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해당화를 심었을까



  네 사람이 바닷길을 걷는다. 군내버스를 내려서 사십 분 남짓 고갯길을 걸어서 바닷가에 닿는다. 바다에 가까이 오니 길가에 고운 꽃이 여러 송이 피었다. 꽃이 잔뜩 열리지는 않았으나 제법 커다란 꽃송이가 소담스레 곱다. 무슨 꽃일는지 궁금했는데 해당화라고 한단다. 해당화라, 그렇구나. 어릴 적부터 노랫말에서만 듣던 그 해당화를 눈앞에서 보는구나.


  내가 태어나서 자라던 도시에서도 누군가 해당화를 심은 적이 있을 테지. 아마 나는 어릴 적에도 해당화를 보았으리라. 그러나 그무렵에는 해당화를 제대로 마음에 새기지 못했으리라. 마흔 살이 넘어서야 이름을 제대로 알아보는 해당화를 코앞에 두면서 살살 쓰다듬어 본다. 먼저 돋은 잎은 짙푸르고, 새로 돋는 잎은 옅푸르다. 푸른 잎사귀와 발그스름한 꽃송이는 더없이 곱게 어우러진다.


  이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하고 함께 누리려고 심었을 해당화를 곰곰이 헤아린다. 이 나무를 심어서 돌본 사람이 들인 따순 손길을 생각한다. 나는 오늘 어떤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하루를 짓는지 돌아본다. 4348.5.1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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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에 타죽는 소리쟁이



  만화영화 〈바다노래(song of the sea)〉를 보면, 오빠 벤이 누이 시얼샤를 업고 쐐기풀밭을 걸어가다가 다리가 온통 부어오르는 모습이 나온다. 오빠 벤은 누이가 쐐기풀이 쓸리지 않도록 마음을 써 주었다. 그러니까, 오빠 혼자서 쐐기풀밭에서 살갗이 죄 쓸렸다. 누이 시얼샤는 오빠 다리를 보더니 살그머니 바깥으로 나가서 소리쟁이잎을 뜯어 온다. 그러고 나서 오빠 다리를 소리쟁이잎으로 살살 문질러 준다. 오빠 벤은 몹시 기뻐하면서 누이를 고마이 여긴다. 이 대목을 살피면, 만화영화 흐름에서 벤과 시얼샤라는 두 아이는 쐐기풀이 어떤 풀인지 알고 소리쟁이도 어떤 풀인지 아는 셈이다.


  소리쟁이잎은 대단히 맑으며 싱그러운 맛이 도는 멋진 풀 가운데 하나이다. 새봄에 소리쟁이잎이 돋으면 얼른 훑어서 먹어야 하는데, 왜 그러는가 하면, 풀벌레도 소리쟁이잎이 아주 맛난 줄 알기 때문이다. 풀벌레가 아직 덜 깨어났다면 소리쟁이잎이 말짱하지만, 풀벌레가 하나둘 깨어나면 소리쟁이잎부터 구멍투성이가 나다가는 잎줄기까지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 일쑤이다.


  요즈음 시골마을에서는 소리쟁이잎을 훑어서 먹는 할매나 할배가 매우 드물다. 힘이 들고 바쁘시니까 소리쟁이잎까지 훑을 겨를이 없으리라. 그런데, 이 소리쟁이잎은 살갗에 부어오르거나 간지럼 때문에 애먹는 사람 누구한테나 크게 좋다. 이를테면 요즈음 아토피 때문에 애먹는 아이들은 이 소리쟁이잎을 살갗에 바르면 간지럼이나 부스럼이 차분히 가라앉을 수 있다. 마을 어르신들도 이를 알기는 아실 텐데, 소리쟁이잎이 마을 어디에나 밭둑이고 논둑이고 무럭무럭 자라는데, 아무도 안 쳐다보신다. 그저 농약을 듬뿍 쏟아부어서 태워 죽인다. 맛난 나물이면서 놀랍고 고마운 약인 소리쟁이는 어느 시골을 가 보아도 끔찍하게 타죽기 일쑤이다. 안쓰러워서 소리쟁이 꽃대를 가만히 어루만지면서 말한다. “얘야, 예쁜 아이야, 괜찮아. 다음에 새롭게 태어나서 푸르게 빛나렴.” 4348.5.1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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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그스름 찔레꽃



