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꽃 노란잔치

 


  민들레꽃도 참 곱다. 그런데 민들레꽃만 곱지 않다. 시골에서 살며 둘레에 고운 꽃이 얼마나 많은가 하고 날마다 새삼스레 느끼곤 한다. 꽃가게에 가야만 꽃이 많지 않다. 논둑이나 밭둑에만 서도 꽃이 많다. 들에 서거나 숲에 깃들면 얼마나 많은 꽃이 우리를 반기는지 모른다.


  도시라 하는 인천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만난 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아주아주 많은 온갖 들꽃을 보았으리라. 그러나, 온갖 들꽃을 눈여겨본 어른이나 이웃이 드물었다. 우리(아이)한테 온갖 들꽃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면서 꽃이름을 가르치고, 들풀마다 어떻게 건사하거나 먹거나 돌보면 되는가를 알려주는 어른이나 이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만히 돌아보면, 도시에서는 웬만한 풀을 다 뽑아서 버린다. 풀꽃이 꽃을 피우기 앞서 모조리 뽑아서 없애려 한다. 꽃을 피우면 곧 씨를 맺어 퍼뜨린다고 해서 풀을 ‘잡초 뽑기’라는 이름으로 없애거나 죽이기만 한다. 이러는 동안 아이들은 ‘풀은 나쁜 것’이라든지 ‘잡초는 죽이거나 없애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 시골로 떠나 시골살이(귀촌)를 한다 하더라도 풀을 몽땅 베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풀을 배운 적이 없는 요즈음 어른이다. 풀을 가르치는 일이 없는 오늘날 어른이다. 예순 살이나 일흔 살쯤 되는 분들조차 풀을 다루거나 건사하거나 다스리는 길을 배우지 못했다고 할 만하다. 쉰 살이나 마흔 살인 분도 엇비슷하다. 그러면, 스무 살이나 서른 살 언저리인 젊은이가 스스로 풀을 배우거나 살펴야 할 텐데, 이렇게 하지도 않는다. 열 살 안팎 맑은 눈빛 어린이와 푸름이 또한 풀을 바라볼 겨를을 못 낸다.


  민들레꽃 노란잔치를 만난다. 곱다. 참 이쁘다. 그리고, 민들레꽃이 노란잔치를 하기 앞서 이 자리는 갖가지 봄맞이꽃으로 앙증맞은 잔치가 이루어졌다. 봄맞이꽃 앙증맞은 잔치가 모두 끝난 자리에 비로소 민들레꽃이 노란잔치를 벌인다. 4347.4.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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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잎에 매화꽃잎 하얗게

 


  뒤꼍 매화나무에 꽃이 모두 진다. 하야말갛게 피어나던 꽃잔치는 꿈인 듯 조용하다. 그러나, 꽃받침만 빨갛게 남아 새로운 빛이 된다. 새로운 빛은 머잖아 푸른 잎사귀로 덮일 테며, 푸른 잎사귀마다 사이에 푸른 알을 조그맣게 품고는 찬찬히 굵게 돌보겠지.


  바람 따라 매화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면서 나무 둘레 쑥밭을 덮는다. 해마다 검은 빛이 짙게 돌면서 살아나는 흙땅에서 씩씩하게 올라오는 푸른 쑥잎에 하얀 꽃잎이 내려앉는다. 살짝 쑥잎에 앉아서 쉬는구나. 살며시 쑥잎 품에 안겨서 노는구나. 흙은 가랑잎뿐 아니라 꽃잎을 받아들여 고운 내음이 퍼진다. 흙은 온갖 풀과 나무가 어울려 자라는 터가 되면서 맑은 숨결을 베푼다. 4347.4.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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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꼍에서 복숭아꽃 만나기

 


