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꽃을 들여다보니



  파꽃을 들여다보니 몹시 작은 개미가 잔뜩 달라붙었다. 이 작은 개미는 무엇을 얻으려고 파꽃에 달라붙을까. 꽃가루를 얻으려고 달라붙을까. 파꽃이 빚은 꽃가루는 남다른 맛이 있어서 와글와글 신나게 모여서 한 조각씩 얻으려고 할까.


  바람이 불어 꽃가루받이가 된다. 비가 오면서 꽃가루받이가 된다. 나비와 벌이 날아다니면서 꽃가루받이가 된다. 수많은 풀벌레가 찾아들면서 꽃가루받이가 된다. 그리고, 개미가 구석구석 찾아다니면서 꽃가루받이가 된다.


  사람이 사는 보금자리에는 사람만 깃들지 않는다. 수많은 이웃하고 동무가 꼬물꼬물 사이좋게 어울려서 함께 삶을 짓는다. 서로 아끼는 마음이 되어 상냥한 숨결이 흐르고,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포근하게 분다. 4348.5.25.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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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유자꽃



  가을이 깊으면 유자알이 샛노랗게 어른 주먹만 하게 익는다. 유자꽃은 오월에 조그맣게 핀다. 참으로 자그맣게 꽃이 핀 뒤 커다란 알을 맺네. 그러고 보니, 모과꽃도 참으로 조그맣고, 모과알도 참으로 크구나. 하얀 별무늬처럼 생긴 꽃송이는 살짝 도톰하다. 꽃가루가 모인 꽃 한복판은 노랗다. 짙푸른 잎사귀가 가득한 유자나무에 드문드문 조그맣게 피어나는 꽃이니, 미처 못 알아볼 수 있다. 가만히 눈여겨보지 않으면 유자꽃이 피고 지는 줄조차 모르는 채 가을에 유자알만 볼 수 있다. 이리 기웃하고 저리 기웃하면서 유자꽃을 찾는다. 4348.5.24.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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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게 솟는 빛



  푸르게 솟는 빛은 기운차다. 푸른 빛은 푸르기만 하지 않다. 처음에는 노르스름한 기운이 서린 옅푸름이요, 나중에는 노르스름한 기운이 모두 사라진 짙푸름이다. 철이 흐르고 바뀌면서 가을로 접어들면 새삼스레 누르스름한 기운이 감돌면서 푸른 빛이 스러지고, 이내 싯누렇게 시드는 빛이 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봄이기에 푸르게 솟는 빛이다. 봄에는 모든 사람과 풀과 나무와 목숨이 새롭게 솟는다. 이 빛을 먹고, 이 빛을 맞아들이며, 이 빛으로 하루를 짓는다. 4348.5.2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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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뿌리를 심고서



  파뿌리를 심는다. 호미로 땅을 파고 뿌리가 다치지 않게 살살 심는다. 다 심고 나서 흙을 톡톡 눌러 준다.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붓는다. 이곳에서 새롭게 자라렴. 몇 번 잘라서 먹을게. 그 다음에는 꽃이 피도록 그대로 둘 테니, 우리 집에서 예쁘게 함께 살자. 4348.5.1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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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꽃(국수나무꽃) 책읽기



  해마다 이맘때에 숲이나 들에서 흔히 보는 고운 꽃송이가 있다. 찔레나무에 피는 꽃송이도 멀리 꽃내음을 퍼뜨리지만, 이 나무에서 피는 꽃송이도 무척 멀리 꽃내음을 퍼뜨린다. 그래서 숲길이나 들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달콤한 꽃내음을 맡으면서 ‘아, 나무와 바람과 흙과 해가 이렇게 곱구나’ 하고 생각한다.


  찔레꽃은 시골살이 첫 해에 새롭게 알았고, 국수꽃(국수나무꽃)은 시골살이 다섯 해 만에 비로소 알아차린다. 그동안 왜 이 꽃을 알아차리려고 하지 않았을까? 오늘날에는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묻기만 해도 손쉽게 꽃이름을 알 수 있는데, 그동안 왜 국수꽃을 알아차리려고 하지 않았을까?


  찔레꽃이 한쪽에서 흐드러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국수꽃이 흐드러진다. 찔레꽃과 국수꽃은 누가 심었을까? 아마 멧새와 들새가 심었을 테지. 찔레알과 국수알을 먹은 멧새와 들새가 숲과 들 이곳저곳에 물찌똥을 누었기에, 흙이 까무잡잡하게 고소한 곳마다 찔레와 국수가 예쁘게 어우러지면서 오월 한 달을 아름답게 밝히겠지. 멧새야, 들새야, 너희가 국수알을 따먹고 물찌똥을 누어서 우리 집 뒤꼍에도 국수나무가 자라게 해 주렴. 4348.5.1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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