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빨래터 흰제비꽃



  마을 빨래터 둘레에 흰민들레가 돋고 흰제비꽃이 핀다. 그런데 흰민들레에 꽃이 피면 마을 어르신이 재빨리 뽑아서 버린다. 약풀로 삼지도 않고 곱게 살피지도 않고 그냥 뽑아서 버린다. 흰제비꽃은 빨래터 둘레에서 ‘시멘트가 갈라진 자리’에서 꽃을 피운다. 이 아이들도 마을 어르신들 손을 타면 모조리 뽑혀서 죽는다. 이밖에 다른 들꽃도 씨앗을 맺기까지 버티지 못한다. 꽃이 피면 곧 씨앗을 맺어서 더 퍼진다면서 얼른 없애려고 한다. 이 아이들이 씨앗을 맺으면 우리가 건사해서 우리 집에 뿌릴 텐데, 씨앗을 잘 맺을 수 있을까. 그때까지 버티어 줄 수 있을까. 4348.5.10.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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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장미꽃



  올해 첫 장미꽃이 오월로 접어드니 한 송이 터졌다. 이윽고 두 송이 세 송이 터지리라. 대문 앞에서 나즈막하게 줄기를 뻗으면서 자라는 장미넝쿨은 커다란 꽃송이를 대롱대롱 달면서 바람 따라 찬찬히 흔들린다. 바람 따라 장미꽃내음이 온 집안으로 퍼진다. 4348.5.10.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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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아, 다음 겨울에 만나자



  오월을 앞에 두고 우리 집 동백나무도 꽃송이가 거의 다 떨어진다. 이제 마지막으로 꽃봉오리를 벌린 아이가 몇 안 남는다. 마지막으로 봉오리를 터뜨린 귀여운 아이들아, 곧 여름이 다가오고, 바야흐로 너희들은 씨앗으로 단단히 여물겠구나. 겨울 끝자락과 봄 첫머리에 반가웠어. 여름과 가을 지나고 새로운 겨울에 다시 만나자. 네 꽃빛과 꽃망울을 언제나 가슴에 담으면서 지낼게. 4348.5.8.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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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만 남은 갓꽃



  바야흐로 논삶이를 하는 철이다. 이제 논둑이나 밭둑마다 유채꽃이나 갓꽃을 모두 베어 넘긴다. 아직 논갈이를 하지 않은 논에도 유채꽃은 모두 진다. 경관사업을 하느라 심은 유채는 작달막하게 살짝 자라다가 어느새 수그러든다. 바람에 씨앗을 날려 들녘이나 숲에 깃든 뒤 스스로 깨어나는 아이들은 해를 바라보고 바람을 쐬면서 무럭무럭 자란다. 처음에는 키가 작으나, 이듬해에는 숙숙 오르고, 세 해나 네 해가 지나면 밑둥이 퍽 굵으면서 크게 자란다.


  경관사업이란 ‘구경하기 좋으라고’ 하는 일이다. 들이나 숲을 가꾸려고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꽃만 며칠 보았다가 모두 밀어내고 마는지 모른다. 돈으로 뿌리고 돈으로 갈아엎는다.


  마을을 돌보고 보금자리를 보살피려는 씨앗이라면, 꽃이 피고 지면서 씨앗이 맺을 때까지 차분히 지켜보면서 아낄 테지. 씨앗은 꽃이 되고 꽃은 새롭게 씨앗이 된다. 새롭게 씨앗이 된 숨결은 다시금 새로운 꽃으로 거듭난다. 삶은 꽃빛으로 흐르다가 씨앗으로 고요히 갈무리한다. 4348.5.8.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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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나무 몽우리와 거미



  우리 집 장미나무에 몽우리가 맺힌다. 아주 천천히 천천히 맺힌다. 동백나무 몽우리는 겨우내 맺힌 뒤 봄에 바야흐로 터지는데, 장미나무 몽우리는 봄이 이슥해서야 비로소 맺히면서 여름을 앞두고 활짝 터진다. 비가 오되 바람이 없는 날 낮에 가만히 장미나무를 바라본다. 장미나무 몽우리를 곰곰이 들여다본다. 아주 조그마한 풀거미가 장미나무 몽우리 둘레를 기어다닌다. 거미는 얼마나 작은지 아기 손톱보다 더 작다.


  가만히 보면 조그맣디조그마한 풀벌레가 참 많다. 여느 풀벌레도 거미도 참으로 작다. 풀숲에 쪼그려앉아서 꼼짝하지 않고 지켜보면 아주 조그마한 풀벌레가 풀잎에 앉아서 나를 살펴보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커다란 사람이 풀숲에 쪼그려앉으니 작은 풀벌레들이 깜짝 놀라서 두근거리면서 나를 살펴본다. 때로는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풀벌레도 있으니, 이 아이들은 내가 손가락으로 잎사귀를 가볍게 튕기면 화들짝 놀라서 죽은 듯이 가만히 있기도 한다.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본다. 아름다움은 멀리 있을까. 아름다움은 커다란 꽃밭이나 뜰 같은 곳에 있을까. 아름다움은 부잣집 마당에 가야 있을까. 아니면, 우리 둘레에 흔한 작은 풀숲에 있을까. 비가 오는 날 풀숲을 거닐면 온몸이 빗물과 빗내음으로 젖는다. 4348.5.7.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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