  나무를 심어 한 해가 지난 뒤에 꽃을 본다. 씨앗으로 키웠으면 한 해만에 꽃을 볼 수는 없다. 어느 만큼 자란 조그마한 나무를 읍내 저잣거리에서 장만해서 옆밭과 뒤꼍에 심었는데, 가느다란 줄기에서 뻗은 가느다란 가지에 꽃망울이 맺히더니 곱다시 꽃잎을 벌린다. 위쪽과 아래쪽에서 피어나는 꽃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린나무에 맺힌 꽃이기에 우리 집 어린 아이들도 꽃을 눈높이로 바라볼 수 있다. 집에서 키우는 나무가 있으면,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나무꽃을 이렇게 만날 수 있네. 아이들과 씨앗을 심거나 어린나무를 옮겨심는 일이란 얼마나 대단하며 아름다운가 하고 새삼스레 돌아본다. 아이들 손길과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무럭무럭 크기를 바란다. 우리 집 뒤꼍을 환하게 빛낼 우람한 나무로 자라기를 바란다. 4347.4.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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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4-04 06:35   좋아요 0 | URL
아, 복숭아꽃이 이렇게 가지에 바짝 붙어서 피었네요~?^^
어여쁘고 신기합니다~~

숲노래 2014-04-04 08:31   좋아요 0 | URL
우리 집 나무이기에
바짝 다가서서 찍을 수 있어요.
게다가 아직 키도 작으니
더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제 새끼손가락보다 굵지 않은 줄기에서
가지가 뻗고 꽃이 피면서
꽃내음을 물씬 퍼뜨려요~
 

흙빛을 보셔요

 


  아마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은 튤립잔치를 하는 곳에서 피어난 튤립만 볼 테지요. 그러나 나는 튤립만 볼 수 없습니다. 튤립이 자라는 흙을 볼밖에 없습니다.


  나는 아이들을 바라볼 적에도 아이들만 바라볼 수 없습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를 함께 보고, 아이들을 둘러싼 보금자리와 마을을 함께 바라봅니다. 도시를 바라보건 시골을 바라보건 똑같습니다. 어느 한 가지만 바라보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튤립도 풀이요 꽃입니다. 풀과 꽃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구경거리로서 튤립 둘레에 아무 풀도 돋지 않아야 할까요. 튤립만 돋보이고, 흙에 아무것도 안 나면 튤립은 싱그럽거나 튼튼하게 살 수 있을까요?


  흙빛을 보셔요. 튤립만 덩그러이 있는 꽃밭 흙빛이 얼마나 ‘사막과 같은’지 보셔요. 튤립이 애처롭습니다. 이웃이나 동무가 없이 튤립만 외롭게 있어야 하는 흙을 보셔요. 이렇게 메마르고 거친 땅에서 튤립은 얼마나 곱거나 환하게 빛날 수 있을까요.


  줄에 맞추어 심는대서 예쁜 꽃밭이 아니에요. 꽃이나 풀이나 나무는 줄을 맞추어 자라지 않아요. 꽃이나 풀이나 나무는 숲을 곱게 가꾸는 무늬와 빛으로 자라요. 4347.4.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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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4-04-05 16:29   좋아요 0 | URL
매년 계속 가꾸는곳이 아닌 한 시즌만을 위한 축제이다보니 이런것 같아요. 저도 종종 이렇게 인공적으로 가꾸어진 꽃들을 보면서 꽃이 이뻐 좋긴하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필수 있는 꽃도 한번으로 생을 마감하는것 같아 안타까워요.

계속 계속 이쁘게 가꾸는 꽃정원이 되면 좋겠어요.

숲노래 2014-04-06 00:35   좋아요 0 | URL
어떤 꽃이 피든 다 이쁘기에 굳이
풀을 다 뽑지 않아도 되는데,
행정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이 못 되고,

또 관광객도 '다른 풀이나 꽃'이 있으면
어설프다고 여기니
이래저래 눈요기 행정과 행사가 되지 싶어요.
 

나무가 앓는 소리를 들어요

 


  어느 나무이든 가지를 곧게 죽죽 뻗는다. 가지를 곧게 뻗지 않는 나무는 없다. 나무가 가지를 비틀거나 뒤틀 적에는 아프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억지로 휘거나 꺾으니 울면서 비틀거나 뒤틀기도 한다.