  찔레꽃은 늘 하얀 꽃송이라고 여겼는데, 발그스름한 빛이 감도는 찔레꽃을 본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발그스름한 빛이 되었을까? 이 아이들은 어떤 숨결을 받아들여서 이러한 꽃빛이 되었을까? 가만히 보면, 감자꽃은 하얀 꽃과 보라 꽃이 있는데, 하양과 보라고 섞인 꽃빛이 나오기도 한다. 섞일 일이 없다고 하는 감자꽃이라지만 때로는 섞이기도 한단다. 더 헤아려 보면, 세잎토끼풀이지만 아주 드물게 네잎토끼풀이 있다.


  숲에서 일어나는 일은 섣불리 짚을 수 없다. 꼭 한 가지로만 흐르지 않는다. 고니라면 흰고니를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까만고니가 있지 않은가. 사람마다 다른 마음결이자 사랑결로 살아간다. 눈부신 마음결이 있고 따스한 사랑결이 있다. 저마다 새로운 마음과 사랑으로 곱게 빛난다. 4348.5.1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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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꽃마리가 피었습니다



  좀꽃마리가 핀다. 좀꽃마리를 보자면 좀꽃마리 키가 되어야 하고, 좀꽃마리 눈이 되어야 한다. 장미꽃을 보려면 장미꽃 키가 되어야 하며, 장미꽃 눈이 되어야 한다. 크고 소담스러운 꽃을 보려면 크고 소담스러운 빛깔과 숨결을 알아볼 수 있는 몸이어야 하고, 작고 앙증맞은 꽃을 보려면 작고 앙증맞은 빛깔과 숨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는 몸이어야 한다.


  좀꽃마리가 핀다. 작디작아 아이들조차 깜빡 놓치고 지나치기 일쑤인 꽃이 핀다. 좀꽃마리에 핀 사랑스러운 꽃을 알아보려면, 좀꽃마리가 멋지고 맛난 나물인 줄 먼저 알아야 한다. 새봄에 한 차례 훑어서 누릴 수 있는 반가운 좀꽃마리 나물을 늘 생각하면서 마음에 두어야, 비로소 이 꽃이 하나둘 옹기종기 피어날 적에 빙그레 웃으면서 ‘너 참 반갑네, 고맙네.’ 하고 고개를 까딱 숙이면서 큼큼 꽃내음을 맡는다. 4348.5.1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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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째 만나는 흰민들레꽃



  올들어 삼월부터 흰민들레꽃을 보았고, 오월 한복판으로 접어든 요즈음에도 흰민들레꽃을 본다. 앞으로 언제까지 이 꽃을 볼 수 있을까 하고 헤아려 본다. 오월이 저물고 유월이 되어도 볼 수 있을까? 어쩌면 삼월에 저문 꽃에서 날린 꽃씨가 살살 퍼져서 여름이나 가을에도 새롭게 필 수 있겠지. 그리고, 지난해에 떨어진 꽃씨가 이제서야 싹이 트고 꽃대가 오를 수 있으리라. 봄부터 겨울 문턱까지 한 해 내내 이곳저곳에서 꽃을 볼 수도 있겠지.


  수많은 씨앗이 곳곳에 퍼져서, 이곳도 저곳도 꽃밭이 된다. 온갖 씨앗이 두루 드리우면서, 여기와 저기에 꽃내음이 흐른다. 나도 꽃이고 너도 꽃이다. 나도 씨앗을 새로 맺고 너도 씨앗을 새삼스레 맺는다. 4348.5.16.흙.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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