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울타리에 앉은 마을고양이



  우리 집에서 나고 자라면서 아예 우리 집에 눌러앉은 마을고양이가 여럿이다. 이 아이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으나 가까이하지도 않는다. 늘 알맞춤하게 떨어져서 함께 지낸다. 밤에는 섬돌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가 밟히기도 한다. 별빛이 드리우는 마당에서 저희끼리 이리 달리고 저리 뒹굴면서 노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곧잘 돌울타리에 앉아서 멀거니 무엇을 바라본다. 무엇을 볼까? 부엌에서 네 식구가 둘러앉아 밥을 먹다가 고양이를 바라보니, 이 고양이는 건너편에서 노래하고 날갯짓하는 작은 새를 쳐다본다. 그렇구나. 그래. 저 새를 잡으려고? 잡을 수 있겠니? 4348.6.30.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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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시곱추밤나방 애벌레



  우리 집 초피나무 밑에서 자라는 고들빼기에 애벌레 네 마리가 붙는다. 이 애벌레는 언제 이렇게 우리 앞에 나타났을까? 이만 한 크기로 자라기까지 우리 눈에 안 뜨이고 고들빼기잎을 얼마나 신나게 맛나게 즐겁게 먹었을까?


  고들빼기잎은 우리 식구도 맛나게 먹지. 그러니, 너희랑 우리랑 고들빼기잎을 나누어 먹는구나. 책순이가 너희 이름을 알아내려고 ‘나비 그림책’을 한참 들여다보지만 너희 이름을 찾을 수 없구나. 너희 이름은 무엇일까 궁금해서 요모조모 찾아보니 ‘맵시곱추밤나방’ 애벌레라고 하네. 누가 이런 멋진 이름을 붙였으려나. 아무튼, 너희는 나비 애벌레 아닌 나방 애벌레인 만큼 ‘나비 그림책’에 너희 이름이 나올 수 없었을 테지.


  누가 너희한테 이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나, 너희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맵시가 난다. ‘맵시’라는 첫 말이 아주 잘 어울린다. 우리 집에는 제비랑 참새도 살고, 아침저녁으로 수많은 멧새가 드나드는데 너희는 용케 잘 살아남았구나. 어쩌면 새들이 너희를 보고도 일부러 살려 두었는지 몰라. 아무쪼록 날마다 맛나게 풀잎을 먹으면서 고치도 멋들어지게 지어 보렴. 4348.6.30.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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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느티나무 둘레에



  아침에 군내버스를 타려고 이웃마을로 걸어간다. 한참 군내버스를 기다리는데, 논 한복판에 우뚝 선 커다란 느티나무에 여러 마을 아이들이 모인다. 아하, 이 아이들은 학교버스를 기다리려고 모이는구나. 면소재지에 있는 학교로 갈까, 아니면 읍내에 있는 학교로 갈까. 이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날마다 느티나무 둘레에 모일 테지.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마다 새로운 빛이 되고, 새로운 숨결이 되며, 새로운 바람이 흐르는 느티나무를 바라보면서 모일 테지. 언제나 느티나무를 가슴에 담는 아이들로 자랄 수 있기를 빈다. 4348.6.2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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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세우고 훑은 들딸기



  바다마실을 가는 길에 자전거를 세우고 들딸기를 훑었다. 나는 미처 못 알아보았지만 큰아이가 “아버지! 저기 딸기!” 하고 외쳤기 때문에 자전거를 세웠다. 그러고는 손바닥에 그득 딸기를 올려서 아이들한테 가져다준다. 한 번 가져다주고 두 번 세 번 잇달아 가져다준다. 딸기로 배를 통통하게 채우도록 훑는다. 땡볕에 먼길을 달리니까 너희는 이 고운 숨결을 받아들이면서 새롭게 기운을 내주렴. 4348.6.15.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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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위잎이랑 댓잎이랑



  아이들이 댓잎을 훑어서 씹어먹기를 퍽 즐긴다. 버들피리처럼 댓잎피리를 불려고 용을 쓰는데, 잘 안 된다. 그래도, 댓잎을 오래도록 물면서 논다. 꼭 버들잎이 아니더라도 다른 풀잎으로도 풀잎피리를 불 수 있으리라.


  큼직하게 잘 자란 머위잎은 아이들한테 우산 구실을 한다. 비가 오지 않고 저녁햇살이 드리우는 때이니, 머위잎은 우산이 아닌 양산 구실을 하는 셈일까. 댓잎 물고 머위잎 들고 고샅을 달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골길을 달리면서 풀내음을 듬뿍 머금는다. 4348.6.1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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