  사람들은 공원을 만들면서 큰나무를 옮겨심기도 한다. 큰나무 한 그루를 옮겨심으려면 오랜 나날 차근차근 해야 한다. 먼저 나무한테 말을 걸어야 한다. 네가 살아갈 자리를 옮길 테니 부디 너그러이 헤아려 주렴, 하고 인사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새터로 나무를 옮길 적에 잘 뿌리내릴 수 있게끔, 큰나무 둘레 알맞는 넓이로 땅을 파서 굵고 큰 뿌리를 끊는다. 이렇게 여러 날 지낸 다음 땅을 더 깊이 파서 나무 아래와 옆으로 난 뿌리를 웬만큼 잘 건사한 뒤 짐차에 실어 천천히 옮긴다.


  나무를 새터에 옮겨심을 적에는 뿌리와 둥치를 감싸던 천을 얼른 벗겨야 한다. 얼른 벗겨서 땅에 살뜰히 심어야 한다. 이 다음으로 할 일은 나무 둘레에 가랑잎을 골고루 뿌리는 한편, 쑥이나 고들빼기나 민들레를 ‘옮겨심은 나무 둥치 둘레에 찬찬히 옮겨심어’야 한다. 쑥이나 고들빼기나 민들레를 흙까지 넓적하게 파내어 옮기기는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왜 이렇게 하느냐 하면, 흙을 살려야 하기 때문인데, 풀이 있어야 흙이 산다. 풀과 흙을 함께 파내어 ‘옮겨심은 큰나무 둥치 둘레에 나란히 놓아’야, 옮겨심은 나무에서 뿌리가 땅밑에서 숨을 쉴 수 있다. 숨을 쉬면서 새 뿌리를 내려고 기운을 낼 수 있다.


  한편, 큰나무를 옮겨심을 적에 가지를 함부로 치면 안 된다. 나무는 밑에서 뿌리가 흙을 머금고 위에서 줄기가 잎을 매달며 햇볕과 바람을 마신다. 나뭇가지를 함부로 치는 일이란 그야말로 미친 짓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왜 치는가? 큰나무를 파내어 옮겨심을 적에 번거롭거나 성가시기 때문이다. 나무가 잘 자라기를 바라면 나뭇가지를 함부로 쳐서는 안 된다.


  바닷가에 있는 공원에 간다. 나무가 앓는 소리를 듣는다. 어디일까? 아, 저기로구나. 멀리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나무 둘레로 휑한 흙땅을 본다. 나무 둥치를 감싼 천을 아직도 안 벗겼다. 얼마나 갑갑할까. 숨을 쉬고 싶은데 숨을 못 쉬도록 해 놓았으니 나무가 어찌 견디나. 하루 빨리 저 천을 걷어야 할 텐데, 무슨 짓을 하는 셈일까. 삼백예순닷새 늘푸른잎을 뽐내는 후박나무인데, 잎이 모두 말라죽었다. 아니, 아직 다 죽지는 않았다. 숨이 거의 다 넘어갈 노릇이다. 그 많았을 가지가 거의 사라졌다. 후박나무는 가지가 없으면 아주 괴로워 한다. 후박나무 가지는 푸른 빛깔을 띄면서 새로 돋는다. 푸른 빛깔 가지처럼 푸른 빛깔 잎사귀를 내놓고, 네 철 내내 푸른 숨결을 내뿜는다.


  나무가 앓는 소리를 들어요. 옮겨심기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옮겨심으려면 제대로 나무를 아끼면서 옮겨심어 주셔요. 나무를 돈으로 여기지 말아요. 돈 들이는 생각이 아니라, 나무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손길로 옮겨심어 주셔요. 조경학이나 원예학으로 나무를 바라보지 말아요. 나무는 나무 그대로 바라보셔요. 이 커다란 후박나무가 살던 보드라운 흙이 있고 푸르게 우거진 숲이 있던 모습으로 가꾸어야, 앓는 나무가 되살아날 수 있어요. 나무 둘레에 풀이 하나도 자라지 못하면, 끝내 후박나무 한 그루는 안타까이 숨을 거두고 말 테지요. 4347.4.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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