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싹을 보다



  내가 알기로는 틀림없이 당근싹이다. 당근싹이 돋았다. 곁님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보는 밭자락 한쪽에 당근싹이 돋았다고 느낀다. 나도 당근씨를 심어서 키운 적이 있기에, 이 싹은 당근싹이라고 이내 알아챈다. 이와 같은 모습이면서 당근싹 아닌 다른 싹일 수 있을까. 한번 곰곰이 생각에 잠겨 본다. 풀싹은 어떤 모습일는지 가만히 헤아려 본다. 민들레싹과 씀바귀싹은, 부추싹과 질경이싹은, 꽃마리싹과 꽃다지싹은 저마다 어떤 모습일는지 하나하나 헤아려 본다.


  우람한 느티나무가 되기 앞서, 아주 조그마한 느티씨가 떨어져 돋는 느티싹은 어떤 모습일는지 천천히 그림으로 그린다.


  사람들은 ‘밥’이라기보다 ‘먹이’로 삼으려고 씨앗을 심어서 기르곤 한다. ‘사랑’을 듬뿍 받아서 나눌 밥으로 풀포기를 얻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더 많은 ‘영양소’와 더 나은 ‘돈벌이’가 되기를 빌면서 씨앗을 심어서 기르곤 한다.


  밥은 어떻게 지어야 맛있을까? 손쉽게 짓는 밥이 맛있을까? 사랑을 담아 짓는 밥이 맛있을까? 즐겁게 노래하면서 짓는 밥이 맛있을까? 전화를 걸어 시켜서 먹는 밥이 맛있을까? 어떤 밥이든 함께 웃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먹는 밥이 맛있을까?


  당근싹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온갖 생각과 이야기가 줄줄줄 흐른다. 4347.6.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지치기를 하지 않는 나무

 

 

  가지치기를 하지 않는 나무를 본다. 가지를 조금만 친 나무를 본다. 가지를 많이 친 나무를 본다. 나무가 뭉텅뭉텅 잘린 모습을 본다. 나무가 아예 없는 빈터를 본다. 나무가 들어설 틈이 없이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척척 들어선 곳을 본다.

 

  내 마음은 어느 곳에서 아늑한가. 내 마음은 어느 곳에서 사랑스러운가.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숲에 깃들 때에 늘 아름다운 마음이 되는가. 숲이 아닌 곳에 깃들면서도 늘 아름다운 마음이 될 수 있는가.

 

  가지를 덜 치거나 안 친 나무가 스무 해쯤 자란 곳을 버스를 타고 지나면서 바라본다. 마음속으로 푸르게 스며드는 바람을 느낀다. 이 바람은 무엇인가. 이 숨결은 무엇인가. 우리가 무엇을 바라는가. 우리가 무엇을 맞아들이면서 빙그레 웃는가. 나무 한 그루 있는 도시와 나무 한 그루 없는 시골은 저마다 어떤 빛이 될까. 4347.6.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공장 틈바구니 나무

  일산에서 택시를 타고 인천으로 간다. 고속도로는 여러 도시를 가로지른다. 창밖을 내다보니 공장이 줄짓는다. 아 온통 공장이네, 하고 생각하는데, 길이 막히고, 저쪽에 은행나무 한 그루가 내 눈으로 들어온다.

  공장은 무엇이고, 나무는 무엇인가. 공장 사이에 있는 나무는 무엇이고, 나무가 우거진 곳에 있는 공장은 무엇인가. 나무 한 그루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또 보고 다시 본다. 푸르면서 파랗고, 맑으면서 고운 바람이 살살 분다. 이곳은 고속도로가 아닌 숲이로구나. 4347.6.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쇠별꽃 뜯기


  쇠별꽃을 뜯는다. 여러 날 바깥밥을 먹어야 하면서, 속이 더부룩하지 않도록 풀을 찾아 뜯는다. 풀은 스스로 양념을 하지 않는다. 풀 먹는 짐승은 풀에 소금을 치거나 고춧가루를 뿌리지 않는다. 사람도 풀을 풀 그대로 먹을 적에 풀내음을 맡으면서 풀빛을 받아들인다.

  버무리거나 볶거나 데쳐도 맛나다고 본다. 그리고 날풀을 날풀대로 먹거나 들풀을 들풀대로 먹거나 멧풀을 멧풀대로 먹으면서 바람과 햇볕과 빗물과 흙하고 지구별 이야기를 골고루 먹는다. 아이들한테 쇠별꽃을 준다. 아이들은 쇠별꽃 먹으며 쇠별꽃이 된다. 이웃한테 쇠별꽃을 내민다. 서로 뫼별꽃이 된다. 4347.5.3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삭줄꽃 책읽기



  마삭줄이 넝쿨을 이루어 잎이 돋을 때부터 ‘그래, 너는 마삭줄이네.’ 하고 알아본다. 마삭줄을 보면 참말 넌 마삭줄이네 하고 알아본다. 왜 그럴까. 왜 나는 마삭줄을 쉬 알아볼 수 있을까.


  바람개비와 같이 생긴 하얀 꽃이 피어나는 마삭줄이다. 마삭줄꽃이 피면 꽃내음이 확 퍼진다. 꽤 먼 데까지 맑은 꽃내음이 퍼져, 코를 큼큼거리면서 ‘어디에 이렇게 고운 내음 퍼뜨리는 꽃이 있을까?’ 하고 두리번거리며 살피기 일쑤이다.


  찔레꽃이 흐드러진 곳을 지나갈 적에는 찔레꽃내음이 짙고, 아까시꽃이 그득한 곳을 지나갈 적에는 아까시꽃내음이 짙다. 마삭줄꽃이 잔치를 이루는 데에 있으면 마삭줄꽃내음이 짙은데, 참말 꽃마다 내음이 다르다. 찔레꽃은 보드라운 결이라면, 아까시꽃은 달근한 결이고, 마삭줄꽃은 포근한 결이다.


  탱자나무와 찔레나무가 우거진 울타리에 마삭줄이 나란히 어우러지면 얼마나 고우면서 환한 꽃잔치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참말 옛날에는 집집마다 마을마다 봄부터 가을까지 쉬잖고 꽃내음과 풀내음이 넘실거리면서 모두 아름다운 넋과 숨결을 가꾸었으리라 느낀다. 4347.5.2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4-05-26 03:40   좋아요 0 | URL
마삭줄꽃은 처음 봅니다~ 참으로 바람개비같은 꽃모양도
하얀 꽃빛도 애틋하니 좋습니다...
사진도 넘 좋구요~*^^*

숲노래 2014-05-26 08:55   좋아요 0 | URL
조그마한 바람개비꽃인데
꽃내음이 무척 짙고 깊어요.
시골마을에서 이 꽃넝쿨이 울타리에 있도록 할 만하구나
하고 늘 느끼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