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잎에 올라탄 잎



  짙푸르게 커지는 무화과잎에 가랑잎이 하나 살포시 내려앉는다. 뒤꼍을 오르내리면서 가만히 살펴본다. 참으로 곱네. 내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오는 이 말을 가만히 곱씹는다. 고운 잎을 만났으니 곱다고 읊는다. 고운 잎을 마주하니 곱구나 하고 노래한다. 우리 아이들하고 하루 내내 복닥일 적에도, 곁님하고 살림을 가꿀 적에도, 참말 언제나 고운 삶이 흐르는구나 하고 느껴서, 곱게 웃고 춤추면서 노래를 한다. 고운 잎아, 늘 우리 곁에서 싱그러운 바람을 나누어 주렴. 4348.6.1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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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 안 걷힌 고들빼기



  고들빼기잎에 아직 아침이슬이 안 걷혔다. 풀숲에서는 풀과 나무가 따로 ‘사람이 주는 물’이 없어도 스스로 잘 자란다. 왜냐하면, 어떤 풀이든 나무이든 스스로 이슬을 받아들여서 마실 줄 알기 때문이다. 풀이 잘 돋은 자리에서 자라는 나무는 풀잎에 맺힌 이슬이 풀잎을 타고 흙바닥으로 톡톡 떨어질 적에 뿌리로 물을 받아마실 수 있다. 풀잎 힘을 빌지 않아도 나뭇잎마다 이슬이 맺혀서 나뭇잎으로도 마시고 나뭇잎에서 흐르다가 떨어지는 이슬방울을 뿌리로 마시기도 한다. 게다가 풀이 알맞게 자란 땅은 언제나 촉촉하고 기름지면서 까무잡잡하다. 아무튼, 한여름이 되어도 고들빼기잎을 즐겁게 얻을 수 있다. 고마운 들풀이다. 4348.6.1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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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오디야



  우리 집 뽕나무에서 오디를 톡 집는다. 잘 익은 오디는 딴다기보다 집는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톡 하고 떨어진다. 그러니까, 오디는 따려고 애쓴들 딸 수 없다. 나무 밑에 자리를 깔고 나무를 살살 흔들어도 된다. 아무튼, 우리 집 오디를 몇 알 톡 집어서 손바닥에 얹은 뒤 작은아이한테 내민다. “자, 우리 집 오디야. 먹어 봐.” “오디?” “응. 오디.” “어떻게 먹어?” “그냥 먹지.” “어떻게?” “손으로 집어서 입에 넣으면 돼.” 이 아이들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저잣거리에서 한 움큼 장만한 오디를 게눈 감추듯이 먹더니, 올해에는 오디가 낯선가. 왜 이리 손을 안 뻗을까. 아무튼, 우리 집 열매를 사랑해 주렴. 4348.6.1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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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찌알이 알록달록



  버찌알을 올려다본다. 이렇게 높이 달린 버찌알은 따기 어렵다. 그러나, 두 사람이 있으면 목에 태워서 따면 되지. 아이들은 나무를 타서 따면 되고. 초등학교에서 자라는 벚나무인데, 요즈음에는 애써 버찌를 따서 먹으려는 아이는 드물 테지만, 얼마 앞서까지만 해도 새로운 여름마다 시골아이는 으레 버찌를 먹으려고 몰래 나무를 탔겠지. 교사들은 나무를 탄다면서 아이들을 나무랐을 테고, 아이들은 마을 어른과 교사 눈길에서 벗어나려고 용을 쓰면서 열매를 먹으려 했으리라.


  여름으로 접어든 햇살을 받으면서 눈부시게 빛내는 열매와 잎사귀를 함께 올려다본다. 눈으로 보아도 알록달록 고운 열매를 살살 훑어서 입에 털어넣으면 얼마나 달콤하면서 새콤할까. 4348.6.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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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싹을 꺾다



  면소재지 초등학교에 있는 놀이터에 간다. 두 아이는 놀이기구를 타고, 나는 소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을 한껏 누리면서 풀밭을 거니는데, 문득 곳곳에 뾰족뾰족 돋은 것을 본다. 무엇인가 하고 가까이 다가간다. 아, 대나무싹이네. 아직 굵게 돋지는 않았다. 작은 싹이다. 초등학교 울타리 너머에 대밭이 있는데, 아무래도 울타리 너머에서 퍼지는 대나무싹이로구나 싶다. 이 대나무싹은 이곳에서 얼마나 더 자랄 수 있을까. 학교 건물을 지키는 분이 보면 모조리 뽑거나 베지 않을까. 나물로 먹을 수 있을 만큼 예쁘게 자랄 수 있을까. 아니면, 이곳 시골 초등학교 아이들이 주전부리 삼아서 똑똑 꺾어서 껍질을 벗긴 뒤 먹으려나. 4348.6.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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