 가지는 열 해가 흐르고 서른 해가 흐르는 동안 굵고 한결 단단해질 테지. 우리 집 매화나무가 해마가 굵고 튼튼하게 자라기릴 빈다. 4347.3.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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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든 풀도 곱다

 


  가을까지 푸르게 빛나던 풀은 겨울을 앞두고 누렇게 바뀝니다. 겨우내 시든 잎으로 추위를 맞아들입니다. 새롭게 찾아드는 따순 봄날에는 싯누렇게 빛납니다. 새봄부터 시든 잎 둘레로 새로운 싹이 조물조물 돋습니다. 퍽 크게 자란 채 누렇게 시든 풀잎은 새봄에 새롭게 돋는 풀이 천천히 자라는 동안 찬찬히 땅과 가까워집니다. 어느새 흙 품에 안깁니다. 흙 품에 안긴 누런 풀잎은 여름이 되면서 자취를 감춥니다. 가을 언저리에는 오롯이 새 흙이 되어요. 그러고는 가을이 깊어질 무렵 이때까지 새로 자라며 짙푸르던 풀잎에 차츰 누런 물이 오르면서 시듭니다. 한 해가 흐르고, 새 한 해가 흐릅니다. 새 한 해가 다시 흐르고, 또 한 해가 새삼스레 찾아옵니다. 4347.2.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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