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에 떨어진 후박꽃



  엊그제 비가 드세게 몰아치면서 후박꽃이 어마어마하게 떨어졌다. 마당은 온통 후박꽃투성이가 된다. 수천 송이가 떨어졌을까. 아마 수천 송이가 됨직하다. 어쩌면 만 송이가 넘을는지 모른다. 그윽한 냄새를 나누어 주던 후박꽃이 이렇게 많이 떨어지니 서운하지만, 후박나무로서도 꽃을 어느 만큼 떨구어야 열매를 알맞게 맺으리라 본다. 감나무도 감꽃을 엄청나게 떨구지 않는가. 바야흐로 이레쯤 지나면 감꽃이 여물 듯한데, 감꽃 피는 밑에서 감꽃을 하나하나 주워서 먹을 생각을 하니 침이 고인다.


  마을 샘터를 치울 적에 쓴 플라스틱 그릇을 평상에 두었다. 비가 지나고 난 뒤 빗물이 고였고 후박꽃이 이 그릇에 퐁퐁 떨어졌다. 그릇에 고인 물을 비우려다가 한동안 들여다본다. 후박나무에서 떨어져 빗물에 잠긴 꽃송이가 산들산들 부는 바람에 따라 가볍게 물결이 일면서 하늘하늘 움직인다.


  옛날에는 어느 집에서나 이런 모습을 언제 어디에서라도 보며 살았겠지. 흙마당 한쪽에 빗물이 고이면서 꽃송이가 그런 둠벙이나 웅덩이에 떨어졌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내 어릴 적에도 사월이나 오월에 비가 드세게 몰아친 이튿날이 되면, 곳곳에 생긴 웅덩이에 꽃잎이 수북하게 떨어져서 새삼스럽게 고운 빛을 보여주던 일이 떠오른다. 4347.5.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복숭아알 맺는다



  뒤꼍에 심은 복숭아나무에 알이 맺힌다. 꽃이 지고 나서 벌레는 거의 안 먹으면서 알이 굵게 맺는다. 단단하다. 야무지다. 작은 복숭아나무에 맺는 복숭아알은 어느 만큼 굵을 수 있을까. 얼마나 맑으면서 고운 빛이 감도는 열매로 익을 수 있을까.


  푸르게 빛나던 알은 차츰 누르스름하면서 불그스름한 빛으로 달라진다. 햇볕을 먹고 빗물을 마시며 바람을 들이켜면서 날마다 자란다. 아이들도 날마다 새로 자라고, 열매도 날마다 새로 익는다. 모두들 제 보금자리에서 기운차게 살아간다. 복숭아나무에서 처음 맺는 알이 소담스레 익으면, 씨앗을 갈무리해서 심고 싶다. 어린나무가 맺은 열매에서 나오는 씨앗에서 씩씩하게 새로운 싹이 틀 수 있기를 빈다. 4347.5.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장미꽃한테 인사하기



  우리 집 마당 한쪽에서 자라는 장미나무는 꽤 작다. 게다가 한쪽으로 쓰러지기까지 했다. 처음 이 집에 깃들 적에는 장미나무인 줄 못 알아보았다. 다들 웬 엉성하게 가냘픈 나뭇가지가 하나 박혔다 해서 뽑아내라 했으나 손사래치면서 말렸다. 마른 나뭇가지로 보이든 풀줄기로 보이든 우리 집 나무이자 풀줄기 아닌가. 첫 해 겨울을 나고 맞이한 첫 봄에 봉오리가 굵고 빨간 꽃송이 터지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 가냘픈 몸뚱이(줄기)에서 이토록 커다랗고 소담스럽게 꽃을 피우는구나. 더욱이 꽃송이가 워낙 크다 보니 가녀린 줄기가 휘청거린다. 달리 장미나무가 한쪽으로 쓰러지지 않는구나 하고 느낀다. 버팀나무를 받치거나 줄로 당겨서 울타리에 기대도록 하지 않으면, 커다란 꽃송이 무게를 못 이기겠구나 싶다.


  올봄에도 가녀린 줄기에서 커다란 꽃송이를 잔뜩 피운다. 지난해보다 꽃이 더 핀다. 애틋하다. 대견하다. 사랑스럽다. 이 고운 꽃송이가 이 작은 몸에서 맺는구나. 우리들 작은 이웃 마음속에도 저마다 엄청나게 크고 환하며 빛나는 꽃이 피겠지. 아이들과 마당에서 놀 적에 장미나무 곁으로 다가가서 인사를 한다. 예쁜 장미야, 꽃처럼 튼튼하고 씩씩하게 줄기를 올려 앞으로도 이곳에서 튼튼하게 자라렴. 맑은 꽃빛으로 고운 노래를 들려주렴. 4347.5.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희디흰 찔레꽃빛



  찔레꽃을 볼러 날마다 마실을 한다. 찔레꽃이 하얗게 잔치를 이룬 모습은 꽤 먼 곳에서 알아볼 수 있다. 이른봄에 피는 매화꽃은 살짝 발그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흰꽃이라면 찔레꽃은 온통 새하얀 흰꽃이다. 희디흰 꽃이요 눈부신 흰빛이다. 가만히 바라보아도 눈이 부시다. 먼 데에서 보아도 눈부신 빛이 한들거려 곧 알아챌 수 있다. 군내버스를 타고 시골마을을 싱싱 달려도 찔레꽃 핀 데를 곧바로 알아볼 수 있다. 찔레꽃빛은 오월이 얼마나 곱디고운 흰빛인가를 보여주지 싶다. 찔레꽃 하얗디하얀 빛깔은 언제나 맑고 밝은 넋으로 웃으라는 노래잔치 같다. 4347.5.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왕벚꽃과 이승복 동상



  왕벚꽃이 흐드러지는 커다란 나무 곁에 ‘반공소년 이승복’ 동상이 선다. 나무가 먼저 이곳에 있었을까, 동상이 먼저 이곳에 있었을까. 둘 모두 같은 때에 이 자리에 섰을까. 동상은 더 자라지 않는다. 동상은 비와 바람과 햇볕을 받으면서 해마다 차츰 낡고 닳는다. 나무는 동상과 달리 날마다 새롭게 자란다. 처음에 동상은 햇볕도 많이 받고 비바람도 많이 먹었을 텐데, 곁에서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면서 햇볕을 가려 주고 비바람도 그어 준다.


  왕벚나무는 동상 옆으로 뿌리를 뻗을 테지. 왕벚나무는 동상한테도 고운 꽃내음을 나누어 줄 테지. 동상은 무엇을 할까. 이 동상은 왜 ‘반공소년 이승복’이라는 이름을 얻어야 했을까.


  시골마을에 조용하게 열어 문을 닫은 작은 학교 운동장 한켠에 선 나무와 동상을 한참 바라본다. 나무와 동상은 앞으로도 이곳에 그대로 있을까. 앞으로 쉰 해쯤 지나면, 또 오백 해쯤 지나면, 사람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할 수 있을까. 4347.5.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