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알 송알송알 맺는다



  꽃이 지면 씨앗이 굵는다. 어느 풀이나 나무나 다 똑같다. 탱자나무에는 마땅히 탱자꽃이 피고, 탱자꽃이 지면 탱자알이 굵는다. 탱자나무는 가시가 커다랗게 뾰족뾰족하기에 탱자꽃이 피거나 질 적에 눈여겨보는 이가 많지 않은데, 탱자알이 맺힐 적에도 눈여겨보는 사람은 매우 적다. 다들 흔히 지나친다. 얼마나 조그마한 알이 맺히면서 날마다 천천히 굵는지 알아차리는 사람이 참으로 적다. 불러세워서 여기를 보라고 알려주어도 못 알아챈다. 뾰족한 가시 사이에 돋은 동글이가 바로 탱자알이요, 이 탱자알이 굵어지면서 노랗게 익는다고 말해도 고개를 갸우뚱하기 일쑤이다.


  생각해 보면, 내 보금자리에 탱자나무를 심어서 돌보지 않으면 누구라도 탱자꽃이나 탱자알을 알기 어렵다. 내가 살아가는 마을에서 탱자나무를 쉬 만날 수 있지 않으면 탱자꽃이며 탱자알이며 알아채기 어렵다.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이루어 살아가지 않으면 탱자를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식물도감을 들춘다고 해서 탱자를 알 만할까. 신문이나 방송으로 본다 한들 탱자를 안다 할 수 있을까. 인터넷으로 살펴보거나 찾아보니까 탱자를 안다 하겠는가.


  퉁방울만큼 커지면 단단하게 들러붙지만, 막 꽃이 지고 알이 맺힐 무렵에는 무척 여리다. 살살 어루만지지 않고 섣불리 건드리면 툭 하고 떨어진다. 봄볕을 받으며 보드라운 탱자잎이 돋고 봄빛과 함께 예쁘장한 탱자알이 차근차근 굵는다. 4347.5.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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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는 찔레꽃



  오월로 접어들이 찔레꽃을 다시 만난다. 싱그러운 오월을 여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찔레꽃은 사월이 끝나고 오월로 접어들면서 활짝 피어난다. 벚꽃이나 매화꽃처럼 기다리는 사람이 있지 않아도 오월이면 곱다라니 핀다. 동백꽃이나 장미꽃처럼 곧장 알아보는 사람이 있지 않아도 오월에 해맑게 핀다.


  찔레꽃 하얀 잎은 얼마나 맛있을까. 오월에 배를 곯던 옛 아이들한테 반가우면서 고마운 맛이었을까. 새로 돋는 찔레싹을 톡톡 꺾어서 먹으면 꼬르륵거리던 배가 차분히 가라앉았을까.


  하얀 꽃이 터지면서 찔레잎은 보들보들 반짝거리는 새 잎빛이 된다. 꽃빛은 환하고 잎빛은 눈부시다. 오월은 얼마나 아름다운 달인가 하고 새삼스레 되새긴다. 4347.5.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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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장미꽃



  동백꽃은 아직 다 지지 않았다. 새로 돋는 동백꽃이 아직 있고, 톡톡 떨어지는 꽃송이가 있다. 동백나무 곁에 갸날프게 서기도 하고 눕기도 하는 ‘우리 집 장미나무’가 있다. 장미나무는 사월 끝무렵에 꽃봉오리를 벌린다. 오월로 접어들면서 꽃빛이 해사하다. 소담스러운 장미꽃 앞에 앉아서 꽃잎을 들여다보니, 꽃봉오리 안쪽 수술 있는 데에 개미가 볼볼 기어다닌다. 개미도 꽃가루를 먹으려고 왔구나. 꽃가루를 먹으면서 꽃가루받이를 시키겠구나.


