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알 바라보기



  매화꽃이 졌으니 매화알이 익는다. 작은 꽃이 졌으니 작은 알이 맺는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알이지만, 차츰 굵는다. 어떤 열매도 처음에는 모두 조그맣다가 차츰 굵는다. 길다란 오이도 오이꽃이 져서 처음 익을 무렵에는 참으로 작다. 커다란 박도 박꽃이 진 뒤 비로소 열매가 익을 무렵에는 대단히 작다. 사람을 빚는 씨앗도 맨 처음에는 더없이 작다. 알찬 열매로 익기까지 모두 조그마한 씨앗이요 꽃이다. 푸르게 우거지는 잎은 열매가 잘 맺도록 기운을 북돋운다. 매화잎은 날마다 짙푸르게 거듭나고, 매화알도 날마다 단단하게 여문다. 4348.5.2.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당에 파꽃



  파 꽁댕이를 마당 한쪽에 옮겨심었고, 파 꽁댕이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곧은 잎을 틈틈이 베어서 먹다가 요즈음은 그대로 둔다. 이제 꽃이 필 무렵이 되었기 때문이다. 파꽃이 핀다. 동그스름한 파꽃이 핀다. 부추꽃에서는 부추내음이 나고, 모과꽃에서는 모과내음이 나듯이, 파꽃에서는 파내음이 난다. 파꽃 둘레에서 올망졸망 피는 꽃마리나 냉이는 더없이 조그맣다. 우뚝 선 파줄기에서 터지는 파꽃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려 본다. 4348.5.1.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blanca 2015-05-01 09:18   좋아요 0 | URL
저는 제가 산 대파를 오래 두었더니 저렇게 파꽃이 피더라고요. ^^;;

숲노래 2015-05-01 09:29   좋아요 0 | URL
네, 파는 그대로 두어도 꽃이 피더라구요.
참으로 멋진 풀이라고 느껴요~
 

올해는 늦게 핀 초피꽃



  지난해와 지지난해에 대면, 달력 날짜로는 늦게 피는 초피꽃이다. 다른 꽃은 이렇게 늦지 않은데 우리 집 초피꽃과 후박꽃은 지난 두 해와 대면 이레나 열흘 남짓 늦는다. 올해는 지난해나 지지난해처럼 후끈거리는 여름이 안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 집 나무가 제법 우거지면서 우리 집 둘레만 차분한 날씨가 되려는가.


  제아무리 무더위나 강추위가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숲에서는 날씨가 그리 많이 바뀌지 않는다. 숲은 늘 엇비슷한 결로 철이 찬찬히 바뀔 뿐이다. 숲을 이루는 곳에서는 바람과 볕과 빗물이 알맞게 흐른다. ‘미친 날씨’라 할 수 있는 ‘이상 기후’가 생기는 까닭은, 사람들이 숲을 자꾸 없애거나 짓밟기 때문이다. 숲으로 푸르게 빛나야 할 지구별에서 숲을 밀거나 없애거나 짓밟으니 날씨가 오락가락 춤추다가 뒤틀릴밖에 없다.


  집집마다 나무가 늘어나기를 빈다. 아파트는 그만 짓고, 이제는 ‘마당 있는 작은 집’을 늘려서,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사람들이 ‘우리 집 나무’와 ‘우리 집 풀밭’과 ‘우리 숲정이’를 누릴 수 있기를 빈다. 그래야 무더위도 강추위도 없이 아름다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흐르겠지. 4348.5.1.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좀꽃마리 논둑



  이웃 논둑에 좀꽃마리가 한창 핀다. 좀꽃마리는 그야말로 작은 꽃이라서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어렵다. 봄까지꽃보다 훨씬 작은 꽃이요, 별꽃보다도 작은 꽃이다. 못 알아채고 지나가기 쉬운 꽃이지만, 보드라운 잎과 꽃은 모두 고마운 나물이 된다. 땅바닥에 엎어져서 코를 큼큼거리면 향긋한 꽃내음이 물씬 퍼지기도 한다.


  작은 꽃은 우리더러 늘 땅바닥에 쪼그려앉거나 엎드리라고 한다. 작은 꽃은 우리더러 작은 꽃송이한테 눈높이를 맞추라고 이른다. 이리하여, 꽃을 보는 사람은 늘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는다. 땅내음을 맡으면서 꽃을 바라보고, 땅빛을 살피면서 꽃을 느낀다. 아이들도 꽃처럼 아이 눈높이에 맞추어 저희를 바라보라고 우리 어른을 부른다. 키가 큰 사람은 작은 사람한테 맞추어야 어깨동무를 할 수 있고, 힘이 센 사람은 여린 사람한테 맞추어야 어깨동무가 되며, 많이 아는 사람은 적게 아는 사람한테 맞추어야 어깨동무를 이룬다. 4348.4.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장미꽃 봉오리는



  장미꽃이 터지면 크게 벌어진다. 넓게 벌어지는 꽃송이는 천천히 움이 트고, 천천히 굵어지며, 천천히 벌어지면서, 바야흐로 활짝 피어난다. 맨 처음 맺는 망울을 보면 무척 조그마한데, 조그마한 망울은 날마다 조금씩 커지면서 붉은 빛깔이 가득한 보드라운 잎으로 바뀐다. 울타리에 장미넝쿨이 뻗도록 하면서 이 놀랍도록 붉은 꽃송이가 터지도록 하는 까닭을 알 만하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짠하도록 새빨간 꽃송이는 마음을 뜨겁게 불태운다. 넝쿨줄기를 뻗는 나무 가운데 장미처럼 커다란 꽃송이를 매다는 나무는 얼마나 더 있을까. 활짝 펼쳐진 뒤에도 눈부시도록 곱지만, 아직 앙다문 봉오리도 눈부시게 고운 장미꽃을 바라본다. 4348.4.28.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