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잎 단풍꽃



  단풍나무라서 처음부터 붉은잎이지 않다. 갓 돋는 잎이 붉은잎인 단풍나무가 있고, 갓 돋을 적에는 푸른잎인 단풍나무가 있다. 단풍나무는 사월에 꽃이 핀다. 사월에 꽃이 피고 오월에 열매를 맺는다. 단풍열매는 팔랑개비처럼 빙글빙글 돌며 떨어진다. 단풍열매는 아이들이 즐겁게 갖고 노는 장난감 노릇도 한다.


  푸르게 우거진 단풍잎 사이사이 조그맣게 피어난 단풍꽃을 올려다본다. 높이 자란 단풍나무에 피어나는 꽃은 얼마나 많을까. 얼마나 많은 열매가 떨어지거나 바람에 날리면서 둘레에 단풍씨를 퍼뜨릴까.


  바람이 이리 불며 쏴아 하고, 바람이 저리 불며 싸라락 한다. 조그마한 단풍꽃마다 벌이 모여든다. 대단히 많이 모인다. 나뭇잎과 꽃송이 흔들리는 소리와 벌이 날갯짓하는 소리가 섞인다. 무르익는 사월빛이 사월노래가 되어 흐른다. 4347.4.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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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꽃은 눈부시게



  탱자꽃이 눈부시다. 하야말갛게 피어나는 탱자꽃은 이른 봄날 새하얀 꽃잔치를 벌이다가 저무는 봄꽃나무와 사뭇 다르게 눈부시다. 봄꽃나무는 이른봄에 사람들 눈을 환하게 틔우는 꽃송이를 베푼다면, 탱자꽃은 봄이 무르익는 푸른 물결이 우리 숨결을 시원하게 어루만지는 빛이 얼마나 눈부신가를 알려주지 싶다.


  하얀 꽃잎이 팔랑거리는 탱자나무 줄기와 가시는 푸르다. 탱자꽃이 피고 질 무렵 땅바닥에서는 딸기넝쿨이 퍼지면서 딸기꽃이 피고 진다. 탱자꽃이나 딸기꽃을 보려고 마실을 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 텐데, 탱자꽃과 딸기꽃은 새벽빛을 부르고 저녁빛을 밝힌다. 아침저녁으로 봄들에 고운 손길을 흩뿌린다. 4347.4.2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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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유채밭



  자작나무에 새잎이 돋는다. 면소재지를 다녀올 적마다 동호덕마을 어귀를 지나면서 늘 바라보는 자작나무이다. 언제나 먼발치로만 바라보는데, 가까이에서 바라보지 않더라도 새잎이 돋는 줄 알 수 있다. 자전거를 함께 달리는 큰아이도 샛자전거에서 “아버지, 저기 봐요. 하얀 나무에 잎이 났어요!” 하고 소리친다. “그래, 나도 봤어. 빛깔이 곱지?” 큰아이한테 ‘자작나무’라고 이름을 알려주지만 큰아이는 으레 ‘하얀 나무’라고 말한다. 하기는. 줄기가 하얀 빛으로 보이니 하얀 나무라고 할 만하다. 사월로 접어든 자작나무는 들판에 가득한 유채꽃 물결과 함께 새잎을 돋으면서 한결 싱그럽다. 자작나무 뒤쪽으로 이어지는 멧자락에도 푸릇푸릇 새로운 빛이 환하다. 겨울을 난 잎빛과 봄에 새로 돋은 잎빛이 어우러진다. 집으로 달리던 자전거를 멈추고 한참 푸른 빛깔을 바라본다. 노란 물결과 어우러지는 푸른 빛깔이 얼마나 고운가 하고 생각한다. 4347.4.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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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나무에 앉아 노래하는 참새



  우리 집 처마 밑 제비집에 깃들어서 지내는 참새가 두 마리 있다. 이 아이들은 아침에 잠에서 깨면 후박나무로 포르르 날아가서 한참 노래하곤 한다. 마을에서 먹이를 찾기도 하고, 후박나무나 초피나무에 앉아서 먹이를 살피기도 한다. 마당에 서거나 평상에 앉으면, 참새는 후박나무 사이에 깃들어 한참 째째째 노래꽃을 피운다. 흔히들 참새는 ‘짹짹’이라고 말하지만, 참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한 시간 남짓 듣다 보면, 또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내내 참새 노랫소리를 듣다 보면, 참새는 어느 한 번도 ‘짹짹’ 하고 울지 않는 줄 알 수 있다.


  참새가 들려주는 노랫소리와 노랫가락은 무척 많다. 누가 이렇게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가 하고 귀를 기울이면서 살며시 다가가서 올려다보면 참새이곤 하다. 이 고운 노랫소리가 참새 노랫소리였네 하고 놀라서 새삼스레 올려다보거나 바라보기 일쑤이다.


  생각해 보니, 참새는 예부터 우리 여느 살림집 처마 안쪽에 깃들어 살았다. 제비는 처마 밑에 집을 지어 살았고, 참새는 처마 안쪽 짚과 흙이 어우러진 데에서 포근하게 깃들어 살았다. 시골집이 죄 슬레트지붕으로 바뀌면서 참새는 갈 곳을 잃었고, 갈 곳을 잃었어도 시골마을을 떠나지 않으면서 시골빛을 듬뿍 머금으며 노래한다.


  참새는 벌레를 얼마나 많이 잡을까. 참새는 날벌레나 풀벌레를 얼마나 많이 쪼아서 먹을까. 참새가 먹는 곡식은 얼마 안 되리라 느낀다. 4347.4.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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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꽃이 곧 터진다



  후박꽃은 다른 나무꽃하고 견주면 아주 더디 핀다. 후박꽃망울은 겨울부터 고개를 내밀지만, 동백꽃망울이 따순 볕에 십이월이나 일월에도 터지는 모습과 달리, 후박꽃망울은 삼월까지 꽁꽁 숨다가 사월 문턱에 들어서면 꽃망울이 커지고, 사월 첫째 주에 살그마니 벌어질 듯하며, 사월 둘째 주에 쏙쏙 꽃대를 내밀고, 사월 셋째 주에 아주 천천히 꽃망울이 터진다. 게다가 꽃망울도 한꺼번에 안 터진다. 하나 터지고 둘 터지고, 여러 날이 걸린다.


  다른 나무꽃은 하루나 이틀쯤 찾아오지 않으면 그사이에 온통 꽃봉우리가 터져서 꽃잔치를 이루는데, 후박꽃은 여러 날 돌아보더라도 움직임이 아주 더디다. 겨우내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터지는 꽃이기 때문일까. 드센 바닷바람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이기 때문일까. 후박꽃을 제대로 보자면 달포 즈음 지켜보아야 한다. 단단한 꽃망울이 차츰 커지는 모습부터 꽃망울이 살그마니 터지면서 비늘잎에 떨어지는 모습을 거쳐 꽃대가 오르고 꽃망울이 터지면서 새 잎이 함께 돋는 모습까지 새로우며 새삼스러운 빛을 선보인다.


  이제 후박꽃이 터지기까지 이틀쯤 남은 듯하다. 후박나무를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지켜보며 두 팔 벌려 말을 건다. “예쁘구나, 아름답구나, 멋지구나, 사랑스럽구나.” 4347.4.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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