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를 먹을 때


  뽕나무에 잎이 돋으면 진딧물과 온갖 벌레가 모여든다. 뽕잎이 맛있는 줄 아는가 보다. 뽕나무에 꽃이 피면 또 진딧물과 숱한 벌레가 달려든다. 뽕꽃이 맛나는 줄 아는구나 싶다. 뽕나무에 열매가 맺히면 새삼스레 진딧물이랑 엄청난 벌레가 붙는다. 오디가 얼마나 달달하게 좋은 맛인가 알지 싶다.

  오디를 맛보려면 수많은 벌레와 다투어야 한다. 또는 벌레가 맛나게 먹고 남긴 열매를 기다리면 된다. 커다란 뽕나무에 몇 안 남은 오디를 훑는다. 작은아이는 작은 통을 들고 나를 쳐다본다. 오디를 하나씩 훑어서 통에 넣으면, 작은아이는 얼른 집어서 먹는다. 몇 알 없으니 누나랑 어머니하고 나누어 먹자고 하기도 힘들지만, 한 알씩이라도 나누어 먹으면 좋겠는데, 작은아이가 몽땅 먹는다.

  우리가 오디를 넉넉하게 먹으려면 뽕나무가 몇 그루쯤 있어야 할까. 또는 뽕나무 둘레에 어떤 이웃나무가 있어야 할까. 또는 뽕나무 곁에 어떤 이웃풀이 자라야 할까. 자그마한 오디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생각에 잠긴다. 4347.6.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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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미나리 책읽기


  풀물을 짤 만한 풀을 뒤꼍에서 뜯는다. 한참 뜯다가 앙증맞도록 작은 풀이 옹기종기 돋은 모습을 본다. 너희가 왜 여기에 있지, 하고 고개를 갸웃하다가, 아하 하고 깨닫는다. 예전에 집이 있던 자리인데, 이쪽은 뒤꼍 가운데 파인 자리이다. 비가 오면 여러 날 물이 고인다. 돌미나리는 물이 고인 곳에서 잘 자란다. 물이 고였어도 비가 그치고 해가 쨍쨍 나면 물이 마르는데, 온갖 풀이 골고루 자라면서 풀힘으로 촉촉한 땅이 되었구나 싶다. 그래서 다른 높은 자리에서는 돋지 못하는 돌미나리가 이곳에 있구나 싶다. 돌미나리가 이곳에 있으면서 다른 풀은 이곳으로 못 뻗는구나 싶다. 올록볼록한 땅은 올록볼록한 대로 여러 가지 풀이 서로 다르게 자라는 터가 되는 셈이다. 땅은 꼭 반반해야 하지 않다는 뜻이다. 풀은 풀 나름대로 어디에서든 스스로 자랄 만한 터를 찾아서 씨를 퍼뜨려서 자란다는 이야기이다.

  돌미나리도 풀물로 짠다. 그렇지만 돌미나리는 풀물로 짜기에는 아쉬워 날로 먹는다. 작은아이한테 건네고 큰아이한테 건넨다. 두 아이가 묻는다. “이 풀은 무슨 풀이야?” “응, 돌미나리.” “돌미나리?” “응. 네 몸과 이를 튼튼하게 해 줄 예쁜 풀이야.” 4347.6.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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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도서관 아왜나무


  지난날 초등학교였으나 문을 닫은 지 열 몇 해가 지난 곳에 우리 도서관이 있다. 우리 도서관이니 늘 드나들면서 나무를 바라본다. 예전에 초등학교가 있을 적에는 으레 가지치기를 받아야 했을 테지만,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나무는 가지치기에서 벗어난다. 나무결 그대로 자랄 수 있다.

  길가에 퍽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를 눈여겨보는 이웃은 없다. 시골이라 어디에나 나무가 있기 때문일까. 나무를 눈여겨보는 이웃이 없으니, 꽃이 피건 열매가 맺건 쳐다보지도 않는다.

  네 해째 나무이름을 궁금하게 여기다가 유월에 하얗게 올망졸망 달린 꽃을 보고는 사진으로 찍는다. 사진으로 꽃을 찍어서 둘레에 여쭌다. 그리고, ‘아왜나무’라는 이름을 듣는다.

  아왜나무. 이름을 천천히 곱씹는다. 아왜나무는 언제부터 ‘아왜’였을까. 이 나무가 받은 이름은 어떤 뜻일까. 불이 붙으면 거품을 뿜으면서 불을 끈다고 하는 아왜나무라 하니, 어쩌면 이 나무는 ‘거품나무’라고도 할 만하다.

  꽃이 흐드러진 아왜나무 곁을 지나갈 때면 상큼한 꽃내음이 퍼져 발걸음을 멈춘다. 자전거로 달리다가도 ‘아, 상큼하네!’ 하고 느끼면서 얼른 세운다. 잎에도 줄기에도 가지에도 푸른 숨결을 그득 머금었기 때문에 꽃이 피면 더욱 푸른 냄새와 빛을 내뿜으면서 발걸음을 사로잡는지 모른다. 아왜나무가 자라는 곳은 더욱 싱그러우면서 맑은 바람이 불는지 모른다. 4347.6.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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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홍합이 달라붙은 바위


  숲에 있는 바위에는 풀씨가 내려앉아 풀이 돋거나 이끼가 곱게 깔리곤 한다. 바닷가에 있는 바위에는 따개비가 들러붙거나 홍합이나 미역이 들러붙곤 한다.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은 바위에 새까만 얼룩이 있는가 싶더니, 가까이 다가가서 쳐다보니 새까만 얼룩이 아닌 새끼홍합이다. 이 조그마한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커다란 홍합이 되는구나.

  사람도 아주 작은 씨앗에서 비롯하였고, 아주 작은 몸이었으며, 천천히 무럭무럭 자란다. 풀 한 포기도 아주 작고, 나무씨 한 톨도 아주 작다. 새끼홍합도 아주 작을밖에 없다. 숨이 붙는 모든 이웃들은 아주 조그마한 몸에서 커다란 빛으로 거듭난다. 4347.6.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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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소라게 책읽기


  바닷가에서 소라게를 본다. 소라게는 얼른 제 집에 숨는다. 모래밭에 내려놓아도 한동안 꼼짝을 안 한다. 그러다가 살그마니 고개를 내밀고, 천천히 몸을 빼낸 뒤, 뒤집힌 몸을 얼른 바로세운다. 자, 몸을 바로세웠으니 이제 ‘사람 손길 없는’ 곳으로 가 볼까. 소라게를 쥐어 본 손끝에 파르르 하고 떨린 작은 숨결이 오래도록 남는다. 4347.6.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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