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갈퀴꽃 책읽기



  살갈퀴꽃을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다. 들이나 숲이나 논둑이나 고샅 한쪽에 살갈퀴꽃이 피었어도 꽃이라 여기는 사람이 드물다. 아주 작아 못 알아보기도 하지만, 이런 꽃은 꽃이 아닌 줄 여긴다. 꽃집에서 키워야 꽃으로 여기고, 튤립이나 장미쯤 되어야 꽃으로 여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이른봄에 맨 먼저 피는 봄까지꽃이나 코딱지나물꽃이나 별꽃쯤 되어야 살짝 들여다볼까 말까 한다.


  살갈퀴꽃은 콩꽃과 닮는다. 콩하고 비슷하게 뻗는 넝쿨풀이기 때문이다. 살갈퀴꽃은 메마른 땅에서 잘 자란다. 흙을 북돋우고 살찌우는 몫을 맡기 때문이다.


  살갈퀴꽃이 잔뜩 피는 곳은 흙이 그닥 안 좋다고 여기면 된다. 그러나 살갈퀴꽃이 한두 해 우거지고 나면 이듬해부터 흙이 많아 나아져, 이듬해부터는 살갈퀴꽃이 줄어든다. 다른 풀꽃이 흐드러진다. 꽃송이 달린 살갈퀴를 톡 끊어 입에 넣으면, 살갈퀴 풀내음과 꽃내음이 물씬 퍼지는데 사근사근 달근달근 아련한 맛이 스며든다. 흙을 살찌우듯이 몸을 살찌우고, 다른 풀꽃이 씩씩하게 자라도록 흙을 돌보듯이 우리 몸에 푸른 숨결을 불어넣는다. 4347.4.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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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비에 쓰러진 갓꽃



  납작하게 엎드린 채 살그마니 고개를 내미는 들꽃이 있다. 껑충껑충 높이높이 꽃대를 올리는 들꽃이 있다. 저마다 새끼를 낳는 모습이 다르다. 저마다 씨앗을 퍼뜨리는 길이 다르다. 들풀 가운데 갓과 유채는 퍽 남다르다 할 만큼 꽃대를 높이높이 올린다. 어른 키보다 높게 꽃대를 올리곤 한다. 맨 밑둥은 무척 두껍다. 아이들이 갓풀이나 유채풀이 꽃대를 높다라니 올린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노라면 꼭 나무라고 느낄 만하다. 옥수수도 그렇고 해바라기도 그렇다. 아이들한테는 옥수수와 해바라기는 나무와 같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가 내리니 꽃대만 높다라니 올린 갓풀 몇 포기가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다. 쓰러진 갓풀과 갓꽃을 바라본다. 높은 줄기와 두꺼운 밑둥을 보자니, 뿌리가 참 얕다. 이렇게 뿌리는 얕게 내면서 키는 그리 높게 올리나. 설마 쓰러지려고 키가 자라는 풀은 아닐 테지.


  풀 가운데에는 제법 두툼하다 싶은 갓꽃이 쓰러지니, 갓꽃이 쓰러진 자리에서 돋던 풀이 모조리 눕는다. 쓰러진 갓꽃을 들어 풀이 없는 자리로 옮긴다. 돌나물도 쑥도 몽땅 넘어갔다. 사람 눈으로 보자면 작은 풀끼리 넘어지고 깔린 모양새인데, 개미나 진딧물이나 무당벌레 눈으로 보자면 숲에서 우람한 나무가 쓰러지면서 작은 나무가 몽땅 넘어간 모양새가 되겠구나 싶다.


