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과 나뭇잎과



  햇볕이 아무리 눈부셔도 나무그늘에서는 시원하다. 햇볕이 아무리 내리쬐려고 해도 나뭇가지가 촘촘히 뻗으면서 잎사귀를 팔랑거리면 상큼하다. 햇볕이 아무리 후끈후끈 달아올라도 나무가 얽기설기 어우러져서 숲을 이루면, 이곳에서 짙푸른 바람을 쐬면서 온몸이 맑을 수 있다.


  아이들을 이끌고 골짜기로 나들이를 가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숲바람 때문이다. 숲바람을 함께 쐬고, 숲바람을 함께 마시며, 숲바람을 함께 노래하고 싶다. 이 숲바람이 있어서 시골이 아름답다. 이 숲바람이 시골에서 도시로 퍼지니, 도시에 있는 모든 이웃도 즐겁고 기운차게 하루를 열 수 있다. 4348.8.6.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숨은 방아깨비



  호박꽃이 한창 피고 진다. 호박넝쿨이 뻗는 둘레에 돋는 강아지풀을 신나게 뽑다가 방아깨비를 본다. 아주 조그마한 녀석이다. 그러나 이 조그마한 녀석도 알에서 갓 깬 녀석하고 대면 제법 큰 녀석이다.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을 불러서 “여기 방아깨비 있어.” 하고 말하면 “어디? 어디?”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살피는데, 아이들은 좀처럼 못 찾아낸다. 방아깨비 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할 수 있지만, 풀빛하고 똑같은 몸빛으로 감쪽같이 숨었으니 찾아내기 어렵지.


  손가락으로 “저기.” 하고 가리킨다. 그래도 못 찾는다. “저어기.” 하고 다시 가리킨다. 한참 뒤에야 “아하, 저기 있구나. 쟤가 방아깨비야?” 하고 묻는다. 그래, 쟤가 방아깨비란다. 우리 집 풀밭에서 함께 사는 멋진 이웃들 가운데 하나이지. 4348.8.3.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짝짓기 범나비



  나비는 여느 때에는 그야말로 쉬지 않고 팔랑거리면서 춤을 춘다. 춤을 추는 나비를 사진으로 잡아채기란 몹시 어렵다. 그런데, 짝짓기를 하는 나비는 대단히 얌전하다. 나비가 짝짓기를 하는 동안에는 바람조차 잠들고 아뭇소리가 안 들린다. 이렇게 고요한 숨결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한 발짝씩 천천히 다가선다. 부디 나비가 내 발자국을 느끼지 않기를 바라면서, 부디 나비가 그대를 헤살 놓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 가만히 바라보고 싶을 뿐인 줄 느껴 주기를 바라면서.


  범나비 두 마리가 짝짓기를 하려는 줄 먼발치에서 알아채고는 자전거를 멈추었다. 아이들한테도 목소리도 발소리도 죽이라고 하고는 함께 천천히 다가섰다. 암수 나비가 사이좋게 어울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숲을 환하게 빛내면서 아름답다. 사랑스럽다. 4348.8.2.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모과나무 가지가 찢어지다



  지난 유월에 큰 비바람이 드세게 몰아치면서 우리 집 모과나무 가지 하나가 찢어졌다. 모과꽃은 가지 안쪽부터 바깥쪽까지 골고루 피었는데, 열매를 맺을 적에는 으레 가지 바깥쪽에 달리기 일쑤이다. 가지 안쪽에 열매가 달리면 무게를 탄탄하게 받을 텐데, 모과알은 자꾸 가지 끝에 대롱거린다. 이러니까 열매도 솎아내기를 해야 하는구나 싶다. 그런데, 모과나무 가지는 찢어졌어도 나뭇줄기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찢어진 가지가 대롱거리면서 버티다가 다른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난 뒤에 그만 툭 떨어졌다. 이때까지 모과알은 ‘찢어진 가지’가 나누어 주는 밥을 먹으면서 살았다.


  올해가 지나가고 새로운 해가 찾아오면 모과나무 줄기랑 가지는 더욱 굵어지리라 본다. 해마다 조금씩 굵어질 테지. 아직 어리고 작은 모과나무이니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면 줄기도 가지도 힘들리라.


  여름하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잠을 잔 뒤 새로운 봄이 되면 찢어진 가지 둘레에서 새로운 가지가 돋겠지. 모과나무는 한여름 볕살을 듬뿍 받으면서 씩씩하게 우리 집 옆에서 춤을 춘다. 4348.8.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화과잎 그늘에서 쉬는 풀개구리



  햇볕이 뜨겁다. 풀벌레나 풀짐승은 이런 햇볕을 견디기 어렵다. 사람도 뜨거운 여름볕을 고스란히 받으면 대단히 힘들 테지. 조그마한 풀벌레하고 풀짐승도 햇볕이 뜨겁게 내리쬘 적에는 그늘을 찾는다. 그늘이 없으면 풀밭에는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한다. 풀개구리는 널찍한 무화과잎이 드리우는 그늘을 누린다. 풀빛하고 같은 몸빛으로 무화과잎하고 한몸이 되듯이 찰싹 달라붙으면서 푸르게 부는 여름바람을 쐰다. 시원하지? 우리 집에서 즐겁게 살면서 틈틈이 멋진 노래를 베풀어 주렴. 4348.8.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보슬비 2015-08-01 21:01   좋아요 0 | URL
숲노래님 마을에는 무화과 나무가 있나봅니다. 나뭇잎 결치 참 곱네요.
풀개구리가 어디있을까 살피다가 보니 더 반갑고 이쁩니다.

숲노래 2015-08-01 21:17   좋아요 0 | URL
마을에는 없고요,
저희 집 뒤꼍 울타리를 따라서 흐드러집니다 ^^
올해에는 무화과알을 아주 신나게 누리리라 생각해요~~
무화과잎은 개구리들이 참으로 좋아하더라구요~