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마을 탱자꽃



  우리 도서관 탱자나무가 뽑혀서 죽었다. 마을 멧기슭 탱자나무 가지를 하나 잘라서 우리 집 뒤꼍에 옮겨심었는데 누가 뽑아 갔다. 이리하여 올해에는 ‘우리 탱자나무에서 피는 탱자꽃’을 볼 수 없다. 그래도 이웃마을 탱자꽃을 만날 수 있다. 바람개비처럼 하얗게 팔랑거리는 탱자꽃은 더없이 곱다. 탱자나무 가시가 따갑다고 하지만, 탱자꽃이 피고 탱자알이 맺는 동안 얼마나 고우면서 맑은 냄새가 퍼지는지 모른다. 탱자나무를 울타리로 삼으면 가시가 촘촘하니 들고양이나 다른 들짐승이 섣불리 다가오지 못하기도 하고, 우리가 집을 비운다 하더라도 가시울타리를 함부로 넘어올 수 없기도 하다. 게다가 이런 가시 돋힌 나무에서 베풀어 주는 풀내음과 꽃내음이 몹시 향긋하니, 온 집안에 고운 바람이 퍼진다. 그리고, 이 고운 바람은 우리 집뿐 아니라 이웃집에도 퍼진다. 시멘트블록으로 울타리를 쌓지 말고, 탱자나무를 심어서 건사한다면 무척 예쁘리라 느낀다. 4348.5.7.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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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꽃이 질 무렵



  처음 피어난 딸기꽃이 질 무렵 바람은 아주 따스하다. 딸기꽃이 질 무렵 봄이 저무는구나 싶은 바람이 불고, 이 바람을 쐬면서 들일을 하는 일꾼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친다. 딸기꽃이 져서 딸기알을 맺을 무렵, 들일을 하는 일꾼은 들딸기를 훑으면서 고픈 배를 가신다. 시골 들판에서 들딸기는 들일을 하는 들사람과 들동무요 들님이 되어 준다. 하나둘 지면서 새롭게 꽃망울을 터뜨리는 딸기꽃을 가만히 바라본다. 4348.5.4.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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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꽃과 지는 꽃



  피는 꽃이 있으니 지는 꽃이 있다. 피는 꽃은 햇볕을 받아 눈부시고, 지는 꽃은 햇볕을 품에 담으면서 씨앗으로 거듭난다. 피는 꽃은 지난해에 여문 씨앗에서 새로 깨어난 숨결이고, 지는 꽃은 이듬해에 새롭게 깨어날 수 있도록 가슴에 고요하게 사랑을 담은 넋이다. 피는 꽃과 지는 꽃이 꽃대에 함께 있다. 한몸에 피는 꽃과 지는 꽃이 나란히 있다. 곱구나. 4348.5.4.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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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꽃이 진다



  모과꽃이 진다. 꽃이 진 자리에는 수술만 남는다. 곧 수술도 떨어지고 씨앗이 맺히려고 할 테지. 나무 한 그루에 수없이 핀 꽃 가운데 열매는 어느 만큼 맺힐까. 모든 꽃에 열매가 달린다면 나무는 너무 무거워서 가지가 축축 처지리라. 감나무에 맺는 감꽃도 대단히 많은데, 감꽃은 아주 많이 떨어지고, 감알이 맺힐 적에도 바람 따라 풋감이 잔뜩 떨어진다. 모든 감꽃에 감알이 맺히면 나무가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 자그마한 꽃에 아주 커다란 열매를 다는 모과나무는 씩씩하게 자란다. 해마다 더 많은 열매를 매달 수 있을 만큼 굵은 줄기로 거듭난다. 하늘을 바라보며 곧게 뻗는다. 지는 꽃도, 지기 앞서 마지막으로 해님과 손을 맞잡는 꽃도, 모두 이 삶을 아름답게 노래하면서 오월로 접어든다. 4348.5.3.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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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꽃과 무화과잎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꽃과 무화과잎이 맺는다. 보드랍게 돋는 잎은 갓 돋은 잎이든 넓게 퍼진 잎이든, 언제나 손바닥과 손가락 같다. 주머니처럼 대롱거리는 꽃은 언제 보아도 몽글몽글 귀엽다.


  무화과나무도 여느 나무와 똑같이 흙빛 줄기와 가지에서 푸른 잎이 돋는다. 그런데 무화과나무는 가지 끝부터 잎이 돋는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새잎이 살짝 나온 셈이다. 줄기와 가지 곳곳에서 새싹이 돋는 여느 나무와 다르기에 무화과나무는 퍽 앙상하거나 가냘파 보이기도 한다.


  해를 바라보면서 솟는 무화과나무야, 봄비를 먹고 봄바람을 마시면서 무럭무럭 자라렴. 네 잎으로 그늘을 넓게 드리우고 여름과 가을에 나긋나긋 멋진 노래를 들려주렴. 이 마을을 오가는 뭇새와 제비가 네 나뭇가지에 앉아서 쉬도록 더 튼튼히 자라렴. 4348.5.3.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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