  갓꽃에 깔려 드러눕고만 풀은 어찌 될까. 커다란 갓풀줄기를 치웠으니 다시 씩씩하게 일어설 수 있을까. 풀은 한 번 밟히면 꼿꼿하게 다시 서고, 두 번 밟히면 누운 채로 살다가, 세 번 밟히면 그예 죽는다고 한다. 우리 집 풀은 어찌 될까. 한 번 깔렸으니 꼿꼿하게 다시 설 수 있을까. 갓꽃은 조금 더 버티었으면 씨앗을 맺을 수 있었을 텐데, 안쓰럽다. 4347.4.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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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꽃 알려주어 고맙구나



  일곱 살 큰아이가 지난주에 길에서 벌에 넉 방 쏘인 뒤로는 마당에서 놀 생각을 않는다. 벌한테 쏘이기 앞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마당에서 놀던 아이가 이제는 파리가 웅웅거리는 소리까지 무서워하고 만다. 마침 비가 오니, 비가 오는 날에는 벌도 파리도 날아다니지 못해, 큰아이가 걱정없이 마당에 내려온다. 다만, 내가 마당에 나오니 살그마니 달라붙으며 따라온다. 얼마나 마당에 내려와서 놀고 싶을까. 얼마나 바깥바람 쐬면서 숲노래를 부르고 싶을까.


  나는 아침저녁으로 풀을 뜯기만 하며 미처 살피지 못했는데, 모처럼 마당에 내려온 큰아이가 나를 부르며 말한다. “아버지, 우리 집 장미꽃 피었어요!” 어, 어, 그러네. 우리 집 장미꽃이 피었네. 언제 피었지?


  오늘도 어제도 우리 집 장미꽃 둘레에 돋은 돌나물을 뜯었다. 그제도 그끄제도 우리 집 장미꽃 둘레에서 풀을 뜯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집 장미꽃이 봉오리를 터뜨린 줄 알아채지 못했다. 한 송이는 봉오리를 막 터뜨리려 하고, 한 송이는 벌써 봉오리를 활짝 터뜨렸다.


  속으로 ‘쳇! 쳇!’ 한다. 우리 집 장미꽃을 알아보아도 내가 먼저 알아보고 알려주고 싶었는데, 네 녀석이 먼저 알아보다니. 그래도 네 마음속에 언제나 꽃빛이 있으니 이렇게 모처럼 마당에 내려섰을 적에 장미꽃이 터진 줄 알아차렸겠지. 장미꽃은 네 꽃이다. 장미빛은 네 마음빛이다. 4347.4.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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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알이 익는다



  매화알이 익는다. 매화꽃이 피었으니, 꽃이 질 무렵부터 매화알이 익는다. 매화알은 매화잎처럼 푸르게 빛난다. 매화잎은 벌레한테 먹히기도 하고, 나비나 불나비가 알을 낳고 나서 애벌레가 고치를 벗으려고 돌돌 말기도 한다. 단단하며 야무지게 익는 매화알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살그마니 손에 쥐어 본다. 해마다 야물딱지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매화나무에는 어떤 숨결이 감돌까. 매화나무는 우리한테 어떤 빛과 넋을 나누어 줄까. 이리 보고 저리 보면서 매화나무한테 인사한다. 이 가지를 어루만지고 저 가지를 쓰다듬으면서 매화나무하고 노래한다. 4347.4.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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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4-27 21:51   좋아요 0 | URL
앗 매화열매가 열렸네요!
해마다 5월말이나 6월초에 시장에 잠깐 나오는 매실만 보다가
이렇게 나무에 달린 모습을 보니 참 신기하고 새롭네요~
푸르라니 작은 열매가 참 풋풋하고 예쁩니다~*^^*

숲노래 2014-04-27 22:00   좋아요 0 | URL
저희는 매화알이 노르스름하게 익을 때에 따서 먹어요.
푸른알은 그닥 먹고 싶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올해에는 처음으로
푸른 매화알을 따서
효소를 담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매화가 열매를 맺어 굵는 모습을 보면
이렇게 꽃과 열매와 잎이 어여쁜가 하고
새삼스레 놀라면서 즐겁곤 해요.
 

골짝물 사이에 가랑잎



  가랑잎이 진다. 골짜기에 떨어진다. 골짝물이 흐른다. 골짜기에서 흐르다가 돌에 걸려 멈춘다. 비가 내려 물살이 빨라지면 가랑잎은 다시 물을 타고 흐르겠지. 바람이 불어 휙 날려 주면 더 멀리 나들이를 하겠지. 비가 내리지 않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가랑잎은 이곳에서 천천히 삭아 골짝물 바닥으로 내려앉으면서 시나브로 흙으로 바뀌겠지. 4347.4.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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