  날마다 우리 집 장미꽃을 바라본다. 날마다 바라보던 동백꽃에 이어 장미꽃이 붉은 꽃망울을 베푼다. 장미꽃내음이 마당을 거쳐 마루를 지나 집안으로 스며든다. 즐겁구나. 아이들도 아침마다 장미꽃한테 가서 인사를 한다. 4347.5.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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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그늘 있는 곳



  나무그늘이 있는 곳에서 노는 아이들은 시원하다. 나무그늘이 없는 곳에서 노는 아이들은 덥다. 나무그늘이 있는 곳에서 일하는 어른들은 시원하다. 나무그늘이 없는 곳에서 일하는 어른들은 덥다. 나무그늘이 있어 쉬거나 놀거나 일하기에 좋다. 나무그늘을 누리며 낮잠을 즐겨도 좋다. 나무그늘이 있을 만한 데에서는 바람이 나뭇잎을 타고 짙푸르게 분다. 햇볕이 내리쬐는 들에서 일하더라도 그늘을 짙고 커다랗게 드리우는 나무가 둘레에 있으면 바람을 상큼하게 마시면서 땀을 가볍게 훔친다.


  나무그늘이 있기에 마을이 아름답다. 나무그늘이 있기에 보금자리가 포근하다. 나무그늘이 있기에 놀이터가 예쁘고, 나무그늘이 있기에 지구별이 푸르다. 4347.5.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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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5-03 10:32   좋아요 0 | URL
정말 큰 나무가 참 좋네요~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아이들과 함께 저절로
마음이 푸르러집니다~*^^*

숲노래 2014-05-03 10:38   좋아요 0 | URL
사진을 찍을 적에도
속으로 '아 좋네' 하고 노래했어요.
요 며칠 이 사진을
제 컴퓨터 바탕화면에 넣었습니다 ^___^
 

토끼풀꽃 책읽기



  국민학교 다니던 1980년대에 동무들과 놀며 ‘이름 말하기 내기’를 곧잘 했다. 동네나 나무나 영화나 만화 같은 이름을 하나씩 들기도 하고, 나라나 고장 같은 이름을 하나씩 들기도 한다. 가끔 꽃이름 대기를 겨루기도 했는데, 이렇게 꽃이름을 하나하나 서로 들다 보니,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구나 하고 느꼈고, 이름뿐 아니라 생김새를 제대로 떠올리지도 못하는구나 하고 느꼈다. 참 창피했다.


  그렇지만,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꽃이름을 모른대서 깔보거나 나무라는 동무나 이웃이나 어른을 못 보았다. 대학교를 다섯 학기 다니고 그만둘 적에도 꽃이름이나 풀이름을 모른대서 혀를 끌끌 차는 교수나 어른이나 이웃을 못 보았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요즈막에도 꽃이나 풀이나 나무에 붙은 오래된 이름을 모른대서 뒷통수를 긁적이거나 쓸쓸해 하는 이웃이나 어른을 못 본다.


  무척 궁금하다. 우리는 꽃도 풀도 나무도 모르는 채 살아갈 수 있을까. 능금을 먹으면서 능금꽃을 몰라도 될까. 배를 먹으면서 배꽃을 몰라도 될까. 딸기를 먹으면서 딸기꽃을 몰라도 될까. 콩을 먹으면서 콩꽃을 몰라도 될까. 밥을 먹으면서 벼꽃을 몰라도 될까. 밀꽃이나 보리꽃을 아는 이는 몇이나 있을까.


  시골로 마실을 오는 손님 가운데에는 토끼풀꽃을 모르는 분이 가끔 있다. 도시로 마실을 가서 만난 분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골목이나 길 한쪽에 피어난 토끼풀꽃을 보고는 “어머나, 이 구석지고 시끄러운 찻길 한복판에 토끼풀꽃이 피었네.” 하고 놀라면 “어디에 있어요?” 하면서 토끼풀꽃이 어떻게 생긴 줄 모르기 일쑤이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에는 짐승을 키운다는 사육장이 있었고, 사육장에는 거위와 칠면조와 닭과 토끼가 있었다. 풀 먹는 짐승한테 주려고 토끼풀을 잔뜩 뜯곤 했다. 어린 나날을 도시에서 보냈어도 토끼풀은 참 자주 마주하고 자주 뜯으면서 풀내음을 맡고 꽃빛을 누렸다. 아주 넓게 무리짓기도 하지만, 조그맣게 무리짓는 토끼풀밭을 볼 때면, 또 토끼풀꽃잔치를 볼 때면, 괜히 웃음이 난다. 4347.4.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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