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밭자락 나팔꽃



  일산 할아버지가 돌보는 밭자락에서 자라는 옥수숫대를 친친 감으면서 나팔꽃이 자란다. 아침마다 나팔꽃이 핀다. 살그마니 고개를 내밀면서 옥수수랑 함께 자라는 나팔꽃이 여름노래를 부른다. 4348.6.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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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제비를



  ‘우리 집 제비’를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기쁘다. 우리가 먹이를 준다거나 집을 지어 주지 않으나, 제비는 우리 살림집 한쪽에 조그맣게 둥지를 틀어 함께 지낸다. 먹이를 찾으려고 하루 내내 바깥을 쏘다니지만 아침저녁으로 깃들면서 새근새근 잠을 잔다. ‘우리 집 나무’나 ‘우리 집 고양이’나 ‘우리 집 꽃’처럼 ‘우리 집 제비’는 우리하고 함께 있으면서 저마다 제 삶을 짓는다. 씩씩하고 야무지면서 어여쁘다. 아이와 어버이 사이도 이와 같을까? 언제나 이 지구별 조그마한 보금자리에 함께 있으면서 저마다 씩씩하고 야무지고 어여삐 제 길을 걷는 아름다운 길동무라고 할 만할까? 4348.6.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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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왕짜 2015-06-05 02:19   좋아요 0 | URL
예뻐요~^^

숲노래 2015-06-05 15:07   좋아요 0 | URL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풀이 돋는 길



  바닥이 흙이라면 풀이 돋는다. 바닥에 시멘트나 아스팔트를 깔면 풀이 못 돋는다. 풀이 돋는 자리는 비가 거세게 내려도 흙이 얼마 안 쓸린다. 풀이 안 돋는 자리는 비가 왔다 하면 빗물이 콸콸콸 흐르면서 흙이 많이 쓸린다.


  멧자락에 나무만 있으면 흙은 빗물에 쉽게 쓸린다. 나무 곁에 풀밭이 있어야 비로소 흙이 덜 쓸리거나 안 쓸린다. 밭자락이나 논둑도 이와 같다. 풀을 죄 죽이거나 뽑으면 흙은 버티거나 배길 수 없다.


  길바닥을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깔면 자동차가 다니기 좋다. 이러면서 빗물이 콸콸콸 흐르니, 길바닥 둘레는 흙이 쓸리기 쉽다. 길바닥이 흙이라 하더라도 자동차가 밟고 지나가는 자리는 움푹 패이면서 풀이 못 돋는다. 자동차 바퀴가 안 닿는 자리는 덜 밟히기도 하고 풀이 잘 돋는다.


  숲에서 살면서 늘 풀과 나무를 바라보면 다 알 수 있다. 숲에서 살지 않으면서 풀과 나무를 바라보지 않으면 이론을 세우기 마련이요 실험을 할 테지. 숲에서 배우지 않고 책으로만 배우면, 삶이 없는 지식인이 된다. 4348.6.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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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풍뎅이 책읽기



  장수풍뎅이를 만나려면 숲에 가야 한다. 때로는 숲속에 깃들지 않고, 숲이 우거진 골짝길을 걷다가 만날 수 있다. 숲에 사는 장수풍뎅이라면 곧잘 뒤집어지더라도 둘레에 있는 풀줄기를 잡고 바로설 수 있을 테지만, 시멘트길에서 뒤집어진 장수풍뎅이는 파닥거리기만 할 뿐 바로서지 못한다.


  사람 발길이 뜸한 이 길에서 장수풍뎅이는 얼마나 오래 파닥거렸을까. 마침 이날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멧봉우리를 넘었기에 이 아이를 만났을 테지. 가만히 손가락으로 집어서 살금살금 숲으로 들어가서 나뭇줄기에 살포시 얹는다. 장수풍뎅이는 나뭇줄기에 앉아서 쉬며 기운을 되찾겠지. 숲에서 곱게 살렴. 사람을 구경하겠다면서 시멘트길로 다시 나오지 말아라. 4348.6.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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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무화과알한테



  아침저녁으로 뒤꼍에 올라 무화과나무를 바라볼 적마다 말을 건다. 얘, 무화과야, 네 고운 알을 너무 높은 곳에 매달지 말아 주렴. 그러면 아이들하고 따먹기 힘들어. 이렇게 말하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무화과나무로서는 우듬지에 꽃알을 매달고 싶은 마음일 수 있겠다고 느낀다. 말을 고친다. 얘, 무화과야, 높은 곳에 네 고운 알을 매달아도 돼. 얼마든지 따서 먹을 테니까. 낮은 자리에 매달면 아이들이 손수 따고, 높은 곳에 매달면 내가 너를 타고 올라서 따지.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한결 주렁주렁 잘 맺히는 무화과알을 아침저녁으로 기쁘게 마주한다.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도 무화과알은 토실토실 잘 맺는다. 4348.5.25.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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